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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종격투기 원문보기 글쓴이: 에이전트
삼국사기 와 삼국유사 에 나오는 괴물들 57종
9. 사비하대어 (泗沘河大魚: 사비하의 큰 물고기라는 말)
강에 사는 거대한 물고기로, 길이는 사람 키의 몇 십배에 이른다. 이 물고기가 죽어서 나타나는것은 대단히 흉한 징조이다. 백제 멸망을 앞두고, 659년에 지금의 부여 백마강인 당시 사비하에서 발견 된 적이 있다. “삼국사기”에 나와 있다.
* 보통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죽으면서 모습이 드러났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깊숙한 바닥에만 숨어 있어서 결코 사람의 눈에 뜨이지 않으므로 거대한 몸집에 비해서 모습을 보기는 어려운 것으로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백제 멸망의 징조였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나라의 운수와 세상의 덕을 감지하는 신비한 물고기여서, 세상사가 괴로워지면, 그만큼 물고기도 괴로워하거나 늙어가게 되고, 자신이 사는 강 근처의 사람들이 위험에 빠지게 되면, 먼저 병 들고 죽어 버리게 되는 것이라고 상상해 볼 만하다.
이런 부류의 크고 괴상한 물고기 이야기는 보통 바다에서 이상하게 큰 고래를 발견한다든가, 혹은 강을 거슬러 올라와서 죽은 돌고래등을 발견하는 경우를 과장한 것이 많다. 그러나, 백마강과 같은 내륙 지역의 강에서 발견되는 예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아서, 이렇게 고래를 착각하는 이야기와 구분된다.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는 일 역시 대표적인 흉조로 널리 퍼져 있는 것인데, 이런 일들은 보통 물이 더러워지거나 날씨가 이상해지는 예가 흔하다. 그렇다면 그런 식으로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할 때 평소에 결코 잡거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기이한 물고기도 같이 죽어 나오는 경우가 있을 것이고, 이것이 거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10. 거인 (칠십삼척 七十三尺: 거인의 몸 길이인 73척을 말함)
보통 사람 키의 열 배가 넘어가는 거인이다. 몸에 비해 발은 무척 작아서, 비율로 보면 사람의 절반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백제에서 지금의 충청도 일원 바다 근처에서 661년 시체가 떠올라 발견되었다. “삼국유사”에 나와 있다.
* 기록이 엇갈리는데, 거인의 시체가 백제 멸망의 징조로 나타난 기록은 659년, 661년, 667년 세 차례의 기록으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흩어져 나온다. 삼국사기의 기록은 사람의 몇 배 정도 크기로 거인들 치고는 그다지 큰 편이 아니나, “삼국유사”의 기록을 보면, 크기가 그보다 훨씬 더 크게 나온다.
바다에 시체가 떠올랐다는 것을 보면, 바다 먼 곳의 섬나라, 혹은 바다 속 사람이 살 수 있도록 공기가 차있는 동굴 따위에서 살 것이라는 이야기를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고, 몸에 비해 발은 무척 작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사람처럼 땅 위에서 달리거나 걷는데 능숙하지 못하여 항상 물에서 헤엄을 치거나 엎드려 기어 다닌 것으로 생각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외에 한국 옛 기록 속 여러 거인 이야기들을 정리해 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한국의 거인 이야기 중에 거의 가장 옛날 것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사례는 중국 고전 “박물지”에 실린 “옥저” 이야기이다. 여기서는 중국 위나라의 관구검이 고구려를 침공해서 고구려 동쪽 끝까지 갔다가 들은 것이라면서, 옥저의 한 노인에게 들은 이야기 몇 가지가 짤막하게 나와 있다. 이 노인은 여자들만 사는 나라인 여인국 이야기 등과 함께 바다 건너 동쪽에서 시체를 건진 이야기를 하는데, 그 시체 옷의 소매 길이가 세 길, 그러니까 사람 키의 여러 배에 달했다고 한다.
이것은 아주 커다란 사람 이야기일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엄청나게 소매만 길다란 괴상한 옷을 입은 사람 이야기일 수도 있을 것이다.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지만, 이 이야기는 역사 책인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도 실렸고, 이에 따라 그 뒤의 삼국, 고려, 조선 학자들에게도 알려졌다.
조금 더 본격적인 거인 이야기는 나중에 나온 중국 서적 “기문”에 실린 “장인국(長人國)” 이야기를 꼽을 만하다. 이것은 신라 동쪽에 장인국이라는 나라가 있고 거기에 크기가 큰 사람 비슷한 괴물이 산다는 것이다. 이것은 당나라 전후 무렵 떠돌던 소문이 실린 것인데, 이것이 중국 역사서 “신당서”에도 실렸고, 역시 그에 따라 그 뒤의 삼국, 고려, 조선 학자들에게도 알려졌다.
이런 식으로, “바다 건너 알 수 없는 곳에 있는 거인 이야기”는 하나의 유형이 되어 나타난다. 특히, 중국 당나라 때에는 바다 건너에서 중국을 찾아 오는 사람들 중에 신라 사람들이 많았다. 때문에, 중국의 “바다 건너 이상한 곳”에 관한 설화가 신라 뱃사람, 신라 사신과 엮이는 경우가 많았다.
이것들을 짧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들이 있다.
* “기문”에는 당나라 사신이 신라에 갔다가 일본으로 가다가 풍랑을 만나서 위의 “장인국” 같은 곳에 가서 잡혀 먹힐 위기에 쳐했는데, 붙잡혀 있던 베 짜는 여자들과 함께 도망쳤다는 이야기가 있다.
* “옥당한화”에는 당나라 사신이 신라로 가다가 거인이 사는 섬에 표류했는데 도망치다가 칼로 거인의 손가락을 잘라낸 것을 조정에 바쳤다는 이야기가 있다.
* “영표록이”에는 당나라 사람이 표류하다가 어떤 섬에 도착하니 같은 배에 타고 있던 신라 사람이 그곳이 개들의 나라, 즉 “구국”이라고 했고, 나중에는 거인이 사는 “대인국”에도 들렀다는 이야기가 있다.
사실 거인 이야기 외에도 중국 당나라에서는 신라와 바다 건너 이상하고 신비한 것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돌았다. 예를 들면 “유양잡조”의 장수국과 용궁 이야기, “박이지”의 신선들이 사는 섬 이야기, “전당시주”의 인어가 짠 옷감 이야기, “소하록”의 백룡의 가죽 이야기 등등이 그 사례다. 이런 이야기들은 나중에 중국 송나라 때 “태평광기”에 실렸고 상당수 항목은 “신라”라는 항목명으로 편집되기도 했는데, “태평광기”가 고려, 조선에도 들어와 비교적 널리 유통 되었으므로 고려, 조선의 몇몇 사람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중에서도 거인 이야기는 앞서 “장인국” 이야기와 합쳐져서 바다 건너 먼 곳의 이야기로 특히 자주 돌았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문헌인 “어우야담”에도 바다 건너 먼 곳에 있는 커다란 거인 이야기가 나오고, 그 뒤의 “지봉유설”에는 직접 거인이 등장하지 않지만 표류해서 어떤 섬에 갔는데 커다란 신발이 있는 것을 보고 무서워서 도망쳤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개중 특이한 사례로는 그리스의 “오디세이”에 나오는 퀴클롭스 이야기와 비슷한 것도 꼽을 만하다. “용주유고”의 “통천해척표풍설”에는 어부들이 표류해서 거인 섬에 갔는데 남녀 거인들이 너무 사나워서 거인의 외양간에 숨어 있다가, 말과 소를 방목할 때에 말 떼, 소 떼에 섞여서 탈출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19세기가 되면 정말 직접, 간접적으로 “오디세이”가 전해진 것인지, 거인의 눈을 찌르고 도망치는 무척 비슷한 이야기가 생겨 나는데, 이런 것이 “해동야서”, “청구야담”에 실려 있기도 하다.
방향은 약간 다르지만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흉한 징조로 거인의 시체가 물에 떠내려 왔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넓게 보면 역시 알 수 없는 곳에서 바닷물을 따라 거인이 떠내려 온 것이므로, 바다 건너의 거인 이야기와 통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바다 건너 먼 곳의 거인 이야기를 제외한 거인 이야기는 대체로 두 종류 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번째로, 보통 사람 크기의 서 너 배, 네 다섯 배 정도 되는 무섭고 잘 싸우는 사람이 나타났다는 형태이다. 이것도 바다 건너의 거인 이야기 못지 않게 많은 편이다. 이것은 사람과는 완전히 다른 괴물 이야기 보다는 덩치 크고 무서운 악당, 무서운 장수에 관한 이야기가 옛날 이야기 답게 적당히 과장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두번째로, 손으로 산을 만들고 발로 강을 만드는 크기의 어마어마하게 큰 거인이 등장하는 신화를 꼽아 볼 수 있다. 이런 이야기는 과거 기록은 상대적으로 드문 편이이며, 현대에 수집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전설에서는 사례가 더 자주 보인다. “장길손”이 산을 만들었다든가, “창세가”에서 먼 옛날 거인이 손으로 해와 달을 떼어 냈다든가 하는 이야기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중국 고전에서는 이렇게 산과 바다 만큼 큰 거인 이야기가 드물지 않은데 비해, 비해 한국계 기록으로 시대가 오래된 것은 많지 않아서 18세기 이전의 기록에서 이렇게 산과 바다 만큼 큰 거인 설화는 장한철 “표해록”에 나오는 선마선파(詵麻仙婆) 이야기 정도이다. 선마선파 이야기는 제주도에서 현재 “설문대할망” 이야기로 잘 알려진 것이다.
이렇게 정리해 보면, 거인 이야기의 유형 중에는 바다를 표류하고 탐험하다가 신비한 섬에서 무서운 거인을 만나는 형태가 많고, 나아가 이런 부류가 한국 옛 괴물 이야기의 대표적인 한 유형이라고 할 만하다.
조선 말 쇄국정책과 척화비의 느낌 때문인지, 한국 옛날 이야기에서는 해외의 먼 바다를 탐험하는 것은 안 어울린다고 단정하는 경향이 있는데, 결코 먼 바다에서 이상한 것을 발견하는 옛 이야기는 드물지 않다. “아라비안 나이트”나 대항해시대 유럽 선원들의 모험과 비슷한 신라 선원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바다 모험 이야기는 자연스러울 정도일 것이고, 고려, 조선 시대의 바다 탐험 이야기도 뿌리는 뚜렷하다.
11. 궁중괴수 (宫中槐樹 : 궁궐에 있는 회화나무라는 말, 명여인곡성 鳴如人哭聲: 사람이 곡하는 소리처럼 운 다는 말)
신령스러운 나무로 모습은 회화나무 처럼 생겼다. 유일하게 자신의 뜻을 사람에게 보여 주는 것으로 우는 것 뿐인데, 대낮에 사람이 곡하는 소리와 매우 닮은 소리를 낸다. 밤이 되면 멀리 다른 곳으로 소리만 옮아 가서도 귀신이 곡하는 소리 같은 것이 난다. 백제 멸망의 징조로 백제에서 659년 지금의 부여땅 궁궐에서 발견 된 적이 있다.
* 나무가 신령스러워서 세상 일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는 부류의 이야기로는 기록에 남아 있는 것은 “장화훤요” 항목도 있는데, 이 기록의 경우에는 요사스럽다기 보다는 나라의 운명을 걱정하는 쪽에 가깝다. 그러므로, 조용히 선채로 세상이 돌아 가는 것을 가만히 지켜 보고 이해하고 있지만, 어찌되었든 나무이므로 어떠한 행동이나 말을 하지는 못한다는 식으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외에는 다른 나무와 달랐다는 기록은 없으므로, 그렇게 소리내어 우는 일을 하는 것도 일평생 몇차례 하지도 못할 만큼 힘겨운 일이고 자주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식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밤에는 귀신 우는 소리가 멀리 다른 곳에서 났다는 기록에 대해서는, 이것이 우는 소리가 메아리처럼 기이하게 흘러다니며, 한참 동안 돌아다니기 때문에 밤에 멀리 떨어진 다른 동네에서 갑자기 그 소리가 다시 들리는 등의 일이 있다고 상상해 볼 수도 있을 것이고, 혹은 밤에 아무도 보지 않을 때는 나무가 스스로 움직여서 다른 곳에 잠시 다녀 오는 것이라는 식으로 상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회화나무, 즉 괴수(槐樹)는 중국 고전에서부터 신령스러운 나무로 나타나는 사례가 많기 때문에, 관련된 여러가지 기이한 일이나 귀신이야기가 적지 않고,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회화나무라는 특정한 한 나무 종류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신묘한 영험이 있는 나무를 통칭해서 부르는 표현으로 봐야 하는 경우도 있다.
한편, 생각과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 같은 것이 있는데 그것이 나무와 같은 처지가 되어 볼 수도, 들을 수도, 말할 수도, 움직일 수도 없이 그저 한 자리에 오래토록 고요히 가만히 있으면서 단지 혼자서 생각하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12. 무고경주 (無故驚走: 이유 없이 놀라서 뛴다는 말)
형태도 없고, 소리나, 빛깔도 없는 것인데, 나타나면, 갑자기 사람에게 무서운 마음을 불러 일으킨다. 그 무서운 마음은 주변 사람들에게 삽시간에 퍼져나가서, 사람이 많이 모인 곳이라면, 수백, 수천명이 미친 듯이 겁에 질려 도망치게 된다. 너무나 무섭기 때문에, 사람들이 마구 도망치다가 몸을 다치는 등 소란을 일으키는 일이 일어나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특히 위험하다. 660년 백제에서 지금의 부여 땅에 있던 시장 통에서 나타나, 큰 혼란을 일으켰다. 대체 무엇때문에 갑자기 사람들이 도망치기 시작했는지, 어떠한 이유도 없었지만 여러 사람이 갑자기 겁에 질려 도망치게 되었고 이때 밟히고 넘어져 죽은 사람 숫자만 100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 이것은 불안한 상황에서, 모여 있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일어나는 공황(panic) 의 극적인 모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삼국사기에는 이것을 백제 멸망을 암시하는 귀신 이야기 사이에서 어떤 귀신의 등장처럼 배치 해 놓고 있다.
어느 한 사람이 누군가 매우 무서운 것이 나타나 자기를 잡아 간다는 듯한 느낌이 들게 되어 이상한 행동을 하는데, 그 때문에 주목한 옆 사람도 움찔하게 되고, 그러는 사이에 무서운 마음은 주변 사람들에게 급격히 퍼져 나갈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숫자를 넘어 서게 되면, 많은 숫자의 사람이 갑자기 겁을 먹고 급히 뛰어 다닌다는 그 자체가 위험한 상황이 되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겁을 먹고 도망치게 될 것이다. 이런 일이 사람이 많이 모인 곳이라면, 수백, 수천명이 크게 겁에 질려 도망치게 되고, 그러다 물건이나 건물이 부서지는 사고나, 사람이 넘어지고 밟혀 다치는 사고도 크게 일어날 것이다.
현대를 배경으로 한 사건 중에서도, 큰 사고나 급격한 변동에 의해 나타나는 공황 상태나, 시장의 폭락, 뱅크런과 같이 경제적인 격변이 심리 효과와 엮여 더 큰 문제를 일으키는 일에 이것을 견주어 볼 수 있을 것이다.
13. 견상여야록 (犬狀如野鹿: 개의 모습이 들사슴 같았다는 말)
들사슴과 개의 중간에 해당하는 짐승으로 들사슴 같은 개라고 했으므로 개에 조금 더 가까울것이다. 짖었다는 기록이 있으므로 입이나 목의 모양은 특히 개에 더 가까울 것이다. 660년 백재에서 지금의 부여 땅에 있던 백제 왕궁에 나타나 짖은 뒤에 간 곳을 알 수 없이 사라졌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은 백제 멸망을 경고하는 징조로, 이 해가 지나기 전에 신라와 당나라의 침공으로 백제는 멸망했다.
* 들사슴을 닮은 개를 생각해 본다면, 사슴과 같은 뿔이 있고 털의 무늬도 사슴과 비슷하지만, 크기나 입의 모양, 식성이나 행동은 개와도 비슷한 것으로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슴이 나라의 운명을 상징한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 본다면, 나라의 격변, 전쟁, 재해를 미리 알아 볼 수 있는 재주가 있다는 식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고, 개가 사람에게 충성하고 사람을 잘 따르는 것을 초점을 맞추어 본다면, 그러한 재해를 사람에게 미리 경고하고 피하도록 하려고 한다거나 사람을 보호하려고 노력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어디로 갔는 지 찾을 수 없었다는 묘사를 보면, 굉장히 빠르게 움직인다거나 하는 습성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이야기에 바로 뒤이어, 백제 도성의 모든 개들이 길에 모여 짖고 울어 대다가 얼마 후 흩어졌다는 말도 나오는데, 이 이야기와 연결시킨다면 멀리 떨어진 다른 개에게 뜻을 전할 수 있다거나, 여러 개들을 몰고 다니고 여러 개들과 통할 수 있고 개들을 거느리고 다니는 짐승이라는 것이라고 상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묘사나 백제를 지키려고 한 짐승이라는 느낌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어쩐지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돌짐승 진묘수의 모습을 연상하게 하는 점도 있다.
14. 금와 (金蛙)
개구리 처럼 생긴 모양의 사람 비슷한 것으로, 색깔은 금빛이 돈다. 기록에 따라서는 금빛 달팽이처럼 생긴 사람 비슷한 것이라고도 한다. 연못 가의 커다란 바위 밑에 숨어 있는데, 말과 같은 특별한 짐승은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이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눈물을 흘린다. 이것이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라고 믿기도 한다. 사람이 데려다가 키울 경우 보통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은 형체로 자라나 뛰어난 사람이 된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부여의 임금이 된 "금와왕"에 관련된 이야기로 수록되어 있다.
* 통설인 금빛 개구리와 닮은 아기라는 것 이외에 금빛 달팽이와 닮은 아기라는 설은 “삼국사기”에 실린 이야기의 주석 부분에 실린 언급에 따른 것이다. 원전에 자식이 없어 하늘에 기도한 데에 따른 감응으로 부루왕이 금와를 찾아 냈다는 대목에 초점을 맞추면 보면, 하늘에서 내려온 이상한 모습의 종족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고, 달팽이를 닮았다는 것은 껍질과 비슷한 이상한 옷이나 장치를 몸에 두르고 있었다고 상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말이 눈물을 흘렸다는 점에 초점을 맞춘다면 이것이 짐승을 두려워 하게 만든다거나 소리나 동작 없이도 멀리서 짐승의 마음을 감복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도 생각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과는 계통이 다른 설화로 통도사에서 내려오는 금개구리 이야기가 있는데, 이것은 자장율사가 옛날 통도사를 창건할 때부터 바위 틈에 살고 있는 금개구리가 수천년을 지나 아직까지도 살고 있다는 것이다. 19세기의 "일사집략"등의 문헌에서 확인되는데, 통도사에 현재까지 인기 있는 전설로 요즘도 가끔 황색 빛을 띄는 개구리가 관찰되면 전설 속의 금개구리라는 이야기가 돌기도 한다. 이런 개구리는 "금와보살"이라고 높여 부르기도 하는데, 이런 금개구리 이야기는, 작은 금빛 개구리의 모습이지만 정진한 끝에 높은 깨달음을 갖고 있고 수천년에 이르는 아주 긴 시간 동안 장수할 수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15. 백장 (白獐)
하얀 빛깔의 노루이다. 사람들이 귀한 보물로 생각하는 것인데, 특별히 신령스러운 점이 나타나있지는 않으며, 극히 귀한 것은 아니다. 기원전 98년, 기원전 18년 무렵 부터 799년 까지, 삼국 각지에서 여러번 나타난 기록이 있다. 대체로 임금의 덕이 있을 때 잡히는 짐승이라고 한다. 107년에는 임금이 자장(紫獐) 즉 보라색 노루를 잡았다는 기록도 있는데, 이것이 더 귀한 사례이다. "삼국사기"에 나와 있다.
* 흰 노루가 임금의 덕이 높을 때 잡히는 짐승이라는 설이 있다는 것은 후대 “조선왕조실록” 1445년 8월 8일자에 실린 세종의 언급을 예로 꼽을 만하다. 여기에 초점을 맞히면 이 흰 노루라는 것은 사람 사는 세상이 살기 좋을 경우, 사람 사는 곳으로 오고 싶어 한다거나 사람을 덜 경계하여 쉽게 잡히는 습성이 있다는 식으로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조선시대 이후에는 보라색 노루의 경우, 신비로운 모습과 귀한 가치에 비해서 특별히 큰 도움이 될 것은 없어서 그럴듯한 징조처럼 보이기만 하지 실제로는 아무 쓸모도 없는 허황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 예를 들어, 권근은 “동국사략론”에서 보라색 노루와 주표(朱豹), 즉 붉은 표범을 자장주표(紫獐朱豹)라는 어구로 함께 지칭하면서 그럴 듯해 보이고 귀해서 좋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무의미하고 나라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쓸데 없는 것의 상징으로 언급하며 비판하고 있다.
16. 양액유우 (兩腋有羽: 양쪽 겨드랑이에 깃털이 있다는 말)
겨드랑이부터 팔까지 새처럼 깃털이 길게 나 있는 사람이다. 날개라고 볼 수 있으나, 두 팔 외에 따로 날개가 돋아 있는 것이 아니라, 팔 그 대로가 날개와 닮은 점이 있다. 옷을 입어 소매로 팔을 가리면 겉보기 모습이 특별히 사람과 다른 점이 없다. 지혜나 힘은 사람보다 뛰어나다. 그때문에 주위의 기대를 받기도 하고, 한편으로 주위에서 사람들에게 시기와 질투를 많이 받고, 놀림이나 따돌림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보통, 사람들이 잘 오지 않는 숲 속이나 산 속에서 조용히 살아간다. 5년에 고구려에서 왕이 사냥하다가 우연히 만났는데, 결국 등용해서 신하로 삼은 뒤에 우(羽)씨 성을 쓰도록 했고, 왕의 딸과 결혼시켜 사위로 삼은 적이 있다. “삼국사기”에 나와 있다.
* 날개가 있는 사람이 뛰어난 재능이 있는데, 그것을 시기하고 질투한다는 류의 이야기는 조선에 이르러 특히 더 유행하게 된다. 조선초 남이, 이징옥 이야기처럼, 젊은 나이에 비범한 재능을 보였으나, 시기하는 무리들 때문에 억울하게 죽은 사람이 있다는 형태의 이야기가 널리 돌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전국 각지에는 소위 "아기장수" 이야기라는 것이 퍼졌는데, 그 골자는 매우 재능이 있는 아이가 있는데, 이 아이가 새로운 왕이 될 것을 우려해서 미리 죽여 버린 다는 류의 이야기이다.
옛 문헌의 기록 중에 비교적 선명한 사례로는 "송자대전"에 실린 “어록”에 실린 김덕령에 대한 전설이 있는데, 여기서 김덕령은 겨드랑이 아래에 날개가 있고, 살갗이 쇠처럼 단단하여 고문을 해도 상하지 않으며, 허공에서 칼을 꺼낼 수 있거나 보이지 않다가 보이는 칼을 갖고 있기 때문에 맨몸이라 하더라도 칼을 꺼낼 수 있고, 누가 그 몸을 높이 던져 버리더라도 균형을 잡고 바로 설 수 있으며, 날아 오르듯이 아주 높이 솟아 오를 수 있는 신비한 재주가 있다고 묘사 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런 재주들이 날개 달린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도 김덕령은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뒷날의 "아기장수" 계통의 이야기와 “삼국사기”에 실린 5년의 고구려 이야기를 대조해서 보면, 나중에너무 뛰어나서 자기 자리를 위협할 수도 있는 인재라고 하지만 그런 걱정 없이 인재를 받아 들이는 배포 큰 임금에 대한 이야기처럼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출처 : 곽재식의 옛날 이야기 밭
첫댓글 전쟁으로 강에 피가 물들면 기생충 들로 인해 물고기들이 변하거나 죽거나 한다고 하더라구요
근처 동물들이 병이 들어도 그렇고
물을 마시면서 배변을 하면서 흘러들어오는 미생물때문에 물고기가 더 잘 사는 경우도 있고 잘 살고있는 물고기가 죽기도 한대요
모 대학 생물학과 박사가 그러더라구요
맨처음 물고기는 그런 이유도 있지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