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이 되는 길
<문하 정영인 수필>
내가 아무래도 신선이 되려나 보다.
한자의 ‘신선 선(仙)’자를 보면 사람(人)이 산(山)에 있으면 신선(仙)이 되나
보다. 몇 년 전부터 나무가 있는 숲을 자주 찾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높은 산을 등산하거나 등반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숲과 나무가 있는 수목원을 즐겨 찾거나 가까운 나무숲을 즐겨 찾기 때문이다.
숲과 산은 우리 민족과 지정학적으로 숙명적인 관계이다. 한국 땅의 70%가
산지이고, 마을을 이루거나 집을 지을 때도 배산임수(背山臨水)라 하였으니 우
리네 삶속에서도 숙명적인 괸계이다.
숲과 나무는 우리 국토 어느 곳에서도 높은 산이건 낮은 산이건 존재하고 있다.
산이 없는 들이나 마을에는 당산목이라도 한 그루 심어 놓는다. 우리는 늘 숲이나
나무속에서 살려고 애를 썼다.
그러든 숲들이 궁핍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민둥산으로 변하였다.
그런 역사의 부침 속에서 다시 나무가 있는 녹색의 숲으로 바꾸어 놓은 것은
고 박정희 대통령의 리더십이었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산과 숲을 잘 가꾸는 나라 중에 하나가 되었다.
국립수목원에 있는 ‘숲의 명예전당’에 헌정된 여섯 명중에 박정희 대통령이
들어가 있다.
국민의 97%가 행복하다고 믿는 나라 ‘부탄’은 숲 면적인 국토의 60% 이상
유지하여야 한다는 헌법 조항이 있다고 한다. 부탄 국민의 생각은 숲은
결국 국민 행복의 필요한 조건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예로부터 군자(君子)는
요산요수(樂山樂水)라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은 ‘치유의 숲’이라는 말이 대두되고, 신 분양 아파트의 인기
조건 중에 역세권보다는 숲세권이 더 우세하다는 경향으로 바뀌고 있다.
어느 서울의대 교수는 녹색의 숲은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스트레스가 좀
풀리고 혈압이 낮아진다고 했다.
또 NK세포(자연살해세포)를 증가시키는 것은 웃음, 숲, 명상, 스킨십이라 했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한 선인들의
지혜 때문에 우리는 오늘 신록의 계절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고대 인도의 위대한 왕 아쇼카는 모든 국민은 최소한도 다섯 그루 이상의
나무를 심고 돌봐야 한다고 선포했다. 그는 국민들이 유실수, 치유력이 있는
약나무, 집재목, 꽃이 피는 나무를 심을 것을 권장했다.
아쇼카왕은 그것을 ‘다섯 그루의 작은 숲’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고대 중국에서도 명군이 되는 길은 치산치수(治山治水)라고 했고, 조선시대
에는 여러 모로 중히 쓰이는 금강송 숲을 법으로 정하여 보존하였다.
숲은 나무 한 그루로부터 시작한다. 우리는 거대한 숲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다.
각 동네에 있던 고목나무 한 그루가 숱한 마을의 전설을 보듬고 우리 삶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숲은 모든 자연인 물, 공기, 나무, 열매, 재목, 땔감 등을 우리에게 무상으로
제공한다. 또 나무는 지구상에서 하늘과 가장 가까운 존재이다.
인간이 아무리 오래 살려고 발버둥을 쳐도 나무에 비하면 어린 반 푼어치도
없는 존재다. 나무는 말없이 한 곳, 한 자리에서 수백 년, 수천 년을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하며 숱한 세월을 견디어 왔다.
불안한 현대인들의 마음과 몸을 다스릴 수 있는 곳은 숲뿐이 없는 것 같다.
녹색은 생명의 근원이고, 에너지의 원천이다.
흙, 물, 나무 바람소리가 있는 곳. 나무들이 늘 하늘 향해 구도(求道)하는 곳.
거기가 바로 숲이다. 원시의 인류는 숲에서 첫발을 디뎠을 것이다.
일미진중 함시방(一微塵中 含十方)이라 했다. 티끌 하나에서도 자연을 보듯,
우리는 나무 한 그루에서도 숲을 볼 수가 있다.
아쇼카왕의 ‘다섯 그루의 작은 숲’ 처럼……. 각 가정에 단 한 그루의 나무를
화분에 심어 키운다면 그게 작은 숲이 아닐까?
마음이 복잡할 때는 가방 하나 달랑 메고 나무와 숲이 있는 수목원을 향해
떠난다. 내 버킷리스트 중의 하나가 ‘전국 수목원 탐방’이다.
그래서 나는 종내에는 신선(神仙)이 되려나 보다.
엊그제, 꽤 나이 들고 키 큰 편백나무가 쭉쭉 서 있고, 아름드리 참나무가
하늘 향해 두 팔 벌린 작은 숲을 도심 속에서 발견했다.
작은 삼림욕장이 있는 오래 잘 가꾸어진 작은 숲이다.
자그만 인공 호수가 옆에 있고, 몇 마리 면양이 풀을 뜯는 곳, 몇 번이고
다시 가 보고 싶다는 그런 작은 숲이다.
여기는 이른 새벽에 가 보면 참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