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레터 8/산실産室]그 곳에서 고종명考終命을?
일요일의 남자?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정답’은 따논 당상일 것이다. 1927년생 송해 선생이야말로 ‘일요일의 남자’였음을 누가 부정할 수 있으랴. 요즘 ‘국민OO’이라는 지칭이 하도 흔해 인플레됐지만, 송해는 34년간 ‘전국노래자랑’을 이끈 레전드급 ‘국민MC’였다. 개인적으로야 22살에 어머니 형제들과 헤어져 영영 만나지 못한 실향민이고 참척慘慽까지 당해 불행하지만, 남녀노소 전국민으로부터 사랑을 받은 '딴따라의 대부'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이 양반 ‘죽을 복’을 타고 나신 것같다. 수척은 했지만, 전날까지도 지인들을 만났는데, 다음날 집에서 돌아가신 것을 따님이 발견했다고 한다. 송해 선생님의 별세소식을 접하며 ‘오복五福’중의 하나라는 ‘고종명考終命’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오늘 새벽 3시, 또록또록 빗소리에 잠이 깼다. 누워 있던 편백침대자리는 나의 진짜 탯자리, 즉 산실産室이다. 어머니는 1955년부터 바로 이 자리에서 형을 비롯해 여동생 세 명까지 내리 5남매를 나셨다. 어찌 유서 깊은 장소가 아니겠는가. 원래는 ‘골방’이라고 불렸고 벽이 처져 문도 있었는데, 대낮에도 어두컴컴한, 왠지 조금 무서웠던 곳이다. 지난번 리모델링할 때 벽을 터 방을 넓혔다. 그 방 횃대에는 검은 천의 주머니가 매달려 있었는데, 그 속에는 우리 7남매의 태胎가 고스란히 들어있었다. 실제로 본 적도 있는 태와 그 주머니는 언제 없어졌을까? 그리고 왜 그것을 그곳에 매달아놓으신 걸까? 어머니는 그 캄캄한 방문을 열고 아기를 낳으러 들어가신 것이다. 댓돌 위에 고무신을 거꾸로 벗어놓고 들어가셨다던가. 지금으로서는 상상이 안되는 일 중의 하나가 옛 어머니들의 출산과정이다. 위대하다. 들판에서 논을 매시다가 점심을 차리려 들어오는데 산기産氣가 있어 점심시간에 나를 낳으셨다고 한다(오시午時). 그러고도 사흘만에 몸을 추슬러 다시 논에 나가신 우리 어머니. 얼마나 힘드셨을까? 돌아가신 지 3년이 넘었으니, 이제 육탈肉脫이 다 되셨을까? 통풍通風(세상 구경)을 시켜드려야 진짜 효자라는데, 요즘 세상에 그런 일이 어디 흔할까?
아무튼, 이 새벽에 불쑥 든 생각이 내가 태어난 바로 이 자리에서 내가 숨을 거둘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복이라면 최고의 복일 것같다. 아니, 꼭 그렇게 안된다한들, 자기가 태어난 자리에서 이제 날마다 몸을 눕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그런 점에서라도 나는 참 대단히 행복한 넘이 아닌가. 소원대로 그리 된다면, 태어난 자리에서 눈을 영영 감는 게 나라면 행운아중의 행운아. 어쩌면 기네스북에도 오르지 않을까. 흐흐. 이제 이 시대는, 잘 사는 것(웰빙. WELL BEING)만큼 잘 죽는 것(웰 다이잉. WELL DYING)이 못지 않게 중요하게 되지 않았는가. 머리맡 반대편 벽에는 오랜 친구가 선물한 ‘달마도의 대가’ 범주梵舟(2018년 해탈. 세수 77세) 스님이 그린 ‘한산습득도’(寒山拾得: 당나라때의 유명한 두 스님)가 걸려 있다. 화제畫題가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이어서 더욱 인상적이다. 그렇다. 바로 이 자리에서 ‘빈 손’으로 왔는데, 몇 년 후가 될지 모르지만, 바로 이 자리에서 ‘빈 손’으로 가는 인생을 꿈꾸어본다. 바로 그럴려고 귀향을 하여 생가生家를 찾지 않았던가. 희망사항이 실천사항이 되기를 간절히 꿈꾸어본다. 흐흐.
모처럼 비온 김에 대문밖 꽃밭에 무더기로 자란 양아욱과 백일홍을 솎아 띄엄띄엄 옮겨보려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면서, 흔히 말하는 오복五福을 생각해봤다. 수壽, 복福,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을 이르는데(출처: 서경書經 주서周書 홍범편洪範篇), 어느 곳에서는 유호덕와 고종명 대신 '귀貴'와 '자손중다子孫衆多'를 넣기도 한다고 한다. 혹자는 건치健齒를 이르기도 하는데, 치아의 건강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리라. 수와 복은 우리 수저나 베개 등에도 새겨져 있는, 누구나 바라는 것임에 틀림없지만, 유호덕은 조금 어렵다. 강녕이야 몸이 건강하고 마음이 편안함을 일컫는 것이지만, 덕德을 좋아하고 이를 주위에 펼치는 일은 성인이나 현인들의 몫이 아니겠는가. 부단히 노력할 일. 또한 제 명대로 살다가 편히 죽는 것을 바라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고종명을 하신 송해 선생님은 확실히 ‘죽을 복’을 타고 나신 것같다. 삼가, 우리 아버지와 갑인 송 선생님의 명복을 빈다.
첫댓글 편백침대 향이 멀리 포항까지 느껴진다네,
우천님 바람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길 기도함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