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列國誌] 869
■ 3부 일통 천하 (192)
제13권 천하는 하나 되고
제 21장 조정(趙政), 진왕에 오르다 (6)
- 우리가 곧 도우러 갈 터이니 몽오(蒙鰲) 장군은 안심하라고 전하라.
번어기(樊於期)는 일단 몽오가 보낸 사자를 돌려보냈다.
그런 후 격문을 써서 사방에 널리 뿌렸다.
지금의 왕은 영씨가 아니고 여씨다.
여불위(呂不韋)는 교묘한 수단으로 자신의 자식을 임신한 조희를 진장양왕에게 바쳤다.
뿐만 아니라 진효문왕(秦孝文王)과 진장양왕(秦莊襄王)마저 독살했다.
하루라도 빨리 자신의 자식을 왕위에 앉히기 위해서였다.
이 어찌 하늘과 땅과 사람이 분노하지 않을 수 있는 일인가.
뜻있는 사람들이여!
진정한 진(秦)나라의 왕통을 세우기 위해서라도 봉기하여 여불위와 여불위의 자식을 쳐없애자!
그러고는 둔류(屯留) 땅 일대의 모든 장정을 징집하여 자신의 군대에 편입시켰다.
이어 북을 울리며 진류성 안으로 들어가 '장안군' 이라는 깃발을 성벽 높이 내걸었다.
장안군 성교(成嶠)의 반란 소식을 가장 먼저 접한 것은 오히려 함양성 안에 있는 여불위였다.
그는 진작부터 첩자를 풀어 장안군과 번어기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을 감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걸려들었군.'
회심의 미소를 지은 후 궁으로 들어가 진왕 정에게 아뢰었다.
"장안군(長安君)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진왕 정(政)은 깜짝 놀랐다.
"장안군이 무엇 때문에?"
"어찌 나이 어린 장안군(長安君)이 그런 짓을 했겠습니까. 이는 필시 수하 장수인 번어기(樊於期)가 어린 장안군을 꼬드겨 변을 일으킨 것입니다. 하지만 왕께서는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번어기는 용기만 있을뿐 꾀는 없습니다. 신이 반드시 그놈을 사로잡아 바치겠습니다."
그러고는 장군 왕전(王翦)을 대장으로 삼고 환의(桓齮)와 왕분(王賁)을 부장으로 삼아 장안군 성교를 토벌하라 명했다.
그 무렵, 진나라 장수 몽오(蒙鰲)는 조나라 대장 방난(龐煖)과 대치한 채 원군이 당도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장안군의 군사는 나타나지 않았다.
궁금해하던 참에 뜻밖의 소식이 날아들었다.
- 장안군(長安君)과 번어기(樊於期)가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평생을 싸움터에서 보낸 백전노장 몽오(蒙鰲)는 길게 탄식했다.
"내가 조나라를 치러 왔다가 아무런 공도 세우지 못했는데, 이제 또 장안군마저 반역을 했으니 어찌 이 죄를 벗어날 수 있으리오."
이어 그는 부장 장당(張唐)을 비롯한 모든 장졸을 불러놓고 명했다.
"진류성으로 진격하여 역적을 토벌하라. 그런 후에 다시 경도성을 치리라!"
그런데 이것이 몽오(蒙鰲)로서는 결정적인 실책이었다.
요산 꼭대기에 올라 진군의 움직임을 내려다보고 있던 조나라 대장 방난(龐煖)은 즉각 부장 호첩을 불러 명을 내렸다.
"그대는 궁병(弓兵) 1만 명을 거느리고 샛길로 빠져나가 태항산 골짜기에 매복해 있으라. 몽오(蒙鰲)는 필시 우리가 추격할 것을 알고 맨 나중에 태항산 골짜기를 지나갈 것이다. 제1대(隊), 2대는 다 지나갈 때까지 내버려두고 나중에 몽오가 나타나거든 일제히 화살을 쏘아라."
호첩(扈輒)은 조용하면서도 신속하게 움직였다.
방난(龐煖)의 예상은 적중했다.
진나라 군대는 3대(隊)로 나뉘어 진류성을 향해 행군하고 있었다.
장당(張唐)이 이끄는 제1대와 2대가 태항산 골짜기로 접어들었다. 길이 좁고 험했다.
그 양편 숲 속에 매복해 있던 호첩(扈輒)은, 그러나 그들을 그대로 통과시켰다.
반나절 후, 제 3대(隊)가 나타났다.
몽오(蒙鰲)가 직접 지휘하는 군대였다.
골짜기는 동굴처럼 어두웠고 그 사이로 가늘게 나 있는 산길을 타고 몽오가 앞장서서 지나가고 있었다.
숨을 죽인 채 기다리고 있던 호첩(扈輒)은 깃발을 높이 치켜들었다.
동시에 좌우 숲 속에 매복해 있던 1만 명의 궁사(弓士)들이 일제히 활을 쏘았다.
아아, 가련하다.
몽오(蒙鰲)가 제아무리 백전노장이라고는 하지만 어찌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1만 개의 화살을 피할 수 있으리오.
몽오(蒙鰲)는 수백 대의 화살을 동시에 맞고 고슴도치가 되어 그대로 말 위에서 굴러떨어졌다.
- 진군 대패.
장안군 성교의 반란이 낳은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반란군 토벌군 대장 왕전(王翦)은 함양성을 떠나 바람처럼 달려 장안군 성교의 거점인 둔류성을 포위했다.
성벽 위에 올라 사방을 살피던 17세 소년 장안군(長安君)은 메뚜기 떼처럼 몰려드는 토벌군을 보고 크게 겁을 먹었다.
"우리가 어찌 저들을 이길 것인가. 차라리 지금이라도 항복하고 용서를 비는 것이 낫지 않겠소?"
번어기(樊於期)가 질책하듯 장안군에게 말했다.
"대군께서는 이미 호랑이 등에 타신 격입니다. 이제 와서 약한 마음을 가지시면 군사들만 오히려 어지러워집니다. 제가 성문을 열고 나가 저들을 무찌를 터이니 대군께서는 마음을 굳게 먹으시고 힘차게 북을 치십시오."
다음날, 번어기(樊於期)는 군사 3만을 거느리고 성밖으로 나가 왕전(王翦)의 군사와 대치했다.
번어기가 말을 몰아 앞으로 내달리려는데 적의 진문(陣門)이 열리며 한 장수가 앞으로 나왔다.
토벌군 대장 왕전이었다.
왕전(王翦)은 진소양왕 대부터 활약해온 노련한 장수였다.
무적 군단을 자랑하던 무안군 백기의 뒤를 이은 명장이다.
반면 번어기(樊於期)는 이제 막 30대에 접어든 젊고 씩씩한 용장, 장래가 촉망되는 신진 세대였다.
두 장수 모두 서로를 잘 안다.
번어기(樊於期)는 왕전을 보자 대뜸 그가 웅변으로써 자신을 설득하려들 것임을 알았다. 과연 그의 짐작은 맞았다.
왕전(王翦)이 긴 수염을 휘날리며 번어기를 향해 외쳐댔다.
"우리 진(秦)나라가 그대를 소홀히 한 적이 없는데, 그대는 무슨 까닭으로 장안군을 앞세워 역모를 꾀하는 것인가. 여기서 그만두고 투항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번어기(樊於期)는 이미 머릿속에 대답할 말을 준비해 두고 있었다.
그는 먼저 말 위에서 왕전에게 군례를 올려 경의를 표한 후 당당하게 소리쳤다.
"장군께서는 새삼스레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지금 우리 나라 왕인 정(政)이 선왕의 아들이 아닌 여불위의 자식인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늘도 알고 땅도 알고 백성도 아는 사실을 장군만이 모르신다는 말씀입니까?"
"장군도 저도 대대로 진(秦)나라의 국은(國恩)을 받아 왔습니다. 우리 나라 영씨(赢氏)의 왕통이 천한 신분의 상인 놈 손에 의해 끊어질 판인데 장군은 오히려 저를 보고 역모 운운하시는 것입니까? 역모의 주범은 바로 여불위입니다."
"이에 소장(小將)은 선왕의 유일한 혈육이신 장안군을 받들어 위기에 처한 이 나라 종묘사직(宗廟社稷)을 구하리라 마음먹은 것입니다. 장군께서도 조금이라도 이 나라 은혜를 받으셨다면 장안군을 모시고 함양으로 쳐들어가 음탕하고 교활한 여불위(呂不韋)를 쳐죽여야 할 것입니다."
번어기의 위풍당당하고 논리정연한 언변에 왕전(王翦)은 할 말을 잃었다. 안색이 돌변했다.
그러나 그는 역시 노련했다.
감정을 추스리고 다시 응수했다.
"그대는 열린 입이라고 함부로 지껄이지 말라. 태후(太后)께서는 분명 열달 만에 왕을 낳으셨다. 이것 하나만 보아도 우리 왕은 선왕의 혈통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그대는 어째서 근거없는 말에 현혹되어 만세에 대역죄의 오명을 남기려 하는 것이냐?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어서 말에서 내려 항복하라. 그것만이 그대가 살고 장안군(長安君)이 살 길이다!"
번어기(樊於期)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공연히 말싸움에 휘말렸다가 잘못하면 군사들의 사기만 떨어뜨릴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칼을 빼어들고 말의 배를 찼다.
순간, 번어기의 말은 쏜살같이 왕전(王翦)을 향해 달려갔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