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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동아리농구방 원문보기 글쓴이: 권혁원
⑨배병현(MSA)
이 선수 근래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공수에서 밸런스가 상당히 좋은 평가하고 있는 선수인 배병현은 웨이트가 지나치게 떨어진다는 점을 제외하면 인사이드에서의 풋워크와 핸들링 그리고 정교한 야투와 돌파,리바운드 능력을 두루 가지고 있는데 이전에 보여주었던 장점들이 근래 거의 보이지 않고 있는데 오로지 수비만 한다 모드로 보고 있는데 너무 한쪽으로만 치우친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어서 그를 아는 분들이 고개를 갸웃거릴 정도인데 능력보다는 심리적인 부분이나 팀에서 요구하는 부분으로 보고 있습니다.거의 전문수비수에 가까운 플레이를 보여주며 공격가담을 전혀 하지 않아 공격시에는 다소 밸런스를 무너트리는 경향이 있을 정도입니다.왜일까요?
이 선수를 처음 본 것은 대학동아리인 고려대SFA였습니다.무관의 제왕이라 필자가 불렀을 정도로 2000년대 중반 이후 항상 좋은 멤버들이 우글거렸고 대학동아리 정상권의 팀이었지만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던 SFA는 이 선수가 고학년이 되고 팀의 에이스로 팀을 이끌당시 대학동아리 최강의 팀으로 꼽히면서 2000년 이후 누구도 해내지 못했던 연대배 2연패를 달성했습니다.당대에 현 동호회에서 주전급으로 뛰는 선수들이 대학동아리에 우글거린점을 감안하면 그의 대학동아리 시절은 누구 못지 않게 화려했습니다.
잠시 한담을 하자면 대학동아리에서 아직 고학년으로 진입하기 전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당시 1차 내한했던 코비의 농구레슨에서 배병현이 동영상에 등장해 덩크를 찍는 장면이 있었는데 스스로도 되게 쑥스러워 하면서 했던 장면이 기억납니다.
하여간 그는 대학동아리 시절 선배인 강준석을 따라 하모니베스트에 들어가게 됩니다.2000년대 초반을 호령했던 상위권 동호회에서 차츰 하향곡선을 그리던 때 그가 들어갔는데 결과적으로 하모니베스트는 그를 영입하면서 몸빵계 대마왕 유봉훈과 함께 트윈타워를 이루면서 제2의 전성기를 보내게 됩니다.그가 공격에서 주로 활약하고 유봉훈이 상대 센터를 힘으로 밀어붙이는 상황이었는데 상당히 밸런스가 좋았습니다.
필자의 기억으로 보면 배병현은 필자가 전국대회에서 가장 많은 성장을 이룬 선수로 기억하고 있는데 전주 대축전에서 기대이상의 대활약을 보여주면서 이후 전성기를 열어젖히게 됩니다.이전까지 좋은 선수이나 아직 한치가 부족하고 웨이트가 너무 약하다는 평가에자신감이 떨어진다는 평가였는데 전국대회에서 전국의 좋은 선수들과 경기를 하면서 자신감이 올라와 오히려 인사이드에서 빠르고 공격옵션이 다양한 선수라는 평가로 바뀐 건 그 시절부터로 평가하고 있습니다.파포계에서는 최고수준으로 꼽히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유봉훈이 떠나고 그가 하모니의 유일한 센터를 보게 되면서 점차 힘겨운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신현웅과 더불어 보여주던 인사이드와 아웃사이드의 다이내믹한 활약등이 인상깊었지만 항상 골밑에 상대 덩치들과 힘겨운 싸움을 이어갔습니다.결과적으로 그는 여러이유가 있겠지만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하모니베스트의 에이스가 이적을 택하게 됩니다.바로 절친했던 다운타운의 전 감독이었던 이대광이 감독으로 이적한 MSA로 이적하면서 모두를 놀라게 했습니다.
워낙 MSA라는 팀 자체가 인사이드의 역할보다 아웃사이드의 역할이 강조되는 팀이었던데다 2000년대의 아이콘들이었던 박희철등이 머무는 팀에서 그는 이전에 보여주었던 다이내믹한 활약 대신 안정적인 플레이를 위주로 하게 됩니다.하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적절히 공격을 가미하면서 공수의 밸런스가 깨질 정도는 아니었습니다.하지만 이후 김진철이 이적으로 들어오게 되면서 그는 공격에 대한 의욕자체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요?전체적으로 수비형 파포로만 활약하고 있습니다.흡사 르브론,웨이드와 뛰던 당시의 보쉬가 연상될 정도인데 훨씬 더 소극적이라고 보고 있습니다.이후 행보를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⑩송수형(슬로우)
2007년 역대최강전에서 당시만 해도 약체로 평가되던 호바스는 센세이션한 선수를 들고 나왔습니다.바로 당시 새턴에서 농구를 하고 있었던 송수형이라는 2미터가 넘는데다 운동능력과 탄탄한 체격을 가진 선수를 뒷선에 수혈하면서 가능성을 확실하게 공고히 했습니다.그는 BDR대회 데뷔전이 볼케이노 전이었는데 이 경기에서 그는 하이포스트에서 공을 잡고 상대가 골밑으로 쳐지자 바로 스텝을 밟고 인유어페이스 덩크를 내리 찍으며 기선을 제압해 승리의 기틀을 놓았습니다.선출도 아닌 선수가 큰 대회 데뷔전에서 인유어페이스를 먹인 사례는 프로농구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힘든데 그는 그렇게 센세이션한 모습으로 생활체육 농구계에 데뷔했습니다.그때 필자와 같이 그 경기를 보던 서우회의 영원한 감독이신 민경범님은 앉아있다가 그의 덩크와 함께 "괴물이구만~~!"이라는 멘트를 날리셨던 것을 기억합니다.
이후 그는 동아리와 동호회 최장신센터로 자리했지만 초기에는 기본기가 약해 어설픈 포스트업과 피딩등으로 다소 고전했습니다.하지만 신장과 힘만으로도 동아리에서는 공포로 자리했습니다.문제는 동아리에서는 저승사자였지만 동호회에서는 소위 당대의 4대 센터에 그에 필적하는 센터들이 확연한 열세를 보여주었고 왠만한 선수들을 상대로도 압도하는 느낌은 없었습니다.
거기에 그가 미국으로 연수를 갔다온 시기 전후 전체적으로 한국 농구에 한동안 적응하지 못하고 겉돈 것으로 평가하고 있는데 당시 그의 컨디션이 상당히 떨어지지 않았나 보면서도 워낙 가지고 있는 포텐셜은 좋아 상대 선수들을 이 선수를 제대로 공략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대학 졸업 이후 이 선수는 체력이 서서히 떨어지면서 운동능력도 조금씩 하락했다고 보고 있는데 반전은 그 때문인지 서서히 안정감이 좋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이전에 보여주지 못했던 악착같은 모습이 나오고 있고 자세가 높아 상대선수들과의 몸싸움에서 고전했던 것이 자세가 무너진 것인지 하체힘만은 좋아진 것인지 자세가 낮아지면서 1:1에서의 포스트업이 좋아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도 어느새 30을 넘어섰고 그리고 그와 함께 이전에 보여주지 못했던 노련미가 눈에 띄고 있습니다.몸이 변하는 것에 따라서 마음도 변하는 것일까요?
⑪신진원(피데스)
이 선수가 이렇게까지 성장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처음에 봤을 때도 피데스였지만 당시만 해도 탄력만 좋은 선수였습니다.전체적으로 보면 둔탁하고 공격욕심 많은 그런 선수로 보았습니다.기술적으로 단조로웠고 그리고 옵션도 많지 않다고 본 선수였는데 문제는 이 선수 보통의 선수들이 가는 길 즉 단점을 보완하고 나아가는 것보다 장점을 극대화하는 쪽에 초점을 맞췄습니다.여전히 오른쪽 돌파만 고집하지만 좀더 스피드를 올렸고 이전보다 상대 수비의 빈틈을 파고드는 스텝의 간결성이 좋아졌습니다.
이 선수 미들슛이 상당히 좋은 선수인데 팀내 센터가 자신밖에 없다는 책임감 때문인지 미들슛은 자제하고 돌파와 골밑슛을 위주로 농구를 하고 있는데 탄력이 좋고 스텝이 빠른데다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고 밀고 들어오는 타입이라 수비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습니다.골밑슛도 보통의 센터들이 정점에서 쓰는 반면 이 선수 체공력을 이용해 반타임 정도 접는다는 느낌의 슛을 쏘고 있어서 바스켓굿을 잘 빼내는 편입니다.하지만 자신보다 5센티 이상 큰 선수들을 만났을 경우 이 골밑슛이 상대 손끝에 걸리면서 공격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여기에 30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체력과 탄력이 떨어진 모습입니다.피데스 다이나믹 빅3의 한축인데 수비에서는 확실히 이전보다 노련해진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야생과 안정이 미묘하게 자리를 바꾸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는 것이 최근의 행보인데 재미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⑫이제웅(네오스)
이 선수를 처음 본 것은 페가수스 시절입니다.당시만 해도 20대 중반대로 기억하는데 신장이 좋고 탄력이 좋은데다 힘까지 좋아 발전가능성이 높은 선수로 꼽았습니다.하지만 기술적으로는 아직 탄탄하지 못한 상태여서 주로 수비형 선수로 뛰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가능성이 높지만 개선이 많이 필요하다는 평가였는데 이후 페가수스를 나와 토파즈를 거쳐 동갑내기 친구들을 주축으로 네오스를 만들어 팀장이 되었습니다.그의 유니폼 뒤에는 이름 대신 캡틴이라는 글이 써 있는데 스스로도 팀의 주전센터이지만 팀장이라는 인식을 한 것이 이때부터라고 보고 있습니다.
보통 팀장을 선수가 겸직할 경우 일이 많아지고 신경쓸 일이 많아지다보니 기량의 발전은 어렵거나 더뎌지는 것이 상례인데 이 선수는 반대로 기량이 점차로 올라왔습니다.20대 당시의 탄력과 운동능력은 이전 같지 않지만 공없을 때의 움직임이 좋아졌고 골밑에서 상대의 힘을 이용한 포스트업과 간간히 던지는 3점슛과 돌파등으로 스트레치 빅맨의 전형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다만 가로수비에 약하고 그 스스로도 수비에 대한 집착은 공격에 비해 떨어지는 편이어서 전체적으로 보면 공격형 센터로 보고 있습니다.체력과 수비의 약점을 보완한다면 더 좋은 선수겠지만 생업에 쫒기고 있어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⑬이진행(토파즈)
이 선수를 처음 본 것은 고교 2학년때였습니다.피어스로 대회에 나왔는데 연습할 때 덩크를 찍더군요.지금이야 필자가 대두네 하며 간간히 놀리는 글을 올리지만 당시에는 그런 느낌보다 체구가 좋고 날렵하다는 느낌을 주었던 선수입니다.기억하는 것이 이 선수가 BDR에서 주최하던 고교 3:3 최강전에서 당시 수도권 최강 수준으로 평가되던 스피드3과의 경기에서 이제는 같은 팀에서 뛰고 있는 김영신과 매치업되어 경기를 벌이던 장면입니다.
김영신은 당대 자신의 1년 윗 선배들보다 한수위의 기량을 보여주면서 압도해 이후 고교 농구 최고의 센터로 꼽혔는데 그와 한살어린 이 선수와의 매치업은 당연히 김영신이 이길 것으로 보았습니다.하지만 이진행은 그 경기에서 대등 혹은 우월의 경기를 가져가면서 센터대결에서 우월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결국 팀의 우승을 이끌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이후 두 선수가 토파즈에서 같이 뛰는 인연을 만들었는데 칼과 방패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모습을 보면 당시의 매치업이 떠오르곤 합니다.
이진행은 이후 인천대에 진학해 만만치 않은 재능들인 문경인과 한태건등을 만나면서 인천대를 대학동아리 최정상권 팀으로 이끌면서 고교 시절을 넘어 대학부까지도 평정하게 됩니다.이후 인사이드에서 최강수준이었던 토파즈의 전세대들이 노쇠와 결혼,생업등으로 참여가 쉽지 않거나 기량이 하락세가 되면서 확실하게 주전으로 자리했습니다.정교한 미들슛에 탄력이 좋고 힘이 좋아 골밑에서도 득점력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파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포스트업보다 페이스업에 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돌파에 능한 모습으로 속공에서 트레일러로도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만 체력이 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다 수비에서는 집중력이 간간히 떨어지면서 상대에 쉬운 슛을 내주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점을 개선할 경우 좀더 좋은 선수로 보고 있습니다.조만간 결혼의 얘기가 돌고 있는데 농구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⑭전상용(아울스)
현존 최강의 센터로 꼽히는 선수로 골밑에서의 공격과 패싱 그리고 노련미등을 두루 갖추고 있습니다.그의 골밑 존재감은 대단하다는 면도 있지만 필자가 아는 선수중에 센터로써 이 선수보다 노력하는 선수가 얼마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하는 노력파 선수입니다.둔중한 체중으로 수비에서 다소 약점을 노출하는 점을 제외하면 이 선수에게서 약점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해마다 노력으로 자신의 약점으로 평가되는 부분을 하나하나 보강해 나가는데다 투지도 뛰어나 상대를 괴롭히는 부분은 이제 이 선수가 아울스의 에이스를 넘어 핵임을 모두가 인정하게 하는 원천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선수 초기에는 광명에서 농구를 하다(이후에도 쭉 광명에서 살고 있습니다) 다소 뜬금없었던 안산에 위치한 용으로 이적해 배성우와 원투펀치로 활약하게 됩니다.당시 이미 득점력은 만개한 수준이었는데 골밑에 공을 투입하면 잡았다 하면 한골이라는 공식을 확실하게 보여주면서 필자가 자판기센터(잡으면 자판기처럼 골이 나온다는 뜻으로 지었던 별명)라고 불렀을 정도로 득점능력에 관해서는 대단했습니다.하지만 다소 무대뽀적인 1:1이었던데다 패싱과 수비 그리고 자유투등에서는 다소 약점을 보여주면서 당시만 해도 다소 인간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2010년 1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아울스로 배성우와 함께 이적하게 됩니다.당시만 해도 아울스는 빅4에 근접했지만 우승에는 다소 거리가 있었던 팀이었는데 특히 골밑의 장신센터에 목말랐던 팀이었는데 이 선수가 들어감으로써 그 퍼즐을 맞췄습니다.이 이적은 이전과 이후 가장 센세이션한 이적으로 보고 있는데 그 이유가 당시 양강으로 2000년대를 지배했던 MSA와 토파즈의 전성시대를 끝내게 되는 계기였기 때문입니다.
10년간 두팀에 도전한 팀은 있었어도 두팀은 그 자리를 지키며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면서 타동호회 팀들에 벽으로 군림하면서 지배했는데 그 시기를 전상용의 이적 후 아울스가 종료시켰습니다.그리고 더불어 이후 아울스의 독주시대를 열어가게 되었습니다.
아울스 이적 후 전상용은 끊임없이 자신의 기술과 체력 그리고 경기력을 갈고 닦음으로써 볼때마다 무서워진다는 평가를 하고 있는데 잠시 허리부상으로 기복을 탔지만 이후 운동등으로 재활에 성공하면서 다시 동호회에 공포로 자리하고 있습니다.작년 인천 대회에서 손가락이 탈구되는 부상을 입었음에도 테이프로 손가락을 감고 끝까지 뛰던 모습은 그 투지의 끝이 어딘가를 궁금하게 했습니다.
⑮조영록(스피드)
현 대학동아리의 인사이드에는 좋은 선수들이 많습니다.고대 서우회에서 뛰고 있는 이동우(스피드),고대 주에서 뛰고 있는 정우섭(역풍),인천대 스타트의 문경인(SD),국민대 쿠바의 박희철(WBC),연세대 볼케이노의 김재홍등 왠만한 동호회에서도 주전급으로 활약할 수 있는 자원들이 줄줄이 나오고 있습니다.가드난이라는 평가속에서도 유독 포워드와 센터쪽에서는 풍부한 자원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파워풀하면서도 테크니션의 면모를 보이는 선수가 바로 조영록입니다.
조영록을 처음 본 것은 경기대배에서 였습니다.8강전인가 쯤으로 기억하는데 앞선이 약한 계농패가 결선에 진출하는데 뒷선의 센터가 잘한다는 말을 들었던 터라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습니다.당시의 기억으로는 운동능력이 약하고 흥분을 잘하며 패스도 잘못하지만 1:1은 상당히 좋은 선수다라는 인식이었습니다.재능은 있지만 아직 멀었다라는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계농패에서 경험이 계속 쌓였고 이후 동네 농구 선후배들이 많은 스피드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공격력이 좋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수비와 패싱 그리고 체력등에서 약점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앞선이 약한 계농패와 달리 앞선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스피드에서 활동을 하면서 골밑에서 공간이 넓어지자 이 선수 서서히 자신의 진가를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루키챌린지 입상을 넘어 소프모어에 첫 등장했는데 상대 골밑를 파괴하며 센세이션한 모습을 보이며 스피드의 주력으로 자리했습니다.
낮고 저돌적인 드리블과 120키로가 넘는 체중과 탄탄한 하체를 이용한 포스트업 그리고 간결한 스텝에 이은 골밑득점등에서 이 선수 소위 등지고 하는 포스트업 플레이에서 강점을 보여주면서 결과적으로 소프모어 무대에서 각팀의 쟁쟁한 선수들의 수비를 붕괴시키면서 스피드의 젊은 영건중 주전으로 자리하게 되었습니다.센터로서는 작은 190초반의 신장이라 수비와 리바운드등에서 다소 약점을 보여주고 있지만 둔중한 체격에 가린 영리함으로 이를 풀어나가고 있고 아직은 다소 아쉬운 모습이지만 빠른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거친 항의의 모습도 최근 많이 개선되는 모습이라 안정감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보성고 EDPS에서 농구를 시작해 현재 연대 공대 중앙동아리인 계농패로 진학해 동호회로 들어온 전형적인 케이스로 보고 있습니다.필자가 리틀전상용이라고 평가할 정도로 유사한 플레이에 아직 미숙하지만 최근 가르쳐 본 선수중에서는 가장 빠른 성장속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16.최기욱(NAO)
사실 이 선수가 이 정도로 성장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2000년대 중후반 경희대 존은 트윈타워인 정인섭과 박성우 시대를 마감한 이후 인사이드에서 공격력있는 선수의 존재가 필요했습니다.그 당시 나왔던 선수가 바로 최기욱이었습니다.하지만 최기욱은 잘생긴 마스크에 발전가능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선배 박성우의 유연하고 둔중한 신체와 정인섭의 빠르고 탄력넘치는데다 긴 윙스팬의 장점과는 너무 대비되는 모습이었습니다.보통 잘난 선배들에 가려 후배들이 기가 많이 죽어 발전에 독으로 작용하는 경우를 많이 봐서 이 선수도 쉽지 않겠다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존의 선배들이 많았던 당시 상위권 팀이었던 플레이어로 이적하면서 서서히 그의 기량의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습니다.특히 같은 팀에 당대의 테크니션 센터로 꼽히던 최석필이 있었는데 이 선수로 인해 다소간 영향을 받지 않았나 보고 있습니다.이후 최기욱이 힘보다는 테크닉으로 동호회 농구에서 자리했던 점을 감안한 추정인데 하여간 이 선수 이때부터 서서히 테크니션의 면모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둠으로 이적했고 팀에서 좋은 역할을 했지만 다시 NAO로 이적하면서 연이은 이적을 보여주어 평고 성실하다는 느낌과는 다르게 여러팀을 옮겼습니다.이후 NAO에서 장신센터들이 많다보니 사이즈에서 우세를 보일 수 있는 파포포지션에서 플레이를 이어가면서 자신의 강점인 공격에서의 역할을 극대화했습니다.수비와 리바운드등에서는 다소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최근 체중이 불면서 느려졌다는 평가를 받으면서도 반대로 몸싸움에서는 좋아졌다는 평가도 받고 있습니다.
현재 여자프로 농구 즉 WKBL에서 업무를 하고 있는데 중계때 보시면 간혹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는 선수인데 경기를 많이 봐서 그런지 노련함이 이전보다 더 붙은 모습입니다.상당히 호남형의 선수였는데 사진에도 보니 살이 많이 붙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