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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부발전 신인천 천연가스 발전본부 전경. ⓒ연합뉴스 |
난방을 하고, 전기를 만들고, 공장을 가동하는 데 사용하는 천연가스. 한국은 이 생활 필수 에너지를 100퍼센트 수입에 의존한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가스공사가 가스 도입·도매를 도맡아 했다. 그러다 '공기업 경영 구조 개선 및 민영화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1997년, 가스 산업을 민영화하자는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당시 떠오른 민영화 경로는 크게 두 가지였다. 가스 공사를 3개 자회사로 분할해 민간 기업에 매각하는 분할 매각식 민영화. 그리고 가스가 필요한 민간 기업이 공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 해외에서 연료를 수입할 수 있도록 하는 시장 개방식 민영화였다.
이 가운데 분할 매각식 민영화는 요금 인상과 수급 불안에 대한 국민적 우려, 민간으로 수송 계약을 승계하는 것의 어려움 등 제반 난제에 부딪혀 2000년대 중후반 좌절을 거듭했다. 대신 가스 직수입 제도는 민영화에 대한 사회적 비판을 우회해, 거대 기업들이 시장을 장악할 수 있는 발판으로 소리 없이 자리매김했다.
발판을 딛고 선발 주자로 나선 곳은 포스코와 SK E&S였다. 이 두 기업은 가스 직수입이 종전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뀐 후인 2004년 각각 연간 55만 톤과 60만 톤을 2005년부터 20년간 장기 도입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GS칼텍스, GS파워, GS EPS 등 GS 계열은 2008년부터 연간 190만 톤씩의 직수입을 허가받았고, 현대산업개발과 삼성물산 역시 시장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다.
사회공공연구소 송유나 연구위원은 "이들 대기업이 2013년 현재 직수입하고 있는 물량은 전체 수입 가스 물량의 5퍼센트 정도를 차지한다"며 "여기에 SK와 GS 등 대기업이 이미 40퍼센트 이상 점유한 소매 공급 시장까지 포함하면, 가스 산업은 상당 부분 이미 시장화가 진행됐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가스 민영화 '마침표' 찍으려는 새누리당…"괴담이라더니?!"
그러나 여기서 멈추지 않고, 가스 직수입 제도는 또 한 번의 진화를 노리고 있다. 대기업의 시장 진출을 한 차원 더 확대할 수 있는 도시가스사업법 개정안이 지난달 9일 국회에 기습 상정된 것. 새누리당 김한표 의원 등이 발의한 이 개정안은 6월 국회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있다.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직수입 물량을 다른 직수입자와 해외에 '재판매'할 수 있도록 처분 제한을 완화했다. 이전까지는 발전과 산업에 자가 소비할 물량만 민간 업자가 들여올 수 있었고, 수급 불안 등의 사유가 있을 때에만 직수입 업자끼리 물물 거래를 할 수 있었던 데에서 몇 걸음 더 나아간 내용이다.
두 번째로 개정안은 천연가스 반출입업(트레이딩 사업) 조항을 신설해, 민간 기업으로 하여금 해외 반출 목적의 가스를 도입하고, 보세 구역(관세법에 따라 관세 부과가 유보된 지역) 내 저장 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원칙적으로 반출 목적의 물량을 국내에 공급할 수는 없게 했으나, 증발가스(BOG)에 대해서는 다른 직수입 업자에게도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처럼 개정안은 가스 도입·도매 시장의 격변을 예고하는 내용을 담았지만, 발의 한 주 만에 법안심사소위에서 논의될 정도로 신속히 추진됐다. 공공운수노조 가스공사지부 이종훈 지부장은 "정말 아슬아슬했다"며 "4월 국회에서 처리가 끝나버렸다면, 졸속 처리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벌이 가스 수급 안정성 담보할까? "천지가 개벽해도 없을 일"
개정안을 발의하며 김한표 의원은 "국가 수급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범위에서 경쟁 체제를 도입해, 가스 요금을 인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외려 정반대의 우려를 내비친다. 이 개정안이 가스 수급의 불안정성을 키우고, 도시가스 요금을 대폭 인상시킬 것이란 비판이다.
송 연구위원 역시 비관적인 시나리오를 그렸다. 그는 "천연가스 국제 가격이 폭등해 국내 수요가 모자라거나, 겨울철 맹추위로 천연가스가 부족한 상황이 됐을 때, 민간 기업이 수급 안정을 위해 비싼 가격을 감수하면서 천연가스를 도입할 일은 천지가 개벽해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역으로 천연가스 국제 가격이 쌀 때 민간 기업은 물량을 대거 확보해놓고, 국내에 가스가 부족한 상황이 되면 가스공사에 비싼 가격으로 판매해 도시가스 요금 인상을 부추길 것"이라며 "개정안은 가스 직수입을 하는 재벌 기업의 수급 불일치 리스크를 해소해주는 한편, 그로 인해 발생하는 각종 비용은 전체 국민에게 고스란히 떠넘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송 연구위원이 그린 비관적 시나리오는 지난 2007년 일부 현실로 나타났다. 당시 천연가스 국제 가격이 급등하자, 직수입을 허가받았던 GS는 갑자기 도입을 포기하고 가스공사에 물량을 요청했다. 이에 가스공사는 GS의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단기 스팟 시장에서 비싼 가격으로 계약을 체결했다. 자연히 도매가격이 인상됐다.
SK는 2007년 12월부터 석 달간 아예 발전소 가동을 중단했다. 연료가 비싸면 발전소를 돌릴수록 수익이 낮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겨울 SK가 급작스레 발전을 중단함에 따라, 다른 발전소들은 가동률을 높여야 했고 이에 따라 일부 지역에서는 도시가스 부족 사태가 발생했다.
송 연구위원은 "이처럼 민간 대기업은 언제나 공공의 이익보다 사적 이익을 우선시했다"며 "천연가스를 100퍼센트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한국에서는 더더욱 이를 민간 기업에 내맡겨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도시가스 소매 공급 비용 최대 467.6퍼센트 인상" 우려
직수입 제도의 확대가 가스 요금 인상으로 이어질 거란 우려는 일찍이 민간에서도 제기된 바 있다. 소매 가스 공급 회사 모임인 한국도시가스협회는 지난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자가소비용 가스 직수입을 확대하려 하자 "특정 대기업에만 혜택을 부여하는 정책으로 도시가스 소매 공급 비용은 최대 467.6퍼센트까지 인상될 수 있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전국 30여 개의 소매 공급사는 도시가스 외에 산업용 가스도 판매한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도시가스 수요 비중은 정체한 반면, 산업용 수요는 꾸준히 늘어 현재는 판매 비중이 거의 1:1에 가까워진 상황이다. 특히 공단이 존재하는 인천, 울산, 창원, 군산 지역에서 소매를 담당하는 업체의 산업용 판매 비중은 70퍼센트를 넘는다.
이런 상황에서 대기업이 산업용 가스에까지 공급을 확대하게 되면, 이들 소매 기업은 자기 시장을 잃고 생사의 갈림길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생존을 위한 최소 수익을 보장하려면, 도시가스 단가를 높이고 소외 지역에는 공급을 중단해야 한다는 게 소매 회사들의 일성이다.
이에 따라 이들 소매 기업이 추정한 도시가스 요금 인상 효과는 서해도시가스 467.6퍼센트, 군산도시가스 165.6퍼센트, 경북도시가스 80.3퍼센트, 전남도시가스 72퍼센트, 경동도시가스 64.7퍼센트 수준이었다. 이는 연간 1000만 제곱미터 이상인 66개 산업체(당시 산업용 전체 물량의 37.2퍼센트)를 대상으로 파악한 결과다.
송 연구위원은 "도시가스 요금 인상 효과를 지금 다시 계산해 보면, 이 자료가 나온 2008년보다 훨씬 더 클 것"이라며 "산업용 판매 비중이 높아진 만큼, 직수입 확대 개정안 통과로 소매 기업들이 입게 될 타격은 예전보다 더욱 커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가스 직수입 확대는 도시가스 요금 인상으로 이어지고, 이는 곧 서민의 난방 기본권 해체라는 결과를 낳는다.
현재 국회에는 새누리당 김한표 의원 등이 발의한 개정안 외에도 또 다른 도시가스사업법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민주당 박완주 의원이 지난해 12월 대표 발의한 이 개정안은 자가소비용 직수입 대상 물량을 발전·산업용 물량 중 설비를 신증설했거나 연료 대체로 발생한 신규 수요로 한정했다. 당초 도매 사업자 및 직수입 업자에게 안정적 수급을 위한 비축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도 담았으나, 이는 정부 반대로 현재 법안에서는 삭제된 상태다.
이에 따라 두 개정안은 오는 6월 국회에서 정면 충돌할 것으로 보인다. 송 연구위원은 "졸속으로 확대 개정안이 처리되면, 난방비를 감당할 수 없어 촛불을 켜고 자다 화재로 목숨을 잃는 에너지 빈곤층의 안타까운 사연은 더 많이 양산될 것"이라며 "재벌을 위한 가스 직수입 확대를 지금이라도 백지화하고, 공공성을 키우는 방향으로 국가 에너지 계획을 새로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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