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불교미술사에서 특정 양식에 우드야나왕(우전왕)'과 '아쇼카왕(아육왕)'이라는 왕의 이름을 붙인 역사적 유래는 무엇일까? 그것은 두 인물이 불교 역사상 '최초로 불상을 만든 인물'이자 '불법을 크게 진흥한 성왕(전륜성왕)'으로 추앙받는 전설적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아소카상(아육왕상, 阿育王像)의 유래는 불교 통치자와 전륜성왕 전설에서 시작되었다. BC 3세기 인도 마우리아 왕조의 아쇼카(Aśoka, 아육왕) 대왕은 인도 대륙을 통일한 후 불교에 귀의하여 전 국토에 8만 4천 개의 탑과 불상을 세웠다는 이상적인 불교 군주(전륜성왕)이다.
신라나 중국의 조각가들이 단순히 새로운 스타일의 불상을 조각한 것이 아니라, "이 불상은 부처님 생전 우전왕이 만든 최초의 불상(우드야나식)을 본뜬 것이다" 혹은 "아쇼카왕이 만든 신성하고 이상적인 불상(아소카식)의 도상을 따른 것이다"라는 정통성과 신성성을 부여하기 위해 역사적·전설적 왕의 이름을 양식 명칭으로 붙여 사용해 온 것이다.
첫댓글 양평리 석조여래입상(居昌 陽平里 石造如來立像)은 통일신라 시대(8세기 후반~9세기경) 작품이다.
전체 높이 약 3.7m, 불상 높이 약 2.75m의 대형 석불이다.
머리 위에 얹어진 버섯 모양의 원형 천개(天蓋)는 불상을 보호하고 장식하기 위해 근래에 따로 만들어 얹어 놓은 것이다.
머리는 소라 모양의 나발(螺髮)을 하고 있으며, 육계는 매우 작다. 신라 후기의 특징인 다소 비만하면서도 이목구비가 선명하고 자비스러운 인상을 띤다.
양 어깨를 모두 덮은 통견(通肩)을 입고 있으며, 양 다리 쪽으로 얕은 U자형 옷주름이 유연하게 늘어져 있다.
오른손은 차렷 자세로 내리어 옷자락을 살짝 잡고 있고, 왼손은 가슴 높이에서 검지만 곧게 펴고 엄지와 중지를 마주 대고 있는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다.
불상 발밑에는 아래를 향한 겹연꽃무늬(複瓣覆蓮)가 새겨진 연화대좌가 불상을 받치고 있다.
불상의 옷주름이 '파도가 치듯 물결치는 모양' 번파식 옷주름(飜波式 衣紋)은 통일신라 후기 불상 조각의 매우 중요한 미술사적 특징이다.
옷주름의 단면을 보았을 때, 한쪽은 비교적 높고 경사가 급하며 다른 한쪽은 완만하게 흘러내려 '나직한 두 갈래의 파도 물결(파곡)'이 겹쳐 있는 것처럼 입체감 있게 조각하는 기법이다.
배 부분에서부터 내려오는 옷주름이 양 다리 쪽으로 갈라져 내려가며 왼쪽과 오른쪽 다리 위에서 각각 완만한 U자형을 그리며 반복된다.
인도 우전왕이 처음 만들어 전해졌다는 전설적인 불상 양식인 우전왕상(優塡王像) 계통으로, 중국 당나라를 거쳐 통일신라 8세기 후반~9세기에 한국에 널리 유행했다.
통일신라 전성기(8세기 중엽, 예: 석굴암 본존불)의 옷주름이 입체적이고 얇아 신체의 곡선을 그대로 드러냈다면, 8세기 후반~9세기로 넘어가면서 옷주름이 훨씬 선명하고 대칭적인 규칙성(도식화)을 띠게 된다.
거창 양평리 석조여래입상뿐만 아니라, 경주 굴불사지 석조여래입상, 성주 노석리 마애여래입상 등 통일신라 후기 석불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대표적인 양식적 특징이다.
뒷면 옷주름 표현은 앞면의 정교한 묘사에 비해서는 간략하지만, 완전한 원각(3차원 입체 조각)으로서의 형태와 양식을 충실히 갖추고 있는 점이 큰 특징이다.
등 위쪽에서 아래로 길게 내려오는 Y자형 중앙 띠(대의 띠)를 중심으로, 양 옆과 아래쪽으로 완만한 U자형 또는 弧(호) 형태의 선각 옷주름이 이어진다.
앞면 다리 부분처럼 도식적이고 선명한 U자형 번파식(翻波式) 문양을 뚜렷하게 입체적으로 새기기보다는, 뒷면은 신라 후기 특유의 평면적이고 간결한 음각/양각 선으로 처리되어 있다.
단순히 앞면만 조각하고 뒷면은 평평하게 둔 마애불이나 벽면 불상이 아니라, 360도 전체를 돌려가며 입체로 조각한 환조(丸雕) 석불임을 잘 보여준다.
불상의 왼쪽 뒤편 측면 및 후면에 보이는 옷자락은 대의(大衣, 겉옷)의 끝단과 군의(裙衣, 치마)의 입체적 수용 방식을 잘 보여주는 미술사적 특징을 담고 있다.
불상의 왼쪽 팔과 등 뒤편을 따라 내려오는 대의(겉옷) 자락의 끝단이 완만한 S자형 파도 모양(S자형 굴곡)을 그리며 지그재그 형태로 자연스럽게 늘어뜨려져 있다.
앞면에서 흘러넘어온 입체적인 옷감이 측면과 후면으로 연결되면서, 긴 원기둥 모양의 신체를 따라 수직으로 길게 떨어지는 형태를 취한다.
상체의 대의 자락 밑으로 군의(속치마)의 수직 주름이 선각 및 약한 양각으로 드러나며, 옷감이 여러 겹 겹쳐져 밑으로 떨어지는 착의법 구조를 정교하게 입체화했다.
앞면의 U자형 번파식 문양뿐만 아니라, 왼쪽 옆면과 뒷면까지 이어지는 옷자락의 S자형 및 물결무늬 주름을 통해 옷감이 신체를 3차원적으로 둘러싸고 있음을 사실적으로 입체 표현했다.
전성기(8세기 중엽)의 유연하고 자연스러운 옷주름에 비해 8세기 후반~9세기로 넘어가며 선이 다소 두껍고 규칙적인 패턴(도식화)을 띠는 경향이 왼쪽 및 후면 옷자락의 굵고 선명한 주름선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통일신라 불상 제작 기법상 예배자가 불상 주변을 돌며 참배하는 탑돌이(순례) 문화를 고려하여 뒷면까지 옷의 구조(통견의 착의법)를 생략하지 않고 꼼꼼히 새겨 넣었다.
8세기 중엽 전성기 신라 불상에 비해 8세기 후반~9세기로 넘어가면서 "보이지 않는 뒷면은 정교한 입체감보다 간략한 선각 위주로 마무리하는 도식화·실용화 경향"이 나타나는데, 거창 양평리 석불의 뒷면 역시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앞면의 화려한 U자형 번파식 문양과 뒷면의 수수한 선각 옷주름이 대비를 이루면서도 전체적인 착의 구조가 완벽히 이어지도록 조각되어 있다.
양평리 석조여래입상은 앞면의 화려한 U자형 번파식 옷주름뿐만 아니라, 뒷면의 Y자형 띠 구조, S자형 측·후면 옷자락, 그리고 신라 후기 석불 특유의 수수한 선각 마무리까지 원각(환조) 석불로서의 매력을 사방에 모두 담고 있는 작품이다.
신라 조각가가 석불 전체를 어떻게 구상하고 새겨나갔는지 그 숨은 숨결을 훨씬 더 생생하게 관찰할 수 있어 더욱 남다르고 특별한 의미로 기억될 것 같다.
우드야나 양식의 양평리 석조여래좌상 옷주름과 달리
목 아래부터 발끝까지 옷주름이 갈라지지 않고 몸 전체를 하나의 커다란 동심원상 U자형으로 감싸며 내려오는 것을 아소카상(아육왕상) 양식이라 한다. 양산 미타암 석조아미타여래입상이 대표적인 예이다.
동아시아 불교미술사에서 특정 양식에 우드야나왕(우전왕)'과 '아쇼카왕(아육왕)'이라는 왕의 이름을 붙인 역사적 유래는 무엇일까?
그것은 두 인물이 불교 역사상 '최초로 불상을 만든 인물'이자 '불법을 크게 진흥한 성왕(전륜성왕)'으로 추앙받는 전설적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우드야나상(우전왕상, 優塡王像)의 유래는 최초의 불상 조성 전설에 기인한다. 경전에 따르면, 석가모니 부처님이 돌아가신 어머니(마야부인)에게 설법하기 위해 잠시 천상세계(도리천)로 올라가 세 달 동안 비우신 적이 있다.
이때 인도의 코삼비국 왕인 우드야나(Udayana, 우전왕)가 부처님을 너무나 그리워한 나머지 병이 났고, 신하들과 함께 전단향나무를 깎아 부처님의 실제 모습을 본뜬 불상을 최초로 만들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이후 부처님이 지상으로 돌아왔을 때 이 목조 불상이 부처님을 맞이하며 일어섰다는 신비로운 설화가 더해지면서, "우전왕이 만든 최초의 부처님 서 있는 모습(입상)"이 하나의 전형적인 도상 모델로 자리 잡게 되었다.
따라서 '양 다리로 갈라지는 U자형 옷주름을 가진 입상'을 우전왕의 전단향나무 불상 양식을 본땄다 하여 우드야나식(우전왕상식)이라 부르게 되었다.
아소카상(아육왕상, 阿育王像)의 유래는
불교 통치자와 전륜성왕 전설에서 시작되었다.
BC 3세기 인도 마우리아 왕조의 아쇼카(Aśoka, 아육왕) 대왕은 인도 대륙을 통일한 후 불교에 귀의하여 전 국토에 8만 4천 개의 탑과 불상을 세웠다는 이상적인 불교 군주(전륜성왕)이다.
중국 남북조 시대와 신라 등에서는 "아쇼카왕이 만든 이상적인 불상이 바다를 떠돌다 우리 나라에 왔다"는 감통(感通) 설화가 유행했다.
당시 인도 굽타 왕조(마투라·사르나트)에서 유행하던 '몸에 밀착되어 얇은 물결처럼 U자로 흐르는 부드러운 옷주름 양식'이 동아시아로 건너오면서, 이를 이상적 군주인 아쇼카왕의 이름과 연결하여 아소카식(아육왕상식)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신라나 중국의 조각가들이 단순히 새로운 스타일의 불상을 조각한 것이 아니라, "이 불상은 부처님 생전 우전왕이 만든 최초의 불상(우드야나식)을 본뜬 것이다" 혹은 "아쇼카왕이 만든 신성하고 이상적인 불상(아소카식)의 도상을 따른 것이다"라는 정통성과 신성성을 부여하기 위해 역사적·전설적 왕의 이름을 양식 명칭으로 붙여 사용해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