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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와 백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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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해석 및 시 맛있게 읽기 스크랩 기다리는 마음 / 김민부
은하수 추천 0 조회 116 14.10.25 20:3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기다리는 마음 / 김민부

 

일출봉에 해 뜨거든 날 불러주오

월출봉에 달 뜨거든 날 불러주오

기다려도 기다려도 님 오지 않고

빨래소리 물레소리에 눈물 흘렸네

 

봉덕사에 종 울리면 날 불러주오

저 바다에 바람 불면 날 불러주오

기다려도 기다려도 님 오지 않고

파도 소리 물새소리에 눈물 흘렸네

 

- 부산 송도 암남공원 시비에서

................................................................

 

 우리 문학사에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떴다는 사실이 작품과 함께 부각되어 일약 요절천재시인이란 칭호를 얻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같은 이유로 문단사의 뒤안길로 일찌감치 사라져버린 불운한 시인도 많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가곡으로 잘 알려진 ‘기다리는 마음’의 작시자 김민부 시인이다. ‘기다리는 마음’은 그가 방송작가로 활약하던 1964년 작곡가 장일남의 제안을 받고 쓴 절절한 그리움을 진하게 녹여낸 작품으로 아직 돌아오지 않은 세월호 희생자들을 생각하며 들으니 더욱 애잔해지는 마음이다. 김민부는 어릴 적부터 시에 대한 천부적 기질을 드러내어 주목을 받았다. 1941년 부산 수정동 태생인 시인은 부산고 2학년 때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조 '석류'로 입선하고, 같은 해 시집 '항아리'를 내 주목받는다. 고등학교 3학년 때에는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조 '균열'이 당선되어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1962년 서라벌예대를 거쳐 동국대 졸업과 동시에 MBC에 PD로 입사한 이후 스크립트 방송작가로 두각을 드러내었다. 당시 그가 맡은 '후추부인'이란 프로그램은 뛰어난 유머 감각과 재치가 잘 조화된 작품으로 호평을 받기도 했다. 이는 부산MBC라디오의 시사고발 프로그램으로 장수하고 있는 ‘자갈치 아지매’의 전신인 셈이다. 주위에선 너무 일찍 꽃이 피면 빨리 시들지 않을까 걱정할 정도였다니 그의 재능을 짐작할 만하다. 그가 쓴 하루치 분량의 원고가 200장이나 되었다고 한다. 방송작가로서 확고한 자리를 굳히고 있었지만, 그럴수록 그의 마음 한구석은 텅 빈 공동으로 채워졌다. 그의 영혼이 깃든 정통 문학에의 갈구에 비해 그걸 제대로 성취할 겨를이 없다는 자책감 때문이었다.

 

 방송의 상업주의적 타성에 빠지면서 순수문학을 향한 목마름에 더욱 강박관념의 늪 속으로 함몰되어 갔다. 그렇듯 분주한 집필 스케줄에도 1968년에 제2시집 '나무와 새'를 출간하고, 1970년에는 오페라 대본 '원효대사'를 썼다. 그러나 그는 그의 시집 후기에서 "그동안 너무나 적은 양의 시를 발표한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가을이 올 때마다 나는 내 목숨을 줄이더라도 몇 편의 시를 쓰고픈 충동에 몸을 떤다"는 고백을 남길 만큼 자괴감에 시달렸다. 그런 정신적 열패감 속에서 당시 연말특집 방송원고로 인해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했다. 그즈음 아내와의 저녁밥상머리에서 심한 말다툼을 했고, 갑자기 안방으로 뛰어 들어간 그는 석유난로를 발로 걷어차 곧장 온몸에 불길이 활활 번져갔다.

 

 1972년 10월 23일, 90%화상 진단이 내려졌으며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의 나이 만31세였다. 뒷날 그의 죽음을 분신자살로 규정짓는 사람도 있으나, 그를 잘 아는 친구들은 "그에겐 시가 잘 안 된다는 안타까움은 있었지만 당시 7세, 3세 나이의 귀여운 자식들과 소중한 아내, 부모가 있었다"는 사실로 미뤄 자신을 송두리째 내던질 만한 정신적 충격은 아니었고 우발적인 실화였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외로운 산모퉁이에 홀로 서있는 망부석에 관한 슬픈 설화를 모티브로 한 ‘기다리는 마음’의 ‘천재시인’ 김민부를 추모하는 제4회 김민부 문학제가 그의 기일에 맞춰 오는 10월 27일 그의 고향 부산에서 열린다. 지난해에는 동구 초량 ‘이바구길에’ 시인을 추모하는 기억자산으로 ‘김민부 전망대’를 세운 바 있다. 너무 일찍 피어나 너무 일찍 진 꽃 ‘김민부’를 기리는 사업들(내년부터는 김민부 문학상을 제정 시행할 계획이라고 한다)이 그의 존재를 널리 알리고 그의 문학을 새롭게 조명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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