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는 현재가 만들어내는 상상력이다. SF 영화는 아직 인간이 가보지 못한 미래 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호기심에만 전적으로 의지하지는 않는다. 인간의 삶이 갖고 있는 원형질적인 요소는 미래라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변화하는 것은 코스츔이다. 우리가 SF 영화에서 찾는 것은 지금 나의 삶이고 변화에 대한 가능성이다. 결국 미래는 현재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스타트랙-더 비기닝] 은 거대한 우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미래적 인간의 서사시이다. 하지만 그것은 가령 서부를 배경으로 전개되었던 서부극과도 본질적인 면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선량한 사람들을 위협하는 악인의 세력이 등장하고, 위험해 처해진 다수의 대중들을 안전한 곳으로 인도하는 지도자가 출현한다. 새로운 지도자 역시 몇 번의 위기를 겪게 되지만 주위의 도움과 그 자신의 내재적 힘으로 난관을 돌파하게 된다. 단순화하면, 위기와 갈등의 제시나 극복 방법은 상투적이고 비슷한 구조로 반복된다. 그렇다면 굳이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SF 영화일 것은 없지 않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그러나 SF는 시간의 흐름이 갖는 자유로움이 있다. 현재에 발 묶이지 않는 상상력의 광활함은 현실공간의 비좁은 이해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시각적 상상력이다. 미래사회가 어떤 모습일지 우리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 미래는 결국 다수의 인간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기 때문에 현단계 집단적 상상력의 연장선상에서 만들어진다고 봐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백년 전에 쓰여진 웰즈 박사의 공상과학소설 [투명인간]이나 [타임머신] 혹은 [닥터 모로의 섬] 같은 작품들이 영화화되면서 놀랄만한 현실감을 갖는 것이다.
[스타트랙-더 비기닝]은 우주를 지키는 거대 함선 엔터프라이즈호에 승선한 젊은 승무원들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지도자의 운명을 안고 태어났지만 자신의 길을 깨닫지 못하고 방황하는 청년 커크(크리스 파인)와 냉철하고 이성적인 불칸족의 피를 받고 태어난 스팍(잭커리 퀸토)의 대립을 바탕으로 전개된다. 엔터프라이즈호의 내적 갈등이 커크와 스팍을 중심으로 전개된다면, 외형적으로는 엔터프라이즈호를 위협하는 우주의 파괴자 네로(에릭 바나]가 이끄는 우주 해적들과 엔터프라이즈의 대립이 존재한다.
커크는 감성적이고 충동적인 기질이 있지만 위기에 처한 엔터프라이즈호를 구하고 함장이 된다. 그의 곁에는 1등항해서 술루(존 조)가 있고, 스팍의 곁에는 그를 사랑하는 섹시하고 지적인 우주 통신장교 우후라(조이 살디나)가 있다. [스타트랙-더 비기닝]의 재미는 엔터프라이즈호와 네로가 이끄는 함대의 대결에 있지 않다. 엔터프라이즈호 내의 갈등 구조가 강렬하고 인상적이어서 관객들은 네로의 위협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네로 역을 맡은 [트로이]의 멋진 왕자 헥토르 역을 맡은 배우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에릭 바나는 삭발하고 이마에 문신이 새겨진 특수분장으로 놀랄만한 변신을 해냈다. 종족을 잃은 원한을 갚기 위해 엔터프라이즈호를 공격하는 네로의 모습에서는 악인보다는 오히려 연민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술집에서 시비나 일으키던 사고뭉치 반항아 커크에게 운명적 힘을 불어 넣어주는 것은 그의 아버지의 죽음이다. 커크가 태어나던 날, 그의 아버지는 엔터프라이즈호의 다른 대원들 800명을 구하고 우주의 악인 네로 일당과 맞서 장렬히 전사한다. 출생의 비밀은 한국 드라마에만 있는 전매특허가 아니다. [스타트랙]에서도 주인공의 후광을 위해 전설적인 영웅담을 만들어냈다. 뒤늦게 자신의 출생에 얽힌 이야기를 듣게 된 커크는 엔터프라이즈호에 숭선해 대담하고 즉흥적인 리더쉽으로 엔터프라이즈호를 이끌게 된다.
하지만 오히려 매력적인 캐릭터는 스팍이다. 커크가 충만한 감성과 직관적 본능에 의지한 대담한 승부사라면, 스팍은 냉철한 이성과 객관적 논리에 의존하는 캐릭터이다. 스팍은 불칸족 아버지와 인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우주적 혼혈아이다. 스팍의 캐릭터는 안정된 현대사회가 추구하는 리더쉽의 유형이다. 하지만 커크는 혼란기의 난세를 뚫고 나가는 초월적 리더쉽의 유형이다. 즉흥적이고 제멋대로인 커크와 냉철한 이성으로 무장한 스팍의 대결은 [스타트랙-더 비기닝]을 끌고 가는 원동력이다.
스팍의 아버지 종족인 불칸족은 냉적하고 분석이다. 또한 논리와 이성을 중시한다. 하지만 스팍은 인간인 어머니에게서 따뜻하고 인간적인 면모 또한 물려받았다. 스팍이 불칸족과 인간 사이에서 정체성의 혼돈을 느끼는 모습은, 미래사회의 다양한 종족 사이에서 우리가 껵을 수 있는 한 단면이다. 뾰족하고 큰 키를 가진 불칸족의 특성을 그대로 물려받은 스팍은 양 끝이 올라간 눈썹과 독특한 헤어스타일로 인상적인 모습을 관객들에게 선사한다. 또한 엔터프라이즈호의 1등 항해사 슬루 역으로 캐스팅 된 존 조는 한인이다. 슬루는 불칸 행성을 파괴하려는 네로의 음모를 저지하기 위해 시속 800km의 스페이스 점프를 시도하며 커크와 함께 네로 일당과 맞서 싸운다.
컴퓨터 그래픽의 발달된 기술은 우주공간을 시속 800km로 낙하하는 아찔한 순간을 체감도 있게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스타트랙-더 비기닝]이 갖고 있는 현실감은 놀랄만큼 발달한 테크놀로지 덕분이다. [미션 임파서블3]의 감독인 J.J에이브람스는 전세계인을 사로잡은 TV 드라마 [로스트]에 이어 [스타트랙-더 비기닝]에서도 자신의 주요 스탭들을 그대로 수평이동해서 작업하고 있다. CG팀의 특수효과는 [트랜스포머]를 만든 기술팀에 의해 만들어졌다.
고공낙하의 스페이스 점프 장면은 [스타트랙-더 비기닝] 최고의 명장면이다. LA 다저스 경기장에서 촬영한 이 장면은, 5미터 높이의 허공에 플랫폼을 세운 후 배우들이 직접 촬영한 뒤 컴퓨터그래픽을 입히는 순으로 작업되었다. 극한적 추위로 둘러싸인 델타 베가 행성을 표현하기 위해 다저스 경기장 570평방미터의 거대한 공간을 인공눈으로 가득 채우는 난공사 후 촬영한 장면도 인상적이다. 하지만 단순한 시각적 볼거리만 있었다면 [스타트랙-더 비기닝]은 눈요기에 그치는 평범한 영화가 되엇을 것이다. 내면적 고통이 살아 있는 캐릭터들의 강렬한 대립과 서사구조, 그리고 공간의 미학을 최대한 살린 연출의 힘은 [스타트랙-더 비기닝]을 SF 영화의 새로운 차원으로 위치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