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21: 11.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마 21: 11.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 무리가 이르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 ( 무리가 가로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 )
예수에 관한 잘못된 대답이다.
1] 무리가 이르되,
'선지자 예수'를 말한 것으로 보아 갈릴리나 베다니로부터 예수를 좇아온 사람들이거나 종려가지를 흔들고 예수를 영접했던 사람들이 아니다.
행렬 밖에 있던 사람들로 예수를 메시아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2]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
이들의 대답은 선지자가 나올 수 없는 천한 곳인 '나사렛에서 나온 예수'라는 '비아냥거림'이 내포되어 있다.
이 선지자가 종말론적인 선지자(the eschatological prophet)를 의미한다고 하는 암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다.
이들의 대답 속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백성들은 저를 메시아로 받들고 있으나 실제로 예수는 메시아가 아니라고 하는 강한 부정이 담겨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유대인들은 예수가 이적을 행하고 그 가르침에 권세가 있다고 하는 사실을 보고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다만 또 한 사람의 선지자로 이해했을 뿐 고대(苦待)해 온 메시야로서 인정하지 않았다.
* 마 7: 29 -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3] 계속되는 질문과 무리의 발견
나사렛 예수, 과연 그는 누구인가?
인류가 타락한 후, 그는 '여인의 후손’
* 창 3: 15 -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아브라함의 자손’
* 창 22: 18 -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실로’
* 창 49: 10 –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별', '홀(규)’
* 민 24: 17 - 내가 그를 보아도 이 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규가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쪽에서 저쪽까지 쳐서 무찌르고 또 셋의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
'모세와 같은 선지자’
* 신 18: 15-19 – 1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 16 이것이 곧 네가 총회의 날에 호렙 산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 구한 것이라. 곧 네가 말하기를 내가 다시는 내 하나님 여호와의 음성을 듣지 않게 하시고, 다시는 이 큰 불을 보지 않게 하소서. 두렵건대 내가 죽을까 하나이다. 하매 17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의 말이 옳도다. 18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 19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전하는 내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내게 벌을 받을 것이요
'이새의 뿌리’
* 사 11: 10 -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 롬 15: 12 - 또 이사야가 이르되,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느니라.
'다윗의 자손'으로 암시됐다.
* 사 9: 7 -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 사 22: 22 - 내가 또 다윗의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
* 렘 23: 5 -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
* 렘 33: 15, 17 – 15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할 것이라. 17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이스라엘 집의 왕위에 앉을 사람이 다윗에게 영원히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며
그러므로 '그가 누구인가?' 라는 질문은 구약 4천 년간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서 제기되어온 것이며, 또한 그는 '성령으로 잉태된 자’
* 마 1: 18, 20 – 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처녀가 잉태하여 낳은 인물’
* 마 1: 23 –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인류를 죄에서 구원할 자’로 구체화 됨에 따라 신약 2천 년의 역사를 통하여 '그것은 신화가 아닌가?', '과연 그가 구세주인가?'
다시 말하면 '그는 누구인가?'라는 동일한 질문이 계속되어온 것이며, 이 질문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사도 바울이 말한대로 이는 '비밀히 감추어 놓은 하나님의 지혜'이기 때문에 알 사람만 알고 믿을 수 있는 사람만 믿는다.
* 고전 2: 7 –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1) 선지자로 본다.
본문에 의하면 '이 사람이 누구냐?'에 대하여 군중들은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고 대답했다.
때때로 백성들의 생각은 하나님의 생각과 가까울 수 있다. 이 대답이 완벽한 것은 아닐지라도 틀린 것은 아니다.
군중들이 예수를 선지자로 본 것은 나인 성 과부의 아들을 살렸을 때에도 그랬다.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 눅 7: 16 -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 하더라.
수많은 병자를 고치고, 귀신 들린 자를 정상으로 만들고, 죽은 자까지도 살려내는 사람, 이것은 틀림없는 큰 선지자였다. 그들은 예수를 '세례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 중의 하나'로 보았다.
* 막 8: 27-30 – 27 예수와 제자들이 빌립보 가이사랴 여러 마을로 나가실새 길에서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28 제자들이 여짜와 이르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29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30 이에 자기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경고하시고
(2) 왕으로 본다.
디베랴 광야에서 오병이어로 5천 명을 먹이시고 열두 바구니를 남기시는 이적을 행하셨을 때 군중들은 예수를 왕으로 삼으려고 했다.
* 요 6: 15 -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빈들에서 대중의 민생고를 해결하시는 예수를 보았을 때, 그만하면 왕으로 삼아도 될 만한 인물로 보았다. 군중들의 이러한 생각은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때 절정에 달하였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막 11: 10) 예수에 대한 통치자의 기대는 이때 최고조에 달했다.
(3) 기만자로 본다.
모세와 같이 기사와 이적을 나타내며 백성들을 지도할 위대한 선지자로 기대했던 예수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붙잡혀 가야바와 빌라도 앞에서 양과 같이 심판받는 것을 보았을 때, 군중들은 크게 실망하여 예수를 기만자로 보고 '십자가에 못박아야 한다'고 소리 질렀다.
* 민 27: 22-23 – 22 모세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여 여호수아를 데려다가 제사장 엘르아살과 온 회중 앞에 세우고 23 그에게 안수하여 위탁하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였더라.
군중들에게는 이념이 없다. 다만 그들은 수유자들의 이념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군중은 그렇기 때문에 물질적인, 현실적인 이해에 좌우된다.
그들은 그들을 이롭게 하는 기사와 이적에 의하여 예수를 이해했으며 베드로처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마 16: 16)로 믿는 신앙이 없었다.
그들은 예수의 이적을 통하여 '떡을 발견했을 뿐 '영생의 말씀'을 발견한 것은 아니다.
* 요 6: 68 -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4) 전혀 알지 못한 '제사장'직
예수의 공생애 활동 중 군중들이 알고 있었던 예수에 대한 이해 가운데 그래도 가장 정확한 것은 '선지자'였다.
예수님을 '왕'으로 이해한 것은 세상의 통치자로 오해한 것이며, 더구나 '기만자'로 본 것은 메시야관의 잘못에서 온 것이었다.
그러나 군중뿐만 아니라 가장 가까운 제자들까지도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은 '제사장'으로서의 예수였다. 예수께서 살아계시는 동안에 이것을 안 사람은 오직 한 사람 세례 요한뿐이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 29) 예수는 그 자신이 영원한 제사장과 제물이 되어 십자가 위에서 그 대속 사역을 성취하여야 할 분이었다.
이 비밀을 안 세례 요한은 그런 의미에서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마 11: 11)라고 했다. 그러나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이 진리는 비밀로 감추어져 있었다.
'이는 누구냐?' 이것은 예수에 대한 인간들의 영원한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