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족보가 말해주는 것
마1:1~17
마태복음1장은 예수님의 족보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족보를 보면 누가 누구를 낳고, 낳고, 낳고가 계속 이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를 두고 어떤 사람은 “마태복음은 산부인과 복음이냐?”고 비아냥거리기도 합니다. 마1:17을 봅시다. (생략)
예수님의 족보가 말해주는 첫 번째 특징은 무엇일까요? 창5:4~11에는 아담의 족보가 나옵니다. 이 족보의 시작을 보면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구백삼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다음에는 “셋은 누구를 낳고 죽었으며. 에노스는 누구를 낳고 죽었으며, 게난은 누구를 낳고 죽었으며”라며 계속 이어집니다.
아담의 족보에는 “누가 누구를 낳고 죽었더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족보에는 “죽었더라”는 기록이 없습니다. 계속 낳고, 낳고, 낳고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아담의 족보가 죽음을 예표하는 족보라면, 예수님의 족보는 “생명”을 예표하는 족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생명의 역사를 가장 깊게 다룬 책이 요한복음입니다. 요5:24을 보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生命으로 옮겼느니라”
“사망에서 生命으로 옮겼느니라” 생명의 복음입니다. 예수님의 족보에는 5명의 여성이 나옵니다. 당시의 관행을 깨고 여성들의 이름이 족보에 들어간 이유는 어디에 있었을까요? 그 여성들은 “신사임당”같이 훌륭했던 여성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문에 큰 먹칠했던 여성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여성들이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갔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여기에서 예수님 족보의 두 번째 특징이 나옵니다. 3절에 “다말”, 5절에 “라합”, 6절에 “우리야의 아내(밧세바)”, 이 세 여성은 몸 관리를 잘 못 했던 여성들입니다. 몸매를 S라인으로 만들지 못해 뚱뚱했다는 뜻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받을 만큼 부끄러운 짓을 했다는 뜻입니다. 나는 그녀들의 처신에 대해서는 입에 담고 싶지 않습니다. 그녀들이 어떤 여성들이었는지 알고 싶다면 직접 성경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5절에 나오는 “룻”은 이방인인 데다가 가문도 시원치 않았고 또 과부였습니다. 다섯 명 중에 그나마 제일 나은 사람은 16절에 나오는 “마리아”였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도 뭐 내놓을 만한 것이 없는 촌뜨기 여성으로 엘리트 여성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엘리트를 좋아했던 지도자가 있습니다. 그는 공자였습니다. 그는 엘리트들을 제자로 삼아 세상을 평정하겠다고 나섰는데 그게 유교였습니다. 유교의 특징은 서열(序列) 즉 줄 세우기에 있었습니다. 최고 엘리트로부터 제일 못난이까지 줄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학벌이 없고 가문이 좋지 못한 사람은 평생토록 밑바닥에서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모 대학 교수는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까지 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공자와 정반대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엘리트가 아닌 어리바리하고 밑바닥에서 살던 사람들을 제자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땅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잘난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신분과 상관없이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올인(all in)하는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족보가 말해주는 세 번째 특징은 민수기 33장에 나옵니다. 민33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까지의 노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어디에서 출발했는지 민33:3을 보겠습니다.
“그들이 첫째 달 열다섯째 날에 라암셋을 떠났으니 곧 유월절 다음 날이라”
저들은 애굽의 라암셋에서 첫출발을 했습니다. 그다음 5절을 보십시다.
“이스라엘 자손이 라암셋을 떠나 숙곳에 진을 치고”
라암셋에서 출발하여 첫 번째로 진을 쳤던 곳이 숙곳입니다. 두 번째로 진을 쳤던 곳은 6절에 나옵니다.
“숙곳을 떠나 광야 끝 에담에 진을 치고”
이렇게 계속 진을 치며 가다가 마지막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에 진을 쳤던 곳이 48절에 나옵니다.
“아바림 산을 떠나 여리고 맞은편 요단강 강가 모압 평지에 진을 쳤으니”
모압 평지에 진을 쳤을 때가 41번째 진을 쳤을 때였습니다. 신34:1절과 5절을 보겠습니다.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느보산에 올라가 여리고 맞은편 비스가 산꼭대기에 이르매 여호와께서 길르앗 온 땅을 단까지 보이시고...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41번째 진을 쳤던 모압 평지에서 모세가 죽었습니다.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의 통솔하에 요단강을 도강했습니다. 그리고 꿈에도 그리던 목적지인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42번째 진을 쳤습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 마1:17을 보겠습니다.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더라"
14대, 14대, 14대를 모두 더하면 42대가 됩니다. 42대 끝에 가서 누가 태어났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진을 쳤던 사건은 무슨 사건을 예표하고 있습니까? 장차 나타날 예수님의 탄생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족보가 말해주는 세 번째 특징입니다.
예수님의 족보가 말해주는 네 번째 특징은 마1:2~16에 나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고대시대에서는 여자가 자식을 낳은 것이 아니라 집안의 家長이 자식을 낳는다는 식으로 기록했습니다. 그러면 마1:16절下을 봅시다.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이상하지요? 기존 기록 방식대로라면 “요셉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고 해야 맞는데 요셉의 이름 대신에 마리아의 이름이 들어갔습니다. 왜 요셉 대신에 마리아의 이름이 들어갔을까요? 이 사실을 알려면 구약 이사야 7:14을 봐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그 처녀가 누구입니까? 바로 마리아입니다. 이래서 예수님의 족보 마지막에 가서 요셉 대신에 마리아의 이름이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족보에 기록된 5명의 여성들을 보면 어떤 죄인일지라도, 어떤 밑바닥의 인생일지라도 “희망을 포기하고 살면 안 된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