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사람들은 그 나지막한 동산을 마때산이라 불렀다.
마때산에서 보면 미 8군 부대가 훤히 내려다 보였고,
내가 중학생 시절 전세로 살았던 그 마때산 꼭대기
집에는 여러 추억들이 서려있었다.
어머니 심부름으로 봉지쌀 사 오다가 갑자기 내린
소낙비로 아까운 쌀 반 봉지를 잃고 안타까워했던 일.
큰형 결혼식날 집에서 하던 피로연에서 외할머니와
아버지의 노래를 처음 들으며 녹음하던 일.
생일날 소고깃국 대신 받은 오징어 한 마리,
소원대로 나누지 않고 혼자 꺼이꺼이 목 막히게
다 먹었던 집.
그 집에 또 다른 추억 하나 서럽게 울고 있어서
나는 그 집을 더 오래 기억하는지도 모른다.
그 추억은 사실 가람형과 공유하는 추억이기도 하다.
함께 한 추억들이 많아 형제들 중에서도 가장 잘
통하고 가장 가깝게 느껴지는 내 작은형. 가람과뫼.
돌아보면 내 어릴 적 가족 추억의 반 정도는 사실
가람형과 공유했거나 적어도 가람형의 영향하에서
생겨난 것들이 아닌가 싶다.
공부를 아주 잘하던 가람형은 키는 별로 크지
않았지만 운동하기를 공부만큼 참 즐겨했다.
서로 투수와 포수를 번갈아 바꾸며 야구공 던지기도
많이 했었고, 가람형의 번득이는 아이디어로 하키도
그럴싸한 도구를 만들어 열심히 했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가람형은 농구가 우리 몸에 얼마나
좋은 운동인지를 설파하기 시작했다.
듣고 보니 절로 농구가 하고 싶어 졌고, 나는 형의
요구대로 선뜻 저금통을 열어 힘을 보탰다.
그 길로 우리는 당장 문방구에 가서 잘생긴 농구공
한 개를 샀다.
가까운 영선국민학교에 가서 농구를 했었는데...
골대가 충분치 않다 보니 자리 차지하기가 쉽지
않았고, 멀진 않았지만 점차 그곳까지 가는 것이
귀찮아질 무렵, 가람형의 번득이는 아이디어가
또 한 번 빛났다.
"익아~ 마당에 함 나와봐라~"
형의 목소리에 자랑스러움이 묻어있으면 분명
뭔가 재미있는 일이 생겼다는 것. 냉큼 마당으로
달려 나갔다.
"히야... 와?"
"저거 함 봐라~"
가람형의 검지 손가락이 가리킨 곳은 작은 정원에
포도나무 넝쿨이 있는 곳.
포도나무 넝쿨이 잘 올라가도록 집주인은 정원
주위에 나무 기둥을 박고 그 위에 굵은 철사를
그물처럼 얼금얼금 엮어서 덮어놓았는데...
그 가운데에 잠자리채가 걸려 있었다.
"어?? 저기 뭐꼬 히야?"
"헤헤~ 간이 농구 골대다. 이제 집에서 농구하자~"
그날로부터 우리 형제는 멀리 가는 수고 없이
날마다 그 골대에다가 수도 없이 슛을 쏘아댔다.
세 살 많은 형을 한번 이겨보려고 형 없을 때
슛 연습은 또 얼마나 많이 했던지...ㅎㅎ
우리가 쏜 슛이 다행히 골인이 되면 내 머리보다
큰 농구공은 잠자리채 그물 밑으로 이쁘게 쏙
빠져나왔지만, 반 이상은 노골이 되다 보니
그 포도나무 넝쿨의 수난은 말이 아니었다.
혹 농구공이 넝쿨 위에 걸리기라도 하면 넝쿨을
잡아 비틀며 끄집어내리 질 않나...
공이 잘 걸리는 곳의 넝쿨은 아예 잘라버리고...
보기가 안쓰러웠던지 어머니께서 농구 그만하라고
말리기까지 하실 정도로 그 포도나무는 서러운
포도나무가 되고 말았다.
그 해 그 포도나무에는 제대로 된 단 한 송이의
포도송이도 매달리질 못했고, 그 포도나무는
내 기억 속에서 서럽게 울고 있는 나무로 남게 되었다.
지나고 나서 돌아보니 동물에게든 나무에게든
내가 철없어 한 몹쓸 짓이 참 많았구나... 싶다.
첫댓글 저는 어린시절 물고기를 잡고 개구리와
뱀을 잡아 놀던 시절을 떠올리면 우리의
놀이감이었던 그 동물들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자꾸 솟아납니다.
그렇게 자라고 어른이 되고, 늙어가다가
졸업을 하는 게 인생이겠지요.
어제 삼천사에서 부왕동암문에 오르다가
돌탑 사진을 찍어왔기에 올립니다.
이전엔 돌탑을 거의 지나쳤는데 말입니다.
삼천사 제 추억을 기억해주시고
돌탑 사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누군가 새로 쌓은 돌탑에 담긴 소망도
다 이루어지라고 원을 품습니다.
앵커리지님, 감사합니다.
@마음자리 삼천사 뒤통수(?)만 찍은 사진도 올립니다. 참 평온했어요.
@앵커리지 토요일 저녁, 집에서 쉬다가
앵커리지님 덕분에 삼천사
그리움에 푹 빠집니다.
내일은 뉴멕시코주 알버쿠키로
달려갑니다.
@앵커리지
부왕동암문에 오르다가
찍은 사진을 보며
그야말로 작은 돌탑,
어느 이의 작은 소망을 봅니다.
아마도 우리의 소망일 것입니다.
앵커리지님의 배려도 보입니다^^
오랜만에, 가람과 뫼님의 닉을 봅니다.
'쌀 반 봉지' 의 마음자리님 글을 읽고
얼마나 마음 아렸고 글이 감명 깊었는지요.
형제가 나란히 글을 잘 썼고
순수했음을 아직도 기억에 남았네요.
포도나무는
두 형제가 즐겁게 사이좋게 잘 놀았던
농구대가 되어주고
지금 이 나이까지 기억해 주는데 대해서
보람이 되었을 겁니다.
제 댓글이 날아가 버려서 다시 써니
처음 같게 나오지 않네요. 죄송~
철없던 때라 그저 생각없이 놀이에
바빠 다른 생명 귀함을 알지 못했습니다.
덧없이 지나간 시간들 가운데 그런
일들은 묘하게 기억에 오래 남아
잊혀지지 않네요.
형을 기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옛날 가람형과의 추억을 맛깔나게 써주었습니다. 지금 가람형은 잘있나요? 마음자리님은 미국에 사시나봐요? 작년 8월9일 제친구는 삼천사계곡서 물놀이하다 바위에 부딪혀 죽었습니다. 위험한 계곡입니다.
가람형은 최근에 아픈 일을 겪긴
했지만 잘 이겨내고 있습니다.
네. 텍사스주 달라스에 살고 있습니다.
계곡엔 깊은 소도 있으니 언제나 조심해야지요.
친구분의 명복을 빕니다.
마음자리 님 글에는 늘
형제 간의 돈독한 정이 묻어 나서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가람 형, 뫼 형, 두 분도 이 카페의
회원이신가 봅니다.
봉지쌀을 소낙비에 잃어 버렸을 때의
심정이 어땠을까요.ㅠ
어린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 싶네요.
농구 골대를 위해서 넝쿨이 잘렸던
서러운 포도나무.
아무 생각없이 나무의 가지치기도 하는데
그걸 마음 아파하는 마음자리 님의
선한 마음을 헤아리며 글 잘 읽었습니다.
'가람과뫼'가 한 아이디인데 제가
줄여서 가람형이라 부른답니다.
형도 회원인데 22년 아름문학상
이후까지 잠시 활동하다가 요즘 거의 못오고 있습니다.
저도 형 글이 보고 싶은데요...
어릴때 철없이 한 일이라도 잘못된
것들은 마음에 찜찜하게 남기 마련인가
봅니다.
가람과뫼라는 가수가 있었는데 두 형님의 이름인가 봅니다
포도나무는 서러웠을지라도 형제에게는 따스한 추억으로 남아있겠네요
오랜만에 가람과뫼의 생일 한번 들어봅니다
https://youtu.be/_FZU5Kz5BbM?si=48Wh-L1ID1Vh-Wxz
PLAY
제 작은형의 글마당 아이디가 '가람과뫼'입니다. 언제나 저에게 든든하고 따뜻한 작은형입니다.
옛날, 어릴 적 이야기들은 읽으면서
공감도 가고 정스러워요
마음자리님 형님도 계셨네요? 수필방에 글도 쓰시고..
전 읽어보지 못했지만
<가람과뫼>라는 닉이 정말 멋지네요
마음자리님 처럼 글도 잘 쓰셨나 봅니다
가람형이 저보다 글을 훨씬 더 잘 씁니다. ㅎ
예전에 형이 수필방에 올려둔 글도 남아 있습니다.
형 덕분에 저도 글쓰기에 재미를 붙였었지요.
포도나무가 뭔 죄로 두형제에게 시련을 당했나요?
서러웠을것입니다 .
그래서 열매를 보란듯이 안 열리게 했나 봅니다 .
아니요 .
어쩌면 두 형제분들이 노는 모습이 재미있었을지도요.
열매가 지장이 될까 일부러 안 열게 했는지도 몰라요.
포도나무 맘 ㅎㅎ
아참 !! 가람님은 통 안 보이시네요.
아무 죄도 없었지요.
단지 농구에 눈 먼 형제들 눈에
띄였다는 죄 아닌 죄.
하나하나 속죄하며 살아야지요.
형은 그간 바쁘기도 했고 아픔도 있어
잘 못 왔습니다. 가끔 통화하면
글마당 안부도 빼놓지 않고
꼭 묻습니다. 아녜스님 안부도요.
작물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큰다는데
그 포도나무는
농구공을 들고 다가오는
형제의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가지가 움츠러들었을까요.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드네요.
형제의 우애 넘치는 화기애애한 모습에
기꺼이
이 한 몸 받쳐 밑거름이 되리라
했을지도 모르지요
어머니는 식물들이 사람 마음 다 안다고 매일 작은 꽃밭에 물 주러
나가면 여러 이야기들을 식물들과
나누곤 하셨는데...
철없는 우리 형제 그 나이 때는
그저 우리 놀이에 바빠서... 다시
돌이킬 수도 없고.
늦 가을에 잎 다 떨구고 휑한
넝쿨들만 이리저리 얽혀있던 모습이
잊혀지질 않네요.
가련한 포도나무 맞네요.
ㅎㅎ
산에 가면 손을 타서 반질거리는
소나무가 많아요.
저는 일부러 안 잡고 올라 갑니다.
나무가 안스럽더군요.
반질거리는 소나무 안 잡는
그 마음 알고도 남습니다. ㅎ
쌀봉지 들고 가는데
하필 소낙비가 얄밉게 내렸네요.
생일날 소고기국 대신 받은 오징어
잊지 못할 식품같고요.ㅋ
포도나무가 두 형제에게 시달렸어도
함께 웃으며 즐기기도 했을거예요.
응원도 보내면서요^^
제라님~!
그간 어디 아프셨나요?
공황장애라셔서 오래 안 보이면
걱정됩니다.
잘 있지요?
어린시절 그리움이 알알이 맺혀있는
포도나무를 봤다는 전설도 있어요.^^
아... 정말요?
그 전설, 저도 듣고 싶네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