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여행4 - 야파문으로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 다윗의 탑을 구경하다!
4월 13일 우리 부부와 선배님 부부등 일행 4명은 예루살렘 신시가지 야파거리
에 있는 예루살렘 호스텔 주방에서 간단히 점심을 들고는 밖으로 나옵니다.
우리 호스텔 앞이 시온 광장 Zion Square 인데, 예전에 왔을 때는 안식일이 끝나는
토요일밤이라 이스라엘 청년들이 광장에서 원을 그리며 춤추는걸 구경했습니다.
그때 흥에겨워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리며 발을 꿈적거렸던 때문이었을일까요? 청년
들이 잡아끄는 바람에 원에 들어가서는 손에 손을 잡고 흥겹게 돌았던 생각이 나네요....
춤을 추는 그 와중에도 주변에는 모자도 쓰지 않은 이스라엘 여군이 총을 들고 경계 를 서고
있었는 데.... 다음날 아침에 보니 겨울인데도 노숙자가 누워자는걸 본게 떠오릅니다!
여기 광장 이름인 시온 Zion 이란..... 다윗이 수도로 삼고 법궤를
옮겨 정치적, 종교적인 중심지로 삼은 장소를 말한다고 합니다.
후에 다윗의 아들인 솔로몬이 야훼의 성전과 거대한 궁전 을 건설하여
유대 민족의 생활과 신앙의 중심지로서 번영하였다고 하지요!
그 후 시온 Zion 이란 말은 예루살렘 뿐만 아니라 전 이스라엘을 상징 하는 것이 되었고,
가나안에 잃어버린 조국을 다시 건설하는 "시오니즘" 이라는 말까지 생기게 됩니다.
“시온의 딸” 이란 말은 예루살렘 시민을 가리키는 말이며, 신약성서에서는 시온을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도성의 상징적인 용어로 사용되었다는 데, 정확한 위치는 모른답니다!
어쨌든 시온은 유대인들의 마음의 고향 이니..... BC 1,250년경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인들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쳐들어가서....
기존의 주민들과 숱한 전투를 치른 끝에 12 지파에게 땅을 분배 했습니다.
수백년간 조상 대대로 살고있던 가나안인들에게는 이스라엘인들이 침략자인 것인데.... 그렇다고
가나안 지방을 모두 다 차지한 것은 아니고..... 예루살렘은 여부스인들이 굳건히 지키고
있었으니 어쩌랴? 다윗은 아브라함이 묻힌 남쪽 땅 헤브론 에서 BC 1000년경 왕에 즉위 합니다.
다윗왕은 오늘날 팔레스타인 이라는 말의 유래가 된 필리스테 (블레셋) 인들에게
사울왕이 패배했던 후유증을 극복하고 세력을 길러서는.... 7년후
예루살렘을 공격해 250여년만에 성궤를 옮기면서 시온 이라 이름했던 것이라!!!
야파(자파) 거리 를 따라 예루살렘성으로 걸어가는 데.... 건너편에 요르단에서
알랜비 다리 를 건너 이스라엘에 입국할 때 본 일본애들이 지나갑니다!
같은 누렁둥이 동양인이라고 반가워서 “곤니찌와!” 크게 소리를 질렀더니 걔들도 반가운지 손을
흔들고 장난도 아닙니다? 이역만리 머나먼 곳에서 같은 동양인을 만나니 어찌나 반가운지.....
그러고는 러시아 정교회 교회에 이르니 옛날 지도가 있는데 세상의 중심은 예루살렘이요
서쪽은 Ev(u)ropa 의 로마이고, 남쪽은 아프리카 그리고 동쪽은 아시아 Asia 입니다.
아시아 는 다시 북쪽이 아르메니아, 서쪽은 시리아, 남쪽은 아라비아, 동쪽이 페르시아
와 인디아 이니 그럼 중국은 몰랐던 것일까요? 그들의 세계관을 엿볼수 있습니다!
여기 러시아 정교회의 야자수와 수목이 우거진 정원이 열사의
땅인 예루살렘에서는 마치 오아시스 처럼 느껴집니다.
모자이크된 형형색색의 돌사자 조각상을 지나서 모퉁이를 도니 전면에
거대한 돌로 축성된 예루살렘성 이 당당히 버티고 서 있습니다.
우리 일행은 마침 유대인 정통파교도들과 함께 횡단 보도를 건너 야자수
와 종려 나무며 또 올리브 나무가 서 있는 성벽을 따라 돕니다.
저 멀리 야파문 Jaffa Gate (야포, 자파, 욥바) 이 보이고 다비드 탑
( 히브리어로는 다윗 탑 ) 이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역시나 모자를 쓰지 않은 군인들을 비켜 지나 수레에 실은 갖가지 빵들을 구경하며 성벽에
걸린 히브리어, 영어, 아랍어 로 된 다윗탑 역사 박물관을 선전하는 현수막을 발견합니다.
예루살렘은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하느님께 번제드린 모리아산으로 BC 1000년경
다윗이 여부스인들의 시온성을 함락하고 빼앗아 수도를 옮겨 소규모의
다윗성 을 쌓았으며.... 이후 솔로몬왕 때 예루살렘성이 완성 되는데
그후 3천년간 스무차례 넘게 주인이 바뀌었으며 10여차례 완전히 파괴 되었다네요!
고도 예루살렘성에는 성문이 8개 가 있는데 북쪽에는 무슬림지역으로 통하는
다마스커스문(다마섹문) 을 중심으로.... 왼쪽에 기독교지역으로
가는 새 문 New Gate 과 오른쪽에 옛날 궁전이 있어 붙여진 헤롯문이 있습니다.
그리고 동쪽으로 라이언문 이라고도 불리는 순교자 스데반문, 그리고 옆에 황금문이 있는데
회개의 문으로 메시아가 오는날 열린다는데, 실은 오스만 터키에서 닫았다나요....
또 남쪽에는 오물을 내어간 Dung Gate 와 시온산으로 향한다고 붙여진 시온문이 있습니다.
솔로몬 사후 북부 10 부족은 이스라엘로 독립해 나가고 2개 부족이 예루살렘에서 유다
왕국 으로 존속하는데..... 앗시리아가 이스라엘을 멸망시킬 때, 유다는
예루살렘성이 포위되자, 앗시리아 왕에게 황금등 조공 을 바쳐 당시는 온존했습니다.
그후 BC 586년 시드기야 왕 때 바빌로니아의 느부갓네살 에 멸망당해 바빌론으로 끌려간후
70여년만에 페르시아 고레스왕의 은전으로 귀국해서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 하게 되는데,
이후 알렉산드로스왕의 그리스인들에게 점령되었으며 셀레우코스 왕조의 지배를 받습니다.
유일신 사상이 조롱당하자 유대인들이 궐기해 마카베오전쟁에서 셀레우코스왕조 데메트리오스
2세 에게서 광범위한 자치권을 부여받은 마카베오군의 지도자 시몬은 그후 142년에
자신을 유대의 지도자이자 총사령관 겸 대사제장으로 칭하면서 독립 왕조를 건설하게 됩니다.
기원전 63년 폼페이우스가 점령해서 1만 2천명을 학살하는 와중에 성도 재차 파괴된후 BC 37년
헤롯대왕이 재건하기도 했으나...... AD 70년 로마의 티투스 장군에 의해 다시 점령되고,
135년에는 바르코바의 혁명을 집압한 하드리안 황제가 철저히 파괴해 유대인들을 추방합니다.
AD 326년에 분열된 로마를 통일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인 헬레나의 방문이후
638년에는 이슬람 칼리프 오말에 의해 점령되고 1099년 십자군이
쳐들어와 예루살렘 왕국을 세웠으나 88년후 하틴 전투 패배로 살라딘에 의해 쫃겨납니다.
십자군 발리앙이 예루살렘은 무엇이냐 물으니 살라딘 이 말한 “예루살렘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전부다” 란 말은 평범한 도시지만 우리가 알수없는 모든게 존재한다는 뜻이라!
즉 전부란 말은 천지창조 부터 현재까지 신의 존재, 존엄성, 종교 신앙 관습과 문화
전부를 아우르는 것으로 성서에서 말하는 신은 알파요 오메가 (시작이고 끝이다) 란 말이라?
1453년에 오스만 메메드 2세가 동로마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후
백년이 지나 1538년 오스만 터키의 슐레이만 대제가 점령하여 성벽을 다시
쌓았으니..... 지금 우리가 보는 웅장한 성벽과 건물들은 그때 축성된 것이랍니다!
야파 Jaffa Gate ( 현지 발음은 욥바! ) 문은 성의 서쪽문으로 60km 서쪽의 지중해 도시
야파 (욥바) 로 통하는 문이라는 뜻이라는 데..... 마치 모스크바 시내에, 상트
페테르부르크 가는 기차 출발역을 상트 페트르부르크역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뜻이네요!
몇 년 전에 이스라엘 전국일주 배낭여행을 할 때, 텔아비브 남쪽 야파에 들러 백부장
고넬료가 베드로를 모셔갔다는 가죽 무두장이 시몬의 집을 찾아갔던 생각이 납니다!
또 이 문은 예전에 십자군이 웅거한 곳으로 살라딘에 점령된후 3차 십자군시 영국의
사자왕 리차드가 지중해 야파에서 60km 불모지대를 행군해 이 문까지 왔다가는
프랑스군과의 불화로 단독 공략은 포기하고 평화협정을 맺고 발길을 돌렸던 곳입니다!
아랍인들은 바브엘카릴(헤브론문) 이라 부르며, 그 뜻은 하나님의 친구( 아브라함 )
라는데..... 1538년 오스만의 슐레이만이 축성 한후 1차 세계대전 때인
1917년 오스만 터키군을 축출한 영국 알렌비 장군이 야파문을통해 입성했답니다!
우리나라 국보 1호가 남대문 인 것은 일제 시대에 조선총독부가 보물 1호로 남대문
을 정한 것을 독립후 총독부가 정한 수백개의 보물을 국보로 이름만 바꾼 것
인데.... 그 전인 1905년에 조선주둔군 사령관 하세가와 요시미치가 포차
왕래에 지장을 주는등 교통에 방해 되는 “남대문을 대포” 로 부수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한성신보 사장이자 재경 일본 거류민단장 나카이 기타로(中井喜太郞) 가 남대문은
임진왜란시 "가토 기요마사"가 입성한 역사적인 장소라고 반대해 살아남았고, 그후
총독부는 도시계획으로 도로를 남대문 옆으로 비뚜름히 냈는데... 이후 조선총독부가 보물
( 국보는 일본 본토에 있는 것만 한정함) 을 정할 때, 그 뜻을 기려 보물 1호로 정한 것 입니다!
야파 성문을 들어서니 기념품 가게가 늘어선 자그만 도로 건너 다비드 탑이
보이는 데, 원래 중간에 성벽이 있던 것을..... 1898년에
이 문을 통과한 독일 카이저 빌헬름 2세 마차를 위해 허물고 길을 냈답니다!
탑 안에는 역사박물관이 있어 예살 예루살렘성의 축소모형등을 볼수 있지만 전에
보았기로 오늘은 지나치는 데, 왼쪽 골목에는 아랍인 게스트하우스 가 많이
보입니다만.... 우리는 그 길이 아닌 오른쪽으로 성벽을 따라 시온문으로 갑니다.
시온문에 이르는 자그맣게 나 있는 오래된 옛 길을 걷는 데, 이곳이 바로 아르메니안 구역
이랍니다. 예루살렘은 성벽으로 둘러쌓인 구시가지 Old City 와 북쪽 아랍인 구역
동예루살렘 및 서쪽에는 유대인의 신시가지인 서 예루살렘 등 세곳으로 나뉘어 집니다.
1948년 독립시 유엔에서 서예루살렘은 이스라엘, 동예루살렘은 요르단 땅 그리고
2만명이 거주하는 예루살렘성(구시가지) 은 국제도시 로 분할을 했습니다.
그후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시 이스라엘 이 모두 점령하였는 데.... 성 내에는 아르메니아,
기독교, 유대인, 모슬렘(이슬람) 그리고 성전산의 5개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