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만 불어도 행여 그분인가?’
아주 작은 바람에도 갈대는 흔들립니다. 소리도 나지 않고 발자국도 남기지 않고 흔적도 없이 지나가는데 갈대를 흔들고 갑니다. 나를 흔들어놓고야 가는 욕심처럼…
좋아하는 책도 눈에 보이는데로 사고 싶고 멋진 풍경을 가진 모든 곳을 다 가보고 싶기도 합니다. 내 아이들은 무슨 경쟁이든지 척척 통과하고 남들보다 빨리 안정된 자리와 높은 인정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얼핏 누구나 바랄 수 있고 당연히 가질 수 있는 욕심이라고 당당하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많이 경험해보았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욕심입니다. 그래서 계단에서 계단 하나를 그냥 더 오르듯 표나지 않게 추가하고 추가하고 또 추가합니다. 그래서 구차한 변명이 따르는 욕심이 맞습니다. 사람은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다더니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좀 앉아서 고단한 몸을 쉬기만 해도 좋겠다고 시작을 하고서 그렇게 됩니다.
처음에는 마실 물만 있어도 감사하다가 몸에 더 좋은 물이 있다면 그것을 원하고 기왕이면 많이 확보해놓았으면 좋겠고 그걸 보관할 냉장고가 있으면 좋겠고 기왕이면 더 멋진 디자인에 사람들이 부러워할만한 메이커 제품이면 더 좋겠다고 욕심을 냅니다. 그 냉장고와 격이 맞는 수준의 집이 필요하고 그 집에 어울릴 다른 살림살이와 자가용과 씀씀이도 감당할만큼 재산도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수준에 맞는 자식들의 성공과 여유도 있어야 남들의 시선을 받을테니 그만큼 벌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다 해야되는 입장에 마주합니다.
그렇게 욕심은 하나씩 하나씩 변명을 끌어오고 한편으로는 그 욕심이 지장을 받는 일은 피하고 싶어집니다. 걸림돌이 되는 사람도 피하고 장애물을 치우고 하는 사이 사람들이 하나 둘 멀어지기도 합니다. 오직 사용할 건덕지가 있는 사람들만 남고 뭔가 자기에게 이익이 될 것이 있다고 기대하는 사람만 남습니다.
어느날 그 진실을 알아차리고 외로움의 벌판에 홀로 선 것도 느끼지만 이미 너무 멀리와버린 사실이 두려워집니다. 몸과 마음, 생활과 습관에까지 속속 파고 든 질긴 뿌리들을 다 잘라내면 어쩌면 새로운 방식을 못견디고 죽을지도 모른다는…
하루 아침에 단순하고 조촐한 가난한 처지로 바뀌면 멸시와 조롱을 할지도 모를 남들의 눈도 겁이 납니다. 망했습니다. 빼지도 돌아서기도 너무 굳어버린 두 마음의 일상을 어떻게 회복해야할 지 엄두가 안납니다. 들리는 소문처럼 남몰래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면 질병이 나을까요? 몸과 마음의 질병이 동시에 고쳐질까요? 두려움과 슬픔이 작살을 내지 않고 생명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삶을 얻을 수 있을까요?
오늘도 두리번 거립니다. 어디에 사막을 가로지르고 오는 바람속에 예수님의 옷자락이 보일지… 그냥 나를 흔들고 가는 바람이 아니라 내 병든 몸과 마음을 고쳐주실 예수님이 그 바람속 한가운데에 계시는 하늘 바람을 기다려봅니다. 바람들고 바람맞고 바람나서 풍지박살망가진 나를 새롭게 씻기고 세례를 베풀어주실 주님의 향기로운 바람…
‘바람 속의 주’ / 유경환시 김정식곡
1. 그 옷차림 스친곳에 스며있는 향기를 / 그 발자국 패인곳에 굳어있는 믿음을 / 바람부는 돌밭속에서 가득안은 이 기쁨 / 내 이젠 다시 해매이지 않으리 / 바람 속의 내 주여
2. 그 뒷모습 혼자이나 어디에나 계시고 / 그 목소리 아득하나 바람처럼 가득해 / 간절하게 올린 기도로 만나뵈온 이 기쁨 / 내 이젠 다시 외로웁지않으리 / 바람 속의 내 주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