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어린 시절에는 욕 중의 최고 욕이 “애비없는 호로자식”이었다. “호로자식”이란 크게 두 가지 뜻을 지닌다고 한다.
첫째는 야만인 오랑캐(호족(胡族))나 왜인(倭人)들에게 끌려가 온갖 치욕을 당한 후 돌아온 환향녀들의 자식을 지칭하는 말이고,
둘째는 아버지가 전쟁터에 나가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홀로 키운 자식을 일컫는다고 한다. 이렇게 “애비 없는 호로자식”이라는 말의 역사는 우리 민족의 슬픈 역사와 맞물려 있다.
이런 슬픈 역사는 조선의 선조 때 선비였던 오희문(吳希文)이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동안 피난길에 올라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던 9년 3개월간의 일상을 기록으로 남긴 『쇄미록(瑣尾錄)』이라는 책에 잘 나타나 있다.
총 7권으로 구성된 상당히 방대한 『쇄미록(瑣尾錄)』은 시경(詩經)에 나오는 “쇄혜미혜 유리지자(瑣兮尾兮 遊離之子)”에서 따온 단어로서 “인간세상에서 가장 초라한 자는 여기저기 객지를 떠도는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쇄미록(瑣尾錄)』이라는 책에는 임진왜란 때 일본군에게 끌려가는 여성들이 "나는 어느 읍, 어느 촌의 아무갠데 이제 붙잡혀 영영 돌아오지 못할 다른 나라로 끌려 갑니다." 하며 큰 소리로 울부짖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쓰여있다.
이 『쇄미록(瑣尾錄)』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해인 1591년 11월 27일부터 임진왜란의 폐해로부터 서서히 벗어나 사회가 안정되어 가던 1601년 2월 27일까지 9년 3개월간의 피난살이를 하면서 겪었던 갖은 어려움을 거의 매일매일 기록한 일기로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피란일기로 손꼽히는 이순신 장군이 쓴 『난중일기(亂中日記)』,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이 쓴 『징비록(懲毖錄)』과 함께 임진왜란 때의 3대 사찬사서(私撰史書) 중의 하나이며, 대한민국 보물 제1096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쇄미록(瑣尾錄)』에는 전쟁 중의 끔찍한 기록들도 많다. 사랑하던 막내딸이 학질에 걸렸으나 치료를 받지 못해 죽은 일, 걸식자나 굶어 죽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기까지 했다는 기록, 전란(戰亂)으로 인한 피란민들의 고통스러운 삶, 군사 징발과 군량조달. 과도한 부역(夫役)으로 인한 백성들의 몰락, 처와 자식을 버리고 도망간 아버지, 자식을 버리고 달아난 어머니, 죽은 어머니의 젖을 만지면서 우는 아이, 유행병과 배고픔으로 떼죽음을 당한 사람들, 왜군의 잔인한 살인, 방화, 약탈, 강간 행위들, 도우러 왔던 명군(明軍)의 무자비한 약탈과 행패 등, 당시의 처참한 상황들이 생생히 기록되어 있다.
또 왜적들이 영남 지역 반가(班家)의 여인들 중, 얼굴이 반반한 여자들을 뽑아 다섯 척의 배에 가득 실어 일본으로 보내 빗질하고 화장을 시켰는데, 순종하지 않으면 대번에 처단했기 때문에 모두들 죽음이 두려워 억지로 따랐다고 했다.
또 그들의 뜻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여러 놈들이 돌아가면서 강간했다고 하니, 참으로 비통한 일이다. 이는 복병장(伏兵將) 김성업(金成業)이 임진왜란 때, 포로로 잡혀갔다 돌아온 사람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를 적은 것이라고 하니, 전혀 근거 없는 말은 아닐 것이다.
병자호란(丙子胡亂) 때도 청군(淸軍)들이 여인들을 청(淸)나라로 끌고간 일이 많았다. 청나라로 끌려간 여성들 중 전쟁이 끝난 뒤 돌아온 여성을 "고향으로 돌아온 여성"이라는 뜻에서 “환향녀(還鄕女)”라고 했다.
조정에서는 환향녀들이 창피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집에 돌아가기를 두려워할까 봐 홍제동 개울에서 몸을 깨끗이 씻게 했다고 한다. 그리고 누구도 환향녀들에게 청나라에서 무슨 일을 겪었는지 묻지 않도록 하는 한편, 환향녀들과의 이혼을 금지시켰다.
이 “환향녀”가 연음화되어 지방에 따라 “화냥년, 또는 호양년”이 되어 최고의 쌍욕이 되었다고 한다. “호로자식”과 관련된 이런 슬픈 역사를 누구보다 잘 알만한 여의도 선량(選良)들 중에는 현대판 호로자식들이 많다는 이야기가 종종 들려온다.
친형과 형수에게 입에 담을 수 없는 쌍욕을 해대는 호로자식, 아버지뻘 되는 원로들에게 나오는 대로 막말을 해대는 호로자식, 상대방을 까 뭉개지 얺으면 천벌이라고 받을 것처럼 시중 잡배보다 못한 언행을 마구 내질러 대는 호로자식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이러다간 의사당이 “애비없는 호로자식들의 집합소”가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하기야 끼리끼리 모인다 했으니 자연스럽게 호로자식들이 몰려드는지도 모르겠다. 옛날 국회의사당에 똥물을 뿌렸던 김모 의원이 생각난다. 이대로 가다간 호로자식들의 집합소인 의사당에 진짜 똥차를 몰고가 방화수를 뿌리듯 똥물을 뿌릴 자가 나타날지도 모르겠다. 손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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