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을형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필자는 우리와 일본이 진정한 선린(善隣)관계를 바라지만 일본의 한국과 아시아 여러 나라에 대한 안하무인적인 오만한 태도로 나오는 데에는 곤혹스러움을 금할 수 없다.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일본 총리와 겐바 고이치로(玄葉光一郞)외상,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慎太郞)의 망언과 망발이 최근 계속됐다.
이어 하시모토 도루(橋本 徹)오사카 시장이 ‘종군 위안소 설치 관리에 일본이 관여했다’는 일본정부의 공식입장까지 부인하는 데까지 이른데 대해 필자는 일본의 잘못된 역사날조의 진실을 말하려 한다.
일본의 파렴치하고 뻔뻔스러운 망언작태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그들을 알기 위해서는 역사왜곡부터 살펴보는 것이 일본과 일본인을 아는데 도움이 되리라 믿기 때문이다.
아무리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정권의 인기가 바닥이라고 하나 일본은 이럴 때마다 인기 만회를 위해 극우적 발언과 행동을 해 왔다.
그러나 세상 일은 “심는 대로 거둔다”는 만고의 진리가 변치 않는다는 것을 일본은 알았으면 한다. 일본은 일왕 히로히도(裕仁)가 전쟁을 일으킨 전범이 아니라고 우기지만 일왕은 전쟁에 적극적이었고 진두에 서서 선전포고권 행사 등 태평양전쟁을 독려한 장본인이다. 일왕이 태평양전쟁의 전범임은 세계가 다 아는 사실이다.
맥아더장군의 배려로 전범에서 벗어났으나 이에 고마움이나 감사는 커녕 미국에 대해서도 맥아더 장군에 대해 피해의식만 고조시키는 족속임은 세계가 모두 알고 비웃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이 조차 아랑곳 하지 않고 잘못을 반성하기보다 약자를 괴롭혀온 것이 일본 극우정치인가 걸어온 작태다.
그들은 패전을 하고서도 패전을 인정하지 않고 종전(終戰)이라 하며, 일본에 민주화를 가져다 준 맥아더장군의 동상 하나 찾아 볼 수 없는 나라다. 그들이 얼마나 옹졸하고 옹색함은 이루 말 할 수 없다. 아마 지구상에 아직도 19세기 제국주의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일본밖에 없을 것이다. 일본의 극우를 표방하는 사람들의 행태는 가히 가관인 것이다.
반성과 은혜를 모르는 일본은 자신들의 하는 짓이 얼마나 죄악을 짓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다.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일왕의 전범행적은 곳곳에서 찾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많은 행적 중 하나의 예를 보자.
태평양 전쟁이 한참인 1944년 7월20일 히로히도(裕仁) 일왕은 태평양전쟁을 주도적으로 수행하는 당시 총리 도조히데키(東條英機)에게 칙서(勅書)를 보내 그의 공로를 치하하는 등 매우 적극적이었다. 이 같은 내용들은 미국으로부터 반환받아 일본 국회도서관에 소장돼 있는 마이크로필름에서 확인 할 수 있다.
이러한 일왕을 일본 극동 군사재판을 받지 않게 한 점령군 사령관은 맥아더 장군이었다. 그의 배려로 일왕을 전범에서 제외 시켰으나 그 고마움도 모fms다. 이런 일본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은 “일왕이 통석의 염(念)이니 이런 단어 하나 찾아서 올 거면 올 필요 없다”, “방한을 하려면 독립군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현 일본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정권이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의도는 참으로 가소롭기까지 하다. 러시아의 쿠릴열도나 중국의 다오위다오(일본 이름=센카쿠)에 상륙한 중국인에게는 눈치를 보면서 독도 침탈을 획책하는 일본의 망발은 용납되지 않는다.
이 대통령의 말한 것 무엇이 잘못됐는가. 무엇 때문에 일본의 눈치를 봐야 하는가. 우리는 일본국민이 아니다. 간악한 일본의 피해를 입은 피해자로서 할 말을 한 것뿐이다. 우리가 일본국민이 아닌 이상 일본의 논조에 따를 필요가 없음은 당연한 것이다.
일본은 아직도 일왕을 정점으로 한 자민족의 우월감을 갖고 주변국을 바라보는 타성이 있는데, 이는 아직도 침략근성을 버리지 못한 잘못 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일본의 반성을 모르며 오만불손한 태도는 일본의 격에도 맞지 않는다.
이 대통령이 8·15를 앞두고 식민통치하의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고 생명과 재산을 빼앗으며 780만의 조선인을 강제노동에 동원해 고통과 아픔을 준데 대해 일왕에게 사과하라는 것이 무엇이 잘못인가.
사과하고 보상할 것들은 안하면서 망언과 보복 카드나 꺼내는 일본을 볼 때 아직도 일본은 잘못을 은폐하며 우리를 멸시하려는 오만함에 가득 차 있는 나라라는 것을 알게 된다. 분노를 금 할 수 없다. 일본은 세계를 직시하고 일본을 위해서도 정도(正道)를 가야 한다.
일본이 근대국가 성립과정에서 정치적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아마테라스 오미가미(天照大御神)라는 황실조상신을 태양신으로 보편화 시켜 인종과 민족, 영토, 문화, 지역 등을 소통시키고 통합하는 상징으로 조작한 일왕을 일본인은 천황(天皇)이라 하지만, 우리에게는 이웃나라의 왕으로 밖에 보지 않는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일본은 침략전쟁의 잘못을 뉘우치지는 못 할망정, 우리 대통령이 한 말에 대해 무례하고 오만하면서 자기중심적이고 편향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일본인에게 일왕은 신 같은 존재일지 모르나 우리에게는 이웃나라의 군주일 뿐이다.
우리에게는 누구나 법 앞에 평등하기에 잘못을 잘못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지금은 일본제국시대가 아니다. 일본 근대사상의 원류이자 제국으로 가는 길을 연 역사학의 기타 사다키치(喜田 貞吉), 인류학의 도리이 류조(鳥居 龍藏), 고고학의 하마다 고사쿠(濱田 耕作), 민속학의 야나기타 구니오(柳田 國男) 등에 의해 천황이 만들어졌다.
이들 일본신화 재구성의 공모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천황은 신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인간일 뿐이다.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제국주의를 거치면서 옹립된 일왕이다. 이런 탓에 아직도 제국주의 망령에서 못 벗어나 우리를 침략하며 독도를 편입시켰다는 식의 구태의연한 망언을 남발하고 있다.
이 같은 일본을 보고 있자면 1970년 12월 바르샤바 유태인 희생자 위령 비 앞에 겸허히 무릎을 꿇고 폴란드 국민에게 사죄한 독일의 빌리 브란트총리 같은 위대한 정치인이 일본에는 없음을 본다.
위대한 정치가가 없는 일본은 서슴없이 침탈행위를 다시 시도하고 있다. 독도 문제는 일본의 잘못이지 우리의 잘못이 아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오늘의 한·일사태는 일본이 형성한 것이지 우리가 한 것이 아니다. 한 국가의 대통령이 이런 말도 못하는 대통령이라면 주권국가의 대통령이 아니다.
필자는 한·일의 친선에 앞장서야 할 마음을 갖고 있으나 일본의 도를 넘는 망동에는 찬성을 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나라 단군 이래 한국이 일본왕조의 발상지이고 실크로드라는 것을 모르는 일본의 정치인들에게 역사날조며 진실을 왜곡시키는 그 진상이 어느 정도이며 얼마나 이웃나라들을 괴롭히고 있는가를 단편적이나마 진실에 근거한 역사적배경과 그 진상을 말해 일본의 반성을 촉구하고자 한다.
일본은 근대화 과정에서 일본역사의 엄청난 날조와 우리나라 역사를 제멋대로 축소 왜곡해서 오늘의 일본을 구축했다. 이를 아는 우리는 지금 일본 정치인들의 행태를 정상으로 보지 않는다. 근대에 와서 한·일 간의 관계를 의도적으로 어긋나게 하는 것은 언제나 일본인 것을 알았으면 한다.
이는 한·일양국에 불행한 일이요 일본의 장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일본의 고립만 조장할 뿐이다.
일본은 명성황후를 시해하며 침략의 죄과를 제대로 알고 말하라. 입장을 바꾸어서 생각해보면 자기들의 죄과가 얼마나 큰 것임을 알 것이다. 우리의 역사도 그리고 독도도 모두 날조하고 조작하며 자민족이 우수하다는 망상에서 못 벗어나는 우월주의에 도취된 모습은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지경이다.
일본은 깨어나야 하는데 지금의 일본은 정상적인 상식이 지배하는 나라가 아닌 듯하다. 광명한 천지에 공명정대한 정도(正道)로 나아가기를 우리는 기대하지만 지금의 일본정치인의 행태는 정상이 아니다.
일본은 자기들의 역사도 날조해 일왕을 천황이라 하며 일본 천황들의 이름을 나열하나 1대 진무덴노(神武天皇 BC 660~585)에서~14대 츄우아이(仲哀 天皇)까지는 가공(架空)의 천황이며 일본 역사는 1000년을 날조하고 있다. 2대 스이제이 천황(綏定天皇), 3대 안네이 천황(安寧天皇), 4대 이토쿠 천황(懿德天皇), 5대 코우쇼우 천황(孝昭天皇), 6대 코우안 천황(孝安天皇), 7대 코우레이 천황(孝靈天皇), 8대 코우겐천황(孝元天皇), 9대 카아카 천황(開化天皇), 10대 스진천황(崇神天皇), 11대 스이닌천황(垂仁 天皇), 12대 케이코우천황(景行天皇) , 13대 세이무 천황(成務天皇) 등은 조작된 것으로 일본 학자들도 인정 하고 있다.
미수노(水野祐) 와세다 대학(早稻田大學) 교수는 양심적으로 일본의 역사는 978년 조작했다고 말하고 있다.
일본은 조선을 침략하면서 총독부에 ‘조선사편수회’를 만들어 일본 교토대학(京都大學)의 이마니시 류(今西 龍)로 하여금 1만년의 우리 역사를 반 토막 이하로 축소하고 실제 실존 인물인 단군을 곰의 자식이라고 전설화하며 황폐화 시켰다.
이런 날조의 전문가인 일본은 독도 역시 러·일전쟁을 앞두고 노골적으로 도둑질을 하듯 독도가 무주물 이기 때문에 1904년 시마네현(島根縣)에 편입시켰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보다 앞서 고종황제는 일본인들이 울릉도를 불법 침입해 산림벌채와 불법어로를 자행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이에 대한제국은 울릉도와 독도를 지방행정구역상 독립된 군으로 승격시키고 “울릉도와 죽도 및 석도(독도)를 관할한다”고 1900년 10월25일 고종황제칙령 41호를 발포하고 관보에 게재했다. 이래도 독도가 무주물인가. 일본이 억지 주장을 하는 것은 날강도 같은 만행이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일본이다.
이제는 이런 만행을 그만둬야 일본의 국격(國格)도 바로 평가 받을 수 있다. 오늘의 망언대국 일본은 이렇듯 말이 아니다. 독도는 엄연히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으로나 우리 고유의 영토다.
역사를 날조한 일본은 그들의 역사를 2600년이라 하나 일본이 국가 형태를 갖춘 것은 390년 일본에서 태어난 오진(應神=진구 황후의 아들)이 왜(倭)를 세운 것을 기점으로 삼아야 한다. 백제 근초고왕(近肖古王)(346~375在位)의 아들로 실존인물인 왜왕(倭王) 1대가 오늘의 국가 형태의 요소를 갖추었던 것이다. 이 오진(應神)이 시조라 할 수 있다.
일본은 BC1세기에 조선무녀(朝鮮巫女) 히미고(卑弥呼)가 9부족(9部族)을 통일해 일본 최초의 나라를 세워 왕이 돼 여왕2대가 통치한 이도국(伊都國.=邪馬臺國)이 구주(九州)에 있었다고 하나 이도국(伊都國.=邪馬臺國)은 지금의 아프리카 원주민 부족국가 수준 정도다.
일본이라는 국호를 쓰기 시작한 것은 37대 천황이라는 37대 사이메이(齊明)여왕이 백제로부터 원군지원 요청을 받았으나 죽고, 백제가 멸망한 후 의자왕의 아들인 부여(夫餘)풍장(豊璋)이 사이메이(齊明)여왕의 뒤를 이어 천지(天智)일왕이 되고, 671年에 당(唐)의 승인을 얻어 이때부터 일본(日本)이라는 국호(國號)를 갖게 된 것이다. 일본의 왕은 백제계임도 이렇듯 모두 밝혀진 사실이다.
현 아키히토(明仁)일왕도 스스로 자기는 백제계라고 밝히고 있지 않은가.
당시 중국인들은 일본이 국호를 일본으로 하려한다는 것을 듣고 “난쟁이 같은 것들이 나라이름을 일본이라고 한다”고 했다. 명치유신 이전에는 고기도 못 먹던 일본이 근세에 와서 국력이 강해지자 그 오만은 더 볼 수 없는 지경이다.
분명한 것은 일본이라는 명칭은 구다라(百濟)를 한역(韓譯)한 것인데 구는 크다(太)라는 태양의 나라라는 뜻이다. 백제는 일본에 있어 큰 태양 같은 나라로 여겨졌다. 최태영(崔泰永)선생은 106세에 타계하기까지 “일본왕조의 발상지가 한국이라는 것을 일본에 가서 한국사 연구 자료를 찾아다니다 얻은 수확이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일본은 칙서에 만세일계(萬世一系)라 하나 일본은 한국에서 건너간 유민이 세운 나라임은 세계가 다 아는 사실이다. 역사왜곡이나 단일민족 운운은 어불성설이다. 일본의 지도층은 물론 전 국민의 85%이상 한국계(韓國系)임을 알아야 한다. 일본으로 유민이 된 한을 품고 언제나 우리에게 해악만 하는 일본은 잘못된 한을 지금은 풀어야 한다.
일본인들은 하늘에서 떨어진 양, 으스대지만 그 선조는 한국이다. 일본수상 사토 에이샤크(佐藤英作), 기시 노부스케(片信介)는 모계로 한국계다. 오브치, 아베(阿部), 하네다(羽田), 후크다(福田다케오)부자(父子)들도 모두 한국계(韓國系) 후손이다.
도죠 히데키(東條英機)는 경주박씨이고, 태평양전쟁당시 도구외상(東鄕外相),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 도고헤이 하치로(東鄕平八郞), 러·일전쟁의 영웅 노기 마레수께(乃木希典)대장 등은 모두 박씨다. 헤이그 평화회의 일본대표 스즈키 게리로쿠(都게馨)도 한국계이며, 이등박문(伊藤博文)은 윤씨다.
또한 일본의 60~70연대 연말가요 홍백전에 나오는 일본가수들을 보면 80%이상이 한국계였다. 미소라 히바리를 비롯해서 미야코 하루미, 모리신이치, 이스기 히로시, 후시아키라, 사이죠히데키, 네크 미네, 후랑크 나가이, 와다 아끼고 등(지면상 생략하지만)이 그들이다. 일본은 이 조차도 부인하려 한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우리와 일본은 한 민족이기도 하다. 일본으로 유민이 된 한을 대립각으로 나오는 일본을 보고 있자면 측은한 마음까지 든다. 지금은 유민된 한(恨)을 한(恨)으로 풀 때가 아니다. 우리와 힘을 합쳐 세계로 비상(飛翔)할 때다.
고대역사의 한을 언제까지 갖고 가려는가. 쓸모없는 한을 풀어야 일본도 산다.
<다음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