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십자가 아래에 서 계신 어머니
9월 15일
“아들 수난 보는 성모 맘 저미는 아픔 속에 하염없이 우시네.”
―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부속가 스타바트 마테르(Stabat Mater) 중
오늘 교회는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을 지냅니다.
어제 9월 14일에는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을 지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인 오늘은 바로 그 십자가 곁에 끝까지 서 계셨던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고통을 기억합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오늘을 “예수님의 십자가 길을 함께하신 성모님의 고통을 기억하는 날”이라고 설명합니다.
성모님의 고통을 묵상하는 신심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으며, 1908년 성 비오 10세 교황이
이 기념일을 9월 15일로 옮겨 성 십자가 현양 축일과 연결하여 지내도록 하였습니다.
1.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릴 것입니다.”
성모님의 고통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순간에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아직 아기였을 때, 성전에서 아기를 봉헌하는 마리아에게 늙은 시메온은 이렇게 예언합니다.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 루카 2,35
마리아는 아들의 미래에 기다리고 있는 고통을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맡기신 아들을 품에 안고 살아가는 동안, 마리아는 기쁨만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마음속에 간직하며 믿음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도 마리아를 “믿음의 순례를 걸어간 분”으로 묘사합니다.
마리아의 신앙은 모든 것이 명확하게 보이는 길이 아니라, 이해하기 어려운 순간에도 하느님을 신뢰하는 길이었습니다.
2. 성모님의 일곱 가지 고통 ― ‘성모 칠고’
교회의 오랜 신심 전통에서는 성모님께서 예수님과 함께하시며 겪으신 특별한 고통을 ‘성모 칠고(七苦)’,
곧 성모님의 일곱 가지 고통이라고 묵상해 왔습니다.
① 시메온의 예언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하실 때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릴 것”이라는 예언을 들으셨습니다. 루카 2,34-35
② 이집트로 피신하심
헤로데가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 하자
마리아와 요셉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해야 했습니다. 마태 2,13-15
③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수님을 잃으심
열두 살 예수님을 사흘 동안 찾아 헤매는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루카 2,41-52
④ 십자가의 길에서 예수님을 만나심
골고타로 향하는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마음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요한 19,16-17
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
사랑하는 아들이 십자가 위에서 고통받고 죽어가는 모습을 어머니는 눈앞에서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마태 27,35
⑥ 예수님의 시신을 품에 안으심
십자가에서 내려진 아들의 죽은 몸을 받아 안는 어머니의 고통입니다. 요한 19,38 참조
⑦ 예수님의 시신을 무덤에 모심
사랑하는 아들의 시신을 무덤에 모시고 어머니는 다시 홀로 남겨졌습니다. 루카 23,53
이 일곱 가지 고통은 단순히 성모님의 슬픔을 나열한 것이 아닙니다.
그 안에는 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사랑과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깊은 믿음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3.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가 서 있었다.”
오늘 복음에서 가장 마음에 와닿는 말씀은 이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가 서 있었다.” ― 요한 19,25
성경은 마리아가 십자가 아래에서 무엇이라고 외쳤는지 기록하지 않습니다.
그저 “서 있었다”고 전합니다.
아들이 고통받는 모습을 바라보면서도 도망가지 않고,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말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깊은 슬픔 속에서도
어머니는 아들의 곁에 서 있었습니다.
이 ‘서 있음’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랑으로 함께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대신해 줄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아픈 사람을 대신하여 아플 수도 없고, 그 사람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질 수도 없습니다.
그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은 어쩌면 그 사람 곁을 떠나지 않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성모님께서 바로 그렇게 하셨습니다.
4. 성모님의 고통은 절망이 아니었습니다.
성모님의 고통을 바라볼 때 중요한 것은 그분이 단지 슬픔에 빠져 계신 분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성모님은 십자가 아래에서 아들의 죽음을 바라보면서도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마리아가 십자가까지 아드님과의 결합을 충실히 지켰으며,
아드님과 함께 깊이 고통받으면서 어머니의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희생에 참여하셨다고 가르칩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도 마리아의 고통을 단순한 인간적인 슬픔으로만 보지 않고,
아드님의 구원 사업에 믿음으로 참여하신 어머니의 깊은 연대와 사랑으로 설명합니다.
그리고 십자가 아래의 마리아에게서 부활을 향한 희망의 빛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성모님의 눈물에는 절망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눈물 속에는
믿음이 있고, 사랑이 있고, 인내가 있고, 부활에 대한 희망이 있습니다.
5.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머니 마리아와 사랑하시는 제자를 바라보시며 말씀하십니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어서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 요한 19,26-27
예수님께서는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어머니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마리아를 사랑하는 제자에게 어머니로 맡기셨습니다.
교회는 이 말씀 안에서 단순히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어머니를 돌보아 달라고 부탁하신 것 이상의 의미를 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이 장면에서 마리아가 그리스도인의 어머니로 주어지는 의미를 깊이 묵상합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아래의 성모님은 오늘도 우리의 어머니로서 우리의 고통과 눈물을 바라보시는 분입니다.
6. “스타바트 마테르(Stabat Mater)”
오늘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을 생각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기도가 있습니다.
바로 「스타바트 마테르(Stabat Mater)」,
우리말로 ‘슬픔의 성모’ 또는 ‘고통의 성모’로 불리는 부속가입니다.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Stabat Mater dolorosa,
iuxta crucem lacrimosa,
dum pendebat Filius.
“고통의 어머니께서
십자가 곁에 눈물 흘리며 서 계시니,
아들이 매달려 있었네.”
이 기도는 십자가 아래에서 고통받으시는 성모님을 바라보며 우리도 그 사랑의 신비에 참여하도록 초대합니다.
교황청 전례에서도 「Stabat Mater」는 십자가 아래 성모님의 슬픔과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하는 기도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7. 오늘, 우리의 고통을 성모님께 봉헌합니다.
우리에게도 각자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말하지 못하는 아픔, 가족을 위한 눈물, 자녀를 바라보며 흘리는 부모의 눈물,
병고와 외로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슬픔, 아무리 기도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
그럴 때 우리는 십자가 아래에 서 계신 성모님을 바라봅니다.
성모님께서는 고통을 모르는 분이 아니십니다.
오히려 사랑하는 이를 위해 얼마나 깊은 마음으로 울어야 하는지를 아시는 분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는 이렇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성모님,
저희의 아픔도 당신의 마음에 맡겨 드립니다.
저희가 고통 때문에 하느님을 떠나지 않게 하시고, 십자가 아래에서도 끝까지 사랑할 수 있도록
저희를 지켜 주소서.”
🌹 고통의 성모님께 드리는 묵상
십자가 아래에 서 계신 성모님,
말없이 아드님의 고통을 바라보셨던 어머니,
저희가 삶의 십자가 앞에서 두려워 도망치지 않게 하시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에도 사랑으로 곁에 머물 수 있게 하소서.
눈물이 앞을 가릴 때에도 하느님을 믿게 하시고,
우리의 아픔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함께 봉헌하게 하소서.
그리고 언젠가 십자가 너머에 부활의 빛이 있음을 끝까지 믿게 하소서.
고통의 성모 마리아님,
저희와 저희 가정의 모든 아픔을 당신의 모성적인 마음으로 품어 주소서.
아멘.
📖 묵상 성경 말씀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가 서 있었다.” ― 요한 19,25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릴 것입니다.” ― 루카 2,35
📚 참고 문헌 및 자료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오늘의 미사」 — 2026년 9월 15일,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의 의미와 역사, 전례문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오늘의 미사 — 2026년 9월 15일 -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 헌장」(Lumen gentium) 제58항
성모님께서 십자가 곁에서 아드님과 함께 고통받으시며 구원의 신비에 참여하신 의미를 다룹니다.
교황청 — Lumen gentium 제58항 - 성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Redemptoris Mater), 제18항
십자가 아래의 마리아와 그리스도의 구원 신비, 그리고 마리아의 모성적 역할을 묵상하는 데 좋은 자료입니다.
교황청 — 「구세주의 어머니」 - 성 요한 바오로 2세, 1997년 4월 2일 일반알현
십자가 아래에서 아드님의 고통에 동참하신 마리아의 믿음과 희망을 설명합니다.
교황청 — 1997년 4월 2일 일반알현 - 「Stabat Mater」(고통의 성모 부속가)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의 핵심적인 묵상 기도이며, 십자가 아래 성모님의 고통과 사랑을 노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