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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담상조(肝膽相照)
간과 쓸개를 내놓고 서로에게 내보인다는 뜻으로, 서로가 마음속을 툭 털어놓고 숨김없이 친하게 사귄다는 말이다.
肝 : 간 간(月/3)
膽 : 쓸개 담(月/13)
相 : 서로 상(目/4)
照 : 비칠 조(灬/9)
간담상조(肝膽相照)는 서로의 속마음을 터놓고 진심을 나누는 깊은 우정을 비유하는 말이다. 당송팔대가 중 한유와 유종원의 우정을 바탕으로 유래했으며, 겉으로는 친밀하지만 이해관계가 생기면 배신하는 세태를 비판하는 데 사용되었다.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인 당(唐)나라의 문인 유종원(柳宗元)이 유주자사(柳州刺史)로 발령났을 때, 그의 절친한 친구인 유우석(劉禹錫)도 좌천되어 파주자사(播州刺史)로 발령이 났다. 파주는 멀리 떨어진 편벽한 고장이었으므로, 80이 넘은 노모를 모시고 있는 유우석은 어머니를 홀로 두고 갈 수도, 모시고 갈 수도 없는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이런 사정을 안 유종원은 눈물을 흘리며 “그가 힘들어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구나. 조정에 상소를 올려 유주자사와 파주자사를 서로 바꾸자고 간청해야겠다. 이 일로 내가 다시 죄를 입어 죽는다고 해도 원망하지 않으리라”고 말했다. 마침 배도(裵度)가 유우석의 이런 사정을 황제에게 아뢰어 유우석은 연주(連州)자사로 가게 되었다.
(▶ 전도유랑(前度劉郞) 참조)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인 한유(韓愈)는 유자후묘지명(柳子厚墓誌銘)에서 이 사실을 기록하면서 다음과 같이 유종원의 참다운 우정과 의리를 우회적으로 기리었다.
嗚呼. 士窮乃見節義.
아, 선비는 곤궁하여야 비로소 절개와 의리를 볼 수 있노라.
今夫平居里巷相慕悅, 酒食遊戱相徵逐, 詡詡强笑語, 以相取下, 握手出於肺肝相示, 指天日涕泣, 誓生死不相背負, 眞若可信.
지금에 무릇 평소 마을에서 서로 앙모하고 우호하며, 술과 음식 차려 놀며 서로 초대하고 왕래하면서, 허풍떨고 알랑거리며 억지로 웃는 얼굴로 말하고, 서로 자신을 낮추며, 폐와 간이라도 꺼내 보여 줄 듯이 손을 잡고, 하늘과 태양에 대고 눈물 흘리며 생사를 함께 하여 배신하지 않을 것을 맹세하니, 진실로 믿을 수 있을 것 같아 보인다.
一旦臨小利害, 僅如毛髮比, 反眼若不相識.
그러나 일단 작은 이해관계에 부딪히게 되면, 겨우 머리털에 견줄 작은 일이라도, 서로 모르는 것처럼 눈돌려 외면한다.
落陷穽, 不一引手救, 反擠之, 又下石焉者, 皆是也.
함정에 빠지면 손을 뻗어 구하기는 커녕, 도리어 밀쳐내고, 또 밑으로 돌을 던지는 것이, 모두 그러하다.
此宜禽獸夷狄所不忍爲, 而其人自視以爲得計, 聞子厚之風, 亦可以少愧矣.
이는 마땅히 금수나 오랑캐도 못할 짓인데, 그 사람들은 스스로 잘 한 것인 양 여기는바, 자후(子厚)의 풍격이라도 듣는다면 조금이나마 부끄러움을 알 수 있을진저
(▶ 낙정하석(落穽下石) 참조)
폐와 간을 꺼내 서로 보여 준다는 말에서 간담상조(肝膽相照)가 나왔다. 이 성어는 원래는 이처럼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으나, 후에 와서 서로 마음을 터놓고 지낸다는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간담상조(肝膽相照)라는 성어가 직접 쓰여 긍정적 의미를 나타낸 것은 다음의 전적에서 찾아볼 수 있다.
今始至之日, 必延見僚寀, 歷述弊端, 令悃愊無華, 肝胆相照.
오늘 도착한 날부터 반드시 동료들을 인견하여 업무상의 소홀한 부분이나 공익에 손해를 끼치는 일을 두루 서술하고 성심으로 소박하게 대하며 간담상조 해야 한다. - 송(宋) 호태초(胡太初)의 주렴서론(晝簾緖論) 요채(僚寀)
한서(漢書) 노온서(路溫舒)전에는 '간담을 드러내 큰 계획을 결정한다(披肝膽 決大計)'는 말이 있다. 간담(肝膽)은 간과 담낭(膽囊)으로, 마음속 깊숙한 곳을 가리킨다.
고사경림(故事瓊林)에는 '간담을 상조하니, 이런 것을 복심지우(腹心之友)라고 한다'고 하였다.
송(宋) 문천상(文天祥)의 與陳察院文龍書(진찰원 문용에게 주는 글)에는 '자기를 알아주고 속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다고 믿는 바 글에 임하여 한쪽으로 기우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所恃知己肝膽相照 臨書不憚傾倒)'라고 하였다.
사람이란 곤경에 처했을 때라야 비로소 절의(節義)가 나타나는 법이다. 평소 평온하게 살아갈 때는 서로 그리워하고 기뻐하며 때로는 놀이나 술자리를 마련하여 부르곤 한다.
또 흰소리를 치기도 하고 지나친 우스갯소리도 하지만 서로 양보하고 손을 맞잡기도 한다. 어디 그뿐인가. 서로 간과 쓸개를 꺼내 보이며 해를 가리켜 눈물짓고 살든 죽든 서로 배신하지 말자고 맹세한다.
말은 제법 그럴듯하지만 일단 털 끌만큼이라도 이해관계가 생기는 날에는 눈을 부릅뜨고 언제 봤냐는 듯 안면을 바꾼다. 더욱이 함정에 빠져도 손을 뻗쳐 구해 주기는커녕 오히려 더 깊이 빠뜨리고 위에서 돌까지 던지는 인간이 이 세상 곳곳에 널려 있는 것이다.
친구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했는데, 관포지교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포숙과 관중은 이 말을 남긴 예수가 태어나기 약 700년 전에 이미 간담상조(肝膽相照) 하면서 이를 몸소 실천한 친구들이었다.
간담상조(肝膽相照)
간과 쓸개를 내놓고 서로에게 내보인다는 뜻으로, 서로가 마음속을 툭 털어놓고 숨김없이 친하게 사귄다는 말이다.
천산조비절(千山鳥飛絶)
만경인종멸(萬徑人蹤滅)
고주사립옹(孤舟蓑笠翁)
독조한강설(獨釣寒江雪)
한·중·일 교과서에 실리기도 하는 그 유명한 '강설(江雪)'이다. 송나라 정치가 겸 문인 범중엄(范仲淹)은 "당나라 오언절구 가운데 유종원(柳宗元)의 이 시를 빼곤 뛰어난 작품이 없다"라며 극찬했다.
초반부는, 뭇 뫼에 새 한 마리 날지 않고 대부분의 길에 사람 발자국도 끊긴 어느 눈 내리는 겨울의 풍경화처럼 느껴진다. 이 적막한 풍경에 작은 배 한 척, 그리고 도롱이 걸치고 삿갓까지 머리에 눌러쓰고 낚시하는 한 노인이 더해진다. 그는 누구일까.
간담상조(肝膽相照)의 앞의 두 글자 '간담(肝膽)'의 본래 뜻은 '간과 쓸개'다. 여기에선 '진정한 마음'이란 비유적 의미로 쓰였다. 뒤의 두 글자 '상조(相照)'는 '서로 비추어 보다'라는 뜻이다. 이 둘이 결합되어 '서로의 진정한 마음을 내보일 정도의 참된 우정'이란 의미가 된다.
하지만 과거의 쓰임은 정반대였다. 사실, 진정한 친구 사이라면 교류할 때 화려한 말이나 꾸밈이 필요하지 않다. 깊숙한 곳에 위치한 간이나 쓸개를 번거롭게 굳이 꺼내어 보여줄 이유는 더욱 없다.
한유와 함께 '당송 8대가'의 일원인 문장가 유종원은 당나라 수도 장안(長安)의 명문가 자손으로 태어났다. 자(字)는 자후(子厚)다. 일찌감치 과거에 급제하여 중앙 관료로 순탄하게 승진할 기회를 잡았지만 타고난 성품이 매우 강직했다. 신진 관료로서 '영정혁신(永貞革新)'에 참여했다. 하지만 환관들의 반격으로 혁신은 채 1년도 지속되지 못했고 유종원도 지방으로 좌천당하는 신세가 된다.
이런 곤경에 처하자 그는 '문장으로 도를 밝힌다(文以明道)'라는 새로운 인생 목표를 세웠다. 저술에 몰두하다가 안타깝게도 지방 근무지에서 병에 걸렸다. 46세에 일찍 세상을 하직했다. 천설(天說), 포사자설(捕蛇者說) 등 자신의 많은 원고를 과거 합격 동기로 인연이 시작된 절친 유우석(劉禹錫)에게 남겼다.
실재로 유종원과 유우석은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 유우석이 파주자사(播州刺史)로 좌천되었을 때의 일이다. 파주는 오늘날 귀저우성(貴州城) 준의현(遵義縣) 일대다. 과거 이곳은 중국 서남부의 아주 외진 곳이라 왕래하기가 쉽지 않았다. 임지로 떠날 날이 다가왔지만 80세가 넘은 노모를 모시던 유우석은 혼자 괴로워하고 있었다.
이를 안 유종원은 자신의 임지와 유우석의 임지를 바꿔달라고 여러 차례 상소를 올린다. 마침 유종원 자신도 지금의 광시(廣西)성 유주시(柳州市)로 좌천을 당한 상태였는데, 준의현 보다 유주가 덜 외진 곳이었기 때문이다. 무척 당돌한 상소였다. 하지만 유종원의 상소는 효과를 발휘한다. 비록 임지 맞교환까진 아니지만, 유우석의 임지가 덜 외진 곳으로 바뀌고 노모와 함께 생활할 수 있게 됐다.
많은 후학들이 유종원의 인품과 그가 남긴 문장을 흠모했다. 그는 어휘를 고를 때 털끝만큼의 속기(俗氣)도 개입시키지 않았다. 또한 주장의 근거가 분명했기에 그의 글에 반박하기가 쉽지 않았다. 세종대왕도 한유, 유종원의 문장과 두보의 시를 꼭 익히라고 주위에 권했다.
사후에 한유도 유종원이 친구 유우석과 폄적지를 바꾸려 노력했던 이 일화와 선명하게 대비시키며 '유자후묘지명(柳子厚墓誌銘)'에 당시 세태를 기록해 꼬집었다. '간과 쓸개라도 보여줄 듯 행동하며, 하늘의 태양을 가리키며 눈물까지 흘려가며 살아서도 죽어서도 배반하지 말자고 마치 진실인 양 맹세도 한다. 하지만 일단 작은 이해관계라도 걸리면 소소한 이익까지 비교하며 시선을 외면하거나 모르는 사람처럼 대하기 일쑤다. 혹시 친구가 함정에 빠지면 손을 내밀어 구해줄 생각은 않고 구덩이로 더 깊이 밀어 넣고, 심지어 돌까지 던진다.'
다행히 현재 간담상조(肝膽相照)는 부정적 의미에서 긍정적 의미로 그 쓰임이 바뀌었다. 관포지교(管鮑之交), 문경지교(刎頸之交), 적성상견(赤誠相見) 등과 의미가 서로 통한다. 반대말로는 아귀다툼을 의미하는 구심두각(鈎心斗角)이 중국에서 자주 쓰인다.
간담상조(肝膽相照)
간과 쓸개를 내놓고 서로에게 내보인다는 뜻으로, 서로가 마음속을 툭 털어놓고 숨김없이 친하게 사귄다는 말이다.
지도자는 긴 안목으로 미래를 내다보고 방향을 잡아야 한다. 백년대계다. 역사의식 있는 통찰력이 요구된다. 전체를 보는 식견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손자병법'은 지도자에 대해 '높은 곳에서 멀리 보는 시야를 확보해야만 승리할 수 있다(視生處高)'고 일러주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박 대통령과 정상회담차 한국을 방문한다. 한·중 양국 간 밝은 미래를 위한 단단한 디딤돌 구축 기회가 되리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사실 한국과 중국은 간과 쓸개를 서로 보여줄 정도로 가까운 간담상조(肝膽相照) 관계라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는 순망치한(脣亡齒寒)일 정도로 지정학적·경제적으로 아주 가까운 사이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 한반도와 관련해 한·중 양국은 평화와 안정 유지 및 북한의 비핵화 실현이라는 두 가지 점에서 인식을 함께해야 할 숙명적 관계다. 미국과 중국, 미국과 일본, 북한과 일본, 중국과 일본 관계 등 급변하는 세계정세 속 동북아 안정과 세계평화를 위한 가교를 놓고 있는 것이다.
서경은 '하루이틀 사이에도 만 가지 기미가 있다(一日二日萬畿)'고 했다. 시시각각 변하는 글로벌 시대에 우리의 국익 제고와 민주평화적 남북통일을 이루어 21세기 한민족의 시대를 맞기 위해 각국 정상회담을 유효하게 활용해야겠다. 특히 일본과의 역사분쟁 시점에서 한·중 최고지도자의 만남은 왜곡을 시정하고 일본이 반성하게 하는 데 영향을 미치리라고 본다.
더욱이 한국과 중국은 아시아경제의 중심에서 세계경제의 중심으로 서기 위해 상호 전략적인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미래를 보고, 양국이 상호 이해와 화합 속에 높은 수준의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어 서로 윈윈할 수 있는 관계로 한층 더 도약해야겠다.
고전 '국어'는 이렇게 가르치고 있잖은가. '화락하고 평화스러운 소리가 있는 곳에 무한한 재화와 번창이 있다(有和平之聲 則有蕃殖之財).'
간담상조(肝膽相照)
간과 쓸개를 내놓고 서로에게 내보인다는 뜻으로, 서로가 마음속을 툭 털어놓고 숨김없이 친하게 사귄다는 말이다.
중국 당나라 11대 황제인 헌종때로 지금으로부터 1200년 전의 일이다. 유종원이 유주를 관할하는 자사(장관급)로 좌천되었다가 내직으로 복직되지 못하고 고생하고 있을 때이다.
그와 절친한 친구인 유우석이 파주자사로 좌천되었다는 말을 듣고,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파주 땅은 매우 궁벽한 두메산골이라 사람이 살만한 곳이 아니다. 더구나 유우석은 80이 넘은 늙은 어머니까지 모시고 있다. 늙은 어머니를 홀로 두고 갈 수도, 모시고 갈 수도 없는 곤란한 처지이다. 내 차마 친구인 유우석이 그곳으로 가는 것을 그대로 두고 볼 수는 없다. 조정에 상소를 올려 유주자사와 파주자사를 서로 바꾸자고 간청해야겠다. 이일로 내가 다시 죄를 입어 죽는다고 해도 원망하지 않으리라”며, 유종원이 황제에게 청원한 결과 유우석이 형편이 좀 나은 연주자사로 가게 되었다.
그 당시 당나라를 대표했던 문장, 정치, 사상가였던 한유는 유종원의 진실한 우정에 깊이 감동했다. 그래서 유주자사 유종원과 그의 친구 연주자사 유우석과의 우정을 찬양하는 글을 유종원의 묘비명에 한유는 이렇게 썼다. “사람이란 곤경에 처했을 때라야 비로소 절의(節義)가 나타나는 법이다. 평소 평온하게 살아갈 때는 서로 그리워하고 기뻐하며 때로는 놀이나 술자리를 마련하여 부르곤 한다. 또 지나친 우스갯소리도 하지만 서로 양보하고 손을 맞잡기도 한다. 어디 그뿐인가. 서로 간과 쓸개를 꺼내 보이며(간담상조), 해를 가리켜 눈물짓고 살든 죽든 서로 배신하지 말자고 맹세한다. 말은 제법 그럴듯하지만 일단 털 끌만큼이라도 이해관계가 생기는 날에는 눈을 부릅뜨고 언제 봤냐는 듯 안면을 바꾼다. 더욱이 함정에 빠져도 손을 뻗쳐 구해 주기는커녕 오히려 더 깊이 빠뜨리고 위에서 돌까지 던지는 인간이 이 세상 곳곳에 널려 있는 것이다”라고 썼다.
여기에 간담상조(肝膽相照)라는 말이 나온다. ‘간과 쓸개를 보여주면서 서로 간에 가슴속에 숨김이 없이 솔직하게 이야기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마음을 터놓고 격의 없이 사귀는 절친한 사이를 말한다. 친구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유종원과 유우석의 간담상조(肝膽相照) 우정이나 관중과 포숙아의 관포지교(管鮑之交)처럼 진정한 우정은 상대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자신이 희생하고 도움을 주어야 빛을 발한다.
21세기 들어 이런 간담상조(肝膽相照)할 수 있는 친구가 과연 우리에게는 있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관중과 포숙아, 유종원과 유우석은 이미 간담상조(肝膽相照) 하면서 이를 몸소 실천한 친구들이다.
반면에 을사오적 중에 한 사람이었던 이완용은 어땠는가! 문장은 물론 서예, 정치 등에서 당대 최고인물이었다. 세태에 따라 약삭빠르게 변신하는 재주 또한 으뜸이었다. 과거에 급제하여 관료가 되었고, 육영공원이 세워지자 제일 먼저 입학하여 영어를 배웠다.
그도 처음에는 고종과 민비의 측근으로 수구파였었다. 그 뒤 미국 외교관으로 가서는 친미파가 되었다. 다시 친러파로, 친일파로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며 마침내 매국노로 변신한 것이다. 곧잘 시대가 영웅을 만들기도 하나 때로는 시대가 한 인물을 삼키기도 한다. 그는 분명히 글을 잘 쓰며 예술도 잘 이해하고 머리도 좋아서 훌륭한 교양인으로 남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마음 한번 잘못 먹은 탓으로 영원한 매국노가 된 것이다.
한유가 증오하였듯이 사람들은 평소에 술잔을 나누고, 호형호제하며 간과 쓸개를 다 꺼내줄듯이 사귄다. 그러다 막상 어떤 이익이 앞에 있거나 친구가 곤경에 처했을 때, 칼날처럼 돌아서는 세태가 어찌 지금이라고 없을 수 있을까. 친구를 위해 몸을 던지고 멀리 오지로 대신 가서 근무해줄 친구를 찾는다는 생각부터가 사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간담상조(肝膽相照)는 이처럼 우정과 의리를 표현하는 고사이다. 아주 절친한 친구 사이에 “우린 간담상조 같은 사이다”라는 식으로 표현한다. 당나라 때 뿐만이 아니라 지금도 간담상조(肝膽相照)가 필요하다.
갈수록 이기주의가 횡행하고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게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다. 심지어 사람 목숨쯤은 언제든지 도구로 사용될 수도 있는 것 또한 작금의 실태다.
하지만 아무리 이기주의가 횡행하고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만도 못하다고는 해도 그래도 사람이라는 탈을 쓰고 태어 났으면 최소한의 인륜과 의리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야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모습만 사람이지 실상은 짐승만도 못한 동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과거와 달리 요즘 세상에서 의리 운운하고 도덕성 운운해봐야 오히려 그런 사람만 이상한 사람 취급받다 보니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각박함을 넘어 살벌함까지 느껴지기도 한다.
사람이란 누구나 잘 나갈 때가 있으면 못 나갈 때가 때는 법이다. 그게 바로 인생이라는 사이클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지금 잘 나가고 있으니까 죽을 때까지 잘 나갈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주위 사람들을 대할 때 안하무인을 넘어 업신여길 때가 많다.
더욱이 과거 자신에게 도움을 준 사람에게 오히려 칼을 겨누며 언제 너와 내가 아는 사이였나며 더 깊은 나락으로 밀어 넣기를 서슴치 않는다. 아니, 생면부지의 사람들보다 더 열정적으로 공격을 하고 음해를 가한다. 하지만, 여름철 푸르른 낙엽도 가을을 지나 겨울이 되면 하나 둘 낙엽을 떨어 뜨리며 수명을 다하게 되어 있다. 그게 바로 자연의 순리요 순환계의 사이클이다.
지금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지역도 이러한 패륜아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도무지 그들에게 의리나 인륜이라는 단어는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막무가내이며 살벌한 세상이 되었는지 참으로 슬플 따름이다. 오로지 그들의 인생 목표는 “우리끼리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매우 소아병적이고 반사회적인 사고방식만이 지배를 하고 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사람이란 평생을 안전한 길로만 다닐 수는 없다. 오늘 거친 들판을 걸었다면 내일은 반드시 평탄한 길을 걷는게 인생이다. 오늘 약자의 상황에 처했다면 내일은 강자의 입장에 서는게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신들이 불사조인양 약자 대하기를 사자가 토끼 대하듯 한다면 이는 머지 않은 장래에 자신이 토끼 신세가 된다는 사실을 왜 모르고 있는 걸까.
우스갯소리로 ‘높은 자리에 있을 때 잘 봐달라’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다. 그런 말을 들을때면 상대방은 분명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사자와 같은 상태임을 알아야 한다.
간담상조(肝膽相照)
간과 쓸개를 내놓고 서로에게 내보인다는 뜻으로, 서로가 마음속을 툭 털어놓고 숨김없이 친하게 사귄다는 말이다. 이 표현은 서로의 마음과 용기를 나누며, 신뢰와 의리를 바탕으로 한 관계를 상징한다. 간담상조(肝膽相照)의 원래 의미는 신뢰를 얻기 위해 모든 것을 내보일 듯이 접근하지만, 실제로는 이기적인 목적을 가진 위선적인 행위를 비판하는 데 사용되었다.
간담상조(肝膽相照)라는 말은 중국 당나라 시기의 문장가 한유가 친구 유종원을 위해 지은 비문에서 유래했다. 한유는 친구가 좌천되어 험지로 가야 하는 상황에서, 그의 근무처를 자신의 것과 바꾸어 달라고 조정에 부탁했다. 이는 진정한 우정과 희생을 보여주는 행위였으며, 간담상조(肝膽相照)라는 말은 이러한 깊은 우정과 의리를 상징하는 데 사용되었다.
중국 당나라 때의 문인인 유종원은 수구파와의 싸움에서 밀려나서 유주자사로 좌천(左遷)되었다. 이때 그의 친구인 문인 유우석 역시 파주자사로 좌천되었는데 유종원은 유우석의 좌천 소식을 접하고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 “파주는 깊숙한 두메산골로 살 만한 곳이 못된다. 그러므로 노모와 함께 갈 곳은 아니니 내가 대신 가겠다.”
유종원은 즉시 황제에게 상소문을 올렸고, 그 결과 유우석은 파주보다는 좀 더 가기 편한 연주로 가게 되었다.
훗날 그의 친구인 한유는 유종원을 위해서 쓴 유자후묘지명(柳子厚墓誌銘)이라는 글에 유종원의 깊은 우정을 되새기며 이런 글을 남겼다. ‘사람이 어려운 처지에 놓였을 때야 비로소 참다운 의리(義理)를 알 수 있다. 평소 아무 일이 없을 때에는 그리워하고 즐거워하고 놀러 다니며 서로 사양하고, 간과 쓸개를 내보이고 죽어도 배신하지 않는다고 맹세할 수 있다. 그러나 일단 머리카락 한 가닥만큼의 이해관계라도 생기면 거들떠보지도 않고 아는 척도 하지 않는다. 함정에 빠지더라도 손을 뻗어 구해 주기는 커녕 오히려 더 깊이 차 넣고 돌을 던지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행위는 무지한 짐승도 차마 하지 못하는데, 그런 사람들은 스스로 뜻을 얻게 되었다고 오히려 자부한다.’
온 몸이 쓸개인 사람이 있었다. 한자로는 일신시담(一身是膽)이라고 하는데, 삼국지에 등장하는 영웅중의 한 명, 조자룡을 옛 사람들은 그렇게 표현하였다. 온 몸이 쓸개라는 말은 그만큼 용감하다는 말이다. 보통 간은 용기, 담(쓸개)은 자존심을 상징하는 것으로 쓰지만 쓸개는 용기도 상징하기도 하였다.
여기서 간과 쓸개는 용기와 자존심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몸 속 장기로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이를 서로 보인다는 말은 서로의 속마음의 가장 소중한 것도 서로 내보인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맞다.
고사성어의 이야기에는 간담상조(肝膽相照)하는 사이라 하더라도 머리카락만큼의 이해관계 앞에서는 우정이 무너지는 것이 일반적인 인지상정이라 하고 있다. 하지만 어려움 앞에서 이익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우정이야 말로 진정한 우정이라 할 수 있다.
사업하는 사람은 고객이 친구이다. 그 고객은 회사의 주주일수도 있고, 함께 일하는 동료일수도 있고, 다른 기업체의 거래관계자 일수도 있고, 일반적인 손님 일수도 있다. 사업을 제대로 하고자 한다면 이해관계 앞에서 흔들려서는 안 된다.
정주영 회장 등 손해를 보더라도 ‘약속’ 혹은 ‘신용’을 지키고자 하는 사업가의 이야기는 많이 들어 보았을 것이다. 사업가가 이해관계 앞에 ‘신용’을 잃으면 ‘고객’을 잃어버린다. 결국 사업을 잃어버리게 된다. 사업가는 고객에게 간담상조(肝膽相照)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사업하기 참 힘들다.
간담상조(肝膽相照)는 우리가 서로에게 어떻게 다가가고, 어떻게 관계를 형성하며, 어떻게 서로를 지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귀중한 교훈을 제공한다. 이 고사성어를 통해 우리는 인간 관계의 진정한 가치를 되새기고, 더욱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할 수 있다.
진실한 우정 간담상조(肝膽相照)
진실한 우정, 이 단어는 듣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하고 가슴이 따듯해진다. 과학과 물질문명의 발달로 점점 더 각박해져가는 세상에 참된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자체가 행복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진실한 우정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진정한 벗이란 나이, 성별, 신분, 이념, 지역 등을 가리지 않으며 물질적인 것들이 아닌 정신적인 가치와 인간적인 신뢰를 중시하는 관계이다.
이에 진정한 친구를 이야기할 때 가정 먼저 떠올리는 단어가 관포지교(管鮑之交)이다. 관중은 포숙을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젊은 날 포숙과 함께 장사를 하였는데 이익을 나눌 때 언제나 내가 조금 더 가져갔지만 포숙은 내가 재물을 탐해서가 아니라 너무 가난하기 때문이라고 이해 해 주었다. 그리고 내가 세 번 관직에 나갔다가 세 번 다 파면을 당했을 때 내가 현명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아직 때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이해 해 주었다. 또 한 번은 내가 세 번 전쟁에 나가 세 번 모두 패하고 도망쳤지만 내가 겁쟁이라서가 아니라 집에 노모가 계시기 때문이라고 이해 해 주었다."
춘추시대 제나라의 명재상이었던 관중은 이렇게 포숙과의 관계를 회고하면서 "나를 낳아준 이는 부모지만, 나를 진정으로 알아주는 사람은 포숙이다"라고 했다.
어릴 때 아버지가 들려주신, 살아오며 귀감이 된 영원히 잊지 못하는 아름다운 친구 이야기가 있다. 옛날 어느 부유한 집안에 태어난 아들은 여러 사람과 어울려 술 마시고 놀기를 좋아하고 재물을 탕진하며 책 읽기를 게을리 하였다. 그리고 친구가 많은 것을 자랑하고 다녔다.
보다 못한 아버지는 아들에게 믿을 만한 사람이 몇 명이나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아들은 지금 만나는 모두가 흉금을 털어 놓을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대답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내기를 하자고 제안했다. 어려울 때 도울 수 있는 진실한 친구가 단 한명이라도 있으면 너 뜻대로 하고, 그렇지 않으면 아버지 말을 따르기로 하였다.
아버지는 늦은 밤 돼지를 한 마리 잡아 가마니로 둘둘 말은 다음 아들에게 지게를 지운 뒤 그 중 제일 믿을 만한 친구를 찾아가 실수로 사람을 죽였으니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 도움을 청하러 왔다고 얘기해 보자고 하였다.
아들은 자신 있다고 소리쳤지만 어떤 일이라도 함께 하겠다던 친구들은 얘기를 듣고 하나같이 다른 사람에게 가보라며 상대조차 해 주지 않았다. 모든 사람에게 외면당한 아들을 보며 아버지는 자신의 친구 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리고 아들이 했던 것과 똑같이 부탁을 했다. 그러자 아버지의 친구는 어쩌다 "이런 일이 생겼는가. 내가 어떻게든 해 볼 테니 어서 시체를 안으로 옮기게" 라고 했다. 아버지는 "자네에게 혹 누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네" 라고 하자, "그런 염려는 말게"라고 하며 아버지의 등을 감싸 안았다.
그리고 "어서 관가로 가세. 자네는 노모가 계시니 내가 실수로 사람을 죽였다고 할 테니 가만히 있게나" 하였다. 이 모습을 지켜 본 아들은 크게 깨우쳐 다음날부터 술을 끊고 공부에 열중하여 훌륭한 사람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진정한 친구란 슬프거나 어려울 때 그 고통과 슬픔을 나누어가질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우정은 일방적일 수 없는 것이므로 배려와 이해에서 시작된다. 관중과 포숙의 관계를 보더라도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기본임을 알 수 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단 한명이라도 간담상조(肝膽相照) 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우리 모두의 바람이자 값진 것이며 행복하고 아름다운 세상일 것이다.
간담상조(肝膽相照)와 같은 친구의 우정
인간은 사회생활을 하는 가운데 친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히 크다. 친구를 잘못 사귄 것이 화근이 되어 최근에 크나큰 손실을 보거나 범죄의 소굴에 빠져 주위의 빈축을 사는 경우를 본다. 반대로 좋은 친구를 둔 것이 도움이 되어 곤경에서 벗어나거나 친구로부터 자극을 받아 자기 일에 더욱 충실하거나 학업에 전념하게 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재벌가의 자녀는 친구가 없어 혼자 방황하며 폭행이나 사회의 물의를 일으키는 일도 있다.
우리 사회는 전통적으로 인간관계 중심의 사회로서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일이 많으므로 좋은 친구는 더욱 중요하다. 어느 재벌가의 아버지는 아들을 대학에 보낸 다음 간곡히 부탁하기를 공부하는 것보다 친구를 사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한 말에 충분한 이해가 된다.
당나라 시대의 유종원과 유몽득의 우정에서 유래 되었다는 간담상조(肝膽相照)란 말이 있다. 간과 쓸개를 서로 꺼내 보일 정도로 서로 마음을 터놓고 사귀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인 한유(韓愈)는 유종원의 참다운 우정과 의리를 우회적으로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선비는 어려운 일에 처했을 때 비로소 정의(節義)가 드러나는 법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평시에 함께 지내면서 서로 그리워하고 좋아하며, 술자리나 경사스러운 일에 서로 초대하며 억지웃음을 짓고 서로 겸손을 떨며, 손을 잡고 폐와 간을 서로 보이며, 하늘의 해를 가리키고 눈물을 흘려 가며 죽으나 사나 서로 배반하지 말자고, 마치 진실인 양 맹세를 한다.
그러나 이해관계의 앙금이 생기면 서로 모르는 체 반목을 하고, 함정에 떨어지면 손을 뻗어 구해 주기는커녕, 오히려 구덩이 속에 더 밀어 넣고 돌까지 던지는 사람이 이 세상에는 널려 있다고 우회적으로 친구의 우정을 강조했다.
셰익스피어는 친구를 대할 때 맘으로는 생각해도 입 밖에 내지 말며, 서로 사귐에는 친해도 분수를 넘지 말라. 그러나 일단 마음에 든 친구는 쇠사슬로 묶어서라도 놓치지 말라 하였으며, 철학자 딩고는 친구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 나를 미워하는 사람, 나에게 무관심한 사람으로 분류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유순함을 가르치고, 나를 미워하는 사람은 조심성을 가르쳐 준다. 그리고 나에게 무관심한 사람은 오히려 자립심을 가르쳐 준다고 했다.
옛날 한 마을에 세 젊은이가 깊은 산골의 석이버섯을 따라 산으로 갔다. 산에서 버섯을 찾아다니던 이들은 벼랑 끝에 석이버섯이 잔뜩 피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내려갈 수가 없어서 칡덩굴을 끊어 튼튼한 줄로 만들어 타고 내려가기로 했다. 그러나 미끄럽고 위험한 벼랑에 내려가지 않으려고 서로 미루다 마음씨 착한 사람이 지원하여 내려갔다.
그는 몸에 줄을 매고 절벽 아래로 내려가 석이버섯을 따서 망태기에 담아 줄에 매달고 줄을 흔들면 위에 있는 친구가 그 줄을 끌어올려 많은 버섯을 땋다. 그러나 위에 있는 두 친구는 비싼 석이버섯을 셋이 나누는 것보다 둘이 나누는 것이 더 좋겠다고 생각하고 잡고 올라오는 줄을 끊어버린 뒤 버섯을 나눠가지고 마을로 향하였다.
그는 비명을 지르며 절벽 아래로 떨어지다 다행히 소나무 가지에 걸렸다. 그가 소나무에 매달려 아래를 보니 나무 아래도 역시 절벽이었다. 그는 위에 있는 친구들이 실수로 줄을 놓친 것으로 생각했지 줄을 끊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는 올라 갈 수도 없는 상황에서 울며 탄식을 하다가 잠이 들었는데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말했다. 살고 싶으면 아래로 뛰어내려서 왼쪽으로 가거라. 거기에 산삼이 많을 것이니 실한 것 열 뿌리만 캐어 가거라 하였다. 노인의 말대로 나무에서 뛰어내려 산삼 열 뿌리를 캐서 집으로 향하였다.
한편 두 친구는 버섯을 지고 산에서 내려오다가 호랑이를 만났다. 그들은 무서워서 벌벌 떨며 꼼짝 못하고 서 있었다. 착한 친구가 그곳에 이르자 자기를 죽이려고 한 이들을 용서하기로 하니 이때 숲속에 있던 호랑이가 노인으로 변해 말했다.
탐욕스런 너희들은 죽어야 마땅하지만, 친구가 너희를 용서하니 나도 너희를 용서한다. 너희들은 용서를 비는 뜻에서 버섯을 모두 저 친구에게 주어라. 집으로 돌아온 그는 버섯과 산삼을 팔아 부자가 되고 남을 도우며 잘 살았다. 두 친구 역시 마음을 고쳐먹고 착하게 살았다. 이 이야기에는 착한 친구는 복을 받아 잘 살지만 악한 친구는 벌을 받는다는 의식이 잘 나타나 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좋은 친구가 곁에 있음에 항상 감사하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자신의 속마음까지 알아주는 참다운 친구는 과연 내 곁에 몇 명이나 있을까?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사회에서 점점 퇴색해가는 친구의 우정이 그리울 때가 많아진다. 그만큼 나이가 들면 친구의 우정이 그립다는 것이다.
탈무드에 애매한 친구가 되기보다 뚜렷한 적이 되라는 말이 있듯이 일단 가깝게 느껴지면 마음의 문을 열고 깊은 관계를 유지하며 노후까지 간담상조(肝膽相照)와 같은 친구의 우정을 나누며 살아가야겠다.
▶️ 肝(간 간)은 ➊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육달월(月=肉; 살, 몸)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干(간; 근원의 뜻)으로 이루어졌다. 생기(生氣)의 근원이 되는 장기(臟器)의 뜻이다. ➋형성문자로 肝자는 '간'이나 '진심'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肝자는 ⺼(육달 월)자와 干(방패 간)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여기서 ⺼자는 肉(고기 육)자가 변형된 것이니 肝자는 사람의 '신체'와 관련된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 干자는 고대에 사용하던 '방패'의 일종을 그린 것이다. 옛사람들이 인체의 기능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肝자의 구조로만 본다면 '방어 역할을 하는 기관'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래서 肝(간)은 (1)간장(肝臟) (2)음식(飮食)에 쓰는 짐승의 간장(肝臟) 등의 뜻으로 ①간(肝), 간장(肝臟) ②진심(眞心) ③충심(衷心: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참된 마음) ④요긴함(要緊-) ⑤마음 ⑥요긴(要緊)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담즙을 담낭으로 운반하는 간장 조직 안의 가는 관을 간관(肝管), 좌우로 나누어진 간의 한쪽 부분을 간엽(肝葉), 어린아이가 소화 불량으로 푸른 똥을 누고 자꾸 누는 병증을 간기(肝氣), 어린아이가 소화 불량으로 열이 심하고 자주 놀라는 병을 간열(肝熱), 부녀자의 얼굴에 갈색이나 황갈색의 얼룩이 생기는 병을 간반(肝斑), 간이 약하여 얼굴에 핏기가 없고 힘살이 느즈러지며 눈이 어두워지는 병을 간허(肝虛), 어떤 병이 간 기능의 장애로 생기는 성질을 간성(肝性), 간에 생기는 암의 통칭을 간암(肝癌), 간에 염증이 생기는 질환의 총칭을 간염(肝炎), 생선의 간에서 뽑은 기름을 간유(肝油), 소나 염소나 노루 따위의 간으로 만든 회를 간회(肝膾), 소의 간을 넓고 길게 썰어서 만든 적을 간적(肝炙), 간과 뇌 또는 육체와 정신을 간뇌(肝腦), 간과 쓸개 또는 속마음을 간담(肝膽), 간장과 신장 또는 마음을 간신(肝腎), 간과 창자 또는 몹시 애타는 마음을 간장(肝腸), 간과 허파 또는 정성스러운 마음을 간폐(肝肺), 썩 요긴함 또는 썩 중요함을 간요(肝要), 마음에 깊이 새기어 잊지 않음을 간명(肝銘), 썩 요긴한 문장을 간문(肝文), 간과 뇌장을 땅에 쏟아낸다는 뜻으로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돌보지 않고 힘을 다함을 이르는 말을 간뇌도지(肝腦塗地), 간과 쓸개를 내놓고 서로에게 내보인다는 뜻으로 서로 마음을 터놓고 친밀히 사귐을 이르는 말을 간담상조(肝膽相照), 보는 관점에 따라 비슷해 보이는 것이라도 전혀 다르고 가까운 것이라도 멀리 보인다는 말을 이르는 말을 간담초월(肝膽楚越), 사물은 보기에 따라 몹시 닮은 것도 서로 다르게 보임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간담호월(肝膽胡越), 아홉 번 구부러진 간과 창자라는 뜻으로 굽이 굽이 사무친 마음속 또는 깊은 마음속을 이르는 말을 구곡간장(九曲肝腸), 간과 쓸개를 모두 내뱉는다는 뜻으로 솔직한 심정을 속임없이 모두 말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을 토진간담(吐盡肝膽), 한 토막의 간과 창자라는 뜻으로 주로 애달프거나 애가 탈 때의 마음을 형용하여 이르는 말을 일촌간장(一寸肝腸), 쥐의 간과 벌레의 팔이라는 뜻으로 매우 쓸모없고 하찮은 것을 이르는 말을 서간충비(鼠肝蟲臂) 등에 쓰인다.
▶️ 膽(쓸개 담)은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육달월(月=肉; 살, 몸)部와 음(音)을 나타내는詹(담)으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1)쓸개 (2)담력(膽力) 등의 뜻으로 ①쓸개, 담 ②담력(膽力: 겁이 없고 용감한 기운) ③마음 ④배짱, 기백(氣魄: 씩씩하고 굳센 기상과 진취적인 정신) ⑤품은 뜻 ⑥담대(膽大)하다 ⑦씻다 ⑧닦다, 문지르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쓸개를 담낭(膽囊), 사물을 두려워하지 않는 기력을 담력(膽力), 쓸개관이나 쓸개주머니에 생기는 결석을 담석(膽石), 담력과 지혜를 담지(膽智), 담력이 약함 또는 겁이 많음을 담약(膽弱), 담력이 큼으로 겁이 없이 용기가 많음을 담대(膽大), 담력이 작음으로 겁이 많고 배짱이 없음을 담소(膽小), 몹시 놀랍거나 불안하여 가슴이 두근거림을 담도(膽掉), 담과 용기로 대담하고 용감함을 담용(膽勇), 담이 써늘해지도록 몹시 두려움을 담한(膽寒), 담력과 지략으로 대담하고 꾀가 많음을 담략(膽略), 간과 쓸개를 간담(肝膽),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맥이 풀리는 것을 낙담(落膽), 무섭거나 두렵거나 부끄러운 일을 함에 있어 겁을 내지 않는 상태를 대담(大膽), 곰의 쓸개를 웅담(熊膽), 매우 큰 쓸개를 두담(斗膽), 간담이 서늘할 정도로 두려움을 섭담(懾膽), 담력을 강하게 기르는 일을 연담(練膽), 큰마음을 먹고 대담하게 일을 하는 모양을 방담(放膽), 적의 쓸개라는 뜻으로 적의 마음을 이르는 말을 적담(敵膽), 담대하면서도 치밀한 주의력을 가져야 한다는 뜻으로 문장을 지을 때의 마음가짐을 이르는 말을 담대심소(膽大心小), 섶에 눕고 쓸개를 씹는다는 뜻으로 원수를 갚으려고 온갖 괴로움을 참고 견딤을 이르는 말을 와신상담(臥薪嘗膽), 간과 쓸개를 내놓고 서로에게 내보인다는 뜻으로 서로 마음을 터놓고 친밀히 사귐을 이르는 말을 간담상조(肝膽相照), 몹시 놀라 얼이 빠지고 정신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낙담상혼(落膽喪魂), 보는 관점에 따라 비슷해 보이는 것이라도 전혀 다르고 가까운 것이라도 멀리 보인다는 말을 간담초월(肝膽楚越), 간을 토하고 쓸개를 뿌린다는 뜻으로 마음속에 품은 바를 숨김 없이 드러내 보임을 이르는 말을 토간역담(吐肝瀝膽), 노한 쓸개와 뻣뻣한 창자라는 뜻으로 몹시 성이 난 상태를 이르는 말을 노담탱장(怒膽撐腸), 뼈가 놀라고 담이 떨어진다는 뜻으로 몹시 놀람을 형용하여 이르는 말을 골경담락(骨驚膽落), 눈을 크게 뜨고 담력으로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곧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용기를 내어 일을 한다는 말을 명목장담(明目張膽), 간과 쓸개를 모두 내뱉는다는 뜻으로 솔직한 심정을 속임없이 모두 말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을 토진간담(吐盡肝膽), 섶나무 위에 앉고 쓸개를 걸어 두고 맛본다는 뜻으로 원수를 갚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함을 이르는 말을 좌신현담(坐薪懸膽) 등에 쓰인다.
▶️ 相(서로 상, 빌 양)은 ❶회의문자로 재목을 고르기 위해 나무(木)를 살펴본다는(目) 뜻이 합(合)하여 나무와 눈이 서로 마주본다는 데서 서로를 뜻한다. 나무에 올라 지세(地勢)를 멀리 넓게 보는 모습, 목표를 가만히 보다, 보고 정하는 일, 또 보는 상대, 상대의 모습 따위의 뜻으로도 쓴다. 지상에서 제일 눈에 잘 띄는 것은 나무이기 때문에 木과 目으로 합(合)하여 쓴다는 설도 있다. ❷회의문자로 相자는 '서로'나 '모양', '가리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相자는 木(나무 목)자와 目(눈 목)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相자는 마치 나무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그려졌다. 그래서 相자의 본래 의미도 '자세히 보다'나 '관찰하다'였다. 相자는 나에게 필요한 목재인지를 자세히 살펴본다는 의미에서 '자세히 보다'를 뜻했었지만, 후에 나무와 눈의 대치 관계에서 착안해 '서로'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相(상, 양)은 (1)얼굴의 생김새 (2)각 종류(種類)의 모양과 태도(態度) (3)그때그때 나타나는 얼굴의 모양새 (4)옛적 중국(中國)의 악기(樂器)의 한 가지. 흙으로 만들었는데 모양은 작은 북과 같음. 손에 들고 장단(長短)을 맞추어 두드림 (5)물리적(物理的), 화학적(化學的)으로 균질(均質)한 물질의 부분, 또는 그리한 상태. 기상(氣相), 액상(液相), 고상(固相)의 세 가지가 있음 (6)명사(名詞) 뒤에 붙어서 그 직위(職位)가 각료(閣僚)임을 나타내는 말 (7)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서로 ②바탕 ③도움, 보조자(補助者) ④시중드는 사람, 접대원(接待員) ⑤담당자(擔當者) ⑥정승(政丞) ⑦모양, 형상 ⑧방아타령 ⑨악기(樂器)의 이름 ⑩자세히 보다 ⑪돕다 ⑫다스리다 ⑬가리다, 고르다 ⑭따르다 ⑮이끌다 ⑯점치다 ⑰생각하다 그리고 ⓐ빌다, 기원하다(양) ⓑ푸닥거리하다(양)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서로 호(互)이다. 용례로는 서로 서로를 상호(相互), 서로 도움을 상조(相助), 두 가지 이상의 요소가 서로 효과를 더하는 일을 상승(相乘), 서로 어울림이나 상호 간에 교제함을 상고(相交), 서로 짝짐이나 서로 함께 함을 상반(相伴), 서로 반대됨 또는 서로 어긋남을 상반(相反), 서로 믿음이나 서로 신용함을 상신(相信), 두 가지 일이 공교롭게 마주침을 상치(相値), 서로 같음을 상동(相同), 서로 고르게 어울림이나 서로 조화됨을 상화(相和), 남녀가 불의의 사통을 함을 상간(相姦), 서로 마주 보고 있음이나 마주 겨룸 또는 그 대상을 상대(相對), 생김새나 모습을 양상(樣相), 잘 알려지지 않거나 잘못 알려지거나 감추어진 사물의 참된 내용이나 사실을 진상(眞相), 어떤 사물이 다른 사물과의 관계 속에서 가지는 위치나 양상을 위상(位相), 실제의 모양을 실상(實相), 사람의 얼굴의 생김새를 인상(人相), 겉에 드러나는 추한 몰골을 흉상(凶相), 서로서로 도움을 일컫는 말을 상부상조(相扶相助), 사랑하는 남녀가 서로 그리워해 잊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상사불망(相思不忘), 서로 돕는 일을 일컫는 말을 상호부조(相互扶助), 서로 바라보이는 가까운 곳을 이르는 말을 상망지지(相望之地), 남녀가 서로 그리워하면서도 만나보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상사불견(相思不見), 오직 생각하고 그리워함을 일컫는 말을 상사일념(相思一念), 서로 사랑하고 서로 도움을 일컫는 말을 상애상조(相愛相助), 서로 사랑하는 도리를 일컫는 말을 상애지도(相愛之道), 윗물이 흐리면 아랫물도 맑지 않다는 뜻으로 윗사람이 옳지 않으면 아랫사람도 이를 본받아서 행실이 옳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상즉불리(相卽不離), 서로 욕하고 싸움을 일컫는 말을 상욕상투(相辱相鬪), 서로 높이고 중하게 여김을 일컫는 말을 상호존중(相互尊重) 등에 쓰인다.
▶️ 照(비출 조)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연화발(灬=火; 불꽃)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昭(소, 조)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옛날엔 날일(日; 해)部와 불 화(火)部는 글자로 쓸 때 같이 취급하였기 때문에 昭는 ‘햇빛, 불이 밝다’의 뜻으로 썼다. 나중에 불 화(火)部를 더하여 照(조)라고 써 역시 해와 불의 양쪽 뜻을 나타냈다. 또 구별할 때는 昭(소)를 밝다(형용사), 照(조)를 비치다로 쓴다. ❷회의문자로 照자는 ‘비추다’나 ‘밝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照자는 火(불 화)자와 昭(밝을 소)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照자의 금문을 보면 단순히 횃불을 들고 있는 모습과 召(부를 소)자가 결합되어 있었다. 여기서 召자는 발음역할을 한다. 소전에서는 횃불을 들고 있는 모습이 炅(빛날 경)자로 바뀌게 되었고 해서에서는 昭자와 火자가 결합한 照자가 ‘비추다’를 뜻하게 되었다. 그래서 照(조)는 ①비치다 ②비추다 ③밝다, 환하다 ④견주어 보다 ⑤대조(對照)하다 ⑥알리다 ⑦빛, 햇빛 ⑧영상 ⑨거울 ⑩증서(證書) ⑪증거(證據)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비칠 영(映)이다. 용례로는 단체나 기관 따위에서 어떤 사람의 인적 사항 따위를 관계 기관에 알아보는 것을 조회(照會), 빛으로 밝게 비추는 것 또는 그 빛을 조명(照明), 빛이 비치는 그림자 또는 그림이나 사진 따위에 의한 초상을 조영(照影), 햇빛 따위가 내리쬠 또는 광선 따위를 쬠을 조사(照射), 잘잘못을 보아 살핌을 조찰(照察), 맞은 편에 있는 벽을 조벽(照壁), 틀림이 있는지 없는지를 조사하기 위하여 서로 맞추어 살펴 봄을 조열(照閱), 서로 맞대어 보아 살핌을 끝냄을 조흘(照訖), 대조하여 보아 맞는지 안 맞는지를 검토함을 조교(照校), 전례에 비추어 상고함을 조례(照例), 둘 이상의 사물이나 현상 또는 말과 글의 앞 뒤 따위가 서로 일치하여 잘 어울림을 조응(照應), 대조하여서 봄을 조감(照鑑), 물건을 비추어 보는 거울을 조경(照鏡), 글을 하나하나 맞춰 보면서 베껴 씀을 조등(照謄), 밝게 비치어서 빛남을 조요(照耀), 참고로 맞대 본다는 말을 참조(參照), 둘을 마주 대서 비추어 비교함을 대조(對照), 고요한 마음으로 사물을 관찰하거나 음미함을 관조(觀照), 더듬어 찾으려고 멀리 내비침을 탐조(探照), 자기 스스로를 반성 관찰하는 일을 자조(自照), 실제의 형상을 그대로 찍어냄을 사조(寫照), 저녁 햇빛을 이르는 말을 낙조(落照), 저녁에 지는 햇빛을 만조(晩照), 간과 쓸개를 내놓고 서로에게 내보인다는 뜻으로 서로 마음을 터놓고 친밀히 사귄다는 말을 간담상조(肝膽相照), 자기의 발 밑을 잘 비추어 돌이켜 본다는 뜻으로 가깝고 친할수록 더욱 조심해야 함을 이르는 말을 각하조고(脚下照顧)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