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자연경관에 별로 감흥을 못느끼는 무미건조한 인간이지만 쌍계사를 둘러싼 자연에 경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우선 넓지 않은 사찰경내에 계곡이 2곳이나 있다니? 세상에 이런 자연조건을 어디서 찾아 볼 수 있을까?
절 이름 자체가 불교적인 이름이 아니라 계곡이 2이 있다는 것에서 나온 쌍(常)스러운 지리적 조건에서 지어진 것이었다.
심산유곡에 있는 절의 주지 스님에 대한 선입견과는 달리 영담은 바쁘고 분주했다. 절을 운영 관리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아서 부처님의 대자대비한 마음만 가지고는 어림없어 보였다.
조계종의 25개 본사 중에 하나로 산하에 승려들이 많을 터인데 통솔 에 애로가 없느냐의 나의 질문에 “부모말도 안듣고 출가를 한 놈들이 남의 말을 잘 듣겠느냐?”는 응수가 역시 영담다웠다.
그 말을듣고 생각해보니 출가나 가출이나 부모 말 안듣고 집 나온 것은 마찬가지이나 전혀 틀린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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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아내가 영담의 말을 들고 “아니? 스님들이 말을 안들을 것이 무엇이 있나?”라고 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니 웬만한 고집 없이 어떻게 중이 되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웃겼다.
그런 승려들에 비해서 목사들은 남의 말을 너무 잘 들어서 탈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국의 독보적인 구도소설가 박상륭의 소설의 주인공은 대부분이 승려들이다. 그런데 그 소설 속에 등장하는 중들이 대부분 기행을 일삼아서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이번에 영담과 잡담을 하면서 불교에는 왜 각가지 기행을 일삼는 이들이 많은가를 이해하게 되었다. 즉 승려는 기본적으로 ‘부모 말도 안듣고 가출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기독교 수도사들에게는 ‘순명’이 첫째 계율이어서 개인적 이탈의 기회가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다. 그러나 홀로 깨쳐야할 승려들에게는 그런 것이 없다. 그래서 스님들은 독고다이로 서야 하는 것이고 제멋대로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출가해서 엄한 스승 밑에서 제대로 훈련을 받아야 하겠지만 기본적으로는 홀로 기야하는 것이다.
13세에 출가한 영담을 보면서 어려서 누가 나를 절로 인도했다면 나도 가출 대신 출가를 해서 지금쯤 조그만 절에 주지쯤은 하고 있지 않을가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