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이 농구열기로 끓어오르던 1993년 겨울
그저 실업팀과 대학팀의 대결에선 실업팀의 승리가 당연하던 공식을 깨뜨려버린 대회가 바로 93-94농구대잔치
아마 이 대회부터 전국의 농구열기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는데, 그 주역은 바로 최강 연세대였다.
신촌 독수리 5형제가 잠실학생체육관에 뜨는 날이면, 그저 경기장은 발디딜 틈이 없었으며
산소같은 남자 이상민, 황태자 우지원, 스마일 김훈, 특히 대회최고의 스타 문띵 문경은 이들은 경기가 끝나면
여학생들 틈에 둘러쌓여 경기장을 빠져나가기도 힘들어보였다.
당시 농구인기에 힘입어 마지막승부(장동건 손지창 심은하 이상아 이종원 신은경)는 대히트를 쳤으며 장동건, 심은하를 대스타
반열에 올려놓았다.(김민교의 ost-마지막 승부 도 나오자마자 가요톱텐 5주연속 1위로 골든상을 수상, 김민교를 반짝스타로 만들었지만 아쉽게도 김민교는 이 노래 이후 자취를 감추었다;;)
당시 충격적이었던 문경은의 리버스덩크
이상민(183, 3학년)-김훈(190, 2학년)-우지원(192, 2학년)-문경은(190, 4학년)-서장훈(1학년, 207)
휘문고시절 초고교급선수였던 서장훈을 스카우트하고, 대회전 감독을 비롯 모든 선수들이 까까머리를 하고 전의를 불태운 독수리5형제는
당시 최강이었던 기아자동차를, 종료직전 김훈의 레이업슛으로 94-92로 꺽는 파란을 일으키며
93-94정규리그를 14전 전승 1위로 마쳤다. 이전대회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것이다.
대회 최다득점(54점), 최다3점슛(17개시도 14개성공)기록을 가진 주장 문경은은 3점슛, 드라이브인, 골밑공격 그리고 덩크슛까지
공격의 가능한 모든 옵션을 선보이며 폭발적인 공격력으로 연세대를 이끌었으며
(특히 문경은이 이 때 선보인 리버스덩크는 상당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김훈-우지원 2학년 동갑내기도 가공할만한 3점슛으로 지원사격을 했다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것이 우지원의 전공이 법학이라는 사실, 그렇다 연세대 법대생 우지원이었다)
그리고 루키 서장훈은 리바운드1위, 득점5위에 오르며 당시 최고센터였던 김유택을 앞지르는 활약을 보이며 대회mvp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최희암감독은 1가드-3포워드-1센터 로 팀을 구성했는데 이는 아마 최고의 가드 이상민이 있기에 가능했으리라.
플레이오프에선,
또다른 돌풍의 대학팀 중앙대가 기아자동차를 꺽는 이변을 일으킨다.
당시 폭발적인 활약으로 중앙대를 이끌던 터보가드 김승기는 이 대회 활약을 바탕으로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국가대표에 뽑혔고, 홍사붕은 슈팅가드의 정석을 보여줬으며
중앙대 에이스 김영만은 정확한 중거리슛, 그리고 강력한 1:1로 팀 공격을 이끌었으며 또한 수비에서는 상대팀 에이스를 철저히 봉쇄하는 질식수비를 선보였다.
김승기-홍사붕의 백코트진과 김영만-양경민의 쌍포, 그리고 포스트 조동기의 중앙대는 8강에서 기아자동차를 꺽었고
2학년이던 김병철-전희철이 이끄는 고려대는 8강전에서 아쉽게도 김진(현 sk감독)에게 결정적인 3점슛 한방을 얻어맞고
삼성전자에게 패하였다.
[4강대진]
연세대-삼성전자
중앙대-상무
[결승]
연세대-상무
당시 상무는 국가대표가드 오성식을 필두로 이상범(현 KTG감독), 이동미사일 김상식(전 오리온스 감독), 남경원(전 SBS)
한국최고의 파워포워드 정재근(현 KCC코치), 표필상(전 sbs), 이창수(현 모비스)로 팀을 구성했는데
93-94대회 최고스타 문경은
신장제한으로 2m 이상의 선수는 입단을 할 수 없었던 상무는 태생적으로 골밑이 약할 수 밖에 없었고
표필상, 이창수로는 서장훈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당시 표필상, 이창수가 그렇게 안쓰러워보일 수 없었는데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서장훈은 그저 상무의 골밑을 초토화했으며
상무는 연세대의 전승우승을 막은 걸로 위안을 삼아야 했다
(시리즈 3승 1패로 연세대 우승)
첫댓글 하지만 허재쉴떄 한번 우승먹고 허재복귀후 다시 쳐발렸음. ㅇㅅㅇ
와 라인업 진짜 쩐다 ㅋㅋㅋㅋㅋㅋㅋㅋ내가 이름아는 농구선수가 몇명없는데 연대팀에 다있었네........
전설의 라인업.jpg
저때 강동희,김유택만 인도네시아 안갔어도 골로보내는건데 쩝..
삭제된 댓글 입니다.
기아는 당시 국대라인업4명이포진해있었으니;;ㅋㅋ
허재는 제일간지나는게 연고대가 실세였던시절 소신있게 대학지명을 다소 네임벨류떨어지던 중대로 하면서 농구명문이 시작되었음 ㅋ
초등학교때 이거보고 연대가고싶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저만한 선수구성이 연대에서 나올일은 앞으로 거의 없을듯. 그리고 김훈빼고 아직도 네명이 현역으로 뛰고있으니..ㄷ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