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타기 좋은 철이 돌아왔다. 황금빛 들녘으로 선선한 바람 가르며 맘껏 페달을 밟아보고 싶어지는 때다. 예년과 다른 건 자전거 바람이 유례없이 뜨겁다는 점이다. 자전거 바람은 꾸준히 불어왔으나, 이번 바람은 하향식이란 것도 색다르다. 대통령부터 지방자치단체장까지, 4대강부터 논두렁길까지 자전거 얘기로 뜨겁다. 자전거회사 주식은 급등하고, 자전거보험이 다시 등장했다. 전국자전거도시협의회라는 것도 만들어졌다.
친환경 교통수단의 결합…자전거도 타고 볼거리도 즐기고
자전거 타는 이들이 느는 배경엔, 자전거가 공해를 덜 발생시키는 친환경적 이동수단이면서 건강을 지키기 위한 레저활동 수단이란 매력이 깔려 있다.
이런 매력에 끌려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는 이들이 가장 먼저 부닥치는 문제는 도심 이동이다. 강변길·산길을 따라 조성한 자전거길은 아름다우나, 당장 집에서 그곳까지 이동하는 데 문제가 생긴다. 강변이나 산길에 조성한 자전거길 외에 대·소도시를 불문하고 자전거 전용도로, 보관시설 등을 일부라도 갖춘 곳은 손에 꼽을 정도다. 일반 도로를 따라 자전거로 무리 없이 이동할 수 있는 곳은 찾아보기 어렵다. 자전거 이용자를 대하는 차량 운전자들의 의식수준도 낮다. 자전거 도시라고 알려진 곳들도 들여다보면, 한두 곳을 제외하곤 비좁은 인도에 줄을 긋고 자전거도로라고 부르는 정도의 수준이다.
어쨌든 지금 당장 자전거를 타고 도시 안팎을 달리며 여행한다는 건 무모해 보인다. 그럼에도 자전거 이용 인구가 급증하는 건 건강·여가생활에 대한 욕구가 그만큼 커졌다는 뜻이다. 열풍이 위에서 불어오거나 말거나, 자전거는 꾸준히 사랑받아온 친환경적 이동수단이자, 삶에 활력을 주는 레저활동 도구다.
그런 점에서 최근 잇따라 선보이고 있는, 열차를 이용해 다녀오는 장거리 자전거 여행 방식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자신의 자전거를 열차에 싣고 여행지로 이동하는 방식이다. 공해 발생이 덜한 친환경적 두 교통수단의 결합이다. 장거리를 자전거로 이동하는 부담을 덜면서, 자전거 타기 좋고 볼거리 많은 지역으로 편안히 이동해, 자신의 자전거로 구석구석 둘러보며 즐기는 형태다.
지난 6월 경원선 성북역~동두천 구간에 4량의 자전거 전용칸을 갖춘 자전거 테마 전용열차가 처음 운행돼 큰 인기를 끌었다. 동두천 왕방산 자전거 전용도로(35㎞)와 연계한 열차상품이다. 산악자전거 동호회 회원들이 화물칸에 자전거를 싣고 영월이나 정선 등 산악자전거 코스로 떠나는 경우는 있었으나, 자전거 전용칸을 마련해 일반인을 대상으로 자전거 열차를 운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첫 운행 열차가 매진 사태를 빚자, 코레일은 지난달 30일에도 왕방산 엠티비(MTB·산악자전거) 챌린지대회에 맞춰 자전거 전용열차를 다시 운행했다. 코레일과 동두천시는 앞으로 자전거 열차를 정기 상품화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국내 주요 도시 자전거 여행은 목숨 건 결단”
지난 12일엔 경주 문화유적지를 자전거로 둘러보고 돌아오는, 장거리 ‘에코레일 자전거여행 열차’를 운행해 성황을 이뤘다. 신종 플루 우려 속에서도 220여명의 자전거 애호가들이 참가해, 경주에서 자신들의 자전거로 문화유적지를 둘러보고 돌아오는 당일 자전거여행을 즐겼다.
코레일 쪽은 앞으로 경의선(서울~문산), 경춘선(망우~마석~춘천역) 구간에도 자전거 전용칸을 마련하는 등 자전거 전용열차 운행을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중앙선 전철(용산~국수)엔 이미 지난 6월부터 자전거를 싣고 탈 수 있는 전용칸이 선보였다. 중앙선 전철 전동차의 맨 앞칸과 뒤칸 두 량을 전용칸으로 지정했다(평일엔 출퇴근 시간 제외한 오전 10시~오후 3시 이용 가능). 코레일 집계에 따르면 평일 20~30명, 주말엔 150~200명이 자전거 전용칸을 이용한다. 자전거를 들고 중앙선 열차를 탈 수 있는 역은 현재 이촌·서빙고 등 14곳. 올해 안에 한남·옥수·응봉역을 추가하고, 역마다 자전거 이동용 경사로를 설치할 예정이다.
철도와 연결되는 지하철에서도 자전거 휴대가 가능해졌다. 서울시는 지하철 1~8호선 전동차의 맨 앞칸과 뒤칸 한쪽에 자전거 거치대를 설치한 자전거 전용칸을 운영하기로 했다. 오는 10월부터 시범운영(일·공휴일)을 거쳐 내년 4월 이후 본격 운행할 예정이다. 주요 역사에 자전거 진·출입용 경사로와 개·집표기를 설치하고, 일부 역엔 자전거 보관시설도 설치하기로 했다. 부산 지하철은 이미 지난 6일부터 3호선 구간에서 자전거 휴대탑승 시범운행을 시작했다(일·공휴일).
자전거 이용객을 위한 이런 배려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일반도로 이동로와 보관소 등 기반시설, 자전거 이용자를 바라보는 차량 운전자들의 시각이다. 급증하는 자전거 인구로 이제 자전거 전용로는 일반 차도·인도처럼 도로 건설 때 꼭 갖춰야 할 필수시설로 떠오르고 있다.
자전거 애호가 정종호(51·남양주시 오남리)씨는 “국내 주요 도시를 자전거로 여행하는 건 목숨을 건 결단이 필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올 초까지 1년간 아시아·유럽·아프리카를 자전거로 여행하고 돌아온 그는 “중국은 자전거왕국답게 도시간 주요 도로의 1개 차선을 자전거에 내주고, 유럽 도시엔 시내·외곽을 가리지 않고 전용로가 마련돼 있다”고 전했다. 그는 “유럽의 경우 도로뿐 아니라 차량 운전자들의 자전거에 대한 배려가 특히 인상적이었다”며 “자전거가 안전하게 앞서나갈 때까지 끈기 있게 기다려 줘 감동을 받은 적이 많다”고 덧붙였다.
자전거 전용도로와 시설은 자전거 여행자들을 위한 배려이기 전에 새로운 관광 인프라를 닦는 토대일 수 있다. 편리한 자전거도로는 곧 관광자원이다. 주민들이 이용하기 편리해야 관광객도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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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멀미’ 김춘추도 자전거 멀미는 안하겠지
기차-자전거로 간 당일치기 경주여행기
아이들과 함께 하는 가족여행 ‘딱이네~ 딱’
신라 유적따라 15㎞ 초보-30㎞ 중급자 코스
지난 12일 아침 6시 서울역. 날씬한 라이딩복에 헬멧을 쓴 자전거 애호가들이 자전거를 끌고 승강장에 몰려 장사진을 쳤다. 경주행 ‘에코레일 자전거여행 열차’ 참가자들이다. 220여명의 참가자들은 자전거 거치대가 설치된 네 량의 전용차량에 자전거를 실은 뒤 네 량의 객차에 나눠타고 신라 고도 경주를 향해 달렸다.
신종플루도 못말리는 ‘자전거 열정’…“신랑보다 더 좋아”
참가자 대부분은 수도권 각 지역 자전거 동호회 회원들. 간간이 가족과 쌍쌍의 연인 참가자들이 섞였다. “내 자전거의 페달을 밟아 이름난 경주의 유적들을 둘러볼 수 있다는 생각”에 들뜬 표정들이다. 인천에서 아내 이정인(43)씨, 아들 태호(11)군과 함께 온 공병용(47)씨는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달려왔다”며 “온 가족이 자전거여행을 하기는 처음이어서 무척 기대된다”고 말했다. 공씨는 인천 당하동에서 서울시청까지 4년째 자전거로 출퇴근하고 있는 마니아다.
시간이 지나면서 여기저기서 캔맥주를 꺼내 들고 권하는 모습이 보인다. 강북의 한 자전거 동호회 회원으로 참가했다는 50대 남성은 “자전거 타러 가면서 함께 술 마시기는 처음”이라며 “장거리 열차여행만이 가진 매력”이라고 즐거워했다. 웃고 마시고 떠들고 잠자는 동안 열차는 5시간 가까이 달려 경주역에 도착했다. 승객들은 역을 나서며 ‘신종 플루’에 대비해 체온을 재고, 소독약으로 손을 씻었다. 역 앞에서 열린 기념행사를 마치고 첨성대 옆까지 함께 행진한 참가자들은 잔디밭에 모여 선택한 일정 설명을 들었다.
코스는 두 가지. 초보자들을 위해 시내 중심부 평탄한 지역을 도는 15㎞짜리 코스와, 하천길을 따라 좀더 외곽을 도는 30㎞짜리 중급자 코스다. 경주는 시 전체가 박물관으로 일컬어지는 유적 도시다. 어느 코스를 택하든 모두 즐비한 신라 유적을 거치게 돼 있다.
중급자 코스를 택한 서울 성북·도봉구 지역 동호회 ‘둘다섯’의 회원 여섯이 잔디밭 감나무 그늘 아래 둘러앉아 준비해 온 도시락을 펼쳤다. 자전거를 여러 해씩 즐겨온 60~70대 남녀 어르신들이다. 앞다퉈 자전거 예찬론을 쏟아냈다.
“자전거를 타면 정말 젊어져요. 날 보라구.” “좋은 점이야 말도 못하죠. 우리 신랑보다 더 좋아.”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면서 차 운전대 잡기가 싫어지더라고.” “난 한 50년 탔지. 세발자전거까지 하면 60년이고.”
총회원이 15명인 둘다섯 동호회는 2002년 결성 이래 “강화도 왕복 150㎞, 임진각 왕복 160㎞에다, 양평·동두천 등 서울 근교로 거의 매주 당일 자전거여행을 해왔다”고 했다. 회원 김영우(71·서울 미아동)씨가 말했다. “덤프트럭이 제일 겁나지. 이것들은 자전거만 보면 그냥 밀어붙여요. 하루빨리 큰길마다 자전거도로를 만들면 좋겠어.”
서비스·프로그램 부재 등 아쉬움 커
점심식사 뒤 참가자들은 두 코스로 나뉘어 문화유적 탐방에 나섰다. 경주의 자전거 이동로는 대체로 잘 정비된 편이다. 경주엔 문화유적지를 중심으로 한 총 95㎞에 이르는 6개의 자전거 코스가 만들어져 있다. 코스들엔 모두 25개의 자전거 보관대(30~50대 보관)를 설치해 이용자들이 자전거를 세워두고 주변 유적을 둘러볼 수 있게 했다.
초급자 코스 참가자들을 감동시킨 건 함께 자전거를 타고 동행한 문화유산해설사의 해설이었다. 초보인 아내와 아들을 배려해 초급자 코스를 둘러본 공병용씨는 “경주 유적을 자전거로 둘러본 건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될 것”이라며 “해설사의 상세한 설명이 특히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서울 서초동에서 온 김경훈(30)·김현정(27) 연인 짝도 “4시간이 너무 짧다고 느낄 정도로 재밌고 유익한 시간이었다”며 한목소리로 즐거워했다.
오후 6시 넘어 참가자들은, 가을 들녘 풍경과 신선한 공기, 신라 유적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가득 품고 서울행 열차에 몸과 자전거를 실었다.
처음 선보인 장거리 열차 자전거여행이 좋기만 한 건 아니었다. 많은 참가자들은 열차내 프로그램 부재를 불만사항으로 꼽았다. “왕복 10시간 동안 식당칸도 없는 열차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갈 땐 기대감으로 몰랐지만, 돌아올 땐 정말 지루했다.” “고객 서비스도 좋지 않았다.” “현지에서 머무는 시간이 너무 짧다. 밤에 출발해 여유있게 둘러보는 방식이 좋겠다.”
유적지 코스로 자전거가 수십대씩 한꺼번에 이동하면서 일부에선 차량 주차장에 자전거를 세워두는 데 따른 통행 불편 문제, 유적 주변 환경 훼손 문제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코레일은 드러난 문제점을 보완해 10월초부터 11월말까지 경주를 포함한 전국 각 지역으로 자전거 전용 열차를 운행할 계획이다. 이천세 코레일 여객사업본부장은 “곡성 기차마을, 김제 코스모스길 등 경치가 좋고 자전거도로가 있는 지역을 선정해 자전거 열차를 운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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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실네 집은 어디일까
신라 주요 유적 감상하기
첨성대에서 황룡사까지 5시간 느긋한 ‘신라여행’
드라마 인기 반영하듯 선덕여왕 코스 많이 찾아
신라는 기원전 57년부터 서기 935년까지 992년 동안 이어온 고대국가다. 신라 수도 경주는 1000년 역사를 간직한 박물관 도시다. 국보 32점, 보물 93점을 비롯한 236점의 국가지정 문화재들이 깔려 있어 노천박물관으로 불린다. 1995년 석굴암과 불국사가, 2000년엔 경주시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역사유적지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돼 그 진가를 인정받았다.
주요 유적들을 둘러보는 방식은 걸어서 둘러보는 방식과 차량 및 도보 이동, 자전거를 이용한 탐방이 있다. 최근엔 자전거를 이용하는 이들이 크게 늘었다. 6개의 유적 탐방코스를 마련하고 주요 유적 주변 25곳에 자전거 보관대를 설치했다. 자전거는 경주역과 버스터미널, 신라문화체험장 옆 등 시내 52곳에 마련된 대여소에서 빌릴 수 있다.
하루 자전거 대여료 7000원
요즘 뜨는 코스는 신라의 세 여왕 중 첫 여왕인 27대 선덕여왕 관련 유적 탐방로다. 꼭 정해진 코스가 있는 건 아니지만, 낭산 주변에 선덕여왕릉 등 관련 유적이 몰려 있다.
지난 11일 수원에서 내려온 이미영(26), 황수경(22·이상 간호사)씨를 따라 자전거로 유적을 둘러봤다. 이들은 낮 근무가 없는 날을 이용해 이날 새벽 열차로 경주에 도착했다. 이씨는 자전거 초보, 황씨는 베테랑이다.
이씨와 김씨는 신라문화체험장에서 문화재 모형을 본뜬 목걸이 만들기(3000원), 천연비누 만들기(5000원) 등 체험을 한 뒤 대릉원 앞 자전거 대여소에서 1일용(7000원) 자전거를 빌렸다. 1시간엔 3000원, 3시간엔 5000원.
오전 9시. 자전거 초보인 이씨가 주행 연습을 마친 뒤 먼저 첨성대로 향했다. 시내에선 인도에 표시된 자전거길을 이용한다. 첨성대 매표소 앞에 자전거를 대고 들어섰다. 첨성대(국보 31호)는 1300년 풍상을 견뎌낸 고대 천문관측 시설이다. 선덕여왕 때 362개의 돌을 다듬어 쌓은 높이 9.2m의 원형 구조물이다. 문화유산해설사 김화숙(47)씨는 “별 관측소라기보다는 선덕여왕이 하늘의 뜻을 알기 위해 지은, 권위를 위한 건축물”이라며 “처음 쌓을 때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보기 드문 유적”이라고 설명했다.
경주 김씨의 시조 김알지의 탄생설화가 서린 소나무숲 계림을 지나 신라 왕궁이 있던 월성(반월성·신월성)으로 자전거를 몰았다. 코스모스 꽃밭을 지나 언덕길을 오르니 널찍한 평지가 펼쳐진다. 왕궁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고 성벽 일부와 성 둘레에 판 물길인 해자 흔적이 남아 있다. 대신 조선 영조 때 얼음을 보관하기 위해 지은 석빙고(보물 66호)가 기다린다. 돌로 만든 얼음창고다. 월성을 내려와 해자 흔적을 보고 차도를 따라 안압지(월지) 거쳐 낭산으로 향했다.
선덕여왕릉 앞엔 탐방객 헌화 ‘수북’
도로변에 늘어선 벚나무 잎들은 노랗고 붉은빛으로 물들기 시작했고, 목백일홍은 아직 백일을 채우지 못했는지 여전히 붉은 꽃송이들을 달고 흐드러졌다.
낭산(狼山)은 높이 100m 남짓의 작은 산이지만, 얽힌 이야기가 수두룩하다. 이리가 엎드린 형상의 산이다. 신라 초기부터 이 산을 신성시해, 신이 내려와 거처하는 신유림으로 부르며 벌목을 금했다고 한다. 지금도 산자락엔 신선이 내려왔다는 뜻의 강선마을이 있다. 이 산기슭에 선덕여왕의 능이 있다. 능으로 오르는 길에 능지탑을 만난다. 흙을 쌓고 돌을 탑 형식으로 두른 모습이 능도 아니고 탑도 아니다. ‘왜적을 무찌르기 위해’ 동해바다에 장사 지내 달라고 했던 문무왕을 화장한 장소라고 한다.
선덕여왕릉은 울창한 소나무숲에 둘러싸여 있다. 자전거는 산길로 올라야 한다. 능 앞에 탐방객들이 바친 국화가 수북이 쌓여 있다. 주로 중년 여성 탐방객들이 꽃을 바치며 갖가지 기도를 올린다. 특정 여성 정치인의 이름을 거명하며 꽃을 바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소나무 숲길을 내려와 자전거를 세워두고 발굴 작업중인 사천왕사 터를 바라본다.
선덕여왕은 죽기 전에 “내가 죽으면 도리천에 묻어 달라”고 했는데 도리천이 어딘가를 묻자 “낭산의 남쪽”이라고 했다고 한다. 사천왕사는 선덕여왕 사후 30년 뒤 능 아래쪽에 문무왕때 지은 절이다. 해설사 김씨는 “불가의 ‘사천왕천 위에 도리천이 있다’는 말이 그대로 맞은 셈”이라고 말했다.
낭산을 내려오면 자전거길은 본격적인 가을 들판으로 접어든다. 막 누런빛으로 물들기 시작한 벼들이 깔린 널찍한 들판길로 페달을 밟는 기분이 상쾌하다. 길은 선덕여왕의 아버지이자 선왕인 진평왕 왕릉으로 이어진다. 가는 길에 잠시 논 한가운데 자리한 보문동 연화문 당간지주(보물 910호)를 찾았다. 높이 1m46의 짤막한 당간지주가 인상적이다. 지주 위쪽에 커다란 연꽃무늬를 새긴 것도 이채롭다. 해설사 김씨가 “신라 당간지주 가운데 가장 특이한 모습이어서 주목받는 유적”이라고 설명했다.
진평왕릉 팽나무 그늘에서 쉬엄쉬엄
설총은 원효대사와 요석공주 사이에서 태어난, 신라 3대 문장가의 한 사람. 설총의 묘를 본 뒤 마을 가게에서 생수를 사들고 진평왕릉으로 페달을 밟았다. 진평왕릉 주변 풍경은 아름드리 팽나무 무리가 키워준다. 능 옆엔 소나무·버드나무도 있지만, 능을 둘러싸고 서서 저마다 깊고 짙은 그늘을 드리운 팽나무들 자태가 그림 같다. 해설사 김씨가 말했다. “진평왕은 현재 드라마에서 연약한 인물로 그려지고 있죠. 그러나 진평왕은 키가 11척에 이르는 장대한 인물이었다고 기록돼 있어요.”
논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농수로길을 달려 낭산 자락의 황복사 터 삼층석탑으로 간다. 황복사는 의상대사가 출가한 곳으로, 삼층석탑 안에선 서고 앉은 금불상 2개(국보)가 나왔다고 한다.
다시 찻길로 나와 인도로 자전거를 몰아 분황사를 찾아간다. 분황사는 선덕여왕 3년(634년)에 창건된 절이다. 자장·원효 등 고승들이 이 절을 거쳐갔다고 한다. 3층만 남은 분황사탑은 중국의 전탑(벽돌탑)을 모방해 안산암을 다듬어 벽돌처럼 쌓아 만든 모전탑이다. 가장 오래된 신라시대 탑으로, 본디 7~9층 탑이었을 것으로 본다. 경내 담 밑으로 탑에 쓰였던 다듬은 돌들이 수북이 쌓여 있다.
탑 옆의 석정(신라 때 우물)과, 신라시대 비석 자리에 추사 김정희가 쓴 글씨가 있는 빗돌받침도 볼거리다. 우물을 이루는 돌은 거대한 통돌을 깎아 만든 것이다. 분황사 터 옆의 광활한 주황색 코스모스밭은 역시 선덕여왕 때 창건된 거대한 절 황룡사 터다.
황룡사 터 옆길을 따라 이동해 다시 신라문화체험관으로 돌아오니 오후 2시. 진평왕릉 팽나무 그늘에서 오래 게으름을 피운 까닭에 5시간이나 걸렸다.
이동 중에 두 번이나 넘어진, 자전거 초보 이미영씨는 “별러오던 자전거를 배웠고, 말로만 듣던 경주의 유적들을 직접 만나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황수경씨는 “처음엔 시티투어버스를 타려고 했는데, 둘러보고 나니 자전거 타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며 “들길을 달린 것만으로도 즐거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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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글·사진 이병학 기자
첫댓글 고맙습니다 자전거타고 경주가기를 흥미 진진하게 읽었습니다
물길이 발췌한 이글 우리도 한번 답사 하면 어떨까요?
경주는 우리 '경주 이씨' 시조할아버지가 사셨던 곳인데 경주에 가면 신라왕국이 건국되기 전의 옛신라의 6부촌에 대한 것을 기념관으로 만들어 보존하고 있지요. 경주 이씨 시조 '이알평' 할아버지가 옛신라의 6부촌의 촌장이었데요. 또한 신라시대에는 경주 이씨가 '진골'신분의 귀족이였답니다. 조상님의 고향인 경주에 가봐야 겠는데... 언제 가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