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여행5 - 예루살렘성 시온문 밖 다윗의 묘와 최후의 만찬장을 보다!
4월 13일 선배님 부부등 우리 일행 4명은 예루살렘성 서쪽 야파(욥바) 문을 통해 성내로 들어와
다윗의 탑을 지나서 오른쪽 성벽에 인접한 좁은 길을 따라 아르메니아 구역 을 지납니다.
지금 지도를 보면 아르메니아 는 멀리 북쪽 카프카즈산맥 남부에 이슬람 아제르바이잔
과 영토 문제로 전쟁을 치른 옛 소련에 속했던 자그만 기독교 국가이지만....
2천년 전에 로마와 파르티아(페르시아)가 전쟁 을 벌일때 그 중간에서 양자의 쟁탈전에
의해 페르시아 측에 섰다가는 또 로마편에 붙는 등 기구한 운명을 겪은 나라 입니다!
당시는 지금 보다는 훨씬 남쪽 까지 영토를 가진 나라였기에 여기 예루살렘성 안에서도
유대인, 기독교도, 이슬람 주민들과 함께 예루살렘을 4분 하는 모양 입니다!
자그만 굴을 지나니 저 앞에 성루가 보이는데 여기 오른쪽이 바로 시온문
이니 두리번거리며 옛날의 기억을 되살리다가..... 평복이지만
거리에서 안내를 서는 듯한 왠 남자에게 다윗의 묘 를 물으니 따라 오랍니다!
우리 여자들이 팁을 뜯을까 걱정이 되는지 낯선 사람을 어찌 따라가냐며
질겁하니..... 선배님도 동조해서 근심스러운 얼굴로 나를 제지합니다!
예전에 이탈리아 리미니 역전에서 민박을 구하는데, 현지인 삐끼를 따라 고물차를 타려니
선배님이 질겁을 하며 낯선 사람을 따라가다 무슨 변을 당할지 걱정하던 모습이며....
산토리니에서 아테네를 거쳐 에게해 로도스섬에 도착하여 성 밖에서 오토바이
를 탄 할아버지 삐끼를 만나 성 안에 있다는 민박을 따라가며.....
내가 큰 캐리어며 배낭을 오토바이에 싣자 안절부절하시던 모습이 떠오르네요!
선배님 걱정 붙들어 메고 따라 오기나 하세요! 그러고는 앞장을 서니 그래도
근심스러운지 저만치 미적거리며 마지못해 내키지않는 걸음을 옮깁니다?
하기사 뭐 예전에 스무날간 러시아 전국일주 배낭여행시 성트 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해 참으로 어렵게 물어
물어 찾아갔더니 호텔이 없어진지라..... 그래도 전화번호는 있으니 공중전화 부스에서 전화를 하다가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낙담해 돌아서니 지나가던 50대 초반 러시아인 아주머니가 어쩐일이냐고 묻습니다.
호텔이 없어졌다고 말하면서 전화번호는 있다니까 아주머니는 지나가는 다른 러시아인 휴대폰을 빌려
저 전화번호로 전화한후 이사간 곳을 알겠다며 앞장서는데 지름길인지 대로를 버리고 엣날 좁은
골목길로 들어서니 선배님과 사모님은 우릴 납치하려 한다며 몇십미터 뒤에서 마지못해 따라오더라는?
시온문 Zion Gate 을 나가 골목길로 접어드니 많은 관광객들이 돌아오는 모습을
보노라니 이 길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드는데..... 저만치 마주보고
걸어오는 초정통파 유대교도들 뒤로 큰 돌로 쌓은 육중한 석조건물이 보입니다!
그래 저게 바로 20세기 초에 옛날 십자군 시대 교회터에 세웠다는 바로
그 마리아의 무덤으로 첫번째 방문시인 옛날 기억이 되살아납니다.
그러고는 골목을 하나 더 돌아가니 저만치 석조건물이 보이는데.... 좀 전의 남자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돌아가는 모습을 보니 자원봉사자 인 모양이네요! 아닌가?
양쪽이 막힌 자그만 뜰 맞은편에 “David Tomb" 라고 쓰인 팻말을 보니
왼쪽이무덤인 모양인데..... 그건 나중에 보기로 하고
우선에 마가의 다락방을 찾아 직진하여 계단으로 2층으로 올라갑니다.
실내로 들어서니 생각보다 넓은데 아치형 기둥이 받치고 있는 공간에는 소박
하여 특별한 장식이나 가구는 없고, 스테인드 글라스에다가 무슨
십자가에 달린 형상의 조각 하나정도.... 그런데 벽에는 왠 아랍 글씨 일까요?
여기가 바로 예수님이 12 제자와 함께 떡과 포도주를 나눈
“최후의 만찬”을 든 그 "마가의 다락방" 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작년에 밀라노 산타마리아 델라 그라치에 교회 에서 본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벽화 와는 느낌이 사뭇 다릅니다!
그러니까 2천년전의 건물이 현존하고 있을거라는 생각 자체가 어리석은 일로 설사 이 장소가
맞다고 할지라도 건물은 무너지고 재건하고 보수하기를 100번도 더 했을 것이니???
하지만 세계 각지에서 단체로 성지 순례를 온 기독교인 관광객들은 끼리끼리 모여
원을 그리고는 "성경을 펴고 감격하여 찬송" 을 부르는 모습만은 숙연합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황량한 이곳 예루살렘에서 돌아가셨지만.... 멀리 북쪽
비옥한 갈릴리 나사렛 출신인 예수님이 근처 마을인.....
가나의 혼인잔치 에 참가하셨던 그림이 떠오르는 것은 무슨 실없는 생각이람?
그러고는 밖으로 나와서는 옥상으로 올라가니 제법 높은 위치인지 예루살렘
시가지며 성벽의 모습이 보여 전망하기는 좋은 곳인가 합니다!
여기 예루살렘성 남쪽문을 시온문 Zion Gate 이라 부른 것은, 건너편이 바로
시온산이기 때문인데 아랍인들은 예언자 다윗의 문으로 부른다고 하네요!
바로 보이는 것이 십자군시대 교회터 위에 세웠다는 마리아의 무덤 인 데, 1차 십자군들이
1099년 예루살렘으로 쳐들어와서는 항복하면 살려준다며 성문을 열게하고는....
예루살렘성내로 들어와서는 약속을 저버리고 모슬렘과 유대인들을 전원 학살해서는 "피로써
거룩한 성지를 정화(?)" 한 후에.... 예루살렘 왕국을 세우고 천년을 갈 것이라 믿었겠지만!!!
예루살렘성을 지키던 십자군 성전 기사단의 기사 레이날 이 카락성주
의 미망인 에티아네트 와 결혼하여서는..... 카락 성주가 된
후에 잘 지내던 아랍인과의 평화협정을 깨고 불시에 대상을 습격 하니....
그건 인간의 탐욕과 오만 때문 이었을라나? 신의를 저버린데 분노한 아랍인들이 그간의
분열을 청산하고 살라딘을 중심으로 뭉쳐 십자군 갈릴리 티베리아 성을 공격하니....
1187년 예루살렘왕 기 드 뤼지냥 은 1만 2천의 십자군을 이끌고 종군
신부가 예루살렘성 지하에서 하느님의 계시를 받아 발굴한.....
천여년 전에 예수님이 처형되었던 그 실제 십자가(?) 를 앞세우고는....
"신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며 용기백배하여 북상했으나, 하틴의 전투 에서이슬람군에 패배
하고 살라딘은 여세를 몰아 88년만에 여기 기독교 예루살렘 왕국을 멸망 시키는 것입니다!
릇 교만하고 탐욕스러운 인간들이 빚어내는 최후라!!! 만일 십자군인 카락성주가 아랍인
대상을 약탈하지 않고 그간의 평화협정을 준수 했으면 기독교도를 쫓아낼 생각 보다는
눈앞의 이익에 급급해 분열되어 아랍인 자기네들끼리반목하며 영토싸움 에 날을 새우던.....
자기네들끼리 불신하여 지리멸렬한 아랍인들이 뭉칠수는 없었을테고 바로 여기
기독교 예루살렘왕국은 천년 을 갈수 있었을지도!!! 그럼 이후의 세계
역사는 이슬람인들이 흥기하는 법도 없이 기독교 천하로 엄청 달라졌을 것을......
실없는 생각을 지우고는 다시 뜰로 내려오니 하프를 타는 다윗왕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멀리 바라 보는 꿈꾸는 듯한 시선을 바라 보노라니.....
목동 다윗이 성경의 시편 을 대부분 지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떠오르네요! 그는 차라리
왕이 되지 않고 하프 연주가이자 시인 으로 살았으면 세계 역사는 어떠했을런지!
다윗의 무덤으로 들어가니 여긴 동굴 같은 생각이 드는데 철 문 안에
가묘가 있는 모양이나 실제 무덤은 어디 있는지는 모른다네요....
그리고 여기 시온문 밖에서 조금만 동쪽으로 걸어가면 옛날 다윗성
의 유적이 나오고 기혼샘 에서 히스기아 터널을 거쳐.....
실로암 연못으로 이어지는 옛날 수로 흔적이 있다는데, 그 수로를 통해 다윗의 군대가 잠입
해서 여부스인들의 예루살렘성을 함락시키고 수도를 헤브론에서 옮겨왔던 것이지요!
지금의 에루살렘 성에 비하면 다윗왕 당시에는 인구가 4천여명에 불과할 정도로
매우 작은 규모의 성이었다는건, 당시 이스라엘의 규모를 짐작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