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박성은 리아입니다.
9월 11일에 해미 국제 성지를 다녀왔습니다.
해미 성지를 다녀온 뒤에도 한동안 마음이 그곳에 머물렀습니다.
이곳은 박해의 시기에 신앙을 지키다 목숨을 잃은 수많은 순교자들이 있습니다.
그중에는 우리가 이름조차 알 수 없는 무명의 순교자가 많은 곳입니다. 누구의 아버지였을지 누구의 어머니였을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알 수 없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신앙을 놓지 않았던 그분들.
이름 하나 남기지 못한 채 역사의 어둠 속에 묻혀버린 생명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그래서인지 카페에 해미 순교성지에 대해 글을 올리기가 좀 힘들었습니다. 미루고 미루다가 마침 순교자 대축일인 오늘 미사를 드리며 그분들을 위한 기도를 드리고 이제야 이야기를 시작해 봅니다.
해미는 조선 후기 내포지역의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받아 집단적으로 순교한 곳입니다. 1790년대부터 박해가 이어졌고, 특히 1866년 병인박해 때 많은 신자들이 해미읍성으로 끌려와 처형되었습니다.
해미에서 순교한 사람 들은 기록이 충분히 남아있지 않아 대부분 이름을 알 수 없는 평범한 신자들이었습니다.
당시 기록에 이름이 확인되는 해미 순교자는 132명 정도지만 실제 순교자는 수천 명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해미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생매장입니다.
신자들을 끌고 와 구덩이에 산채로 묻어 죽이는 일이 있었고, 물웅덩이에 빠뜨려 죽이는 수장도 행해졌습니다. 그래서 이곳에는 '진둠벙'이라는 순교터가 남아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천주교 신자들을 빠뜨려 죽인 웅덩이란 듯에서 '죄인 둠벙'이라 불렸고, 이것이 오늘날 '진둠벙'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또 하나 유명한 이름이 '여숫골'입니다.
순교자들이 끌려 가면서 "예수, 마리아"를 부르던 소리가 당시 사람들에게 '여수머리'처럼 들렸고, 이곳을 '여숫골'이라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해미는 2021년 3월 1일 교황청으로부터 공식적으로 **국제 순례지(International Site of Pilgrimage)**로 인정되었습니다. 즉, 우리나라 안에서만 의미 있는 성지가 아니라 세계 교회가 함께 기억하고 순례하는 장소가 된 것입니다. 특히 중요한 점은, 유명한 성인의 이름 때문만이 아니라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수많은 순교자들의 신앙을 세계 교회가 기억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해미 순례 방문자 센터가 있는데 아직 공사 중 인듯했습니다. 문이 모두 잠겨있었습니다.
방문자센터 앞엔 주님이 순례자의 발을 씻겨 주는 조각상(이라고 제 맘대로 생각함)이 있어 한참을 보게 하더군요...
아직 완성된 곳이 아닌 것 같습니다. 어떤 모습으로 완성될까 궁금한 곳입니다.
오른쪽으로 성지입구라는 표지판이 있습니다.
성지 입구 푯말을 따라 내려와 가장 먼저 만난 것은 '해미 무명 순교자들의 어머니'라는 이름의 성모 마리아입니다.
순교자들의 어머니상을 카메라로 찍고 모니터를 확인하면 하얀빛이 보여서 렌즈를 닦아보고 찍어도 자꾸 나타나더라고요... 집에 와서 큰 화면에 보니 이렇게 예쁜 렌즈 플레어 현상이 성모님을 감싸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자식들을 먼저 떠나보낸 어머니의 슬픔이 저 빛으로 승화된 게 아닌가... 제 맘대로 생각해 봅니다.
무명 순교자들의 어머니상에서 오른쪽에 이름 없는 집이 있습니다.
이름 없는 집으로 들어가 보니 기도하시는 예수님과 그 앞 책상에는 성경 필사를 할 수 있는 장소로 꾸며져 있었습니다. 기도와 성경 필사를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공간입니다.
이름 없는 집을 나와 성전 안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해미 성당 내부는 일반적인 서양식 성당과 달리 원형에 가까운 공간 구성과 한국적인 요소가 함께 느껴지는 독특한 분위기였습니다.
둥근 공간을 둘러싼 빛과 스테인드글라스, 그리고 중앙의 십자가. 순교의 기억을 품은 성전 안에 고요한 기도가 흐릅니다.
이곳은 위의 성전보다 작은 소성 전이었는데 여기서는 해미 성지에 대한 역사와 순교지에 대한 소개를 영상으로 보여 주고 있었습니다.
해미 순교 성지의 기념관입니다.
시복 기념비에 새겨진 세분은
*복자 인언민 마르티노(1800년 1월 9일 해미에서 장살형으로 순교) *복자 이보현 프란치스코(인언민 마르티노와 함께 1800년 해미에서 순교) *복자 김진후 비오 (해미에서 옥사,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증조부)입니다.
이 세분은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집전한 **한국 순교자 124위 시복식**에서 함께 복자로 선포되었습니다.
기념관 안으로 들어가면 박해의 시대에 신앙을 지키다 목숨을 바친 순교자들을 기억하고, 그분들의 유해를 공경하며 기도하는 공간 '유해 참배실'입니다.
순교자들의 겪었던 고통과 두려움, 그리고 끝까지 신앙을 지키려 했던 모습을 예술적으로 표현한 작품입니다.
이름을 남긴 이들과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이들의 희생을 함께 묵상해 봅니다.
고난의 길 위에 선 사람들... 서로 연결된 모습 속에서 한 사람의 믿음이 또 다른 사람에게 이어지는 역사를 묵상합니다.
자리개돌은 해미읍성 서문밖 수구에 놓여 있던 돌다리로, 병인박해 당시 천주교 신자들을 '자리개질'로 처형하는 데 사용되었던 돌입니다. 도로 개설로 인해 2009년 현재의 해미순교성지로 옮겨 보존하고 있으며, 원래 자리에는 모조품이 마련되어 있다고 합니다.
'자리개질'이란 조선시대 사용되던 잔혹한 형벌로 사람을 돌 위에 눕히거나 엎어 놓고 여러 사람이 들어 올렸다 내리쳐 목숨을 잃게 하는 처형 방식이라고 합니다.
자리개돌 옆에 무릎 꿇고 기도하다가 자리개 돌에 손을 얹는 순간 가슴 깊숙이 고통이 느껴졌습니다...
이곳은 진둠벙이라는 연못입니다.
당시 천주교 신자들이 물이 빠뜨려져 순교한 곳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이곳을 '죄인 둠벙' 이라고 불렀고 세월이 흐르면서 '진둠벙'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졌습니다.
아름다운 풍경 너머에 감춰진 순교자들의 아픔을 기억하며, 잠시 걸음을 멈추고 기도해 봅니다.
여숫골로 접어들면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는 일반적인 '십자가의 길'과는 달리 순교자들의 신앙과 죽음을 묵상하도록 꾸며진 공간이 있습니다.
각 처마다 순교자들이 겪었던 고난과 신앙의 여정을 담고 있으며, 한처 한처 순교자의 고통을 생각하며 기도를 하며 걷다 보면 죽음 앞에서도 신앙을 놓지 않았던 그 순간을 조금이나마 헤아리게 됩니다.
쉽게 볼 수 없는 길이기에 14처 모두 올려봅니다.
이곳은 여숫골 가운데에 있는 무명 생매장 순교자의 묘입니다.
이름도 얼굴도 남기지 못한 수많은 순교자들...
해미에서는 박해를 피해 신앙을 지키던 이들이 붙잡혀 산채로 땅에 묻히는 참혹한 죽음을 맞기도 했습니다. 세월이 흐르며 그들의 흔적과 유해마저 많이 사라졌지만 이곳에는 이름 없는 순교자들을 기억하는 작은 묘가 남아있습니다.
해미 순교성지의 또 하나 독특한 곳입니다. 순례객들을 위한 야외 미사터입니다.
야외 미사터를 마지막으로 해미 국제 순교 성지의 순례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