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은 눈으로
주 요 섭
"몸뻬는 몸빼지만 저렇게 지어 입으니까 맵시가 있수!"
"그러기말요. 더구나 저 낫세에!"
동리 여인들은 가끔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저 낫세에!"
하고 말하는 사람들도 이 여자의 참말 나이는 몰랐다. 머리가 하얗게 센 것을 보면 오십이 지났으리라고 보이기는 했으나, 얼굴에 주름살이 과히 많지 않고 더구나 싱싱하게 빚나는 두 눈을 똑똑히 보는 사람은 그녀가 아직 사십 미만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눈! 깊은 물속처럼 그윽하면서 신비스런 광채를 발산하는 눈. 눈두덩에 꺼멓게 멍이 들어 있으면서도 무슨 비밀이 담긴 것같이 보이는 눈이었다. 웃음을 잃어버린 것 같은 그 눈에는 우울이 깃들어 있으면서도 남을 위압하는 날카로움이 있었다.
"젊었을 적엔 굉장히 미인이었었겠어."
하는 찬사에 반대하는 이가 하나도 없었다.
고독한 여인이었다.
입이 무겁고 성낼 줄 모르고 사리가 밝은 여자였다.
"심상한 여자가 아니야! 분명코 무슨 곡절이 있는 사람이야."
하고 근처 사람들은 생각했다. 그러나 이 여자에게서 천기를 발견할 수는 없었고 어디까지나 고상한 몸가짐을 가지는 여자였다.
이 골목 안 집에 들어와 사는 지 이미 칠 년여가 되었으나 이웃 누구와 말다툼 한번 한 일 없는 그녀였다. 그렇다고 또 누구에게나 책 잡힐 언동올 한 적도 없었다. 그녀에게서 어딘가 넘겨볼 수 없는 위압감올 모두가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개고기』라는 별명으로 유명 한 경방단원(警防團員) 기하라라는 자까지도 이 여인에게는 딱딱거리지 못하고 농담도 못 건네고 경이원지(敬而遠之)하는 태도로 대하는 것이었다.
방문 오는 손님이나 친지도 별로 없는 고적한 생활을 하는 여인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직업은?
삯바느질이 그녀의 직업이었다. 바느질을 곱게 하면서 품삯도 비교적 싸기 때문에 고객이 많았다.
그녀의 집 안팎은 언제나 티끌 한 점 없이 깨끗했다. 가구도 조촐(그러나 천스럽지는 않은) 하였고, 입는 옷도 언제나 값이 싼 옷뿐이었으나 그러면서도 언제나 산뜻하고도 청아한 기운이 그녀의 몸에 감돌았다.
"간호부 출신이 아닐까?"
하고 말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말을 별로 안하는 성미를 가진 여자이면서 말할 때에는 언제나 꼭 조선말만 했다. 나이가 정말 오십 가까웠다면 일본말 못하는 것이 흉잡힐 것은 아니었으나, 『국어 상용(일본어 전용을 뜻함)』을 강요하는 애국반 반상회 때나 관청에서는 일본말 몰라 가지고는 아무 일도 못하는 시절이었다. 『국어 상용』 이라고
인쇄한 삐라나 뿌려 가지고는 일본어 상용이 실시되지 않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일본인 통치자들은, 마지막 발악으로 일본어 모르는 시민이 관청에 갈 때에는 통역을 데리고 가서라도 일본어로 말해야만 서류 접수를 한다.
관청 말단 직원은 대부분 조선 사람이면서도 어떤 시민이 조선말로 말을 걸면, "아레 미로, 아레 미로(저것 봐, 저것 봐)."
하고 해라조로 말하면서 벽에 써 붙인『국어 상용』 포스터를 가리킬 따롬, 사무 취급을 안해 주는 것이었다.
그녀가 하루는 어떤 일로 시청에 가제 되었다. 창구 안에 앉아 있는 조선인 계원에게 조선어로 말하자 그 계원은 『아레 미로』하면서 벽에 붙인 포스터를 가리켰다. 그 포스터를 힐끗 쳐다보고 난 그녀는 미소를 지으면서,
"여보시오. 당신은 날 때부터 조선어를 써 왔고 지금 일본어도 잘하니 당신이 잠시 내 통역 노릇을 해주면 되지 않소?"
하고 대들었다.
언어 문제뿐 아니라 기타 사소한 문제도 곧잘 화를 내어 시민들의 일을 안 봐주기로 소문났던 이 계원도 그녀의 태연자약한 태도에 기가 질려, 청사 중앙 책상에 앉아 있는 일본인 과장과 국장의 눈치를 슬슬 살피면서, 사무처리를 해주었다는 일화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애국반 반상회 때에도 그녀는 조선어만 꼭 사용했다. 그녀가 일본어를 통 모르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은 성싶었다. 남들이 일본말을 지껄이고 있는 것을 그녀가 다 잘 알아듣는 것이 분명했고, 또 몇몇 사람만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일본 글로 씌어진 공문서를 줄줄 내리읽으면서 잘 해득하는 『유식』한 여자였다.
일반 시민에게 신사참배(伸社參拜)를 그렇게도 혹독하게 강요하였지만 그녀가 신사참배 가는 행렬에 한번이라도 참가하는 것을 본 사람은 없었다. 매달 초하루, 초여드렛날, 열 여드렛날, 스무여드롓날一이렇게 정기적으로 전주민이 꼭 가야만 되는 신사참배에 그녀만은 한사코 빠졌다. 이것을 반장이 눈감아 주었으나 그 반장이 불공평하다고 시비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정회(町會) 주최로 한 달 기한 매일 아침 여섯 시에 소학교 교정에 각 가족 대표 한 사람씩 나와 모여 라디오에서 방송하는 곡조에 맞추어 체조를 하고 나서 집단적으로 신사까지 걸어가서 참배하기로 되어 있었다. 첫날 출석 성적이 좋지 못한 데 화가 난 경방단장은 결석하는 차는 필수품 배급 통장에서 제명해 버린다는 협박 공문(公文)올 프린트해 돌렸기 때문에 이튿날부터 출석률은 백 퍼센트에 달했다, 그러나 그녀만은 이 협박에도 굴하지 않았다.
신사참배를 더 강화가기 위해서 일참(日參) 제도가 생겼다. 신사에 모신 일본 귀신에게 평양 시내 전체 가족들(일본인과 조선인을 막론하고)이 번갈아 매일 참배하여 전쟁에 일본이 이기도록 벌어야 한다는 취지 아래, 『日參』이라고 한자로 쓴 나무 패쪽을 각개 애국반에 비치하고 가족 돌림으로 그 패쪽과 애국반에 소속된 가족 명부를 가지고 신사로 올라가서 참배하고는 가족 명부에 그 신사지기의 도장을 받아 참배했다는 것을 확인하는 제도였다. 도장받아 가지고 온 가족은 패쪽과 명부를 옆 집으로 넘기면 그 집에서 그 이튿날 식구 하나가 그걸 가지고 신사로 올라가 참배하고 나서 도장받은 명부와 패쪽을 그 다음 집으로 돌리는 것이었다. 한 애국반이 평균 십여 세대로 조직되어 있었기 때문에, 『일참』번이 대개 매달 두 차례씩 돌아왔다. 그러나 그녀에게 그 패쪽과 명부가 돌아오면 그녀는 신사참배에 가지 않고 곧장 그녀의 집 동쪽 큰방에 세들어 사는 가족에게 넘기고 말곤 했다. 그래서 세들어 살던 가족이 이틀 거푸 신사참배를 하게 되었었다. 그러나 세들어 살던 가족이 시골로 소개(疎開)해 내려가자 혼자 살게 된 그녀는 패쪽 명부를 그냥 옆집으로 넘겼다. 관청에서 만일 따지게 된다면 혼자 사는 몸이라 집을 비우고 외출할 수 없지 않느냐는 핑계를 댈 작정이었다. 좀도둑이 왕성하던 시절이라 집을 비워 둘 수 없다는 구실은 정당한 것이었으나 열성분자로 이름난 경방단장이 알았다가는 벼락이 내릴 판이었으므로 옆집 식구가 대신 참배해 주어 그녀에게 올 화를 면하게 해주는 것이었다.
그러면 이 여인의 이름은 무엇이었던가?
대문 기둥에 단 문패에는 『김 소사』라고만 씌어 있으니 과부임에 틀림없었다.
김 소사가 살고 있는 집은 목 꺾어 가운데 부엌이 있게 지은 집으로 부엌 아래위로 온돌방 한 간씩, 동쪽 온돌방 앞에는 반 간 넓이 마루가 있고 옆으로 반 간 곳간이 있었다. 뜰은 모두 다섯 평이 될까말까?
쪽마루 없는 단칸방에 김 소사가 살고 동쪽 방에는 어린애 하나 딸린 젊은 내외가 세들어 살고 있었다. B29 미국 폭격기가 거의 매일 평양 하늘 위에 떠돌게 되고 아직 폭격받은 일은 없었으나 인심이 흉흉해졌다. 당국에서는 시골로 소개하라고 권장(실은 도시 주민에게 배급해 줄 식량이 날로날로 줄어들기 때문이었지만) 하고 있었고, 그것을 이용하여 셋방 들어 살던 젊은 부부는 평양을 떠나 버렸다: 그러나 정회(町會)에 가서 소개 수속도 하지 않고 도망가듯 가 버린 것으로 보아 B29보다는 징용(微用)이 무서워서 어디 깊은 산속에 숨어 버린 것처럼 그녀에게는 생각되었다.
1945년 8월.
기진맥 진한 『대일본제국』은 전극적으로 매일 수천만 명 사람들이 방방곡곡에 있는 신사(伸社)로 가서 『신풍(伸風)』의 기적을 빌었으나 가엾게도 그들의 귀신은 귀가 먹었던 모양이었다. 일본올 돕기 위한 신풍이 황해 바다에서 일어나지 않고 일본을 망하게 하려는 신풍이 북쪽 대륙에서 냅다 불어 내려왔다.
『짱꼬로(일본인들이 중국인을 낮춰 부르는 이름)』들을 굶기고, 발길로 차고, 종으로 부리기를 백년 천년 계속할 수 있을 줄로 믿었던 왜놈들이 『게다』짝을 거꾸로 신고 쥐구멍을 찾아 헤매게 된 것이었다. 십 년 동안이나 왜놈 군대의 말발굽 밑에 깔려 신음해 오던 만주 지방 중국인들에게 꿇어오른 복수의 불길!
체면도, 정신도, 또 그렇게 자랑삼아 오던 『야마도 다마시[大和魂〕』 까지 다 팽 개친 일본인 피난민들이 한반도로 홍수처럼 밀려내려왔다.
조선 사람들은 어찌하여 그 일본 연놈들을 압록강 물속에 처박아 버리지 못하고 순순히 받아들여 피난처를 제공했나?
굴욕의 관습화? 유린된 신경은 마비되어 버렸던가!
만주로부터 도망해 오는 일본인 및 조선인 수용―평양시에만도 무려 사만 명이 배정되었다. 『애국반』 서기들은 비지땀 홀리면서 빈 집, 빈 방, 빈 마루, 빈 창고 조사에 바쁘게 싸돌아다녔다.
B29가 매일 밤낮 가리지 않고 평양 상공을 날고 있는 것이 무서워서 전등은 말도 말고 담뱃불초차 얼씬하지 못하게 하는 캄캄한 길거리에는『지까다비』 신은 수천 쌍의 피로한 발들이 아스팔트를 버석버석 밟으며 들이밀렸다. 일본 여자들과 어린이들 ―그들은 이 조선이 얼마나 고마웠을까!
밤새워 역에 나가 기다리는 애국 반장들! 기차가 와 닿을 때마다 불없이 캄캄한 플랫폼에 내려서는 숱한 몸뻬 입은 여인들과 어린이들!
"나이찌징[內地人 ― 日本人]."
하고 크게 부르는 소리가 어둠속에 크게 울리었다. 그러고는 나이찌징 무슨 정(町), 제 몇 조(組)에 피난민 몇 명씩이 할당, 선포된다. 밤새도록 비워도 비워지지 않을 듯한 숱한 사람들로 북적거리던 플랫폼이 텅빈다. 조금 뒤 나이찌징만을 태운 기사가 또 들어와 멈춘다.
죠센징 (한국인)은 왜 안 오나? 관청에서는 분명 피난민 수송에는 내선(內鮮) 사람 가리지 않고 공정하게 배차한다고 계속 선언하고 있건만 죠센징 태운 기차는 들어오지 않는다.
왜놈의 앞잡이라고 오해받는 조선인 부녀자들이 만주 각지에서 미친개 맞아죽듯 하는 동안 왜족 부녀자들은 감쪽같이 특별열차에 실려 압록강을 건너오고 있었다.
일본 여자들과 어린이들이 평양 시내 각 학교 건물 (아직 병영으로 전환되지 않은), 상사(商事) 기관, 종교 기관 건물들을 다 채우고 넘쳐서 신시가(新市街) 일본촌 사삿집들까지 찬 후인 사흘째 되는 날에는 처음으로 조선인 부녀자 피난민의 선발대가 겨우 도착했다.
일본 연놈들보다 뒤늦기 사흘! 그동안 얼마나들 혼이 났을까?
"센징(조선인) 피난민은 센징 시가로!"
라는 명령이 내렸다. 폭푹 찌는 더위, 물 한 방울 안나오는 수도, 쌀 없는 도시!
먼저 온 일본인 피난민들에게는 바로 역에서 주먹밥이니 빵이니 다 나누어 주고 난 지금 센징에게는 나누어 줄 음식이 없으니 수용 할당받은 주인집에서 피난민을 먹이도록 하라는 명령이 내렸다.
―아, 조선인에게 무슨 식량이 남았기에 피난민을 먹이라고 하는 건가. 우리 자신이 오늘 아침 굶었는데 흥, 그 퀴퀴한 비스켓 배급 줄 때에도 나이찌징에게는 많이 주고 한또징[半島人]에게는 주나마나 하는 차별 대우를 해오지 않았는가. 정거장에 준비되어 있었던 주먹 법과 빵은 너희들끼리 다 먹어치우고 우리더러 뮐 나누어 먹으라고!
1945년 8월 보름날!
만세 소리!
조선 독립 만세!
천지를 진동하는 만세 소리!
너무 즐겁고 억해 마구 흘러내리는 눈물!
터져 나오는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거리 거리에 나부끼는 태극기!
이날 정오 『일본 천황』의 특별방송을 듣자마자 벌떡 일어선 김 소사는 카미다나라고 불리는 조그만 나무 궤짝을 벽 시렁으로부터 뜯어 내려 방바닥에 던지고 발로 밟기 시작했다. 강제에 못 이겨 벽에 걸어두고 해마다 새것으로 바꿔 걸어야만 했던 원수의 나무함 ! 그것을 발로 밟아 부수는 쾌미!
그 다음 그녀는 일장기(일본기)를 서랍에서 끄집어냈다. 기를 띄워야 되는 날 만일 안 띄우면 배금을 뗀다, 잡아 가둔다, 협박받아 오던 그 원수의 깃발!
"야, 이 히노마루! 흥, 좀 봐라!"
하고 고함지르는 그녀의 양미간에는 서릿발 같은 찬기운이 돌았다. 그녀는 그 기를 찢고, 물어뜯고, 짓밟았다. ―김 소사가 이렇듯이 격분하는 것을 본 사람은 일찍 없었다.
찢기고 짓밟힌 일장기!
바깥 거리 거리에는 사람의 홍수, 트럭에 가득가득 실린 청년들이 관자놀이에 핏대줄이 툭툭 불어오르도록 만세를 부르고 거리 거리에 나부끼는 태극기의 사태!
기쁨과 만족과 기대와 희망으로 가득 찬 거리를 김 소자는 걸었다. 그녀는 애국반장은 아니었으나 만주서 피난 오는 동포들을 맞으러 여러 사람과 함께 정거장을 향해 걷는 것이었다.
바로 이날 아침까지 들이밀리는 일본인 피난민 사태는 평양 조선인 시민들의 큰 두통거리요, 염려요, 절망이었었다.
그러나 이날 오후 동포 피난민을 맞는 시민들은 멀리 떠나 있던 친지들을 맞아들이는 기분으로 돌변했다. 바로 아침까지 누구나가,
"요놈의 왜종자들이 자꾸자꾸 쫓겨와, 바로 저희 나라로 가지 않구 여기서 주저앉기만 하니 어떡 헐 작정이란 말인구."
하고 짜증을 내던 시민들이 오후부터는
"아, 동포 여러분! 어서들 오십시오. 얼마나 놀라고 고생하셨수. 아! 우리는 인제 독립국 국민이 됐소. 자기네 피난민을 먼저 실어다 놓고는 저희들끼리 주먹밥이니 빵이니 다 처먹고는, 우리에게는 남은 쌀이 없으니 뒤로 오는 너희네 피난민들은 너희가 먹여야 한다. 죽을 쒀 먹 건 미음을 끓여 먹 건 맘대로 하라던 그놈들이 인제 자기네가 모두 다 이 땅에서 쫓기어 나갈 신세가 된 것을 알자 얄밉게도 쌀창고에 불을 지르고 식료품을 대동강에 집어넣고 막 개지랄하고 있소. 하나 인제 자유를 찾은 우리에게 무슨 염려가 남아 있겠소. 때마침 삼천리 강산에 풍년이 들었소. 이제부터 우리는 우리가 지은 쌀을 우리가 먹을 수 있게 됐소. 쌀을 깡그리 공출해 일본으로 실어가고 우리에게는 만주산 좁쌀만 배급해 주던 일본놈들이 다 쫓기어 가제 된 것이오! 자! 어서들 오시오. 오죽들 놀라고 피곤하겠소. 자, 건넌방이 비어 있고 마루도 비어 있소. 임시로 좁은 대로 지내 봅시다. 얼마 안 가서 신시가 쪽발이들 모두 현해탄 건너로 쫏겨 갈 것이니 그놈의 집들, 점포들, 창고들이 다 우리 것이 되지 않겠소. 주먹법이라니 말이 되오? 우리 한 솥에 밥을 지어 정답게 나누어 먹읍시다."
김 소사 역시 전에 없었던 명랑한 기분으로,
"아, 얘들아, 이 안방으로 들어오너라. 에그, 얼마나 피곤하구 배가 고플까! 쯧, 쯧. 염려 마라. 너희들은 참 행복하다. 모두 훌륭한 장래가 기약되어 있으니 웅, 착하다."
하고 수다스럽게 피난민 가족을 환영했다.
김 소사의 집으로 들어온 피난민 일행은 삼십 미만으로 보이는 어머니와 연년생으로 보이는 두 사내아이와 돌이 방금 지났으리 라고 보이는 처녀애였다.
김 소사가 친히 세수물을 떠다 놓고 피난민 아이들 세수를 손수 시켜주었다.
"웅! 너희들이 조선말을 할 줄 모르는구나! 그게 너희들 잘못이 아니고 못나디못난 너희 조상들의 죄다. 앞으로는 너희들 다 모국어를 배우게 된다."
하고 그녀는 혼잣말하듯 했다.
이 어린이들의 어머니는 아랫도리는 몸뻬, 위에는 하얀 홑적삼을 입었다. 그동안 얼마나 놀라고 피곤했는지 말 한마디 못하고 그냥 방안으로 들어가 쓰러지고 말았다.
저녁을 먹자마자 어린이들은 아무렇게나 쓰러져 잠이 들었고 김 소사와 피난민 여인은 각기 부채를 들고 툇마루에 마주 앉았다.
이미 황혼이 내리덮였건만 날씨는 그대로 푹푹 찌는 것이었다. 울 밖에 서 있는 단 세 그루 꺽다리 포플라 나무도 영양 부족인양 드문드문 돋은 잎사귀 하나 까딱 않고 졸고 서 있었다.
두 여인은 묵묵히 앉아 있었다.
피난민 여인의 가슴 속에 어떤 복잡한 생각이 교차되고 있으리라는 것을 너무나 잘 이해할 수 있는 김 소서는 찬찬히 이 여인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속으로 동정을 아끼지 않았다. 너무나 돌발적이었던 일이라 아직 꿈결같이 얼떨떨하리라고 김 소사는 생각했다. 영문을 모르면서도 떨리는 가슴, 공포, 불안 — 몇 해 내리 개미가 쌀알 모으듯이 모아 놓았던 조그만 소유 물품들에 대한 미련, 내버리고 온 이불장과 이불, 부엌 기명, 서랍 속에 잠겨 있을 어린애 재킷…… 아! 아!
김 소사는 그 누구보다도 특히 이런 감정을 잘 이해할 수 있었고 동정심이 남보다 강하다. 저 먼 날 자기 자신도 이런 변을 맛본 일이 있었던 것처럼 ˙이런 때에는 침묵만이 가장 큰 위로가 되는 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침묵을 지켰다. 피난민 여인이 먼저 입을 열기 전에는 언제까지나 그녀는 말을 꺼내지 않고 기다렸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안개 속 같은 추억이 배회하고 있었다.
추억!
추억이란 안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러나!
그때로부터 벌써 이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에 타고나서 이미 싸늘해진 재가 되어 버렸으리라고 생각했던 그 추억을 오늘 이 밤에 새삼스레 다시 불꽃같이 일으킬 필요가 어디 있는가? 야속한 건 사람의 기억력! 몇십 년 후에도 재를 헤치면 그 밑에는 아직 불씨가 빨갛게 살아 있고, 환경이 부채질해 주면 그 불은 세차제 다시 피어오르는 것이었다. 더 명료하게 더 아프게! 그 기막히는 기억. 몸서리쳐지는 기억, 이 기억이 김 소사의 뇌리에 다시 용솟음쳐 끓어오를 때, 이 마주앉아 있는 피난 온 여자, 풀기 한 점 없이 축늘어져 앉아서 하염없이 어두운 허공만 쳐다보고 있는 이 젊은 여자의 처지가 남의 일 같지 않게 생각되었다.
"과히 상심 마우."
하고 김 소사는 마침내 입을 열고야 말았다.
젊은 여인으로부터는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한참 뒤 좀더 다가 앉은 김 소사는 여인의 손을 꼭 잡았다.
"너무 상심 마우. 인제 겨레 모두 다 즐거워할 때가 오지 않았소! 앞올 바라보고 마음을 굳게 먹고."
하고 말하던 김 소사는 흠칫했다. 손을 잡아 보니 이 여자의 앉은 모습이 어쩐지 수상하게 보였다. 아무 대답 안하는 그 여인은 울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발이 저리고 아파 올 만큼 오랫동안, 꼼짝않고 꿇어 앉아 있는 모습과 우는 태도! 비록 조선 저고리를 입기는 했지만 어딘가 좀 어색하게 보이는 점.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침묵만 지키고 있는 이유? 김 소사는 손을 슬그머니 놓았다.
혹시 나?
"아니, 여보 당신은? 아니……."
김 소사는 말을 맺지 못했다.
"고멩, 고멩 (용서하십시요)!"
하고 일본말로 시작하는 젊은 여자는 두 손바닥 다 방바닥에 대고 머리가 방바닥에 닿도록 절을 두세 번도 아니고 칠팔 번 연거푸 절을 하는 것이었다.
일본 여자? 한복으로 변장한 왜년!
김 소사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이 젊은 여인을 왈칵 떼밀었다. 뒤로 밀쳐진 여인은 엎드린 채 흐느끼고 있었다.
"에이, 이 비겁한 종자!"
하고 김 소사는 유창한 일본어로 소리 질렀다.
젊은 여자는 일본어로 『용서하세요.』를 몇 차례 거듭하면서,
"조선옷을 입는 것이 안전하다고들 그래서요, 하, 하, 하."
하고 변명하는 것이었다.
김 소사는 말없이 벌떡 일어섰다. 조선옷으로 변장한 일본 여인을 발길로 한번 걷어찬 김 소사는 건넌방으로 들어가 방바닥에 쓰러졌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응,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눈은 눈으로 갚고 이빨은 이빨로 갚으라.』고 성경에 뚜렷이 씌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지시라고까지 명기되어 있었다.
아, 이십 년의 세월!
잊어버리자, 잊어버리자 하면서도 잊어버리지 못하는 그녀의 마음속 상처는, 마치 수술받은 자리가 날이 궂을 때마다 근질근질해지는 것처럼 가끔 더치곤 했었다.
그랬었는데 바로 오늘 오후 늦게!
피난민 여인이 어린것 셋을 데리고 지친 모습으로 걸어오는 것을 볼 때 그녀는 이십 년 전 자기 자신의 환영을 역력히 봤던 것이었다.
저녁 식사 뒤 피난민 세 아이가 나란히 누워 세상 모르게 자고 있는 것을 볼 때 이십 년 전 자기 자신의 환영은 아까보다 더 강하게 나타나는 것이었다. 이 이남일녀 세 어린이들은 김 소사 자신이 이십 년 전에 경험한 참상처럼 악착한 운명을 최후 순간에 겨우 모면하고 나서 나란히 누워 잠들었거니 하는 생각에 눈물이 저절로 핑 돌았었다. 이십 년 전 자기 자신의 아이들이 당했던 비극과 비슷한 경우에 빠졌던 이 아이들이 사무치면 사무칠수록 더 사무치는 경우에 빠졌던 아이들이 이렇게도 무사하게 김 소사 자신의 보호의 날개 아래로 기어든 것은 대견하기도 했고 행복하기도 했다. 끝까지 이 세 어린이를, 제 자식 대신 보호해 주고 양육해 주리라고 그녀는 결심 했던 것이다.
그랬었거늘! 아, 그년이 왜년이고 고것들이 악독한 왜종의 피를 물려받은 악귀들이라니! 그 원수의 왜새끼들을 애무해 주고 손수 법까지 지어 먹였다니! 아, 이 무슨 운명의 작희인고! 그해 그날, 이십 년 전 그날, 왜놈들이 내 남편과 두 아들과 하나의 딸을―진주처럼, 보석처럼 길러 온 세 아이를 한꺼번에 그렇게도 잔인하게 도륙한 ―.
바로 이십 년 전 구월 일일 정오! 곳은 일본 도꾜. 그날 아침까지도 김 소사는(그때에는 과부가 아니었고 남편과 세 명의 자식을 가진 현모양처였다.) 종달새럼 노래하고 토끼처럼 뛰노는 세 아이들을 기르고 있었다.
지진!
언제까지나 언제 까지나 요지부동일 줄로 믿었었던 땅덩이가 등이 가려웠는지 한번 흔들렸다. 한 일이 분간 진동이 이십 세기 현대식 대도시를 개미집만도 못하게 파괴시키고 말았다. 그런데 가증한 일본 정부는 이 천벌을 엉뚱하게도 조선인의 작희라고 선전하고 미련한 일본인 대중은 분노를 애매한 조선 사람들에게 향해 폭발시킨 것이었다.
그날 폐허가 된 도꾜 시 이리저리를 도망다니고 숨던 일이 어제런 듯 생생하게 그녀에게 회상되었다. 간이 콩알만해 가지고 아들들은 양손에 잡고 어린 딸은 둥에 업고―단지 조선 사람이었던 탓으로 이리 쫓기고, 저리 쫓기고, 무섭고 초조하고, 떨리던 생각!
"여보, 큰일났소. 조선 사람은 불문곡직하고 무조건 미친개 때려잡듯 하는구료. 방금 넷이서 함께 걸어오다가 나는 마침 소변이 마려워 잠시 뒤떨어졌기 때문에 그 덕에 혼자 겨우 살아남았소. 그저 칼, 몽둥이, 대나무, 창, 도끼, 식칼 아무거나 들고 때려 죽이는 걸."
하고 말하는 남편은 온몸을 와들와들 떨고 있었다. 그 모양이 지금 그녀의 눈앞에 선하게 나타났다. 이십 년이 지나간 이 밤에 조그만 방에 홀로 누워 있는 김 소사는 그날 들은 소름끼치는 목소리를 다시금 듣는 성싶었다. 바로 어제 생긴 일인 듯이!
"와 와 와, 조선놈을 죽여라, 죽여 !"
피와 굶주린 악귀들의 아우성 소리.
그러나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사람은 먹어야만 살 수 있는 동물이다. 먹어야 산다! 미천한 짐승이나 곤충과 꼭 같은 동물, 그것은 만고불변의 진리.
그러나 골목골목에서 조선 사람 죽이기를 기다리고 있는 이 학살터에서 조선 사람이 어떻게 어디서 먹을 것을 구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어린 것들! 이제 기운이 지쳐 버려 배고프단 말조차 할 기운이 없이 느른히 누워 있는 어린것들! 너무나 조용히 누워 있어 혹시 죽었는가 겁이 나서 가서 흔들어 보곤 했다.
남편과의 말다툼도 인젠 더할 기운도 흥미도 없었다.
어른은 차치하고라도 어린 것들만은 먹여 살려야 할텐데.
남편의 용모는 그가 아무리 일본옷을 입고 있다 해도 『나는 조선 사람이오.』 하고 얼굴에 써붙인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래도 여자는 일본옷 입고 일본 여자 걸음걸이 흉내를 잘 내면 무사히 통과될 성싶은 생각이 든 그녀는 거리로 나섰던 것이었다. 먹을 것을 구하려고, 먹을 것을!
그녀는 뛴다.
일본 여자가 뛰는 흉내를 내어 뛴다. 먹을 것을 손에 들었으니 마음이 더 조급해진다. 아이들이 그동안에 혹시나? 아니다, 아니다. 이 빵을 갖다 먹이면 모두 기운을 차릴 게다.
숨이 차 현기중이 난다. 금방 길에 쓰러질 것 같다.
그러나 어버이의 본능은 생리(生理) 보다 강했다.
다 왔다.
“악아, 이 빵 받아라, 받아라, 받아라. 먹어라, 먹어라. 살았다, 살았다, 자, 이 빵!"
그런데 웬일일까? 꼭 닫혀 있어야 될 문이 좍 열려 있는 것을 그녀는 봤다.
그녀는 급히 뛰어들어갔다.
"악아, 악아, 이 빵을! 여보, 여보!"
앗! 피! 피투성이! 흥건히 괸 피! 시뻘건 피!
"얘들아, 일어나렴. 엄마가 먹을 거 사왔다. 여보, 빵 사왔어요."
어린이들도 남편도 아무 대꾸 없이 그냥 누워 있었다.
나란히 자는 듯이 누워 있는 아이들과 남편은 빵을 먹을 수도 없고 영원히 다시 일어날 수도 없는 몸들이 되어 있었다. 배고픔도, 고통도, 어머니도, 아내도 다 없어!
아, 하느님! 갑자기 웬 안개가 이처럼 낄까? 내 눈이 왜 이리 까마득해 질 까?
그것이 이십 년 전 일이었다. 그러나 오늘 밤 그 기억이 새롭게 격동과 피곤을 가져다주는 것이었다. 노곤해져서 손가락 하나 달싹하기 싫었다. 그러나 잠은 들 수 없었다.
달이 밝기도 했다.
김 소사는 얼마 동안이나 가만히 누워 있었는지 저도 잘 모른다.
"이 원수를!"
그녀는 일어나 앉았다. 피곤이 금시 사라져 버렸다.
뜰에 나서니 달빛에 눈이 부셨다. 그녀는 머리를 들어 달을 쳐다봤다. 구름 한 점 없는 광활한 하늘에 별들이 총총. 저 별들, 반짝거리는 저 별들이 어쩌면 저렇게도 차고 매정하고 무감각할까!
피난민 가족이 잠자고 있는 방. 김 소사의 눈은 자석에 끌리는 쇠붙이인 양 그 방으로 끌려갔다. 방안에는 옷 입은 채로 쓰러져 자고 있는 어린이들의 상반신 위에 달빛이 비치어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 고수머리들! 그 토실토실한 팔들!
내 아이들, 이십 년 전에 한목에 죽은 내 아이들이 이전의 그 모양대로 세상으로 환생하여 저렇게 나란히 누워 자고 있는 걸까? 너무도 흡사하다.
조선 저고리로 변장한 일본 여자는 저쪽 어두운 구석에서 새우잠을 자고 있었다.
김 소사는 오싹 소름이 끼치는 것을 감각했다.
복수!
눈은 눈으로 갚고, 이빨은 이빨로, 도끼는 도끼로 갚고!
이놈들아, 너희들이 내 자식들을 무단히 죽였겄다. 오늘 밤 나는 너희들을 내 손으로 죽일 권리와 의무를 갖고 있다. 왜놈들아, 너희는 무슨 까닭으로 내 남편과 어린것들을 도끼로 패죽였니! 도끼는 도끼로, 어린것은 어린것으로 갚는다!
그녀는 장독대께로 갔다. 번들번들 빛나는 물건이 이내 그녀의 눈에 띄었다. 멈칫 선 그녀는 몸을 바르르 떨었다.
그녀는 도끼를 들어 둘러메었다. 묵직하다. 이것으로 한 놈씩 골사박을 패면 팍팍 잘 패일 것이다.
달빛 아래 상반신을 드러내 놓은 어린이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쌕쌕 자고들 있다. 나란히 누워 자는 어린이들의 모습은 곱기도 했다. 김 소사 자기의 자식들이 자는 모습은 저보다 몇 갑절 더 고왔었다.
남편, 아들, 딸의 피의 호소! 이 호소는 신성한 것, 절대적인 것이었다. 남편과 아들들과 딸의 피의 호소를 거부할 권리가 나에게 있겠는가? 없다. 피, 피, 피, 피!
김 소사는 도끼를 힘있게 둘러멨다. 입술을 질근 깨물었다.
두다리에는 쥐가 일었다.
『에익!』 단숨에 팍, 팍, 팍, 팍 내리칠 수 있는 것이다. 팩, 팩, 팩, 팩 네 번만 패면 연놈들이 다 찍 소리도 못하고 죽을 것이다.
피의 호소! 남편과 자식들의 피의 호소가 지금 그녀의 두 팔에 밀물 밀듯 올라오는 것이었다. 그 두 팔이 앞으로 홱 넘어오기만 하면 만사는 끝나는 것이다.
피는 피로 갚아야지!
탕, 탕, 탕!
어디 가까운 데서 요란스러운 폭파 소리가 들려 왔다.
갑작스런 소리에 놀란 그녀의 팔은 별안간 맥이 탁 풀리고 도끼는 땅에 떨어졌다.
탕, 탕, 탕, 탕 계속하는 탕탕 소리. 이게 무슨 소릴까?
갑자기 하늘과 땅이 낮같이 밝아졌다. 달빛은 언제나 그윽한 빛이요, 달이 이미 서산을 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갑자기 천지를 환하게 빛내는 시뻘건 불기둥들!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 "
하고 외치는 사람들의 아우성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 왔다.
탕, 탕, 탕!
총소릴까? 왜놈 군인들이 최후 발악으로 평양성을 둘러빼는 것일까?
조선 사람의 환희가 도수를 넘어 일본인 주민들에게 공포감을 주고 있으니 좀 자중해 달라는 담화를 일본군 사령부에서 발표했다는 풍설을 초저녁 때 들었었다.
그런데 ―
"불! 불! 저 불길."
하고 떠드는 아우성 소리에 놀란 김 소사는 고개를 들어 보았다. 가까운 언덕에서 불기둥이 하늘을 향해 기어오르는 것이 그녀의 눈에 띄었다. 삼십 자, 아니 오십 자도 더 되게 높이 보이는 불기둥이었다.
"어딜까?"
하고 불구경 나온 군중 하나가 물었다.
"신사(伸社)지 어디야."
하고 한 사람이 단언했다.
"아니, 도청 건물이 아닐까?"
"아니야, 도청 건물은 만수대에 있는데 방향이 다르지 않아. 칠성문 근처가 분명 하니까 신사가 분명해."
"그래그래, 분명 신사 주변 솔발 속에 왜놈들이 가솔린 드럼들을 숨겨 두었는데, 가솔린 드럼이 터지지 않고는 불길이 저렇게 셀 수가 없거든."
"암 그렇지. 아까 탕탕탕 하던 소리가 가솔린 드럼 터지는 소리였어, 분명."
"어, 시원해. 그놈의 신사가 불에 타다니……."
"참 유쾌하다. 그런데 누가 감히 그렇게 대담하게 신사에 불을 질렀을까? 일본군은 아직 중무장한 채로 있는데."
"어찌 됐건 시원해…… 이젠 죽어두 한이 없겠어…… 그 지긋지긋하던 신사참배!"
이렇게들 떠들어대고 있는 사람들은 바로 오늘 아침까지도 이 신사에 끌려가 참배하고 온 사람들이었다.
―용감한 손. 성냥을 그어 신사 건물에 댄 손은 누구의 손일까! ―하고 김 소사는 생각해 봤다.
그 손! 그 손은 한 젊은 여성의 손일지도 모른다. 신사참배 거절 때문에 경 찰서 유치장에 구금되어 있으면서도 끝끝내 거부하다가 결국 유치장에서 죽어 송장이 되어서야 석방이 되어 나온 예수교 목사 한 분이 있었었다. 그 목사의 딸이 이 원수의 신사에 불올 질렀기가 십상 팔구다.
그 손은 아무개의 손이라도 좋다! 그 손은 개인의 손이 아니라 전체 민족의 손이다.
타라, 타! 타 없어져라. 일본 민족의 수호신, 일본 족속의 최고의 숭배와 신앙의 대상인 신사가 지금 타서 재로 변하고 있다. 아, 하, 그렇게도 숱한 절을 매일같이 받은 너, 어찌하여 지금 너 자신을 살릴 기적을 행사하지 못하느냐? 너는 그동안 공절을 받고 있었구나. 아, 탄다. 잘도 탄다. 타라, 타 죽어라, 영원히 타죽어라. 그래서 우리 나라 이 땅에, 아니 세계 어디에 있었건 너는 타서 재가 되고 다시는 이 세상에 지어지지 못하게 되라.
아, 개인 개인간의 복수는 없어도 좋다. 너희들 국신(國神)을 우리 손으로 태워 버림으로써 우리 민족 전체의 복수가 실현되었다.
아, 불아. 통쾌한 불아.
불의 새빨간 광휘를 온몸에 받고 서 있는 김 소사의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 내리흘렀다. 억제할 수 없는 만족과 행복의 눈물!
〈1947〉
2016년 11월 22일 읽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