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로 보는 茶 이야기
오마카세라는 단어는 많이 들어보셨을 터. 요즘 F&B(food & beverage·음식료)에서는 여기저기 다 ‘오마카세’를 붙이는 분위기다. 한우 오마카세, 스시 오마카세는 이미 너무나 대중화됐고 이모카세(이모님이 알아서 내주신다는 뜻)도 나왔다.
음식뿐 아니라 음료 부문에서도 오마카세가 하나둘 생기는 분위기다. 성수, 연남동 등 젊은이들이 모이는 거리에서 커피 오마카세나 티 오마카세를 만나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다. 일본어 ‘오마카세(おまかせ)’는 ‘어떤 일 처리를 타인에게 맡기는 서비스’라는 뜻이다. ‘알아서 잘 차려줄테니 당신은 그냥 즐기기만 해라’ 뭐, 그쯤 이해하면 되려나.
오마카세 중에서도 가장 신기해 보이는 ‘티 오마카세’. 맛차차, 오므오트, 코코시에나, 알디프, 티이 등 대부분 티오마카세에서는 보통 90분 동안 4가지 차와 그에 어울리는 다식을 내어준다. 가격은 3만~4만원대. 일렬로 배열된 바 자리에는 예약한 사람들만 앉을 수 있는데, 결코 저렴하지 않은 금액에도 예약이 늘 쉽지 않다.
‘티 오마카세’는 ‘찻집은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나 가는 곳’이라는 편견을 깨트리고 MZ세대 사이에서 ‘인스타 핫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어쩌면 전통이 전통에 머물지 않고, 젊은 층과의 끊임없는 소통을 통해 새로운 전통, 젊은 전통으로 다시 태어나는 대표적인 사례일 수 있겠다.
90분 동안 4가지 차 내어주는 ‘티 오마카세’
MZ세대 사이에서 ‘인스타 핫플’ 자리매김
영화 <커피 오어 티>는 바로 그 전통과 전통에 맞서는 젊은이들의 새로운 도전을 다룬 영화다. 도전하는 스타트업마다 10전 10패하면서 번아웃된 이과형 창업덕후 ‘웨이 진베이(진베이 역을 맡은 류호연은 ‘대륙의 박보검’으로 불리는 인기스타다)’, 대륙 횡단 새벽배송을 꿈꾸며 고향으로 컴백한 무한긍정 예체능형 배달덕후 ‘펑 시우빙’, 보이차의 고장에서 ‘나홀로 스벅’을 외치는 마이웨이 문과형 커피덕후 ‘리 샤오췬’. 중국에서도 맨 아래쪽, 서북쪽은 티베트와 맞닿아있고 남쪽은 미얀마, 라오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깡시골 윈난(운남)에서 의기투합한 극과 극 세 청춘의 난리법석 스토리다.
베이징에서 우연히 만난 시우빙 손을 잡고 시우빙의 고향 윈난으로 온 진베이. 시우빙은 베이징에서 죽어라 번 돈으로 고향에서 택배업을 하기 위해, 수차례 창업했다 모두 말아먹고 우울증에 시달리던 진베이는 잠시 마음의 여유를 찾기 위해, 그렇게 서로 다른 생각으로 함께 온 것. 시우빙이 야심차게 시작한 택배업에서 실패하고 의기소침해진 순간에 둘은 샤오췬을 만난다.
대대손손 차를 경작하고 차에만 얽매이는 인생이 싫어 반항의 표시로 커피를 재배하는 샤오췬. 그런데 이 샤오췬이 재배하고 로스팅하는 커피가 꽤 훌륭하다. 커피 전문가 샤오췬, 택배 전문가 시우빙, 그리고 전자상거래 전문가라고 자부하는 진베이는 힘을 모아 ‘윈난 푸얼 커피’의 영광의 순간을 만들어낸다.
<커피 오어 티>의 세 주인공 중 한 명인 ‘리 샤오췬’은 대대로 재배해온 차가 싫어 반항의 의미로 커피에 빠진다. 샤오췬이 ‘보이 커피’로 성공한 후 자신의 커피를 부친에게 맛보여 주는 장면
눈 밝은 독자는 “엥?” 하셨을지도. 윈난은 보이차의 고향이다. 보이차의 고향에서 커피라니? 영화니까 가능한 스토리겠지? <커피 오어 티>는 영화지만 스토리만큼은 완전 영화가 아니다. 사실 지금 윈난에서는 커피 재배가 대세다. 특히 보이차에서 ‘보이’는 중국 발음으로 ‘푸얼’ 인데 윈난성 푸얼시에서 이름이 유래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 푸얼시조차 커피가 장악했다. 중국산 커피의 99%가 윈난성에서, 그중 절반 이상이 푸얼시에서 생산된다. 윈난성 젊은이들도 찻집에서 차를 마시기보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이가 훨씬 많다는 전언이다. 아무리 커피에 영광을 넘겨주고 있다지만 그래도 보이차는 여전히 윈난성의 찬란한 문화유산이다. 그런데 보이차가 뭐냐고?
“서양에 와인이 있다면 동양에는 보이차가 있다.”
차를 잘 모르고 1도 관심 없는 분도 녹차와 홍차, 그리고 보이차까지는 다들 많이 들어보셨을 듯. 그중에서도 보이차는 ‘아주 귀하고 비싼 차’로 알려져 있다. 사실 보이차가 마냥 ‘아주 비싼’ 차는 아니다. 동그란 접시처럼 생긴 보이차는 보통 1편이 357g이다(접시처럼 생긴 그걸 ‘편’이라 부른다). 1편에 싼 차는 1만~2만원짜리도 있고 비싼 차는 억대를 호가하기도 한다.
최근의 찻집들은 세련되고 트렌디한 인테리어와 인스타에 제격인 비주얼의 차를 앞세워 MZ세대에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보이차는 정의가 독특하다. 중국 정부는 보이차를 ‘윈난 지역 차나무 잎을 쇄청한 원료로 만든 차’라고 정했다. 아무리 보이차 제다 방식으로 차를 만들었더라도 ‘윈난성에서 생산된 찻잎’이 아니면 보이차라 이름붙일 수 없는 셈이다.
‘귀하고 비싼’ 보이차는 어쩌다 귀하고 비싼 차의 대명사가 됐을까. ‘오래될수록 풍미와 구감이 좋아진다’는 보이차의 독특한 특성과 관련이 있다. 보통 녹차는 생산된 그해에 마시는 게 가장 좋다. 홍차는 그 기한이 3년 정도로 늘어난다. 가장 맛있게 마실 수 있는 기간을 의미하는 ‘상미기한’이 그렇다. 상미기한이 지나도 마실 수는 있지만, 향도 다 날아가고 가끔 ‘쩐내’라 부르는 이상한 맛이 나기도 한다.
보이차 1편 값 1만~2만원에서 수억대까지
‘귀하고 비싸지만’ 차를 외면하는 문화 만들어
그런데 보이차는 오래될수록 좋아진다니?
보이차는 예전부터 만든 그해에 마시는 차가 아니었다. 보이차는 만든 첫해는 물론 몇 년이 지나도 고삽미(쓰고 떫은 맛)가 강해 바로 마시기 쉽지 않다. 프랑스 보르도 와인이 적어도 10년은 숙성시켜야 ‘마시기 좋은 상태로 열리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보이차도 만든 지 얼마 안됐을 때는 뱉어버리고 싶은 맛이 나다 오랜 시간 숙성시키고 발효시키는 과정을 거치면서 비로소 부드럽고 마시기 좋은 차로 완성된다. ‘할아버지가 사들여 손자가 마시는 차’라는 말이 나온 배경이다. 이런 이유로 차가 오래될수록 가격이 높아졌다. 예를 들어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만원도 채 되지 않았던 차가 30년 정도 지나면 수백만원에도 거래가 되는 차로 업그레이드되기 다반사다(이런 가격 매커니즘 역시 와인과 똑같다).
이렇게 나이를 먹으면서 가격도 비싸진 차를 ‘노차’라고 하는데 2000년대 들어 보이차 인기가 급상승하면서 노차 가격도 천정부지로 올라갔다. 이때부터 ‘보이차는 비싼 차’라는 이미지가 생겼다.
‘보이차의 로마네 콩티’라 불리는 라오반장은 최근 보이차의 트렌드인 ‘고수차’의 최고 중심 지역이다
‘아주 귀하고 비싼’ 보이차는 그러나 차를 대중화시키기는커녕 외려 차를 외면하는 문화를 만들어낸 주역으로 꼽힌다. 이건 또 무슨 말일까.
이번에도 ‘노차’ 때문이다. 찾는 사람이 많으면 꼼수도 많아지는 법. 오래 묵은 차가 무한정 존재할 수는 없다. 당연히 ‘몇 년 되지 않았거나 갓 만든 차를 오래된 차처럼 보이게 할 수는 없을까, 그러면 비싸게 팔 수 있을 텐데’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가짜 노차를 만들어 조직적으로 유통시키는 세력도 나타났다.
이렇게 가짜로 만든 노차를 ‘작업차’라 부르는데, 작업 과정에서 오래된 차처럼 보이게 하려고 약품을 쓰는 경우까지 나타났다. 당연히 이런 차를 마시면 건강에 좋을 리가 없다. 이렇게 보이차 업계가 혼탁해지고 어지러워지면서 ‘보이차는 가짜가 대부분’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많아졌고, ‘진짜 보이차는 구할 수 없고 자칫 가짜 차를 마셨다 건강을 해칠 수도 있으니 아예 마시지 않는 게 낫다’는 인식이 팽배해졌다. 그렇게 보이차를 외면하는 문화가 널리 퍼졌다.
동그란 모양을 ‘편’이라 부른다. 보통 보이차 1편은 357g이다. 이렇게 동그랗게 만드는 것을 ‘압병한다’고 표현한다. 압병한 차를 풀어헤쳐(해괴) 한 번에 3~5g 넣고 우려 마신다
구하기 어렵고 비싼 데다 가짜 판치는 ‘노차’
‘보이차는 아예 마시지 않는 게 낫다’ 인식 확산
2010년대 이후로는 구하기 어렵고 가짜가 판치는 ‘노차’ 대신 ‘고수차(古樹茶)’로 눈을 돌리는 이가 많아졌다. 고수차는 100년 이상, 심지어 수천 년 오랜 세월을 살아낸 나무에서 따낸 찻잎으로 만든다. 고수차는 첫해부터 어느 정도 세월을 살아낸 보이차의 맛과 향을 낸다. 그래서 만든 첫해부터 편하게 바로 마실 수 있다. 그뿐인가. 고수차는 대부분 해발 1800m 이상 지역에서 야생으로 자란 차나무에서 따낸 찻잎으로 만든다.
‘차나무는 1년 위로(가지) 자라면 1년 아래로(뿌리) 자란다’라는 말이 있다. 오랜 세월 깊게 뿌리를 내린 고수차나무는 따로 물과 양분을 공급하지 않아도 자력으로 살아낸다. 1500m 이상 고지대에서는 해충도 살 수 없어 농약을 칠 필요도 없다. 이처럼 고수차는 ‘비료도 농약도 치지 않은 청정하고 마시기 편한 차’라는 인식을 얻으면서 보이차 업계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가격은? 당연히 비싸다. 100g에 수십만원대를 호가하기 일쑤다. 보통 차를 한 번 우릴 때 찻잎 3~4g을 넣는다. 100g에 30만원이면 한 번 우리는 찻잎 가격이 만원 정도 되는 셈이다. ‘보이차의 로마네콩티’로 불리는 라오반장 지역 고수차는 100g에 200만~300만원도 호가한다. 이때는 한 번 우리는 데 10만원가량 들어가니, ‘차가 아니라 금을 먹는다’는 얘기가 나올 법하다.
‘노차’에서 ‘고수차’로 한 단계 젊어지고 현대화된 보이차가 다음에는 어떤 형태로 젊어질까. <커피 오어 티>처럼 차 대신 커피로 넘어가는 대신, 다음에는 보이차를 현대적 감성에 맞게 재해석해 홈런을 치는 스토리의 영화도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중국 is 뭔들. 충분히 그런 영화도 가능해 보이지 않나. 도전하는 모든 아름다운 젊은이에게도 박수를.
김소연 기자 / 매경이코노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