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오 무렵, 주식 HTS 화면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순간이었다. 갑작스럽게 아파트 스피커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화재 발생! 주민들은 비상계단을 통하여 긴급 대피 바랍니다.”
한 번도 아니고 연거푸 반복되는 안내 방송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설마 진짜 불이 난 건가, 이러다 죽는 건
아닐까.’ 하던 일을 멈추고 허둥지둥 신발을 신고 계단으로 뛰쳐나갔다. 이웃 주민들 역시 놀란 얼굴로 문을 박차고
나와 함께 계단을 내달렸다.
숨을 헐떡이며 1층을 지나 마당에 서서 아파트를 올려다보았지만, 연기는커녕 이상한 기척조차 없었다. 경비실에
서도 경비원이 뛰어나와 어디서 불이 났는지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잠시 후 관리실에서 오보였다는 안내와 함께
미안하다는 사과 방송이 흘러나왔다. 허탈함과 안도감이 뒤섞인 묘한 기분만 남았다.
배를 타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선박에서는 출항 후 몇 시간 이내에 반드시 화재와 퇴선 훈련을 한다. 실제 상황처럼
긴장감 속에서 반복 훈련을 하는 이유는 단 하나, 만일의 사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다. 나 역시 영국 체류 시절 그들의
화재 훈련을 직접 경험한 적이 있다. 소방서 인력까지 동원되어 대학 캠퍼스 전체가 실제 화재가 난 것처럼 움직였다.
교수와 학생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진지했다. 그 모습은 ‘훈련은 훈련일 뿐’이라는 안일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반면 우리 사회의 각종 훈련은 어떠한가. 민방위 훈련, 소화 훈련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 요식행위
처럼 시간을 때우는 훈련으로는 위기 앞에서 아무런 힘도 발휘할 수 없다. 기본을 무시한 결과는 결국 더 큰 대가로 돌아
온다.
오늘 신문 사설에서는 공기업에서조차 진급하려는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가 실렸다. 진급하면 책임만 늘고, 괜히 신경 쓸
일만 많아진다는 이유다. 공무원 사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치권의 포퓰리즘 속에 공무원 숫자는 늘었지만, 책임과 사명
감은 그만큼 자라지 못한 듯하다. 대기업에는 황제 노조가 자리 잡고, 일하지 않아도 보호받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 유럽
에서는 노조원이라 해서 일을 안 하는 법이 없다. 노조 역시 일하는 조직이라는 상식이 통한다.
그런데 정부는 노란봉투법으로 기업을 더욱 옥죄려 한다. 기업은 과연 노동을 착취하기만 하는 존재일까. 기업이 제대로 숨
쉬지 못하면 그 안에서 일하는 수많은 구성원들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일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는 사회, 훈련을 놀이
처럼 여기는 사회는 결코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
오늘의 화재 오보는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씁쓸함이 남았다. 불이 나지 않았기에 웃고 넘길 수 있었
지만, 진짜 위기 앞에서도 우리는 과연 제대로 움직일 수 있을까. 대한민국은 지금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기본이 흔들리고
있다. 기본을 다시 세우지 않는다면, 다음 경보는 오보가 아닐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