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기 2568년 11월 24일 11월 넷째주 정기법회 (법회소식 1508호)
대승보살의 참회법
법문: 승원 스님
불교의 참회(懺悔)는 범어의 크샤마(Ksama, 懺摩)를 소리 번역한 참(懺)과 뜻 번역의 회(悔)를 합한 말이다. 참회는 ‘용서를 빌다, 뉘우치다, 참는다[忍]’라는 뜻을 가진 말로, 삼보전에 과거의 잘못을 뉘우쳐 고백하고 바른 수행으로 해탈을 이루겠다는 서원과 실천을 담은 적극적인 수행이다.
참회의 방법은 사참(事懺)과 이참(理懺)이 대표적이다. 사참은 몸과 말과 뜻의 삼업으로 지은 잘못을 알고 예배, 송주, 관상 등의 방법으로 몸소 참회하는 것이며, 이참은 죄의 본성이 본래 없는 이치를 알고 잘못을 일으키는 마음을 살펴서 애초에 잘못된 생각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참회법이다. 천수경 의 다음 두 게송이 사참과 이참의 뜻을 담은 내용이다.
「아석소조제악업 개유무시탐진치 종신구의지소생 일체아금개참회
我昔所造諸惡業 皆由無始貪嗔痴 從身口意之所生 一切我今皆懺悔
죄무자성종심기 심약멸시죄역망 죄망심멸양구공 시즉명위진참회
罪無自性從心起 心若滅時罪亦亡 罪亡心滅兩俱空 是卽名爲眞懺悔」
신라의 원효(元曉, 617~686) 성사도 참회에 관한 글을 남겼다. 제목은 「대승육정참회(大乘六情懺悔)」이다. 성사는 사유업실상(思惟業實相), 사유참회실상(思惟懺悔實相), 참회육정방일(懺悔六情放逸), 사유몽관(思惟夢觀), 수득몽관삼매(修得夢觀三昧) 등의 용어로 참회를 가르친다. 내용의 근본은 제불의 부사의(不思議)한 덕을 생각하고 실상을 생각하여 업장(業障)을 없애는 데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참회는 널리 육도의 가 없는 중생을 위해서 시방의 무량한 모든 부처님께 온 생명으로 귀의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모든 부처님과 중생과 한 마음, 이 셋은 다르면서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원효 성사의 가르침은 이러하다. 중생이 죄업을 지었다면, 부처님 앞에서 뉘우치고 부끄러운 마음을 내어야 하며, 보리심(菩提心)을 일으켜서 지극한 마음으로 참회하여야 한다. 먼저 이미 지은 죄는 깊이 뉘우쳐 부끄러운 마음을 내고, 짓지 않은 죄는 다시 짓지 않겠다는 서원을 세워야 한다.
다음으로 모든 죄는 여러 인연이 모여서 죄업(罪業)이라는 임시의 이름이 붙여졌을 뿐, 업의 본성은 본래 없다는 것을 바르게 알고, 업의 본성이 본래 없는 것처럼 모든 부처님도 본성이 본래 없다고 바르게 사유하고 관찰하라고 한다. 순간순간마다 일체의 실상(實相)을 사유하여 근원으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원효 성사는 이처럼 업장 참회를‘업의 본성은 본래 없다’라고 하는 업의 실상을 사유하는 방법으로 가르쳤다. 하지만 한편으로“만약 방일(放逸)해서 뉘우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업의 실상을 사유할 수도 없는 사람이라면, 죄의 본성은 본래 없지만 결국에는 지옥에 떨어진다”라고 방일을 크게 경계한다.
또한 성사는 업장 참회를 마치면 마땅히 육정(六情)의 방일(放逸)을 참회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업장참회가 근본에 대한 것이라면, 육정참회는 지금의 육정을 살피고 참회하는 직접적인 참회라고 할 수 있다. 성사는 이렇게 가르친다.
「나와 중생은 시작 없는 때로부터 제법이 본래부터 생겨남이 없음을 알지 못하고 망상과 전도로 나와 내 것을 헤아려, 안으로는 육정(六情)을 세워서 (그것을) 의지하여 분별을 내고, 밖으로는 육진(六塵)을 만들어 실제로 있다고 집착하였다. 모두 자기 마음이 지은 것이어서 허깨비처럼 꿈처럼 영원히 있는 바가 없음을 알지 못하고, 그 가운데서 제멋대로 남녀 등으로 헤아려서 모든 번뇌를 일으켰고, 스스로 얽매여 영원히 고통의 바다에 빠져서 벗어날 근본을 구하지도 못하였다. …
자주자주 이와 같은 몽관(夢觀)을 사유해서 점차점차 여몽삼매(如夢三昧)를 닦아 증득해야 한다. 이 삼매로 말미암아 무생인(無生忍)을 얻어서 긴 꿈으로부터 환하게 깨어나, 본래부터 다만 이 한 마음뿐이며 일여(一如)의 침상이었음을 바로 알 것이다.」
일체의 죄업은 무명에 빠진 육정이 육진을 집착해서 지은 것이다. 육정의 모든 죄업은 꿈같다고 사유하는 몽관(夢觀)으로 여몽삼매(如夢三昧)를 닦는 수행이 육정참회라는 것이다. 육정참회는 본래의 한마음으로 돌아가는 수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