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네 시 반의 시너지
나이가 들어서인지 새벽잠이 짧아졌다.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먼저 떠진다. 대개 네 시나 네 시 반쯤이다.
다시 눈을 붙여볼까 싶어 가만히 누워 있어도 괜히 허리만 아프다. 결국 벌떡 일어나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서재로 향한다.
서재 문을 열면 가장 먼저 불을 켠다. 그다음엔 습관처럼 PC 전원 스위치를 누른다. 화면이 켜지는 동안 잠깐의
정적이 흐른다. 이메일을 확인하고, 이어서 인터넷 뉴스를 훑어본다. 방 한켠에 앉아 온 세상 구석구석의 소식을
접할 수 있으니, 참으로 편리한 세상이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 했을 일이다. 천리안이 따로 없다.
뉴스를 몇 개 읽고 나면 슬슬 배가 고파진다. 그럴 땐 모닝빵을 꺼낸다. 우리 상가 ‘아덴’ 카페에서 파는, 아이들
손바닥만 한 여섯 개들이 빵이다. 가격은 4,800원. 작년까지만 해도 3,500원이었는데, 물가가 올랐다며 값이 올랐다.
그래도 이 빵은 달지 않고 부드러워 먹기에 좋다.
나는 모닝빵을 그냥 먹지 않는다. 손으로 반을 갈라 그 속에 체다치즈 한 장을 넣는다. 빵만 먹을 때보다 훨씬 맛이
살아난다. 담백한 빵과 짭짤한 치즈가 만나 전혀 다른 풍미를 만든다. 둘이 합쳐졌을 뿐인데, 결과는 단순한 덧셈이
아니다.
이런 현상을 우리는 시너지(Synergy)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널판지 한 장이 5kg중의 하중을 견딜 수 있다면, 두
장을 겹쳤을 때는 단순히 10kg이 아니라 15kg중의 하중을 견딘다. 세 장을 합치면 그 힘은 더 커져 30kg중까지도
버텨낸다. 함께했을 때, 각각의 한계를 넘어서는 힘이 생기는 것이다.
사람 사이도 다르지 않다. 마음을 닫은 채 혼자 끙끙대면 문제는 그대로이지만, 서로 마음을 열고 대화를 시작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각자의 욕구를 이해하고, 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새로운 방법을 찾아간다. 그 과정에서 이전에
는 보지 못했던 제3의 대안이 만들어진다. 이것이 바로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시너지다.
그래서 시너지는 둘 이상의 사람이 함께할 때, 각자가 따로 일해 만들어낸 결과의 합보다 더 큰 가치를 만들어낼 때
비로소 생긴다. 우리 속담에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이 있다. 경쟁하고 질투하기보다 협력할 때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지혜가 담긴 말이다.
새벽의 서재에서 먹는 모닝빵과 체다치즈 한 장은, 나에게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든다. 작은 빵 하나와 얇은 치즈 한 장
이 만나듯, 사람과 사람도 그렇게 만나면 좋겠다고. 혼자서는 버거운 무게도 함께라면 견뎌낼 수 있다고. 새벽 네 시 반,
고요한 시간 속에서 나는 오늘도 조용히 시너지의 맛을 음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