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리를 떠난 나폴레옹은 진군을 독촉했다. 브뤼셀에 집결해 있는 웰링턴 장군의 영국군과 나무르를 향해 진군 중인 블뤼허 장군의 프로이센군이 합류하기 전에 공격해야 한다. 북부군 12만 명을 이끌고 양국 군대 사이로 치고 들어가 오스트리아와 러시아 연합군이 도착하기 전에 전투를 끝내야 승산이 있었다. 1815년 6월 12일 정오, 랑에 도착한 나폴레옹은 일단 진군을 멈추고 전군의 전세를 둘러보았다. 장병들의 이동은 너무 느렸고 군수품은 제때 도착하지 않았다. 보병들과 대포를 실은 짐마차들이 한데 뒤엉켜 꼼짝도 못하고 있었다. 그새 군기가 빠져 장교들은 딴전을 피우고 병사들은 전투를 벌이기도 전에 벌써 지쳐 있었다.
첫 전투에서 나폴레옹은 프로이센의 4개 사단을 가볍게 와해시키고 1500여명의 포로를 잡았다. 그런데 내일 프로이센의 주력인 블뤼허 장군의 부대를 협공하기로 한 데블롱 원수와 연락이 닿지 않았다. 다른 장군들에게도 알아듣도록 작전지시를 내려놓았지만 중요한 접전에서 원활하게 공조가 이뤄질지는 미지수였다. 1815년 6월 17일 오전 6시, 나폴레옹은 숙영지를 돌며 참모들을 깨워 새로운 명령을 하달했다. 네 원수가 왼쪽 날개를, 그루쉬 장군이 오른쪽 날개를 맡도록 작전을 일부 변경했다. 나폴레옹은 선두로 달려가 전위부대에 공격명령을 내린 뒤 적진을 향해 말을 달렸다. 나폴레옹전쟁에서 가장 규모가 큰 최후의 결전 워털루전투가 막을 올린 것이다. 오래지 않아 블뤼허의 프로이센군이 퇴각하기 시작했다.

결정적인 순간, 병력 2만 5천을 잃고 지리멸렬하여 도망치는 프로이센군을 좌측에서 협공하여 궤멸시키고 수백 문의 대포를 노획하기로 한 네 원수의 부대가 나타나지 않았다. 완승을 거둘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이다. 멀리서 블뤼허의 부대가 전열을 정비하여 후퇴하는 모습이 보였다. 3시간 후에 나타난 네 원수는 나폴레옹의 질책에 대꾸 한 마디 못했다.
“내가 영국군을 공격할테니 그대는 프로이센군을 공격하여 내 배후를 치지 못하도록 하게.”
나폴레옹은 근위기병대의 선두에서 퍼붓는 폭우를 뚫고 영국군을 향해 말을 달렸다. 포탄이 그를 겨냥하여 계속 날아와 터졌다. 흙더미가 연신 나폴레옹에게 덮쳐들었다. 영국군이 후퇴하고 있다. 나폴레옹은 선두에서 그들을 추격했다. 알리앙스 고지에 오르니 영국군이 까마득한 곳에 진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네 원수가 프로이센군을 막아준다면 내일은 웰링턴의 영국군을 완전히 제압할 수 있을 터였다. 영국군은 계속 대포를 쏘아대고 있었다.
늦은 밤, 나폴레옹은 잠깐 눈을 붙였던 농가를 나섰다. 비는 그쳐 있었다. 1815년 6월 18일 오전 1시, 영국군 숙영지의 불빛이 손에 잡힐 듯 가물거렸다. 그런데 네 원수와 그루쉬 장군으로부터 연락이 오지 않아 프로이센군의 동태를 파악할 수 없었다. 다시 농가 안으로 들어가 잠깐 눈을 붙이고 일어나자 장군들이 들어왔다. 드루오 장군이 먼저 입을 뗐다.
“오늘은 전투를 치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대포가 진창에 빠져 움직일 수 없습니다.”
레유 장군이 뒤를 이었다.
“영국군의 보병은 고지에 포대를 고정시켜놓고 우리를 공격할 것입니다. 정면공격으로는 우리 쪽 희생만 클 뿐 승리를 거두기가 어렵습니다.”

나폴레옹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결론을 내렸다.
“나도 그러한 점들을 잘 알고 있네. 어쨌든 내가 선두에서 지휘하겠네.”
장군들은 물론 장병들의 얼굴에도 불안이 가득했다. 나폴레옹은 장병들을 향해 연설했다.
“우리에게 구십 퍼센트 승산이 있다. 웰링턴은 무능한 장군이고 병사들도 여러분만큼 용감하지 못하다. 우리는 반드시 승리하여 영국군이 차려놓은 음식으로 점심식사를 할 것이다.”
우레와 같은 함성을 뒤로하고 나폴레옹은 선두로 달려나갔다. 진격이 시작되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이번에는 포격도 없었고 총알도 날아오지 않았다. 나폴레옹은 나지막한 언덕 위로 올라갔다. 북쪽 고원에서는 빨간 제복차림의 영국군들이 움직이고 있다. 반대편 고원에서는 푸른 제복차림의 프랑스군이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다. 대회전이 임박한 것이다. 나폴레옹은 그루쉬 장군에게 전령을 보내 이쪽으로 와서 합류하라고 명했다. 알리앙스 고원에서 프랑스군이 진격을 시작했다. 영국군은 8만 4천, 프랑스군은 그루쉬 부대까지 합쳐 7만이다.
나폴레옹은 팔을 높이 쳐들었다. 근위대 포병대가 웰링턴이 머물고 잇는 우구몽城을 향해 포격을 시작했다. 양쪽 진영에서 500여 문의 포가 일제히 불을 뿜으면서 장병들이 무더기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영국군 기병대가 기세 좋게 달려나왔지만, 이내 절반의 병사를 잃고 퇴각했다. 진격하던 프랑스 보병들은 영국군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혀 이내 돌아왔다. 보병은 네 차례의 파상공격을 가했지만 적의 저지선을 돌파하지 못했다. 양쪽 장병들이 빠르게 죽어갔다. 북동쪽에서 먼지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폴레옹은 그루쉬 장군의 부대가 합류하러 오는 줄 알고 있었다. 오후 1시, 정찰병이 포로 한 명을 잡아왔다. 프로이센 경기병이었다. 그는 블뤼허 장군의 프로이센군이 도착했음을 웰링턴에게 알리러 가던 전령이었다.
‘도대체 그루쉬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네 원수는 한 술 더 떠 대포도 없이 영국군을 공격하다가 매복하고 있던 영국군 보병의 기습을 받고 기병이 전멸했다. 멍청한 놈! 네 원수는 흉갑기병들을 이끌고 재차 공격했다. 영국군의 제1선이 무너졌다. 그러나 적진의 한복판에서 중과부적인 프랑스군은 이내 전멸했다. 네 원수도 적탄을 맞고 전사했다. 너무나 무모한 공격이었다. 이럴 때 그루쉬 장군만 와준다면! 나폴레옹은 새로운 전령을 보냈다. 그러나 프로이센군의 포탄이 먼저 날아왔다. 이어서 수천 명의 프로이센군이 프랑스군을 향해 진격해왔다. 마지막 남겨두었던 근위대 척탄병들이 맞싸워서 겨우 프로이센군의 공격을 막아냈다. 이제는 최후의 일전을 벌여야 한다.

나폴레옹은 마지막 남은 6천 명의 근위대 제1연대 앞에서 말을 몰았다. 근위대는 에 생트 농가를 점령하여 교두보를 확보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사방에서 영국군과 프로이센군이 협공을 가해왔다. 근위대의 대열이 모래성처럼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살아남은 병사들은 뿔뿔이 흩어져 도망치고 있었다. 프로이센의 기병대가 빠르게 추격하여 총칼도 버리고 도망치는 근위대 병사들을 사냥했다. 나폴레옹도 몇몇 참모들과 함께 간신히 말을 달려 그곳을 벗어났다. 워털루전투에서 겪은 패전은 1796년 나폴레옹이 이탈리아 원정군 총사령관에 임명되어 오스트리아군과 전쟁을 벌인 이래 19년 만에 경험해본 첫 패배이자 최후의 치명타였다.
첫댓글 '워털루 전쟁'
나는 그 다섯자만 알고 있었을 뿐...
오늘에야,
그 전황을 자세히 알게 됐네.
결국 손발이 안맞으면 되는 일이 없다는 말씀..
하루종일 태풍의 영향으로 바람과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이네
워털루 전쟁이 나폴레옹의
마지막 전쟁 같네
병사들과 일반사람들은 얼마나 죽고 피해를 계산하면 대단할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