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廣場] 언론의 생존 기반이 된 정치적 편향성
자유일보
황근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야당이 이렇게 압도적 다수 의석을 차지한 것이 사상 처음이라고 한다. 이런 선거 결과에 대한 평가는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집권 여당에 대한 국민의 실망과 불신의 정도가 생각보다 컸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필자는 이번 선거를 통해 또 다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바로 점점 깊은 정치수렁에 빠져들고 있는 한국 언론의 일그러진 자화상이었다. 이미 우리 언론은 심각한 정치 예속의 질곡에 빠져있는 상태라 그렇게 새삼스럽지 않을 수도 있다. 더구나 지난 정권이 만들어 놓은 ‘심하게 기울어진 미디어 운동장’이 쉽게 원상회복될 수 없다는 것을 지난 2년 동안 뼈저리게 실감해오고 있는 상태다.
역시 이번 선거기간에도 적지 않은 방송 매체들과 인터넷 언론들이 대놓고 편파 경쟁을 벌였다. 언론들에게 정치적 독립이 ‘내로남불’이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뒷맛이 씁쓸한 것이 사실이다. 이런 상태에서 보도 공정성 같은 공자님 말씀이 무슨 소용이 있는지 절망적인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지상파방송 3사의 개표방송 시청률이다. 시청률 조사기관인 닐슨코리아 발표에 따르면, 수도권을 기준으로 MBC가 10.4%로 가장 높았고, KBS1 채널과 SBS가 각각 5.2%와 4.8%로 조사됐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개표방송 시청률에서 오랫동안 1위를 유지해왔던 KBS 시청률이 MBC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물론 개표방송 시청률이 그렇게 의미가 있을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개표라는 수치화된 경쟁 상태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것이니, 아무리 차별화하고 재미있게 만들려 노력해도 내용이 크게 차이 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무리 편파적으로 방송하려 해도 쉽지 않은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개표방송 시청률은 각 방송에 대한 시청자들의 충성도를 그대로 반영됐을 가능성이 높다. MBC가 개표방송 시청률 1위를 한 것도 MBC에 대한 충성도 높은 시청자들이 MBC 개표방송을 많이 봤다는 합리적 추론을 할 수 있다. 그런데 MBC는 현 정권 들어 연이은 편파·왜곡 보도들 때문에 여러 차례 제재 조치를 받았고, 지금도 심의 중인 프로그램이 적지 않다. 이 때문에 친야권 성향의 불공정 방송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MBC의 개표방송 시청률 1위는 야당을 지지하는 국민이 친야권 성향의 MBC를 많이 시청하면서 나타난 결과라고 해석될 수 있다. 시청자들의 기존 신념이나 태도와 일치하는 내용을 선별해서 접촉하는 ‘선택적 노출’(selective exposure)의 결과인 셈이다. 더구나 야당 압승을 예고하는 출구조사 결과와 시종일관 압도적 우세를 보이는 개표 진행 상황은 선택적 노출을 더 부추겼을 것으로 추측된다.
물론 시청자들의 미디어 노출 행위를 비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방송의 시청률이 정치적 성향에 의해 결정되고 영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다. 그것은 한국의 방송 심지어 공영방송까지도 정치적 편향성이 생존의 기반이 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방송의 정치적 독립성이나 보도 공정성 같은 거룩한 용어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비관론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개표방송의 본질은 신속·정확하게 개표 결과를 국민에게 알려주고, 결과가 지닌 의미를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평가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객관적인 정보 제공 프로그램들의 시청률까지도 정파성에 의해 영향받는다면, 그것은 방송의 정치적 독립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영방송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언론 공익성과 책무를 논하는 것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을지 덧없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관련기사
황근 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