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쇠 칼/ 송창우
시뻘건 쇠가 망치에 부딪쳐 사방으로 불똥이 튀어 오른다. 무섭게 확 달아오른 열기가 순식간에 모든 것을 태워버릴 기세로 덤벼든다. 뭉툭한 쇠붙이가 경쾌한 망치질에 허물을 벗듯 얇게 펴진다. 불구덩이와 차가운 물속을 수없이 오가며 단단해진다. 모질게 연마를 거친 마지막 담금질에 무쇠가 시퍼렇게 날선 칼로 태어난다. 그제야 텔레비전 속 좌전칼의 명장 김 씨의 얼굴이 환해진다.
무쇠 칼*을 분신처럼 여기던 사람이 있었다. 어느 겨울, 생선이나 살까 싶어 동네시장에 들렀다. 시장은 에누리가 있고 덤이 있어 왁자지껄했던 예전과는 사뭇 달랐다. 재래시장보다 부대시설이 잘 갖춰진 인근 대형 할인점을 선호하다 보니 주말이지만 한산했다. 미끄러운 바닥을 피해 종종걸음을 내딛다 생선가게 앞의 한 노인이 눈에 들어왔다. 먼저 온 손님 생선을 손질하느라 바쁜 그의 입에서 연신 허연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뻐덩뻐덩해진 방수용치마를 입은 채 난로 하나 없이 쪼그려 앉은 등에 한기가 서렸다. 두꺼운 옷에다 목도리까지 두른 나였지만 온몸에 냉기가 확 치솟아 얼어붙은 장승처럼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었다.
잠시 넋을 잃고 있었던 모양이다. 멍하니 바라보는 내게 언제까지 구경만 할 거냐며 말을 건넸다. 얼결에 시골 어른이 드실 거라며 갈치 두어 마리를 주문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단단해진 냉동 갈치 손질을 이어갔다. 영하의 날씨라 갈치와 손이 엇박자를 내면서 자꾸 도마를 벗어났다. 난감한 상황이 당황스럽고 민망했던지 “오늘 고기가 애를 먹이네.”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 모습에 불현듯 난전에서 채소 장사를 하던 어머니의 잔상이 떠올랐다. 아린 기억에 애잔함까지 휘몰아쳐 쉬이 돌아설 수 없었다. 오던 길을 되돌려 따뜻한 꿀물 음료를 넌지시 쥐여 드렸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시장에 가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 놓는 시간이 잦아졌다
시장통에서 온갖 풍상을 다 겪은 그녀였다. 곧 칠순을 바라보지만 녹슬지 않은 야문 솜씨 덕에 제법 자자하게 소문이 났다. 여간 억척스럽지 않아 투박할 거라 여겼지만 인간미가 넘쳤다. 처음 온 손님이든 단골이든 상품 가치가 떨어진 것을 덤으로 쓱쓱 썰어줄 정도로 손도 컸다. 팔아도 되겠는데 준다며 투덜거리면 “사람이 그리 좁쌀 같으면 못 쓴다.”라며 핀잔을 주기 일쑤였다. 나에게도 비닐봉지에 무엇이든 담아 주며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하였다. 항상 넉넉함을 가진 그녀는 주위 상인들에게 박 여사로 통했다.
박 여사 대신 나는 갈치 여사라 불렀다. 갈치 손질하는 것을 구경하다 붙인 별칭이다. 무쇠 칼로 칼집을 내고 몸통을 누른 다음 대가리를 잡아당겨 내장을 쑤욱 빼내는 노련함을 보고서였다. 기막힌 솜씨에 구경꾼들이 하나같이 탄성을 내질렀다. 묵직한 칼로 그냥 내리쳐도 길이는 자로 잰 듯 똑같이 동강을 냈다. 꼬리와 지느러미도 매끄럽게 잘려 나갔다. 마무리로 소금까지 거침없이 뿌리는 과감함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달인의 경지였다. 비록 노쇠한 몸이지만 생선을 손질하는 순간만큼은 민첩하면서도 무쇠처럼 강했다.
어느 날이었다. 파할 시간에 한번 들르라는 문자가 왔다. 걱정이 앞서 일을 마치기 무섭게 시장으로 갔다. 그날따라 날씨마저 스산해서인지 뜸해진 인적에 하나둘 셔터가 내려졌다. 일찍 장사를 접었는지 생선 궤짝 위에 이미 반쯤 빈 술병이 놓여 있었다. 가벼운 안부에 대답 대신 투박한 무쇠 칼에 시선을 두었다. 아침나절 숫돌에 갈아 시퍼렇게 세웠을 날은 무뎌지고 듬성듬성 이빨도 빠져 처참한 몰골이었다. 분주했을 하루가 선명하게 만져졌다. 예전에 무거운 무쇠 칼 대신 가벼운 칼을 권했지만 명장이 만든 좌전칼이라며 단박에 거절하던 낯빛이 떠올랐다. 단순한 칼이 아니라 아들이 어렵사리 구해준 귀한 것이라며 분신처럼 여겼다. 그땐 칼에 숨겨진 사연을 몰랐다.
바쁜 사람을 오라고 했다며 박 여사는 말끝을 흐렸다. 그러고는 한참 동안 어둠 속 좁은 길을 바라만 봤다. 그러다 뜬금없이 “니, 고마 내 아들 할래?”라는 말을 툭 던졌다. 갑작스러운 제안에 멀뚱멀뚱 쳐다보니 그냥 해 본 소리라며 멋쩍은 듯 들고 있던 잔을 비웠다. 잦은 왕래에도 가족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다. 혈육을 물으면 유독 매정하게 말문을 닫아 버렸다. 왜 그랬는지 눈치 채지 못한 이유는 고사하고 그때의 물음에 머뭇거린 일이 훗날 후회로 다가올 줄 깨닫지 못했다.
이면에 감춰진 그늘이 있었다. 뒷날에야 맞은편 과일가게 주인에게서 하나뿐인 아들을 교통사고로 먼저 떠나보낸 사연을 듣게 되었다. 엊그제가 아들 기일이라는 귀띔이었다. 험한 시장을 터전으로 악착같이 풍파를 견뎌낼 수 있었던 것도 아들이 남긴 흔적이 있어 그럴 것이란 짐작이 들었다. 곁을 떠난 세월도 오래되어 조금 무디어질 법도 한데 칼로 두포 자르듯 단박에 끊을 수 없는 것이 혈연 아닌가. 뒤돌아서면 아득해질 때까지 뒷모습을 담는 것이 부모 마음일 게다. 아슴아슴 떠오른 그날, 가슴으로 삼킨 눈시울이 지독히도 처연하게 붉었다.
누군가를 향해 마음을 연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데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내게도 넉넉한 품이 되어주던 모성 가득한 분,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내 어머니를 걱정해 주던 분, 팍팍한 삶에도 따뜻한 눈빛을 잃지 않았던 분이셨다. 간혹 진상 손님에게 걸쭉한 욕설을 퍼붓는 강단도 지녔지만 속은 연한 두부처럼 여린 노인이었다.
오랜만에 시장을 찾았다. 한동안 뜸한 만큼 시장도 많이 변했다. 상호가 반쯤 지워진 간판이 엘이디로 교체되고 골목이 현대화되면서 제법 생기가 돌았다. 시간이 흘렀어도 반갑게 맞아주는 익숙한 곳도 있다. 칼칼한 맛이 일품인 칼국숫집과 술 한 잔에 속까지 데워주던 국밥집은 여전히 손님들로 붐빈다. 하지만 스스로 허접한 밑바닥 인생이라 낮추며 설움을 녹여내던 기개는 찾기가 힘들다. 어디선가 정겨운 목소리로 불러줄 법도 한데 휑한 바람만 무심히 스쳐 지난다. 좌판에 생선 대신 푸성귀가 자리를 꿰찬 가게가 낯설다. 허공을 내지르며 생선 내장을 빼내던 무쇠 칼도 종적을 감추었다. 또, 들르겠다는 상투적인 마지막 인사만 떠오를 뿐이다.
이제는 카랑카랑한 “갈치 사 가이소.” 외치던 목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다. 몇 해 전 기별 없이 아들 곁으로 조용히 영면에 들었다. 끝이 되어버린 이별 앞에 듣고 싶었던 말도 듣지 못하고, 배웅할 틈도 주지 않고 홀연히 가셨다. 영전에 술 한 잔 올리지 못한 죄스러움이 옹이로 박혔다. 무심코 던진 그날의 물음에 대해 비로소 “네.”라고 늦은 답신을 띄운다.
쇠만큼 단단한 것은 없다. 버짐처럼 핀 녹이 녹물을 쏟아내도 갈고 닦으면 탄성을 찾는다. 그러나 주인을 잃으면 그 야문 무쇠도 용광로에서 순식간에 쇳물로 녹아내린다. 한때 무쇠 칼을 분신처럼 여기며 시장통을 호령했던 그 무쇠 같은 노인도 아들을 앞세운 이후로 가슴에 박힌 멍울에 무너져 내렸다. 돌아서 아픔을 삭이던 굴곡진 삶은 고로의 불꽃처럼 사그라들었지만 내 가슴속엔 언제나 무쇠 칼을 든 철의 여인으로 살아 있다.
*무쇠 칼: 순수한 무쇠 재질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강한 칼을 통칭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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