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그룹 '배따라기'의 히트곡 '그댄 봄비를 무척 좋아하나요'는 1984년 나온 노래입니다. 1980년대 최고의 히트송의 하나입니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의 노래네요. 노래가 어찌 늙겠는지요. 우리의 몸 깊은 곳에 잠자고 있다가 봄비가 내리면 스스로 자동 발사되면서 온갖 상념들에 촉촉이 젖어들게 해주지요.
이렇게 봄비처럼 촉촉한 노래를 만든 이는 누굴까요? '배따라기'의 노래를 모두 작사 작곡해 온 이혜민 님입니다. 그는 많은 히트곡을 낸 싱어송라이터입니다. 그는 1981년 제1회 연포가요제에서 노근식 님과 듀엣으로 '첫사랑은 다 그래요'를 불러 우수상을 차지하면서 가요계에 데뷔했습니다. 강은철의 '삼포로 가는 길' 김흥국의 '호랑나비'와 '59년 왕십리' 등의 히트곡이 그의 손에서 나왔습니다.
'그댄 봄비를 무척 좋아하나요'는 이혜민 양현경 두 사람이 주거니 받거니 한 소절씩 부르는 맑고 깨끗한 노래입니다. 이혜민 님이 특유의 부드러운 저음으로 이렇게 첫 소절을 시작합니다.
'그댄 봄비를 무척 좋아하나요'
이 유명한 한 소절이 이 노래의 얼굴입니다. 이 소절을 빼고는 이 노래를 생각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소절은 왜 이렇게 특별한 느낌을 줄까요? '무척'이라는 부사가 이 소절의 특별함을 더해주는 지렛대인 것만 같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런 질문을 한다면, '그댄 봄비를 좋아하나요' 또는 '그댄 봄비를 얼마나 좋아하나요'라고 할 것입니다. 이런 질문은 대답을 기다리는 질문입니다. 그러나 '무척'이 들어간 이 소절의 질문은 대답을 기다리는 질문이 아니지요. 이미 질문자가 상대방의 대답을 단정해 놓고 하는 질문이랄까요?
그대는 봄비를 '다른 것과 견줄 수 없이' 좋아하지 않느냐는, 질문 아닌 질문인 셈입니다. 그래서 더 다정한 마음이 들어있는 질문이라고 할까요? 누구라도 보슬보슬 조용히 약하게 내리는 봄비, 대지를 깨워 생명을 일으켜 세우는 보약 같은 봄비를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는지요?
'나는요 정말 미워하지 않아요', 정말 그럴까요?
'나는요 비가 오면 추억 속에 잠겨요'
이 소절은 맑고 투명한 목소리의 양현경 님이 이어받습니다.
'그댄 봄비를 무척 좋아하나요?'가 애당초 답을 바라는 질문이 아니었기에 '나는요 비가 오면 추억 속에 잠겨요'라고 대답하네요.
화자는 봄비가 오면 왜 이렇게 추억 속에 잠긴다고 할까요?
'외로운 내 가슴에 남몰래 다가와 / 사랑을 심어놓고 떠나간 그 사람을 / 나는요 정말 미워하지 않아요'
봄비처럼 화자에게 다가온 이가 있었네요. 살금살금 내리는 봄비처럼 '남몰래 다가와' '외로운 내 가슴'을 적셔놓은 이 말입니다. 그이는 봄비 같은 사람이네요. 오는 듯 안 오는 듯, 젖는 듯 안 젖는 듯 내 속으로 깊숙이 들어온 사람이네요.
겨우내 얼었던 대지를 봄비가 적셔 생명의 씨앗을 깨우듯이 그이도 '외로운 내 가슴에' 사랑이라는 씨앗을 심어놓았다고 하네요. 그리고 떠나가버렸다고 합니다. 봄비가 그치듯이요. 온갖 생명을 깨워놓고 봄비가 그치듯이요.
'떠나간 그 사람을 나는요 정말 미워하지 않아요'
그렇게 떠나가버린 사람인데 미워하지 않는다고 하네요. 정말 그럴까요?
'정말 미워하지 않아요'
이 노래에서 높은 음역으로 감정이 가장 고조되는 클라이맥스 부분입니다. 이렇게 격한 감정을 실은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지요. 그러니 '정말 미워하지 않아요'라는 이 말은 정말 미워한다는 말이네요. 나를 훌쩍 떠나가버린 그이가 정말 미워죽겠다는 말요. 이렇게 나를 그리움에 사무치게 하는 그이가 정말 미워죽겠다는 말요. 이토록 보고 싶고 또 보고 싶어 봄비가 올 때마다, 아니 봄 여름 가을 겨울 내내 그리워하고 있다는 말이네요....
그댄 봄비를 무척 좋아하나요
나는요 비가 오면 추억 속에 잠겨요
그댄 바람 소리 무척 좋아하나요
나는요 바람 불면 바람 속을 걸어요
외로운 내 가슴에 남몰래 다가와
사랑 심어 놓고 떠나간 그 사람을
나는요 정말 미워하지 않아요
그댄 낙엽 지면 무슨 생각 하나요
나는요 둘이 걷던 솔밭길 홀로 걸어요
그댄 봄비를 무척 좋아하나요
나는요 비가 오면 추억 속에 잠겨요
외로운 내 가슴에 남몰래 다가와
사랑 심어 놓고 떠나간 그 사람을
나는요 정말 미워하지 않아요
그댄 낙엽 지면 무슨 생각 하나요
나는요 둘이 걷던 솔밭길 홀로 걸어요
솔밭길 홀로 걸어요
솔밭길 홀로 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