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마경훈목사
다윗의 고백이 나의 고백입니다/ 시편 18:1-8
(설교자: 마경훈목사, 비전교회)
https://www.youtube.com/watch?v=meB7psyi2fY
신앙생활에서 신앙의 고백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 이유를 롬 10:10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사람은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입으로 시인한다는 말은 신앙을 고백한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입술의 고백과 깊은 관련이 있을 정도로 신앙고백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 시간에 우리의 신앙을 사도신경으로 고백합니다. 사도 신경은 사도들이 고백했던 믿음을 조직적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그 중에 첫 번째가 성부에 대한 고백입니다. 저는 성부에 대한 고백을 좋아합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이 고백에는 하나님을 향한 세 가지 고백이 있습니다. ①내가 믿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②내가 믿는 하나님은 만물의 창조주이십니다. ③전능하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이십니다. 저는 사도신경은 참 위대한 고백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예배시간마다 사도신경으로 우리의 하나 된 믿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많은 신앙고백이 나옵니다. 제가 볼 때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고백은 마 16:16에 나오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입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 고백은 우리의 영혼의 구원을 결정하는 고백입니다. 이 고백을 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착하게 살고 아무리 주를 위하여 위대한 일을 해도 영혼의 구원을 받지 못하고,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결국은 영원한 지옥에 떨어질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고백 중에 저를 겸손하게 하는 고백이 있습니다. 삼상 2:6-7에 나오는 한나의 고백입니다.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7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하나님은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십니다. 하나님은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십니다. 하나님은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십니다. 이런 하나님 앞에서 교만할 수 없습니다. 마음을 낮추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고백 중에서 저에게 합당한 삶의 자세와 태도를 가르쳐주는 고백이 있습니다. 욥 1:21에 나오는 욥의 고백입니다.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욥은 모든 것을 잃은 상황에서도 위대한 고백을 했습니다. 욥은 자신이 어머니 뱃속에서 알몸으로 나왔고, 자신의 삶을 마치면 알몸으로 하나님께 돌아갈 것을 알았습니다. 욥은 자신에게 모든 것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거두어 가시는 분도 하나님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욥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인생은 공수래공수거입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모든 것을 거두어 가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찬송하며 사는 것이 인간의 본분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고백 중에 저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고백은 본문에 나오는 다윗의 고백입니다. 이 고백은 인생의 온갖 고난을 통과한 다윗이 하나님께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쓴 시입니다.
1절 앞에 있는 표제를 보십시오. “여호와의 종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여호와께서 다윗을 그 모든 원수들의 손에서와 사울의 손에서 건져 주신 날에 다윗이 이 노래의 말로 여호와께 아뢰어 이르되”라고 되어 있습니다. 다윗은 인생 말년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는 어떤 특정한 전쟁의 승리를 노래한 것이 아닙니다. 오랜 기간 동안 자신의 인생을 승리로 이끌어주신 하나님의 역사를 찬양한 것입니다.
이 표제에서 우리는 다윗이 하나님 앞에 어떤 자세로 살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표제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여호와의 종 다윗의 시’ 다윗은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이었습니다. 그는 나라를 견고하게 세운 위대한 왕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다윗의 시대의 도래를 기다릴 정도로 다윗은 위대한 왕이었습니다. 성경에 믿음의 조상이며 유대인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이름이 아브람을 포함해서 324번 나옵니다. 다윗의 이름은 성경에 1174번이나 나옵니다. 아브라함보다 다윗의 이름의 비중이 3.6배나 됩니다. 그러니 다윗이 얼마나 위대한 인물입니까? 그런데도 다윗은 자신이 여호와의 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도 다윗과 같은 고백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왕이시고 나는 하나님의 것을 맡아서 관리하는 청지기입니다. 시간, 물질, 재능 등 모든 것의 청지기입니다.
오늘 설교는 여호와의 종 다윗이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어떤 고백을 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도 다윗과 동일한 은혜를 주셔서 같은 신앙고백을 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 하나님은 나의 힘이십니다(1절).
다윗은 1절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나의 힘이되신 여호와여’라고 고백했습니다. 그에게 많은 힘이 있는데 여호와 하나님이 그 힘 중에 하나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만이 자신의 진정한 힘이라고 고백습니다.
시 20:7입니다.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떤 사람은 능력 있는 사람을 자신의 힘으로 삼고, 어떤 사람은 돈을 자신의 힘으로 삼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자신의 힘으로 삼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자신의 힘으로 삼았습니다. 그 이유를 시 118:8-9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나으며 9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고관들을 신뢰하는 것보다 낫도다”
적극적 사고 훈련가 지그 지글러(Zig Ziglar) 박사가 가정 예배를 드리면서 자녀들에게 말했습니다. “얘들아! 블레셋의 골리앗이 이스라엘을 향해 전쟁을 하자고 외쳤다. 이스라엘 군사들은 무서워 숨고 말았다. 하지만 소년 다윗은 골리앗과 싸우려고 용감하게 나아갔다.” 그러자 막내아들이 말합니다. “아빠! 다윗이 용감한 것이 아니라 골리앗이 용감해요.” 이상히 여긴 지글러 박사가 물었습니다. “왜 골리앗이 더 용감하다고 생각하느냐?” 아들이 대답합니다. “다윗은 비록 작아도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었기에 당연히 싸웠지요. 그러나 골리앗은 자기 힘만 믿고 싸윘으니 더 용감하지요.” 아들의 말을 들은 지글러 박사가 무릎을 치며 말했습니다. “그렇다! 골리앗처럼 자기 힘만 의지하는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 연약해도 다윗처럼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자!” 골리앗은 다윗보다 키도 크고 몸집도 장대했습니다. 다윗은 골리앗의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다윗이 골리앗을 이겼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힘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마틴 루터가 지어 부른 찬송가 중에 “내 주는 강한 성이요”라는 찬송가가 있습니다. 그 찬송가 2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내 힘만 의지할 때는 패할 수 밖에 없도다” 골리앗은 자신의 힘만 의지해서 다윗에게 패했던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하여 승리했던 것입니다.
다윗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힘으로 고백하며 삽시다. “하나님은 나의 힘이십니다.” 3번만 해봅시다. “하나님은 나의 힘이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힘이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힘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힘으로 삼으면 우리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는 문제도 능히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나는 나를 포기하지 않는다 (The Will to Survive)’라는 책은 식물인간에서 깨어나 꿈을 이루는 기적을 만든 빅토리아 알렌 (Victoria Arlen)의 이야기입니다. 수영을 좋아했던 빅토리아 알렌은 11세에 갑자기 자가 면역 질환으로 뇌 손상을 입었습니다. 급기야 의식이 없는 식물인간 상태가 되었습니다. 의사는 회복할 가능성이 없다고 뇌사 판정을 내렸지만 가족들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집으로 데려와서 기도하며 그녀의 귀에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 4년째 되던 2010년, 빅토리아가 의식을 회복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의사소통이 가능해졌을 때 가족들이 자기에게 해 준 말을 기억한다고 말했습니다. 식물인간이었을 동안 반응할 수 없었지만 모든 상황을 보고 듣는 것이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의식은 돌아왔지만 척추신경의 손상으로 하반신이 마비되어 휠체어 생활을 하였습니다. 좋아하던 수영을 못하자 상심에 빠졌습니다. 가족들은 그녀의 몸이 수영을 기억하고 있으리라고 판단하고 빅토리아를 수영장에 던졌습니다. 그런데 위급한 상황 속에서 빅토리아는 놀랍게도 수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물속에서만큼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된 그녀는 2012년, 미국 대표로 출전한 런던 패럴림픽에서 100미터 자유형 금메달을 땄습니다. 이후에도 걷기 위한 노력을 했는데, 10년 만에 걷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2015년에 미국 스포츠 방송 ESPN에 입사하여 캐스터가 되었고, 배우, 모델, 강연자로 활동하였습니다. 그 후 빅토리아 알렌은 전국을 다니며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셨다’고 간증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의지하는 자에게 언제나 힘이 되셔서 그가 뛰어넘을 수 없는 장벽을 넘게 하시는 분입니다. 29절을 보십시오.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을 향해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 여러분에게 어떤 장벽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하나님을 힘으로 삼으십시오. 그리고 담대하게 적군을 행해 달리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담을 뛰어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힘이십니다.
2. 하나님은 나의 사랑이십니다(1절).
성도들을 살펴보면 신앙생활은 크게 두 가지 스타일로 합니다.
①율법적인 신앙입니다. 율법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을 무서운 분으로 압니다. 이런 사람은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매 맞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께 벌 받지 않기 위해서 합니다. 성경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했는데 율법적인 신앙인은 자유함이 없습니다. 종의 멍에를 매고 눌림 가운데서 신앙생활을 합니다. 신앙생활이 행복하지 않습니다. 피곤한 신앙생활입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 임금님이 키우던 개가 한 마리 있었습니다. 그 개는 짓지도 않고 하는 일이라곤 머리를 위아래로만 흔드는 이상한 버릇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임금님은 “내 개의 머리를 좌우로 흔들 수 있게 하는 사람에겐 큰 상을 내리겠노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개의 머리를 좌우로 흔들게 하려했지만 모두 실패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남자가 007가방을 들고 나타났습니다. “제가 개의 머리를 좌우로 흔들게 하겠습니다.”라고 말하더니 007 가방에서 빨간 벽돌을 한 장 꺼냈습니다. 그는 개를 데리고 임금님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갔습니다. 그리고는 느닷없이 개의 머리를 벽돌로 두, 세 번 내리찍었습니다. 개가 기겁을 하고 달려가서 임금님 뒤로 숨어버렸습니다. 그 남자는 개를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더 맞을래?” 개는 겁에 잔뜩 질려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댔습니다. 그 사람은 많은 상금을 가지고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 개는 그 일이 트라우마가 되어서 이제는 고개를 좌우로만 흔들어대는 것이었습니다. 임금님은 다시 개의 머리를 위아래로 흔들 수 있는 사람에게 큰 상을 내리겠다고 했습니다. 이번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으나 역시 모두 실패했습니다. 마지막으로 007가방을 든 그 남자가 나타났습니다. 그는 “제가 개의 머리를 위아래로 흔들게 해 보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007가방을 열고 빨간 벽돌을 꺼내 개에게 보이면서 한마디를 툭 던졌습니다. “너, 나 알지?” 개가 고개를 어떻게 했겠습니까? 율법적인 신앙생활은 이 개처럼 하는 것입니다. 자발적이지 않습니다. 늘 끌려다니는 신앙생활입니다. 두려워서 행하는 신앙생활이기에 신앙생활이 피곤합니다.
②은혜의 신앙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자유함을 누리며 행복하게 신앙생활을 합니다. 이런 사람의 특징은 하나님을 향한 경건한 두려움이 있지만 그것보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더 큽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사랑이 핵심입니다. 성경은 약 3만1천 구절로 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구절이 요한복음 3:16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생을 위하여 독생자를 보내주셨는데, 무엇 때문에 그렇게 하셨습니까?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려면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 사랑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게 됩니다.
1절에서 다윗은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힘으로만 삼으려고 하는데 다윗은 하나님을 자신의 힘으로만 믿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여기의 ‘사랑하나이다’라는 말의 원어의 의미는 ‘깊이 사랑하다’라는 의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깊이 사랑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말입니다. 고전 11:1입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이 말은 이렇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사랑해서 그리스도를 닮은 것처럼 너희도 나처럼 그리스도를 사랑해서 그리스도를 닮아라.”
미국의 행동과학자 볼비(Bowlby)에 의하면 사랑에 빠지면 상대방의 좋은 점을 닮으려는 ‘동조 현상’이 일어난답니다. 좋아하는 감정이 크면 클수록 닮고자하는 욕구가 더 강하게 나타나서 좋아하는 음식도 같아지고, 취향이나 취미까지 같아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면 주님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주님으로 충만하면 주님과 동조 현상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주님을 닮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빨간 벽돌을 보고 두려워 복종하는 개처럼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 됩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나도 하나님을 사랑하여 범사를 자발적으로 순종하며, 행복하게 신앙생활을 합시다. 하나님은 나의 사랑이십니다.
3. 하나님은 찬송 받으실 분이십니다(3절).
3절에 보면 다윗은 자신이 찬송 받으실 하나님께 아뢴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찬송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입니다. 3절의 ‘찬송 받으실’은 원어로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한’이라는 의미입니다.
다윗은 찬송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찬송의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시 145:3입니다.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크게 찬양할 것이라 그의 위대하심을 측량하지 못하리로다”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이 측량할 수 없는 위대하신 분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찬송한 것입니다.
제가 작년 5월에 “하나님의 위대하심은 측량할 수 없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설교했습니다. 그때 제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세 가지 방면에서 말씀드렸습니다.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①하나님은 존재가 위대하십니다. 왜 하나님의 존재가 위대합니까?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시기 때문이고, 하나님은 영원한 존재이시기 때문이고, 하나님은 어디든지 존재하시며, 하나님은 믿는 자 속에 존재하시기 때문입니다.
②하나님은 성품이 위대하십니다. 하나님의 다양한 성품 중에 대표적인 성품이 사랑과 공의입니다. 이 두 가지 성품은 십자가를 통해서 증명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대로라면 죄인이 심판 받아 지옥 가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우리를 지옥에 보내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성육신 하셨고, 우리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셨고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성품이 위대하십니다.
③하나님은 능력이 위대하십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두 가지 사건이 창조와 구속입니다. 하나님은 존재가 위대하시고. 성품이 위대하시고. 능력이 위대하십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위대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찬송해야 합니다.
찬송가 23장 1절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만 입이 내게 있으면 그 입 다 가지고 내 구주 주신 은총을 늘 찬송하겠네.” 놀라운 가사입니다. 하나의 입으로 하나님을 찬송하기에 부족합니다. 이 찬송가를 작사한 찰스 웨슬리는 자신에게 만 개의 입이 있다면 만 개의 입을 가지고 하나님을 찬송하겠답니다. 그에게 100만 개의 입이 있다면 그는 100만 개의 입을 가지고 하나님을 찬송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위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위대함으로 나를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위대하신 하나님이 나와 영원토록 함께 계십니다. 할렐루야!
다윗은 찬송에 능력이 있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찬송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하나님의 말씀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시 119:164입니다. “주의 의로운 규례들로 말미암아 내가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 일곱 번은 완전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일곱 번 찬양한다는 말은 하루 종일 하나님을 찬송하며 산다는 말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다윗은 사울 왕에게 악령이 역사할 때 수금을 타면 귀신이 떠났던 것입니다. 찬송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는데 미국의 포도원 교회를 세운 존 윔버 목사님이 살아계실 때, 그 교회는 예배시간에 찬양을 두 세 시간씩 계속 불렀습니다. 기도하고 찬송하고, 찬송하고 기도하는 것을 두 세 시간 반복했습니다. 그 목사님이 왜 그렇게 찬송을 많이 했는지 아십니까? 이분이 신비한 체험을 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입신을 하면 천국이나 지옥을 가는데 이분은 입신하여 마귀 나라를 봤습니다. 그 곳에는 마귀가 성도들로부터 빼앗은 전리품들이 쫘~악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마귀에게 물었습니다. “이 중에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인가?” 마귀는 다윗 왕이 사용하던 수금을 가리키면서 “이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다윗은 사울 왕이 아플 때 그를 낫게 하려고 수금을 타면서 찬양했습니다. 마귀는 그것이 가장 능력 있는 악기라고 했습니다. 자기들이 성도들에게 빼앗은 전리품 중에 가장 귀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존 윔버 목사님은 마귀가 성도들에게서 찬양을 빼앗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 교회는 찬양을 그렇게 많이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임재를 원하시죠? 그렇다면 찬송하는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시 22:3입니다.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하나님은 찬송 중에 거하십니다. 여기서 거하신다는 말은 히브리어 원어로 보면 ‘앉다, 머무르다, 살다, 거주하다’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찬송을 하면 하나님께 거기에 앉으십니다. 거기에 머무르시고, 거기에 살고, 거기에 거주하십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임재를 원하는 사람은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찬송하십시오. 형식적인 찬송이 아닙니다.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믿음으로 찬송해야 합니다. 하나니은 찬송 받으실 분입니다.
4.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입니다(3-8절).
3절에서 다윗은 자기가 여호와께 아뢰면 자신의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는 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4-5절에 보면 그가 당했던 형편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알 수 있습니다. 너무나 어렵고 너무나 힘들어서 꼭 죽을 것 같았습니다. 6절에 보니 다윗이 환난 중에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하나님께서 다윗의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다윗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다윗의 원수들에게 진노하시니 땅이 진동하고 산들의 터도 요동했습니다. 8절에 보니 하나님의 코에서 연기가 나옵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불이 나와서 적들을 살랐습니다. 만화에서 사람이 화가 난 것을 어떻게 표현합니까? 얼굴이 빨개지고 코에서 연기가 나고 입에서 불이 확확 나옵니다. 8절이 그런 표현입니다. 정리하면 다윗이 악인들 때문에 괴로워서 부르짖어 기도했더니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대적들에게 진노하셔서 그들을 심판하셨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아무리 어려운 상황과 환경에 들어가도 소망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살아계시며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신경외과 전문의로 세계 최초로 샴쌍둥이 머리 분리 수술에 성공한 의사가 있습니다. 벤 카슨(Benjamin Carson)입니다. 그는 디트로이트 흑인 빈민촌에 살았습니다. 어머니 소냐 카슨이 철부지 시절에 남자와 동거하다 태어난 사생아였습니다. 소냐는 남자가 도망친 후 아이를 홀로 키웠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학습 지진아에다 불량소년이 되었습니다. 수학 시험을 볼 때마다 영점을 받아오고 날마다 사고를 쳤습니다. 그러나 소냐는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자녀 교육에서 기도가 중요합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셨습니다. 소냐 카슨은 하나님이 주신 응답대로 아이를 격려하고 1주일에 2권씩 꼭 책을 읽혔습니다. 그 후 아이가 변화되었습니다. 공부도 잘하게 되었고 믿음도 좋아졌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미시간 대학을 거쳐 예일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전문의가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기도의 응답으로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축복입니다. 어머니가 포기하지 않고 기도할 때 하나님이 힘이 되셨습니다.
기도는 의무감으로라도 해야 하지만 그것보다는 하나님을 사랑해서 해야 합니다. 그런 기도가 더 깊은 기도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서 하는 기도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기도가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기도하게 됩니다.
어느 교회에서 교육전도사님들이 교회 행사 때문에 밤을 새우게 되었답니다. 그 중 한 명이 새벽 2시에 전화통화를 하더랍니다. 그래서 다른 전도사님들이 “누구랑 이 밤중에 통화 하느냐”고 물었더니 여동생이랑 통화했다고 하더랍니다. 여러분, 어떤 오빠가 새벽 2시에 여동생이랑 통화 하겠습니까. 어떤 여동생이 새벽 2시에 오빠랑 속삭이겠습니까. 그래서 거짓말 말라고 했더니 “할머니랑 통화했다”고 하더랍니다. 새벽 2시에 손자가 할머니랑 통화합니까. 누구와 통화했겠습니까? 답은 연인입니다. 왜 그 전도사는 새벽 2시에 통화를 했을까요? 상대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을 자꾸 만나고 싶어집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예배가 기다려집니다. 기도하고 싶어집니다. 사랑하니까 그런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신앙을 하나님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에게 대적을 주신 이유는 하나님과 더 교제하자는 부르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문제를 허락하시는 것은 하나님과 대화하자는 사인입니다. 우리는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추는데, 하나님은 하나님과 사랑을 나누자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교제 안으로 깊이 들어가시고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십시오. 풍성한 기도응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오늘 설교는 시 18편의 내용 중 일부를 통해서 다윗의 하나님을 향한 고백을 살펴봤습니다. 다윗의 고백은 저의 고백입니다. 이 고백이 여러분의 고백도 되기를 바랍니다.
1. 하나님은 나의 힘이십니다.
2. 하나님은 나의 사랑이십니다.
3. 하나님은 찬송 받으실 분이십니다.
4.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입니다.
성경을 들고 믿음의 고백을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힘이십니다. 하나님은 내가 전적으로 의지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내가 닮을 나의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찬송 받으실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찬송 중에 임재하십니다.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기도 응답으로 나를 도우십니다.”
첫댓글 감사 "이렇게 고백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