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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7시에 기상했다. 주방에서 누룽지를 끓여 육포와 함께 식사를 했다. 시내를 둘러보기 위해 간단한 물건만 챙겨 배낭에 넣고 나왔다. 날씨는 맑다. 대형슈퍼 테스코를 지난다. 아침 7시에 문을 열어 저녁 10시에 문을 닫는다. 밤새 운영하는 것이 아니다. 어제 걸어왔던 길로 다시 간다. 버스터미널에서 북아일랜드 벨파스트를 가는 교통편을 알아보기로 했다. 고맙게도 벨파스트까지 곧장 가는 버스가 있었다. 바다를 건너갈 때는 배에 차를 싣고 간다. 버스 요금에 페리 승선비도 포함되어 있다. 런던이 익스프레스가 아니고 스코틀란드의 시티링크라는 버스를 예약했다. 오후 3시에 출발 글라스고우를 경유해 가는 버스다. 버스터미널은 현대식 실내구조에 깔끔하고 조용하다. 별로 크지는 않다. 바로 옆에는 루이뷔통이라는 유명 상점이 있다. 이제 시내를 둘러보려고 나왔다. 길에 서자마자 트램이 우리 앞을 지나간다. 먼저 찾아 간 곳이 월터 스콧 기념비이다. 스코틀랜드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월터 스콧은 에딘버러 출신의 작가이자 역사가이다. 스코틀랜드의 전통 민요와 문학들을 책으로 펴냄으로서 자존심 높은 스코틀랜드인들의 정신을 기린 작가로 높게 추앙받고 있다. 역사소설의 창시자이자 가장 위대한 역사소설가로 꼽힌다. 무엇보다도 그는 흥미진진한 격동기의 역사적 배경 속에 활기차고 다양한 수많은 인물들을 설정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가진 이야기꾼이었다. 변호사인 아버지와 의사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어렸을 때부터 나이든 친척들이 들려주는 스코틀랜드 변경지방 이야기를 즐겨 들었다. 1790년대 중반에 스콧은 독일 낭만주의, 고딕 소설, 스코틀랜드 변경의 발라드에 관심을 가졌다. 1813년에 그는 1805년에 쓰기 시작했던 소설의 미완성본을 발견하고 빠른 속도로 마무리해 1814년 초여름에 거의 완성했는데, 이 소설이 〈웨이벌리〉이다. 이 소설처럼 독창적이고 강력한 힘을 가진 작품이 많은 독자들에게 즉각 인정받아 널리 읽히는 운좋은 경우는 드물다. 〈웨이벌리〉에 뒤이어 그는 오늘날 '웨이벌리' 소설로 알려진, 스코틀랜드를 배경으로 한 역사소설 시리즈를 발표했다. 전지적인 서술기법, 지방어, 지방색을 가진 배경, 정교한 인물묘사, 사실적으로 다루어진 낭만적 주제는 모두 그에 의해 새로운 문학형식인 역사소설의 구성요소가 되었다. 그는 다른 유럽과 미국 소설가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작가의 기념비로는 세계 최대를 자랑한다. 높이는 61.1m, 287계단을 올라간다. 위대한 문장력으로 인해 북쪽의 마술사라고 하는데 그의 소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64명이 계단을 오르다보면 반갑게 맞이해준다. 해리포터라는 영화에도 등장하는 유명 기념물이다. 기념비 옆에는 사색에 잠긴 표정을 하 그의 동상이 있다. 잠시 중앙역으로 이동했다. 에든버러 웨이벌리 역이다. 웨이벌리란 스콧의 소설 제목이다. 중앙역 벽에는 곳곳에 월터 스콧의 시 구절들이 있다. 고전풍으로 무게가 느껴지는 역이다. 중앙 홀의 분위기는 제법 성스럽기까지 한다. 기차역은 에든버러의 가장 낮은 계곡에 위치해 있는 것 같다. 한때는 험준한 절벽으로 가득했던 황야가 이제는 아름다운 도시로 바뀌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가파른 경사면 아래에 있는 역에서 도시 위쪽을 바라보면 건물들과 하늘 사이의 스카이라인이 더욱 좁게 느껴진다. 중세 스코틀랜드의 고풍스런 풍경을 가장 다채롭게 품고 있는 도시다. 웨벌리 역 바로 위에 있는 웅장하고 높은 건물이 웨벌리 마켓이다. 도시감각이 넘치는 쇼핑몰이다. 고급상점과 손으로 짠 스웨터나 다양한 색깔이 들어간 양초를 파는 수공예품점 등이 들어서 있다. 전체적으로 세련된 분위기이며 프린스 거리와는 다른 맛을 준다. 또한 1층에는 분수가 있는 광장이 있는데 분수를 둘러싼 주위에는 페스트푸드 스타일의 카운터가 늘어서 있다. 햄버거에서 하기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메뉴가 있다. 하기스는 크고 둥근 소시지로, 양의 간·심장·폐를 잘게 썰어 쇠고기나 양고기 지방과 오트밀을 섞어서 양파와 고추로 양념한 뒤 이 혼합물을 양의 위 속에 채워넣고 끓인다. 보통 순무와 감자를 곁들여 내며, 스카치 위스키를 마시는 것이 관습이다. 하기스는 번스 탄생의 날(로버트 번스의 생일인 1월 25일)과 스코틀랜드의 섣달 그믐날 축제에 백파이프의 반주의식에 곁들이는 음식이다. 그 옆에는 리빙스턴의 동상도 있다. 스코틀랜드의 선교사이자 탐험가인 리빙스턴은 아프리카에대한 서구인들의 태도에 큰 영향을 끼쳤다. 27세의 젊은 나이에 아프리카로 와서 30년이 넘게 선교사와 탐험가로 지낸다. 잠베지 강을 탐사하던 중 큰 폭포를 발견하여 빅토리아 여왕의 이름을 붙였다. 1873년 5월 1일 잠들어 그의 심장이 웨스터민스터 사원에 묻혔다. 중앙역 바로 앞에는 스코틀랜드 갤러리가 있다. 스코틀랜드 국립 미술관이다. 다시 스콧 기념비로 걸어간다. 프린세스 거리에 있는 가든을 수놓은 꽃시계를 발견했다. 계절이나 행사에 따라 패턴이 변하는데 여러 가지 색깔의 꽃이 잔디밭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꽃시계란다. 작지만 매우 아름다웠다. 초록색과 연초록이 주류를 이루는 색상으로 연분홍빛이 아름답다. 시간을 알려주는 꾀꼬리 집도 있다. 글싸가 있는데 때에 맞게 글씨의 내용도 바뀐다. 아래의 공원에는 사람들이 많이 쉬고 있다. 긴 의자에 앉아서 잠시 내려다본다. 긴 의자에는 기증자의 이름과 사연이 적혀있다. 우리가 앉은 의자는 보아전쟁의 영웅 찰스 버튼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1877년에 태어나 1975년에 잠든 인물이다. 공원으로 내려가 보니 야외 공연장도 있고 기념비가 둥글게 세워진 작은 광장도 있다. 야외 공연장도 있으나 텅 비어있다. 눈을 들어보면 푸른 하늘아애 스코틀랜드 고성이 절벽위에 버티고 있다. 스코틀랜드가 1914년 세계대전에 도움을 준 미군에 감사를 표시하기 위해 세워진 기념비가 보인다. The call 1914 라고 씌어있다. 좀더 걸어가니 성 요한의 평화 정원이 있다. 오래된 묘비석들이 울타리를 만들고 있고 중아에 작은 교회당이 있다. 길을 건너 시계방향으로 걸어간다. 커다란 은빛 조각상이 있다. 말의 머리를 조각해 놓았다. 인상적이다. 광장 맞은 편에 조지언 하우스가 있다. 조지언 하우스(The Georgian House) 로열 마일에 줄지어 서 있는 높고 좁은 건물들과는 대조적으로 조지아 왕조의 건축양식은 넓은 공간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Robert Adams에 의해 설계된 조지안 하우스를 방문해 보면 뉴 타운과 올드 타운의 차이를 한눈에 느낄 수 있다. 프린스 스트리트 서쪽 끝에서 2분 정도가 걸리는 셜로트 스퀘어에 자리 잡고 있는 조지안 하우스는 스코틀랜드를 대표하는 건축가라 할 수 있는 로버트 아담이 그의 형제인 제임스와 함께 만들어낸 많은 작품 중에서도 걸작으로 손꼽히는 건축물이다. 뉴 타운과 올드 타운의 차이를 한눈에 느낄 수 있는 이곳은 1796년 사람들로 넘쳐나는 올드타운에서 빠져 나와 좀 더 우아하고 편안한 생활을 영위하려던 부자들의 요청으로 만들어졌다. 조지안 하우스 내부의 침실, 주방, 거실을 둘러보며 아름다운 중국 자기와 은 식기, 미술품, 가구들로 둘러싸인 18세기 일반적인 가정의 모습을 볼 수 있다.로열 마일에 줄지어 서 있는 높고 좁은 건물들과는 대조적으로 조지아 왕조의 건축양식은 넓은 공간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토마스 찰머스(1780~1847), 스코틀랜드의 신학자이며 목사님의 동상이 있다. 개혁 신앙의 출발지, 에딘버러와 관련이 있는 신학자이다. 스코틀랜드를 방문한 기념으로 세운 죠지 4세의 동상도 보인다. 우리가 걷고 있는 길은 헤오르헤 스트리트다. 성 엔드류와 성 조지 교회가 있고 그 옆에 성 엔드류 광장이 나온다. 광장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멜빌기념탑은 스코틀랜드의 무관의 제왕인 비스카운트 멜빌(1724~1811) 자작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다. 광장 공원에는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사자상이 있다. 바위덩어리에 사자 상을 만든 건 지 사자 상으로 바위덩어리를 깎아 놓은 건 지 헷갈린다. 사자의 위용은 보이지 않고 돌 속에 갇힌 느낌을 준다. 길을 건너면 버스정류장이다. 우리는 다시 역 방향으로 걷는다. 로얄 뱅크, 스코틀랜드 은행이 나온다. 동상도 세워져 있다. 스코틀랜드에는 독자적인 화폐가 있고 은행에 따라 다른 화폐를 발행하고 있다. 그러나 잉글랜드의화폐도 스코틀랜드의 화폐와 마찬가지로 사용할 수 있다. 스코틀랜드의 화폐를 보는 것도 신기하다. 화폐가치는 같다. 잉글랜드의 1파운드 짜리동전인데 스코틀랜드에서는 지폐로 되어 있다.
걸어서 왼쪽으로 꺾어지니 웰링턴 장군의 기마상이 나온다. 영국의 총리(1828~30)가 되었다. 웰링턴 공작 1세 아서 웰즐리는 유례없는 오명의 시대 사이사이에 2차례에 걸쳐 명성을 빛냈다. 워털루에서 나폴레옹을 무찔러 세계의 정복자를 정복한 사람이 되었다. 워털루 전투 이후 그는 억압적인 정부에 가담했고, 나중에는 총리로서 헌법 개정 압력에 저항했다. 그러나 그릇된 자존심 때문에 전쟁터에서나 의회에서 물러서지 않고 버티는 일은 없었으며 나라를 위해서는 개인적으로 찬성하지 않는 정책이라도 지지했다. 노년에는 비할 데 없는 대중의 공복(대공)으로 추앙받았다. 이에 대한 반발은 그가 죽은 뒤에 일어났다. 그는 우유부단한 장군으로 평가되었고, 한때는 19세기의 영국 총리 가운데 가장 무능한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군사적인 면에서 그의 천재성이 널리 인정되고 있으며, 인격에 대해서도 엄청난 특권을 누리면서도 타락하지 않은 정직하고 사심 없는 정치가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는 방향을 칼톤 힐로 잡고 걸어갔다. 언덕을 올라가니 시야가 뻥 뚫린다. 초고층 빌딩'따위'가 없어서 시원하다. 기발한 건물들이 모여 있다. 로마 스타일의 거조물이 듀칼 스튜어트 기념비이다. 오래된 집도 있다. 포르투갈 대포도 있어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시내를 내려다보니 전체적으로 회색이 눈에 비친다. 그리스 신전풍의 스코틀랜드 기념비. National Monument of Scotland.나폴레옹 전쟁 때 희생된 군인들을 기리는 기념비라고 한다. 이는 예산이 바닥나서 그대로 방치된 미완성이다. 넬슨(1758~1805) 기념비가 가장 무게가 있다. 30m 높이로 사람이 올라갈 수 있다. 나폴레옹 전쟁의 트라팔가 해전을 승전(1805년 10월 21일)으로 이끈 넬슨을 기념하는 비다. 이 사람을 기념하는 비는 영국 곳곳에 많이 보인다. 이 언덕에 올라서니 동서남북 시내가 한눈에 들어와 좋다. 내려와서 아브라함 링컨의 동상이 있는 공동묘지에 들어왔다. 많은 묘비명들이 이제 생명 없이 그저 옛 이야기들만 간직하고 세월과 다투고 있는 것 같았다. 배가 고프다. 점심을 먹을 곳을 찾아보았다. 킴제임스 쇼핑센터로 들어갔다. 우리가 즐겨 이용하던 Subway 샌드위치 가게를 발견했다. 들어가 입맛대로 빵을 고르고 들어갈 각종 고기와 야채 그리고 소스를 선택했다. 큰 사이즈로 하나 주문해서 반을 잘라달라고 했다. 이것이 우리의 점심이다. 쇼핑센터는 사람들이 많았다. 구두를 수선해 주는 가게가 있는데 젊은이 둘이서 아주 열심히 구두를 고쳐주고 있다. 여러 가지 기계가 눈에 들어온다. 재미있는 가게다. 스코티쉬 의복을 파는 곳도 있다. 체크무늬 치마 타탄 스커트와 양말 등 색상이 다양하다. 평균 한 벌에 100파운드 정도 하는 것 같다. 20만원이면 싼 것은 아니다. 가문에 따라 색상이 달라진다고 한다. 이제 다리를 건너가기로 했다. 다리 이름이 웨블리 브릿지다. 로열 마일이다. 에든버러에서 버러(burgh)라는 말은 스코틀랜드 어로 성벽에 둘러싸인 도시나 마을을 가리키는 것으로 영어의 타운에 해당된다. 에든버러도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옛날에는 사방이 벽에 둘러싸인 도시였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홀리루드 팰리스를 중심으로 하는 별도의 버러(burgh)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 두 개의 버러(burgh)를 연결하는 것이 바로 로열마일 이라 불리는 거리다. 옛 모습 그대로의 거리 풍경과 수많은 명소가 있는 까닭에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 많다. 이 일대를 올드 타운이라 부른다. 상가와 거리의 악사들, 예술가들, 각종 쇼를 하는 이들로 더욱 복잡하고 흥겹다. 반가운 아담 스미스의 동상을 만났다. 이곳에는 바로 '국부론, 보이지 않는 손'으로 유명한 경제학자 '아담스미스(Adam Smith)'가 잠들어 있는 묘지도 있다. 성 자일즈 대성당 뒤편에서는 장애가 있는 젊은이 십 여 명이 댄스와 함께 노래를 불러주는데 구경하는 이들의 호응이 대단했다. 존 녹스와 인연을 맺고 있는 성 자일즈 대성당을 만났다. 왕관 모양을 한 뾰족한 지붕이 인상적이다. 현재의 외관은 1829년, 건축가 윌리엄 번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주로 14~15세기의 건축양식을 취하고 있다. 스코틀랜드의 프로테스탄트화를 추진한 교회의 하나였는데 지금도 성 자일즈가 차질하는 비중이 크다. 안으로 들어가니 이곳 대성당의 성직자였으며 종교개혁의 선구자로 활약한 존 녹스의 동상이 있었다. 반가워 함께 사진을 찍었다. 안에서는 음악이 은은히 흘러나오는데 더 들어가 보니 목관 플릇을 연주하고 있었다. 성 자일스 성당에는 몬트로즈 후작을 비롯해 에딘버러 출신의 유명작가인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거리를 걷다보니 데이비드 흄의 동상이 발가락을 빛내며 앉아있다. 영국의 철학자․역사가(1711~1776). 로크의 경험론적 인식론을 계승하여 철저한 경험론의 입장에서 종래의 형이상학을 적극 비판하였으며, 칸트의 비판 철학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저서에 《인간 오성론(人間悟性論)》, 《영국사》 등이 있다. 그 옆에서 백 파이프를 연주하는 사람이 보인다. 정식으로 스코틀랜드 복장을 한 연주자의 구성진 소리가 주변을 압도한다. 검은색 털 장식이 있는 모자를 쓰고 체크무늬 치마를 입고 흰색 부추를 신은 모습이 보기 좋다. 음악보다 악기가 신기해 보이고 악기보다 복장이 특이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