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나 지옥 자식을 만드는 교회 지도자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마 23:13, 15) 기독교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유대교의 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집을 말아먹었듯이 오늘날 기독교의 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집을 말아먹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가?
예수께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천국 문을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다고 말씀하시는데, 누가복음 11장 52절에 보면,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교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서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미루어보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방법은 ‘지식의 열쇠’에 있다. 지식의 열쇠를 ‘가져갔다’는 것은 천국 문을 열지 못하도록 지식의 열쇠를 아예 ‘치워버렸다’는 뜻이다. 그 일을 고의로 했던지 모르고 했던지 ‘치워버렸다’는 것은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수단을 아예 차단해버렸다는 것이다.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도 천국에 들어가고 싶지 않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 천국 때문에 토색, 불의, 간음을 하지 아니하고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꼬박꼬박 드린 사람들이 아니던가?(눅 18:11-12 참조) 그런데 예수께서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도록 닫았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고의성이 다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이 처음에는 모세와 선지자의 글을 읽되 얼굴에 수건을 쓰고 읽었기 때문에 잘못 깨닫고 가르쳤을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 공생애 3년 동안 그들에게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 무엇인지 가르치셨지만(마 22:37-40), 그들은 전혀 들으려 하지 않았다. 예수께서 하나님을 자기의 아버지라고 하는 말씀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하나님을 자기 아버지라고 했더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이 그들의 마음을 주장하였다면 예수를 죽이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만 마음에 꽉 차 있기 때문에 예수를 죽이려 했던 것이다. 예수가 감히 하나님을 제 아버지라고 함으로 ‘신성을 모독’했으니 그런 자를 죽이는 것이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굳게 믿었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모든 종교가들이 스스로 함정에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는 도그마가 바로 ‘하나님 제일주의’이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을 몰라서가 아니라,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고 그 다음에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부분이 지식의 열쇠를 치워버리는 행위인 것이다. 이것이 종교가(다듬은 돌)들의 특성이다.
이 말을 하는 것은 주 너의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사랑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나 그 방법은 예수와 바리새인들 및 세상의 거의 모든 종교가들의 생각과 정반대라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예수께서 전하신 하나님 사랑하는 방법은 ‘사람 중심’인데 반해 종교가들이 전하는 하나님 사랑하는 방법은 ‘하나님 중심’이다. 예수의 복음인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계명에 대해서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도 주인이니라.”(막 2:27-28)는 말씀을 미루어보더라도 예수의 하나님 사랑의 방법이 무엇인지 알 수 있지 아니한가?
도대체 이 말씀을 하신 이유를 깊이 묵상해보지 않으므로 네 이웃보다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여야 한다는 반(反)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인류의 도덕 윤리도 알고 보면 하늘의 이치의 반영이다. 부모가 먼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지 자식이 부모를 먼저 사랑하지 않는다. 그런데 종교가들은 하늘의 이치를 땅의 이치로 잘 바꾸어 놓는다.
중국의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이치가 하늘의 뜻을 변질시킨 가장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양음(陽陰)을 음양(陰陽)으로 바꾼 자들이 중국의 사상가들(종교가들)이다. ‘음’이 먼저인가, ‘양’이 먼저인가? ‘남자’가 먼저인가 ‘여자’가 먼저인가? 땅의 이치를 하늘 위에 올려놓는 행위를 누가 하는가? 종교가(사상가)들이 그렇게 변질시킨다. 신학교에서 다듬어져서 나온 돌들(목사들)이 하나님을 먼저 사랑한 후에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쳐서 교인들을 배나 더 지옥 자식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안는가?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이 왜 하나님이 ‘다듬은 돌로 제단을 쌓지 말라’(출 20:25)고 하셨는지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을 모르니 교회와 종교도 구분하지 못하고 참 목자와 거짓 목자도 구분하지 못한 것이다. 어떤 사람이 다듬지 않은 돌이며, 어떤 사람이 다듬은 돌인지 성경에서 보자. 사도 바울과 같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아 복음을 전한 사람이 다듬지 않은 돌이라면, 신학교(두로)에서 교수(석공)에게 배워서(다듬어져서) 복음을 전한 사람은 다듬은 돌이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갈 1:11-12)
본바와 같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주의 일꾼은 모두 다듬어진 돌들로서 이들은 하나님의 사자도, 종도 아니라 종교가들인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 의해서 조직된 교회는 주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자칭 유대인(그리스도인)이라 하나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會黨)인 것이다(계 2:9).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성도와 예배당에 모여서 의식적인 예배를 드리는 종교인은 같은 것 같지만 전혀 다르다.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들(다듬지 않은 돌)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보내신 성령에게 가르침을 받고 주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생각나게(깨닫게) 하심으로(요 14:26; 요일 2:27)) 그의 가르침대로 삶이 기도며 삶이 예배이다.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보화를 발견하고 자기 소유(탐심)를 다 팔아(버리고) 그 밭(그리스도)을 사서 보화(진리)를 캐내어 그것으로 양식을 삼고 살아 있는 예배를 드리는 자를 말하며(미 13:44), 종교인은 다듬어진 돌(목사)들에 의하여 가르침을 받고 신앙생활을 하는 신자들을 의미한다. 다듬지 않은 돌은 자연석을 의미하는데 이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번제와 화목제로 하나님께 드리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러나 다듬은 돌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처럼 자신의 외모를 거룩하게 꾸민 자들인데, 예수는 그들을 가리켜 ‘외식하는 자’, ‘회칠한 무덤’이라고 부르셨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비겨서 은으로나 금으로나 너희를 위하여 신상을 만들지 말고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네 양과 소로 네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모든 곳에서 네게 임하여 복을 주리라. 네가 내게 돌로 제단을 쌓거든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 네가 정으로 그것을 쪼면 부정하게 함이니라.”(출 20:23-25) 하셨다.
깊이 생각해보자.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보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솔로몬 성전의 후예들이다. 솔로몬 왕은 하나님이 금하신 다듬은 돌로 성전을 건축한 사람이다. 그것도 이방인의 손(석공)이 정(釘)을 대서 다듬은 돌로 건축했다(왕상 6:14-38).
그것은 무엇의 예표인가? 두로(반석)는 신학교의 예표이며 석공은 신학교수의 예표이며 돌은 학생(사람)의 예표이다. 북쪽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왕이 레위 지파 사람이 아닌 일반인으로 금송아지 성전의 제사장을 삼은 것은 다듬은 돌로 제단을 쌓는 행위였던 것이다. 신학교에서 목사 자격증을 발행하는 제도는 여로보암의 전철을 그대로 답습하는 행위이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마 23:27-28)
종교가들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질타하신 말씀을 더 들어보자. “주께서 야곱에게 말씀을 보내시며 그것을 이스라엘에게 임하게 하셨은즉 모든 백성 곧 에브라임과 사마리아 주민이 알 것이거늘 그들이 교만하고 완악한 마음으로 말하기를 벽돌이 무너졌으나 우리는 다듬은 돌로 쌓고 뽕나무들이 찍혔으나 우리는 백향목으로 그것을 대신하리라 하는도다.”(사 9:8-10) 하셨다.
세계 곳곳에서 다듬은 돌들, 즉 종교가들에 의해서 길들여진 신자들의 부작용을 우리가 똑똑히 목도하고 있지 아니한가? 종교가들의 후유증이 종교 전쟁이며 종교 테러가 아닌가? 하나님을 위해서, 알라를 위해서는 죽을 수는 있어도 자기 가족과 자기 이웃을 위해서는 죽을 줄을 모른다. 경중(輕重)의 정도만 다를 뿐 모든 종교는 자기 신을 위해서는 죽을 수는 있어도 자신의 가족과 자기 이웃을 위해서는 죽지 못한다. 우리가 속해 있는 기독교의 교파들을 보자. 목사들이 하나님과 교파를 위해서는 눈을 부라리지만, 자기 이웃을 위해서는 긍휼을 베풀지 않는다. 거기에는 화해나 대화가 없다. 오직 내가 믿는 하나님과 조직을 위해서 헌신하여 충성을 다 한다. 자기 하나님과 자기 지도자와 자기 조직을 인정하지 사람은 자기 친구가 될 수 없으므로 전쟁과 테러가 그치지 않는다.
현재 전 세계에서 무슬림들이 일으키는 테러에는 명분은 있으나 사랑이 없다. 미국이 일으킨 전쟁의 원인은 기독교적 명분을 앞세운 자원의 독식에 있는 한 민족주의적 무슬림의 테러를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랍 사람들이 알라의 이름을 내세우지 않고 자의에 의한 자살 폭탄 테러라면 당연하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민족에게도 안중근 의사와 같은 사람이 있지 아니한가? 우리 입장에서 보면 애국자요 의사이지만,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테러리스트에 불과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안중근 의사는 누구의 사주를 받고 한 행동이 아니라 순순한 자기 의지에 따라 행한 행동이다. 종교와는 무관하게 행한 행동이므로 그는 자연석이다. 그러나 무슬림의 테러는 알라를 위하여 먼저 네 목숨을 바치라는 종교 지도자들의 교묘한 술책에 기인한 것이다. 자기 나라와 자기 종교를 위한 일을 하나님의 일인 것처럼 위장하고 테러를 자행하게 만든 것이다. 상대를 이길 힘이 약하기 때문에 원수로 여기는 자들을 치기 위한 방법이 알라라는 하나님을 빙자하여 테러를 자행하지만 강한 자나 약한 자나 쌍방 모두 하나님의 가르침을 위배한 것이다.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마 12:7)
기독교의 십자군 전쟁과 무슬림의 테러뿐만 아니라 인류사에서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된 모든 전쟁은 ‘자비’와 상반된 ‘제사’일뿐이다. 하나님은 저 살기 위해서 다른 희생물을 바치는 제사는 받지 않으신다. 예수처럼 이웃의 생명을 위하여 자신이 희생물이 될 때에만 받으신다.
자살 테러를 감행하여 스스로 죽은 자들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처리될 것이지만, 그들을 신의 이름으로 희생제물을 만든 자들은 용서 받을 수 없을 것이다. 극단적인 예를 들었지만, ‘하나님 제일주의’의 폐단은 곳곳에서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 하루 속히 ‘사람 제일주의’로의 환원되어야만 한다. 즉 정죄의 율법 신앙에서 사랑의 복음 신앙으로 나와야 한다. 모세의 자리에서 내려와 예수 그리스도의 자리로 내려앉아야 한다. 하나님의 우편에 오르신 왕의 자리가 아니라, 섬기는 종의 자리로 내려 와야 한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5-8)
‘하나님 제일주의’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열쇠를 사람들 앞에서 가져가고 자기들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들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되어 인도자와 인도함을 받는 자들이 다 함께 멸망한다. 그러므로 그렇게 가르친 무지한 종교가들과 그들에게서 배운 자들을 다 같이 영화를 변하여 욕이 되게 한다고 하신다.
“너는 낮에 넘어지겠고 너와 함께 있는 선지자는 밤에 넘어지리라. 내가 네 어머니(예루살렘, 교회)를 멸하리라.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그들은 번성할수록 내게 범죄 하니 내가 그들의 영화를 변하여 욕이 되게 하리라.”(호 4:5-7)
이제는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섬기는 일이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임을 깨닫는 일이 시급하다. 그런 의미에서 동학(東學)에서 말하는 인내천(人乃天) 즉 ‘사람이 곧 한울이라’는 사상이 성경적인 사상임을 알 수 있다. 본문 13절과 15절 사이에 ‘없음’으로 표시된 14절은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막 12:40; 눅 20:47)고 기록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모든 종교 지도자들은 잿밥에만 마음이 있을 뿐 신자들의 영혼에는 관심이 없다. 종교 지도자들은 자기를 거룩하게 보이려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길게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심지어 새벽기도회에 나온 교인들보다 기도를 짧게 할 수 없어서 교인들이 다 돌아갈 때까지 앉아 있는 목사들도 있다고 하니 이런 외식(外飾)하는 자들이 교인들을 가르치니 어찌 천국 문을 닫는 자가 아니겠는가?
사도 베드로는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하나님)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벧전 1:15) 하였다.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은 천지를 창조하셨기 때문에 거룩하신 것이 아니라 사랑이시기 때문에 거룩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섬김을 받으시는 분이기에 거룩하신 것이 아니라 섬기려 하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시는 분이시기에 거룩하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는 하나님께 그리스도라 인 치심을 받고 거룩하다 인정을 받으신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사람은 사람들로부터 존경 받으려는 노력을 중지하여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멀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과부는 다른 사람이 아니다. 남편이신 하나님을 잃어버린 성도가 과부이다. 천국 문을 닫고 남편이신 하나님에게로 가지 못하게 만들어놓고 과부의 가산(헌금)을 삼키며 정조(믿음)를 빼앗기 때문에 하나님께 버림받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고 교인들을 배나 지옥 자식을 만드는 종교가들을 떠나 그리스도 예수에게로 가야 생명을 얻는다. 큰 성 바벨론이 되어버린 교회는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다. 종교가들의 포도주(교리)로 말미암아 만국(전 세계 교회)이 무너졌다(계 18:2-3).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계 18:4)
다듬은 돌인 종교가들의 술(강론, 설교, 설법 등)에 취하지 말고 반석(그리스도)에서 솟아나는 샘물(성경)을 마시고 영생에 이르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르무엘(하나님께 속한 자)아,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왕들(성도들)에게 마땅하지 아니하고 왕들에게 마땅하지 아니하며 독주를 찾는 것이 주권자에게 마땅하지 않도다. 술을 마시다가 법(생명의 법)을 잊어버리고 모든 곤고한 자들의 송사를 굽게 할까 두려우니라. 독주는 죽게 된 자에게, 포도주는 마음에 근심하는 자에게 줄지어다. 그는 마시고 자기의 빈궁한 것(믿음 없는 것)을 잊어버리겠고 다시 자기의 고통을 기억하지 아니하리라.”(잠 31:4-7)
종교가들의 정(釘)에 다듬어진 돌이 되지 말고, 다듬지 않은 돌 그대로 제단을 쌓으시기를….“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마 23:13, 15)
우리가..죽기전에...잠깐은... 한번쯤...생각해보고...가자 ! 2000년이 넘고넘어....그리도...기다리는 사랑이...있는지를....! 창조주앞에...까불지말라 ! 너희가...영원히...죽을까하노라 ! 너희가...별을...따랴 ! 너희가...달을...만들것이냐 ! 어린아이처럼...계속..말장난하며...까불지말라 ! 개나 소,돼지에게 성경책을 주면 무엇인지 모른다 그러나 그짐승들에게 먹을것을 주면 짐승들은 주인을 좋아라한다 ! 너희가....짐승이냐 ? 이제...너희와 약속된...용서의... 기다림의 시간이 다가왔음이라 !
창조주앞에.... 바짝...업드려... 두려움을...생각하고...참회하라 ! 그리고..지금도 기다리시는... 주님꼐...돌아오라 !
어찌하여 말벌의 침과 전갈의 독침은 두려워하면서 너의 영혼을 잡아 먹는 사탄은 두려워하지 않느냐 ! 너의 눈은 멀었으며 너의 귀는 어두워졌으며 너의 마음의 빛은 꺼져 사탄의 어둠에 갖혀있음이라 ! 인간의 썪어질...육체는... 인간의 삶의 ...목표도...목적도...전부...아니다 인간이 어찌하여... 개나...돼지나...닭이나..소처럼.... 저차원의 동물로 남아...사단과 악마의 자식으로..살려하는가! 숨어 살아있는....영원한...다음세상이 있음을... 잠들어 있는....너의 영을...깨워서...깨달으라....! 죽기전에...어서...깨달아...구원의 길로 가라 ! 죽은후에는...하나님의 영원한 심판뿐이다 ! 그길로 가는 법은...오직한길... 하나님이...예수님을 통하여 우리게 주신... 생명의 성경 말씀...뿐이라 ! 숨쉬는...우상(사탄)을 섬기지말라 !
창조주... 하나님은 반드시 계신다 ! 어리석은 자들아....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을 혜어보라 ! 그...끝도없이...많은 별들을... 만드신이는 석가도...마호메트도...교황도...목사도...신부도 성황당 고목나무도...돌부처도...돌아가신...내부모도... 모두 ..아니다 ! 숨쉬는...우상(사탄)을 섬기지말라 ! 그들도...모두..우리와 같은 피조물이며, 죄인이다 ! 못 알아 듣는자는....짐승이다 ! 숨쉬는...우상(사탄)을 섬기지말라 ! 신은
오직 한분...창조주...하나님이시다 !
하나님의 무한하신 참사랑으로 돌아오라 ! 어찌하여.... 보아도...보지못하며 들어도... 듣지못하고... 살다가 죽어가는 자야 ! 너는 사단의 자식이니라 ! 아름다운영혼 http://blog.daum.net/happyhouseinc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