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용 년 도 |
명목성장률 |
실질성장률 |
GNP디플레이터 상승률 |
1955 ∼ 1970 |
15.7 |
10.0 |
5.2 |
1970 ∼ 1975 |
16.2 |
4.5 |
8.4 |
1975 ∼ 1980 |
9.9 |
4.7 |
4.4 |
1980 ∼ 1985 |
5.7 |
3.7 |
1.6 |
1985 이후 |
5.7 |
4.8 |
0.8 |
2> 일본정부의 적절한 총수요관리
55∼70년의 고도경제성장기에는 상당한 진폭을 가진 경기변동이 거듭되었다. 55년에서 64년까지를 보통 제1차 고도성장기라 부르고 65년부터 70년까지를 제2차 고도성장기라 부르고 있다. 제1차 고도성장기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설비투자확대에 뒷받침된 국내시장 중심의 고도성장이었다. 제2차 고도성장기에는 설비투자와 더불어 수출수요가 추가되어 57개월의 경기확대국면을 맞이했다.
제1차 고도성장기에는 경기확대국면이 과열되는 양상을 보임과 동시에 원재료 수입급증으로 국제수지가 악화되어 이에 대처하기 위한 정부의 재정·금융긴축정책이 발동됨으로써 경기가 후퇴국면으로 전환하는 패턴을 보였다. 이때의 경제상황은 정부와 기업이 과감한 투자확대를 통해 경제성장을 추구하여 국제수지가 적자를 보이자 생산활동이 급격히 위축되는 불안정한 패턴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일본정부는 전후 처음으로 저자국채를 발행하는 등 경기부양책에 부심했다. 이에 따라 66년에는 설비투자가 회복하여 일본경제는 이자나기경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 기간중 일본은 1968년 미국에 이어 서방세계에서 제2위의 GNP규모를 실현하였고 경상수지흑자도 정착되었다.
65년부터의 제2차 고도성장기에는 베트남전쟁의 격화로 미국의 국제수지 적자폭이 확대되는 한편 일본의 국제수지는 안정적 흑자기조를 유지하게 되어 국제수지가 경기확대의 제약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았다. 대신에 경기가 과열조짐을 보이면서 노동력에 대한 초과수요가 발생하여 물가상승압력이 높아졌다. 이에 대해 정부가 흑자기조하의 긴축정책을 발동하여 경기가 하락세로 반전되는 등 경기변동 패턴이 변화되었다.
3> 기업합병으로 시장개방에 대비
개방화시대를 앞두고 통산성은 자유화를 가능한 한 늦추는 한편 일본기업의 국제경쟁력 강화를 추진하였다. 막대한 외국자본의 일본상륙을 앞두고 일본기업은 대형 합병, 합리화에 주력하여 경쟁력 향상과 수출확대에 노력하였다.
합병은 국제경쟁력 향상을 위해서도 중요한 과제였다. 시장개방을 앞두고 기업은 헛된 투자를 자제하여 경쟁력 강화에 주력하였던 것이다. 합병은 설비투자를 합리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기술·연구개발의 효율화, 관리부분 합리화, 해외활동 강화, 자금조달능력 확충, 기업종합력 강화 등에도 기여하였다.
자본조달 능력, 기술개발력에 있어서 일본기업을 압도하고 있었던 외국 다국적기업과의 경쟁에 대비한 경쟁력 강화시책에는 일본정부의 산업재편정책이 크게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산업 통상 정책의 내용은 첫째, 설비투자를 조정하여 카르텔, 공동투자, 전문화, 표준화 등으로 생산규모를 적절하게 조정한다.
둘째, 합병, 상호출자, 업무제휴, 협업화, 그룹화 등으로 기업규모를 확대하거나 생산계열의 합리화를 도모한다.
셋째, 국공채 발행, 자본공급기관의 개선, 금리인하, 기업 조세 부담 경감조치로 산업계와 금융계의 관계를 강화하여 일본기업의 자기자본비율을 높인다.
국내시장을 보호하면서 내수를 중심으로 양산체제를 확립하여 경쟁력을 키우고 난 일본기업들은 개방시대를 앞두고 수출확대를 과감하게 추진하여 외국기업을 자국내 시장방어에 몰두시킴으로써 일본시장 공략을 엄두도 못내게 하여 국내과점체제를 유지하였던 것이다. 국내시장 지배로 외국시장에 대한 덤핑수출도 쉬워지는 등 개방화시대에 대비한 일본의 공격적 방어 시책은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4> 자동차산업은 유치산업에서 전략산업으로....
일본 통산성은 자동차산업의 개방을 되도록 늦추면서 그 육성에 힘을 썼다.
일본 자동차산업은 전시·전후의 생산제한에 의해 구미제국과 비교하여 생산규모·기술면에서 크게 뒤떨어져 있었다. 정부는 이 격차를 줄이기 위해 이제차의 수입을 규제하는 동시에 외국업체와의 기술제휴를 추진했다.
고도성장으로 개인의 소득수준이 높아진 결과 대량생산에 따른 자동차의 실질가격 하락이 수요를 증대시켰고 이것이 다시 생산을 확대시키는 호순환을 일으켜 자동차산업이 급성장했다. 승용차의 대중화로 양산체제를 갖춘 일본자동차업계는 가격·품질향상에 주력하였을 뿐만 아니라 외제차와의 경쟁에 대비하여 새로운 모델개발, 판매력 강화시책이 강구되었다.
정부시책은 자동차산업의 독과점화를 유도하여 양산효과를 높이는 것이었다. 수많은 부품을 조달·조립하여 완성차를 생산하는 자동차산업에 있어서는 피라미드구조하에 놓인 중소기업 계열사를 조직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통산성의 자동차산업 육성시책이 큰 효과를 거두었지만 현재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한 혼다자동차의 자동차업 진출 방해 등 실책도 있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민간기업의 활력이 일본자동차왕국화의 원동력이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5> 일본의 국제적 위상 증대
1980년대 후반에 들어서 확대된 일본의 국제수지흑자는 미국의 무역수지적자 확대와 함께 국제적인 정치문제로 비화되었다. 미·일간 무역수지·경상수지 불균형 확대문제는 미국의 재정적자누적과 더불어 미국의 금융구조를 허약하게 만드는 등 세계경제의 구조적 문제로 부각되었다.
일본정부는 불황대책으로 파격적 금융완화와 재정지출확대로 경기부양에 주력하였다.
엔고로 인한 엔화의 국제구매력 상승으로 국내물가는 상당한 안정세를 보였으며 기업들은 이를 이용하여 과감한 기업전략을 추진했다. 해외공장 증설, 공장자동화에 의한 비용절감, 내수개척, 신상품 개발 등이 모색되었다. 누적된 경상수지 흑자, 저금리, 엔고에 따른 주식·부동산시장 호황 등에 힘입어 기업의 재무구조가 개선되어 엔고에 따른 주식·부동산시장 호황 등에 힘입어 기업의 재무구조가 개선되어 엔고를 극복할 수 있게 되었다.
*<참조> : 미·일 GNP 및 대외순자산 비교
|
1985 |
1986 |
1987 |
1988 |
1989 | |
명 목 G N P |
일 본 (조엔) (10억달러)a 미 국 (10억달러)b a / b |
317 1,350 4,015 0.34 |
331 1,982 4,240 0.48 |
345 2,400 4,527 0.53 |
367 2,864 4,880 0.59 |
391 2,833 5,234 0.58 |
일 본 (달러,1인당) 미 국 (달러,1인당) |
11.184 16.779 |
16,324 17,549 |
19,664 18,557 |
23,365 19,813 |
23,005 20,994 | |
대 외 순 자 산 |
일 본 (억달러) 대GNP비중 (%) 미 국 (억달러) 대GNP비중 (%) |
1,298 (9.6) -1.114 (-2.8) |
1,804 (9.1) -2,678 (-6.3) |
2,407 (10.0) -3,783 (-8.4) |
2,917 (10.2) -5,325 (-10.9) |
2,932 (10.3) -6,201 (-11.8) |
환율(엔/달러, 연평균) |
239 |
169 |
145 |
128 |
138 |
③ 일본경제화의 원동력
1> 기술모방에서 기초기술 개발
제2차대전 후의 일본경제성장의 요인을 분석한 결과들을 보면 자본증가와 기술진보가 경제성장을 견인해 온 중요한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새로운 기술의 획득과 그것을 이용한 설비투자가 국내시장확대와 함께 이루어져서 일본의 경제성장이 주도되어 왔다는 평가가 내려지고 있다.
일본기업은 도입기술의 흡수, 개량, 응용을 중심으로 전후의 기술개발을 추진해 왔다. 자체기술 개발보다도 개발위험이 없고 시장성이 높은 기술을 해외로부터 도입하는 데 주력했던 것이다. 그리고 성능·품질·비용면의 개량, 효율화를 중심으로 하는 기술개발을 추진했다.
이러한 시장지향적 기술혁신(기술도입·기술개량)은 투자와 소비의 확대를 유발하여 경제성장을 가속시켰다. 그리고 고도성장, 급격한 기술도입, 응용연구체제 정비로 일본은 외국도입기술에 대한 의존도를 점차 낮추어가면서 기술개발을 착수할 수 있는 체제를 장비해 나갔다.
일본이 구미제국과의 기술격차를 축소하여 독자기술개발에 착수하게 된 80년대는 반도체, 초전도 등 기술혁신이 가속되는 시기였다. 80년대 전자기술의 급속한 진보를 주도하게 된 일본은 제3차 산업혁명의 주역으로서 등장하게 되었다. 일본이 세계적으로 기술이전에 대한 보호주의가 미약했던 50∼70년대에 재빨리 외국기술을 소화하여 독자적인 기술개발을 지향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춘 것이 유리하게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지금까지 독립된 과학체계를 구축하면서 발전해 온 물리학·화학·생물학의 융합이 시작되고 있다. 제3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맞이하여 이미 인공지능, 생명공학 등의 산업기술이 기초과학의 영역에까지 접근해 가고 있다.
제3차 산업혁명은 미국, 일본, EC를 중심으로 해서 NICs등에도 영향을 미쳤고 국제적 기업의 기술전략과 연결되면서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추세에 있다. 이러한 세계적인 경쟁은 특허권을 비롯한 지적소유권의 보호 및 이용전략 등에서도 활발해지고 있다.
2> 일본의 독자기술개발 모색
도입기술의 소화에 주력해온 단계에서 독자기술을 모색하게 된 일본기업의 전략 흐름은 다음과 같다.
기술도입, 모방에만 그치고 있는 한 선두기업을 추월하기 어렵다고 인식한 일본기업은 단순 기술도입 차원을 넘어서서 선두기업의 제품을 개량하거나 저가격화하는 방안을 연구해 왔다. 이러한 전략은 80년대 이전까지 일본의 임금이 구미제국에 비해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에 큰 효력을 발휘하였다. 그러나 일본기업들은 저임금에만 의존하는 산업 정책을 펴지 않았다. 기초기술을 도입하여 응용연구에 주력하면서 생산성 향상과 경쟁력 강화를 모색해 왔던 것이다.
그리고 구미기업의 기술보호주의가 강화되자 일본기업은 전략적 육성분야를 선정하여 기초기술개발에도 착수하는 등 기술수준 향상에 주력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노력으로 일본은 전자, 자동차분야에서 독자적인 지위를 확보하는 데 성공하게 되었다.
일본인의 감정적·정서적 불안정이나 다양한 취향 때문에 일본소비자는 다채로운 상품을 선호하였는데, 이는 ME(Micro Electronics) 기술 도입 등 다품종 소량생산체제 구축을 촉구하는 요인이 되었다. 또한 일본인의 청결, 정밀성 중시 성향은 전자분야의 발전에 도움을 주었다.
첨단산업에서의 일본기업의 규모가 큰 점도 장기투자를 가능케 하는 주요인이 되었다. 미국 반도체업체는 군사·우주프로젝트외에 거액의 자금이 필요한 위험성 높은 장기 기술투자를 피하는 성향이 강하다. 이에 반해 일본은 가전·산전을 포함한 종합전자업체 등이 거액의 기술투자에 적극적 자세를 보여왔다.
3> 일본의 다품종 소량생산 혁신
엔화 강세기인 80년대 중반 이후에는 이러한 일본형 기술혁신을 통해 석유파동 이후의 감량경영전략이 철저하게 추구되었다. 컴퓨터를 도입하여 정보화투자를 가속시켜 생산시스템의 자동화를 촉진시켰으며 국내시장 개척전략으로서 다품종 소량생산시스템 등이 정착되었다.
다양해지는 소비자의 수요에 적응하여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일본기업은 끊임없이 신제품을 내세우고 있으며 다품종 소량생산을 시도하고 있다.
4> 일본산업의 효율적인 조직
일본기업들은 외국기술을 소화하여 독자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하면서 적극적인 기술혁신을 추구해 왔다.
이러한 과정은 물론 외국기업과의 경쟁을 고려하면 그리 쉽지 않은 것이었지만 일본의 산업조직은 효과적으로 외국기업의 진출을 막는데 성공하였다. 일본 특유의 산업조직은 일본이 세계시장에서 고립되지 않기 위해 명목상 국내시장을 개방해야 하는 상황하에서 효과적인 시장방어 역할을 하였다. 일본기업을 위해 국내시장을 방어하는 것은 시장왜곡을 초래하여 경제적 효율을 저하시키고 일본산업의 장기적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었지만 일본기업간의 격렬한 경쟁과 외국시장에서의 경쟁으로 이러한 비효율성은 크지 않았다.
일본산업을 보면 주요 산업의 태반은 과점시장이며 독점은 공익성 산업을 제외하고는 드물다. 또한 각 시장마다 과점의 형태에 차이가 있다. 소수의 대기업이 시장의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는 산업은 사진필름, 판유리, 맥주 등이다. 또 소수의 대기업이 시장의 태반을 지배하면서도 소수의 중소기업이 존재하는 산업으로서 철강업을 들 수 있다.
일본 산업은 1950∼60년대에 걸쳐서 많은 부문에서 시장독점도가 저하되었다. 이것은 고도성장하에서 해외기술도입에 의한 신규기업의 등장과 기존기업의 설비확대에 의한 시장점유경쟁이 격화된 데 기인한다. 이 시기에 석유정제, 석유화학, 자동차, 전기 기계 등의 산업이 급속히 신장되고 각 기업간에는 서로의 독점품목에 대한 상호진출이 잇따랐다.
1960년대 무역·외환 자유화가 진행됨으로써 정부는 기업의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해 대형합병을 유도하였던 것이다. 규모의 경제성을 제고시키기 위하여 대기업들은 생산능력이나 생산량을 증가시켰다.
1970년대 들어 정부의 설비통폐합과 합리화로 기업 수가 감소하였기 때문에 섬유산업 등의 시장집중도가 상승하였다. 자동차·전기에서는 시장집중도에 변화가 없었지만 마이크로 일렉트로닉스 등의 첨단기술분야에서는 신규기업이 잇따라 등장했다.
1980년대 이후 첨단기술부문에서의 경쟁은 한층 더 격화되었다.
고도성장기의 경쟁은 주로 규모의 경제성 추구와 비용절감을 통해 시장점유율 확대를 도모하는 것이었지만, 이제부터의 경쟁은 첨단기술을 이용한 경제성 추구가 승패를 가리는 추세에 있다. 정보네트워크 구축과 국제적인 사업전개가 도모되고 있는 것이다.
85년 이후의 급격한 엔화강세하에서도 일본의 무역흑자가 지속되자 일본시장에 대한 구조적 장벽이 존재하고 있다고 미국기업은 인식하기 시작했다.
5> 일본산업을 지배하는 기업계열
일본산업을 보면 대기업·중소기업간의 분업관계가 기업계열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업계열을 구성하는 결합관계에는 금융·자본계열, 생산·기술계열, 거래·판매계열, 원료계열, 상사계열, 유통계열, 하청계열 등이 있다. 일본의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계열화는 장기적인 거래관계 유지를 위해 모색되어 왔는데 이는 품질개선·연구능력의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
대기업과의 계열관계에 있는 중소기업으로서는 안정적 수주확대를 믿고 대기업측에서 요구하는 설비투자에 임할 수 있으며 대기업의 원가절감 요구도 어느 정도 수용한다.
일본의 기업간 거래에서는 장기적·계속적 거래가 중요시되고 있으며 일본기업은 원재료나 부품의 조달선인 기업과 장기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일본산업조직이 갖는 또다른 성격이다.
④ 일본기업의 국제성
일본기업은 두 번에 걸친 석유위기와 프라자 합의 이후의 급격한 엔화절상 충격을 극복했다. 이러한 충격에 대해 일본기업이 어떻게 눈부신 대응력을 보였는가에 관해서는 다언을 요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석유위기당시의 일본의 원유 수입금액은 GNP의 5%나 되었지만, 최근에는 그 비율이 1%이하까지 저하되었다. 얼마나 놀랄 만한 소에너지 노력이 이루어졌는가를 알 수 있다. 엔화절상 충격에 대한 일본기업의 대응은 보다 민첩했다. 수출궤멸이라는 비관론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수출은 지금 상당한 속도로 늘어나기 시작하고 있다.
1> 일본기업의 통상시스템
일본이 국제적으로 보아서 대단히 강한 경쟁력을 갖는 산업은 예외 없이 '조정'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산업이다. 자동차나 전자산업은 그 전형적인 예이다. 즉 이러한 산업의 제품은 많은 부품으로 생산되고 제조공정도 다단계로 복잡하다. 이런 산업에서는 종업원끼리의 협력이나 기업 내 각 부문간의 협력, 더욱이 핵심회사와 그것을 지원하는 관련회사와의 면밀한 협력관계의 유무가 산업의 경쟁력을 결정한다고 말해도 좋다. 일본이 국제적으로 또한 압도적으로 강한 산업은 이러한 '조정형'산업인 것이다.
2> 일본시장의 개방성
일본기업은 어느 한정된 지역이나 해외에 이전한다고 해도 한 공장 내부의 정보공유는 대단히 뛰어나며 조정에도 훌륭한 점이 있다. 그러나 그보다 넓은 관점에서 보면 지역적인 시스템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일본기업의 강점이 비공식적인 면전의 긴밀한 커뮤니케이션에 입각한 생산시스템, 기업간 관계, 동일 기업 내의 부문간 협력 등에 있었다고 한다면, 그 강점은 기업이 금후 본격적으로 글로벌화해 가는 과정에서는 역으로 약점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일본기업은 앞으로 정보가 상호 다른 문화를 갖고 있는 이민족에게 효율적으로 전달되어 공유되는 문서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① 일본의 수입 자유화
1> 일본의 수입자유화 논쟁
70년대 후반 이후 악화된 국제경제환경 속에서 선진제국은 자유무역주의를 버리고 자국산업의 보호·육성에 적극적인 노력을 하게 되었다. 일본은 장래 유망산업 분야의 육성 및 전략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하여 정부지원조치를 강화하고 있으며 철저한 시장원리를 존중해 오던 미국도 자국 산업의 보호를 위하여 각종 수입규제 조치를 실시하고 있다. 이와 같이 지금의 세계는 선진국 상호간, 선·후진국간, 또 후진국 상호간의 무역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데 그 기저에는 자국의 산업보호의도가 깔려 있는 것이다.
일본은 세계경제의 변화에 효율적으로 사전 대비하여 현재까지도 지속적인 발전을 누리고 있다. 즉, 최적산업구조로서의 접근을 목표로 발전단계별 핵심전략산업을 선정하고 적극적으로 보호·육성하여 온 바, 부흥기로 불리는1945년부터 1954년까지는 석탄·철강·전력·비료·조선산업을, 고도성장기인 1955년부터 1970년까지는 기계·자동차·석유화학 분야를, 그리고 성장조정기인 1971년부터 1980년까지는 지식집약산업을 중점적으로 육성하여 온 것이다.
또한 최근에도 21세기를 향한 중요첨단산업개발 및 전략산업의 경쟁력강화를 계속 추진하고 있는데, 예를 들면 컴퓨터 산업에 대한 금융·세제 및 보조금을 통한 육성조치, 산업용 로봇 보급 촉진을 위한 리스회사 활용책 및 로봇을 구입하는 중소기업에 대한 특별융자조치 등을 들 수 있다.
2> 일본의 농산물 수입 자유화
1955년 9월 일본은 GATT에 가맹하였고 이것을 계기로 농산물 무역자유화의 길을 걷게 된다.
일본은 1962년 4월 103개 품목에 달하는 수입제한 품목을 갖고 있었지만 수차에 걸친 시장개방조치의 결과로 1971년에는 58개 품목, 1978년에는 22개 품목, 그리고 1988년 6월의 미일합의에 의한 소고기, 감귤 등의 자유화 결정등으로 인해 1992년까지는 불과 13개 품목으로 대폭 감고되게 되었다.
그러나 현재 특히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이들 잔존수입제한품목 이외에 GATT 규정의 예외로서 승인되어 온 '국가무역 품목'으로서의 쌀, 맥류, 유제품 등의 5개 품목이 비자유화 품목으로 남게 된 것이다. 특히 1986년과 88년의 두 번에 걸친 전미정미업자협회의 대일 쌀시장 개방요구로 인해 지금까지 성역화되어 온 쌀시장까지 이미 불길이 번지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고도 경제성장기 이후의 농산물시장개방의 특징은 첫째, 구미선진국에 비해 잔존수입제한 품목수가 지금까지 상당히 많기 때문에 일본농업에 대한 과보호비판이 전개되어 왔던 것이다.
둘째, GATT의 주요목표인 관세율 인하에 대해서는 동경라운드 이후 수차에 걸쳐 이루어진 대폭적인 관세율의 인하로 이미 구미와 같은 낮은 수준의 관세율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셋째, 지금까지의 시장개방은 우선 국내산업과의 경합도가 작은 품목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따라서 남아 있는 비자유화 품목은 쌀을 필두로 한 주식용 곡물, 우유, 유제품 등의 토지이용형 농산물 및 일부지역 특산물로 되어 있다. 즉, 남아 있는 비자유화 품목의 시장개방에 관해서는 일본농업의 근간부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 때문에 농업계의 반발은 그 뿌리가 깊은 것이다.
② 일본의 수출자율규제
수입할당의 일종으로 수출자율규제가 있는데 VER은 자율규제협정으로 알려져 있다. VER은 수입국이 아닌 수출국에 의해서 실시되는 무역에 대하 수량할당이다.
1981년 일본이 실시한 미국에 대한 자동차 수출자율규제를 들 수 있다.
VER은 보통 수입국의 요청으로 수출국이 다른 무역제한조치를 회피하기 위하여 합의적으로 실시되고 있다. 또한 VER은 정치적·법률적 관점에서 유리한점이 많기 때문에 최근에는 무역정책수단 가운데 가장 많이 적용하고 있다.
미국의 자동차기업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생산비용을 저하시킨 일본의 자동차기업은 새로운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생산활동을 개시하였다. 일본기업의 시장점유율이 급상승하고 미국기업의 시장점유율은 감소됨에 따라서 미국의 강력한 정치세력이 미자동차산업의 보호를 요구하게 되었다. 미국은 일방적인 행동으로 무역전쟁의 위험을 야기시키기보다는 일본정부에 대해서 자동차수출자율규제를 하도록 요청하였다. 일본은 대미 자동차수출을 제한하지 않을 경우 미국이 일방적인 보호주의 수단을 시행할 것을 우려하여 수출제한을 단행하였다. 1981년에 최초로 합의된 일본의 대미 자동차수출대수는 168만대로 제한되었다.
1984∼85년에는 제한수량이 개정되어 자동차 수출대수는 185만대로 다소 증가되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수출자율규제의 효과는 복잡하게 된다.
첫째, 일본산 자동차와 미국산 자동차는 완전한 대체관계는 아니다.
둘째, 일본의 자동차산업은 할당에 대해서 어느 정도 다양한 기능을 가진 대형차를 수출하고 품질향상에 의해서 대처하였다.
셋째, 자동차산업은 확실히 완전경쟁적 관계는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미국시장에서 일본산 자동차가격은 상승하고 렌트가 일본기업에 귀속됨으로써 앞에서 언급한 수출자율규제 논의가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미연방무역위원회의 추정에 따르면 미국의 손실은 연간 10억달러에 달하고 그 대부분은 비효율성에 의한 손실이 아니라 일본으로의 렌트의 이전에 의한 것이다.
③ 일본 기간 산업의 성장과 통상 정책
1> 자동차 산업의 성장과 통상 정책
19세기 말 자동차가 실용화된 이래로 자동차 산업은 선진국의 간판 산업으로서 주도적인 위치를 지켜 왔으며,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세계의 자동차 산업은 대량 생산 체제를 구축한 미국에 의해 1950년대까지 주도되었다.
그 이후 자동차 산업의 중심은 한때 소비자의 제품 다양화 욕구를 충족시킨 유럽으로 이전되었으나, 후에는 1970년대 두 차례에 걸친 오일 쇼크의 결과로 성장이 가속화된 일본으로 이행되었다.
일본의 자동차 생산은 1918년부터 군수 산업으로 추진되어 지속적인 일본 정부의 보호 육성책 아래 제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오일 쇼크 등을 거치면서 일본의 대표 산업으로 성장해 왔다. 좁은 국토의 영향으로 소형차 생산에 집중했던 일본의 자동차 산업은 1970년대 오일 쇼크 이후 전세계에 불어닥친 소형차 수요 붐에 편승하여 세계 시장 점유율을 쉽게 늘려 나갔으며,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미국 자동차 회사의 경영 악화와 함께 세계 제일의 자동차 생산국과 수출국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1991년 현재, 3,469만 대의 세계 총 승용차 생산 대수 중 일본은 975만대를 생산하여 28%의 비중을 보이고 있으며, 트럭과 버스 등의 상용차 생산에서도 29%를 점하고 있기 때문에 세계 자동차의 약 1/3을 생산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일본의 수출액 중에서 22.8%를 점하고 있는 자동차 산업은 일본의 주종 산업이자 최대의 수출 산업으로 자리잡고 있다. 1992년 현재, 직·간접적으로 일본 자동차 산업에 종사하는 인구는 약 727만 명으로 총취업 인구의 약 10%를 점하고 있으며, 자동차 생산액의 비중도 전체 제조업의 10%를 상회하고 있다. 그리고 설비 투자비도 19,696억 엔으로 전체의 21.7%를 구성하고 있으며, 연구 개발 투자비도 전체 산업의 14.0%를 차지하고 있는 기간 산업이다.
현재 일본의 자동차 생산업체는 구미 대부분의 국가가 2∼3개사에 의한 과점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도요타, 닛산, 혼다, 이스즈 등 11개 기업으로 되어 있다. 이들은 1900년대에 엔진과 항공기를 제작하는 기계 메이커로 출발하여 수차례의 이합집산을 거친 후 1966년 프린스가 닛산에 합병됨으로써 11개사 체제를 유지하게 되었다.
1960년대 후반 일본의 무역과 자본 자유화에 대비한 업무 자본 제휴를 통해 일본의 자동차업계는 크게 4개 그룹으로 분류되었다. 첫째 그룹은 도요타를 정점으로 한 도요타, 히노, 다이하츠로 구성된 도요타그룹, 둘째는 닛산, 후지 중공업, 닛산 디젤의 닛산 그룹, 셋째로 이스즈, 마츠다, 미츠비시 중공업의 외자 제휴 그룹과 마지막으로 혼다, 스즈키의 독립 그룹 등으로 분류되고 있다.
세계 시장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지켜 온 일본의 자동차 산업은 각국의 보호 무역주의의 대두와 엔고, 개도국의 시장 참여, 미국 빅3사의 경쟁력 제고, 환경 문제 등 여러 가지 문제에 직면하고 있으나, 당분간 세계 시장에서 자동차 생산 1위국의 자리를 쉽게 상실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은 종전 이후에 한국전쟁, 무역과 자본 자유화, 공해 문제, 제 1·2차 오일 쇼크, 미국과의 통상 마찰이라는 커다란 사건들을 경험하면서 과감한 기술 개발 투자와 일본적인 생산 시스템에 의한 원가 절감 등을 통해 발군의 국제 경쟁력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참조>: 일본 자동차 산업의 추이
(단위: 천대)
연 도 |
생 산 |
판 매 |
수 출 |
보유대수 | |||
승용차 |
상용차 |
승용차 |
상용차 |
승용차 |
상용차 |
전 체 | |
1960 1970 1980 1989 1991 |
165 3,179 7,038 8,198 9,753 |
316 2,110 4,005 3,973 3,492 |
145 2,373 2,854 4,404 - |
263 1,724 2,161 2,853 - |
7 726 3,947 4,392 4,452 |
32 361 2,020 1,492 1,301 |
1,354 17,582 37,856 55,093 61,659 |
2> 자동차 산업 통상 정책
1. 고도의 기술 개발력
일본의 자동차 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로는 정부의 보호 정책과 민간 기업의 노력을 들 수 있다.
일본 정부의 보호 육성책으로는 설비 투자 자금 저리 융자와 세제 혜택 그리고 완성차와 핵심 부품에 대한 수입 규제 등으로 구분 할 수 있다. 이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정부의 육성 정책은 1952년에 실시된 <산업 합리화 조치>로, 일본의 자동차 메잌커들이 외국에서 신설비를 도입할 경우 수입 관세를 면제해 주었다. 그리고 기술 도입에 대한 법인세 경감과 로얄티에 대한 과세 특례 조치 등 여러 가지 세제 혜택을 부여하는 동시에 기계 설비 도입을 위한 외화 할당 등의 혜택도 주었다.
일본의 자동차 기업은 이러한 정부의 지원으로 선진 기술과 기계를 도입하는 데 큰 어려움 없이 집중적인 설비 투자를 감행할 수 있었고, 이것이 국ㅈ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또한 정부에서는 자유화를 앞둔 시점에서 국내 메이커의 경쟁력을 유지시키기 위해 일본 개발은행을 통해 저리 자금을 융자해 줌으로써 국내 업계간의 기술제휴와 합병을 촉진했다.
일본 정부는 수입 제한을 통한 보호 육성책도 지속적으로 추진하여 외국 자동차의 수입에 대해서는 1965년 수입 자유화를 실시하기까지 외화 할당 제도와 수량 제한을 통해 엄격한 규제를 실시했다. 특히 수입이 자유화된 이후에는 외국 자동차에 대해 상당 기간 동안 고율의 관세를 부과했으며, 수입 관세를 무관세로 낮춘 1978년에는 이미 미국에 이러 제2의 자동차 생산국으로서 국제 경쟁력도 충분히 배양되었기 때문에 외국 자동차 수입으로 인해 국내 산업이 받은 피해는 거의 없을 정도였다.
2. 일본식 생산 시스템의 개발
일본 자동차 산업의 발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은 기업 스스로의 노력이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일본식 생산 시스템 개발을 통한 생산성 향상과 원가 절감이다.
간판 방식으로 대표되는 일본의 생산 시스템의 경우, 개발 기술이나 공정 기술의 질적 변화보다는 단순히 규모의 경제성과 생산의 고속화를 추구하는 구미의 양산 시스템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즉 현장에서의 생산 관리, 품질 관리, 판매 관리 등의 노하우를 축적하여, 표준화와 단순 양산형인 서구 시스템에 창의적인 연구 노력을 결합시킴으로써 다품종 소량 생산을 유지하여, 다양한 시장 수요와 경기 변동 등의 시장 환경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생산 시스템이다.
이러한 일본의 독자적인 생산 시스템 개발은 대규모 설비 투자와 지속적인 연구 개발의 노력 없이는 불가능했다는 점을 감안해 볼 때, 자동차 산업이 발달된 가장 큰 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
3. 소형차를 중심으로 한 지속적인 연구 개발
소형차를 중심으로 품질·기술·경제성 등을 추구해 온 것도 일본 자동차 산업이 급속히 발달하게 된 요인이다.
국토가 좁은 일본은 일찍부터 소형차를 중심으로 한 승용차를 개발해 온 반면, 미국은 대형차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그러므로 1970년대의 두 차례에 걸친 오일 쇼크 이후 미국 시장에서의 소형차 붐에 부응할 수 있었던 것은 소형차에 대한 양산 체제를 갖춘 일본 기업뿐이었다. 따라서 특별한 경쟁 없이 손쉽게 시장을 잠식할 수 있었던 것이다.
4. 수출 거점의 착실한 구축
일본의 자동차 메이커가 착실하게 수출 거점을 구축한 점도 주요한 원인 중의 하나로서, 일찍부터 미국 내에 판매 회사를 설립했고 수출 전용선과 전용 부두를 확보하는 등 다각적인 시장 개척에 노력을 기울였다. 또한 소비자의 의견을 청취하여 제품에 반영하는 현장 청취 제도와 A/S망 확충 등 소비자 중심적인 마케팅 전략도 일본 기업이 보유한 강점 중의 하나였다.
3> 일본의 섬유 산업의 성장과 통상 정책
1. 수출보다 수입이 많은 산업
섬유 산업은 섬유 공업, 의류 제조업과 섬유 상업 등으로 나뉘어진다.
이 가운데 방적·직포를 중심으로 한 섬유 공업은 대부분의 국가에서 공업화를 선도하는 역할을 담당해 왔다. 이것은 비교적 소규모의 자본 투자가 가능하고 투자 회임 기간이 짧으며, 고용 흡수력이 큰 데다가 발전 단계에서의 기술 의존도가 낮아서 초기 공업화 단계에 적합했기 때문이었다.
일본의 섬유 산업은 근대 산업 사회의 확립에 주도적이 역할을 수행하면서 일본의 대표적인 수출 산업으로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그러나 2차 대전 종료 후에는 정체 현상을 보이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개발도상국의 급속한 성장과 선진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 등의 외적 요인과 더불어 중화학 공업 중심의 고도 성장 과정에서 초래된 급격한 임금 상승 등의 내적인 환경 변화에 기인한 것이다.
일본은 섬유류 부문 전체에서는 수입국이지만, 원사를 비롯한 원단 분야에서는 아직도 주요 수출국의 위치를 확고히 지키고 있다. 그리고 의류 분야에서도 고급품은 국제 경쟁력을 잃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일본 국내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4> 섬유 산업의 발전 요인과 통상 정책
1. 고도의 기술 개발력이 근본
1970년대 두 차례에 걸친 오일 쇼크 이후, 저조한 수요와 과잉 설비로 인한 생산성 저하, 인건비의 급등 등으로 합섬의 경영 실적은 급속히 악화되었다. 따라서 합섬 메이커는 설비와 섬유 부문의 인원 삭감 등 합리화를 위한 감량 경영을 추진하였다. 또한 타업종에의 진출을 통한 다각화를 추진하면서 연구 개발에 중점을 두게 되었다.
이러한 일본의 섬유 메이커들은 고도의 기술 개발력에 의거하여 차별화와 고부가가치화에 힘을 기울이고 있는데, 이같은 기술 개발력은 현재의 섬유 수출의 기초가 되고 있으며, 특히 합섬 직물 분야에서 발군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2. 생산 설비의 자본 집약화와 기술 집약화
일본 섬유 산업의 부가가치액이 세계에서 수외를 차지하고 있는 주요인은 생산 설비의 자본 집약화와 기술 집약화에 기인하고 있다.
일본 메이커들은 이러한 최신 설비를 활용하여 고가 제품의 생산에 있어서 노동 집약적인 개발도상국과의 격차를 벌리고 있다.
또한 일본은 1960년대부터 시작된 구조적 불황에 대처하기 위하여 구조개선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했다. 과잉 설비에 대한 폐기, 격납, 등록제 등의 실시를 통해 정부에서 적극적인 섬유 산업 구조개선 사업을 실시함에 따라 생산성을 높이게 된 점도 간과할 수 없다.
3. 국제화와 글로벌 전략
섬유 메이커의 해외 진출은 1950년대부터 1970년대 초기에 걸쳐서 정점을 이루었다. 당시 해외 진출을 주도했던 합섬·방적 메이커는 남미와 아시아 지역에의 진출에 중점을 두었다.
그 후 오일 쇼크를 계기로 국내 섬유 사업의 축소와 더불어 해외 거점을 정리하고 철수하려는 움직임이 두드러졌다.
이러한 해외 진출을 통하여 합섬 메이커는 동남아시아 지역에서의 직물과 의류 수요를 확보할 수 있었으며, 방적업계는 일본 내에서의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여 경쟁력이 저하된 분야의 제품을 현지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의류업계에서도 현지의 저렴한 노동력을 이용할 수 있었으며, 구미 지역에서는 유통망을 구축하여 현지 진출을 꾀하는 한편, 현지의 새로운 패션 정보를 수집할 수 있었다.
4. 섬유 정보화와 시스템화
일본의 섬유 산업은 생산·판매·재고 관리를 비롯하여 발주 업무·디자인 ·색상의 배치 등 모든 기업 활동 분야에 있어서 온라인 시스템화를 이룩했다.
각 기업은 이 같은 정보화·시스템화를 통하여 다품종·소량·단사이클화되는 수요에 대응이 가능하게 되었고 비용 절감의 효과도 얻을 수 있으며, 기업간의 네트워크화를 통해 경쟁력을 강화시켰다.
마지막으로 거론할 수 있는 일본 섬유 산업의 성장 요인으로는 섬유 기계 공업과 전자, 정보산업 등의 주변 산업이 국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요컨대 하나의 업종은 주변 관련 산업과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해야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입 제한과 각종 보호 조치는 산업의 활력과 대응력을 저해하게 되므로, 산업 발전에 마이너스가 된다는 점을 감안한 일본 정부가 섬유 산업 정책의 중점을 기업 자체의 경쟁력 확보에 둔 것도 적지 않은 발전 요인이 되었다.
① 선진국의 통상 마찰
1> 통상마찰
2차대전 이후 GATT를 중심으로 한 자유 무역 영역의 확대 노력으로 국제무역은 세계 경제발전과 복지 향상에 기여해 왔다. 그러나 70년대 두 차례의 석유파동을 겪고 세계경기의 장기적 후퇴를 경험하면서 세계무역은 보호무역주의의 확산에 오염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통상마찰이란 특정국이 어떤 이유로 무역에 대하여 영향을 주는 조치를 취했거나 또는 취하려고 했을 경우에, 그 조치에 의해 불이익을 받거나 받을 우려가 있는 상대국과의 사이에서 발생한 분쟁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일 국의 특정품목에 대한 상대국 시장진출의 급격한 증가와 이에 따른 거래의 불균형이 발생, 또는 확대되거나 상대국 시장에서 질서의 혼란과 불공정, 실업의 증대 등으로 위기감을 초래할 때, 상대국은 당해 국가로부터의 수입을 억제 또는 그 나라에 대해 수입확대 및 시장개방등 대응요구가 나타나는 통상메커니즘의 작용이라고 볼 수 있다. 마찰의 규제 내용도 처음에는 관세의 조정이라든가 국가 내의 협의 결정, 그리고 질서유지협정 등으로 비교적 완만하였으나, 1980년대를 전후하여 그 규제의 양상도 수입자유화 및 수량규제, 그리고 행정상 까다로운 절차 등의 비관세조치로 그 수단이 강화되고 있다. 마찰의 주요 배경은
첫째, 각국 경제에서의 무역을 통한 상호의존도가 증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주요 국의 GNP에 대한 수출액의 비율은 오일쇼크전과 비교하여 상당히 증대하고 있다. 이것은 각국의 무역이 경제에 미치는 이점을 감안하여 국민생활수준의 향상을 위하여 무역촉진정책을 채택함으로써 자연히 통상마찰이 많아지게 되었다.
둘째, 구미 선진제국과 일본, 미국 등과의 비교생산비가 변동되었기 때문이다. 즉 일본의 컴퓨터, VTR, 반도체 등 전자부품, 자동차, 섬유, 철강 등 주요 업종이 구미에 비하여 품질 및 가격 면에서 비교우위가 생겨 국제경쟁력이 강화되었다. 이에 따라 선진국의 대외경제는 무역불균형 확대가 심화되어 국제간의 무역마찰은 더욱 빈번히 발생되고, 동시에 국내경제는 국제경쟁력이 저하되어 노동자의 실업, 기업경여난 등의 문제가 발생하게되어 기술개발, 생산성 향상을 위한 신규 설비투자. 그리고 경영합리화에 의한 비용절감 등을 통하여 경쟁력을 강화하던가, 아니면 산업구조의 전환, 조정 및 폐업시키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2> 일·미 통상 마찰
'98년도 일본의 대미 무역흑자가 대폭 증가하고, 이에 대해 미국은 일본의 대미 철강수입 급증에 따른 제재 검토 발언 및 수퍼 301조 부활 발표 등으로 일.미간 무역 마찰이 심화될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1. 일본의 무역흑자 대폭 확대
일 대장성이 최근 발표한 무역통계속보에 의하면 98년 일본의 총수출액은 50조6,454억엔, 총수입액은 36조6,603억엔으로 무역흑자는 13조 9,851억엔으로서 전년대비 40.1%로 대폭 증가세를 보였으며, 무역흑자액으로서는 사상 최고를 기록하였다.
또한, 대미수출은 15조4,701억엔으로 전년대비 9.2%가 증가한 반면 수입은 8조7,730억엔으로 4.1%가 감소, 무역흑자는 6조6,972억엔으로서 전년대비 33.4%의 대폭 증가를 기록하였다.
이와 같이 무역흑자가 대폭 증가한 이유는 수출이 전년대비 0.6% 감소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일 국내 경기 침체와 원유가격 하락 등으로 수입이 10.5%나 감소한데 주로 기인하고 있다.
2. 미 정부내의 반발 심화
98.1-11간 미국의 무역적자 누계액이 전년동기대비 53.9%나 급증하고 년간 적자액도 과거 최고치를 갱신함에 따라 미 상무성 등 정부내에서는 대폭의 무역적자 발생의 주요 원인으로서 일본의 무역흑자 팽창 등을 들고 있다.
동아시아지역으로부터 일본에의 수출이 대폭 감소한 사실을 보면 일본이 쌀, 판유리, 자동차 등 개별 분야에 있어 세계 각국으로부터의 수입을 보다 확대할 수 있도록 규제완화 등 구조 개혁 조치를 촉구한 바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98. 1-11월간 일본의 대미철강 수출은 전년대비 2.4배로 급증함에 따라 미 철강업계에서 일본 기업을 덤핑혐의로 제소하고 미 정부도 일본의 수출삭감 노력을 촉구한데 대해, 일본은 수출증가의 원인이 미국의 철강 수요 증가에 기인한 것이라고 반발함으로서 동 문제가 일.미 양국간에 정치문제화되어 왔다. 이에 대해 미 통상대표는 1.22 일본 등으로부터의 철강 덤핑 문제와 관련하여 '98.12월분 수입이 대폭 감소하지 않으면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함으로써 99년 수입량을 제재발동의 판단기준으로 삼았던 종래의 방침을 변경하여 '98. 12월분 수입 실적 만으로도 발동을 결정할 수 있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3. 일본 정부의 반응
철강제품의 대미수출 문제와 관련하여, 일 통산성은 미국 정부를 WTO에 제소할 방침을 굳히는 등 동 문제가 당면 일미 통상마찰의 최대현안으로 대두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즉, 미국 클린턴 대통령이 일반교섭에서 철강 수입이 감소로 바뀌지 않으면 대항조치를 취하겠다고 일본을 공격한 것에 대해, 일 통산성은 미국 국내사정으로 수출이 증가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정치 문제화하는데는 이해하기 어렵다고 하면서 대결자세를 강화하고 있다.
대미 무역흑자가 확대되고 있는 것에 대해 미야자와 대장상은 1.26 '(미국의 무역적자에 점하는) 일본의 비중이 중국과 함께 대단히 크다고 지적하고 미국으로부터 여러가지 요구가 대두될 것으로 보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면서 앞으로 일.미간 무역동향을 주시해 나가겠다는 자세를 보였다.
3> 일본의 약점
일본은 지금 해외 지사와 생산망을 지나치게 벌여 놓았으며 국외에 유출되어 있는 막대한 해외 자산과 황금을 언제까지고 효과적으로 운영하지는 못할 것이다. 게다가 위력을 과시하기 위해 자위대의 규모를 확대해 나가고 있는 것도 커다란 실책이 될 수 있다. 군사력 유지를 위한 비용 부담이 언젠가는 무거운 짐이 되어 일본 경제를 좌초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특히, 지난날의 영국이나 미국처럼, 지나치게 광역화된 행동 반경으로 인해 막대한 유지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경제가 쇠퇴하고 국력마저 기울어 버릴 가능성이 높다. 겉으로 볼 때 일본이 나날이 화려하게 변모하고 있지만 여기에 드는 화장비용은 매우 낭비적이고 많아질 것이어서 일본의 경제 창고는 비어 가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까지 제압했다는 자만과 현실에 안주하려는 의식이 국민 사이에 만연될 때, 일본은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할 수도 있다. 날로 번영을 이루어 가는 뒤안길에 피어난 과욕과 자만이라는 독버섯은 거대 성장한 일본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울 것이다. 일본은 또한 다른 어느 선진국보다도 급속도로 노인화 사회로 진행되고 있어 세계 제일의 노인국가가 되어 가고 있다. 2020년경이면 일본인구 중 65세 이상이 25%에 이르고 15세 이하 어린이 수는 고령자 수의 절반 정도로 줄어든다고 전망하면서 '21세기 위기론'이 나오고 있기도 하다. 이런 추세라면 현재 36%에 이르는 사회보장 비용 부담이 더욱 늘어남과 동시에 경쟁력마저 약화될 수 있다. 아직은 젊은 남한과 통일한국 이후 고령화되어 가는 남한에 북한의 젊은 인력이 수급될 수 있는 우리의 처지와는 다른 것이다.
이외에도 일본의 약점은 여러 곳에 있다. 고질적 일본병이라 불리는 낡은 제도와 규제 및 관치(官治)주의, 96년 말 시점에서 4백조 엔대에 이르는 재정적자의 계속 증가, 둔화되는 경제성장과 성장여력의 쇠퇴, 식량과 자원의 높은 해외 의존도, 지나친 수도권 집중과 고도의 과밀 사회, 성적 쾌락에 탐닉하며 사치에 빠져들어 의욕을 잃어버린 젊은이들 등등. 이 중에서 어느 것이 현안화되면서 번영하는 일본의 열기를 잡아먹을 지는 알 수 없으나 수면 밑에서 그 큰 덩치를 웅크리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지금은 자신들의 과욕에 대해서조차 스스로 진단과 처방을 내리고는 있지만 미래에까지도 이런 이성적인 처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풍요와 발전에서 한계에 부딪치면 일본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80년대에 미국이 그랬던 것처럼 시장 개방과 보호무역 정책 등을 외치며 힘으로라도 국익을 획득하려고 발버둥칠 것이다.
② 앞으로의 선진국과 개도국의 통상 산업 정책
일본에 대하여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우수성을 유감없이 보여준 점과 부존 자원 부족, 서양과 다른 이질문화 등의 여러 제약조건을 훌륭히 극복하고 동양인으로서는 최초를 선진국권에 진입함으로써 동양문화권에서도 선진국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해 주었다.
지금의 세계 무역 질서는 전후 최대 위기에 직면해 있다.
선·후진국을 막론하고 보호주의적 파고는 날로 높아만 가고 있어 국가간의 무역마찰은 더욱 증대해 가고 있으며 미국 달러화의 강세에 기인된 각국 통화가치의 불안이 국제무역 신장에 장애요인으로 등장화고 있다.
한편 계속되는 국제 고금리와 상방신축적인 임금인상 압박은 투자를 저해하여 산업조정을 지연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의 외채 부담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또한 선진각국의 재정수지 적자폭은 해가 거듭할수록 커져만 가고 있어 인플레이션 요인이 상존한 채 실업률 저하를 위한 경기 확장책을 쓰지 못하게 제약하고 있는 현실이다.
보호무역주의는 각국 상호간의 상호 의존성과 보완성을 줄이고 세계무역량을 감소시키며 국제적인 자원의 적정배분을 왜곡시키며 경쟁은 소멸되고 국제경제의 시장메카니즘도 약화되어 경제는 활력을 잃고 성장과 발전은 퇴보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자유무역이야말로 세계경제의 발전과 성장을 가져올 수 있는 시장메카니즘이며 수단인 것이다. 그러나 모든 정부와 모든 기업인, 학자들이 자유무역을 부르짖으면서도 행동으로 옮겨 실천하지 못하는 데 그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이제는 선·후진국을 막론하고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여 행동으로 옮길 때가 온 것이다.
따라서 선진국, 후진국 모두 어떠한 통상정책으로 이 시기를 모면해야 하는 지 알아 보자.
1> 선진국의 통상 산업 정책
첫째, 선진제국은 보다 과감한 산업조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비교열위산업을 인위적으로 보호하는 것은 자원배분의 왜곡과 낭비를 가져오고 새로운 첨단기술분야의 투자를 제약하며 신규 고용창출의 기회를 가로막는 것이다.
그 좋은 예가 섬유류이다. 1961년부터 다자간섬유협정으로 지난 25년간 선진국이 그토록 보호해 왔으나 선진국의 섬유산업은 경쟁력을 회생시키지 못했으며 보호된 산업에의 투자배분은 투자의 낭비와 다른 새로운 산업에의 투자를 가로막았고 소비자의 부담만 가중시켜 왔다.
따라서 투자 여력이 있는 선진국은 개척자정신으로 새로운 산업과 기술을 개발하며 전통산업은 해외투자 또는 기술이전의 형태로 개발도상국으로 이전하여 개도국의 실질소득을 증대하고 수출증지대기회를 제공하여야 개도국의 대선진국 수입능력이 재고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산업은 제품생명 주기이론대로 일정한 수면을 가지고 부침하는 것으로 선진국에서 먼저 발전된 산업은 결국엔 비교우위를 상실하여 사양산업으로 전략하게 되므로 보호유지보다는 빠른 산업조정으로 적응해 나가는 것이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것이다. 또 일부 일본 기업인 중에 부머랭 현상을 걱정하여 기술이전에 소극적 자세를 갖는 분도 있으나 원래 기술은 혁신, 발전하는 것으로 기술의 이전은 다른 기술개발을 촉진하고 전수받는 국가로부터의 새로운 수입수요가 창출되어 주는 측이나 받는 측이나 모두 이익이 되는 것이다. 또한 만약 일본이 주변 우방국가에 기술을 이전하지 않는다면 이들은 미국이나 서유럽으로부터 수입하게 되어 입본은 결국 가장 가깝고 튼튼한 시장을 잃게 될 위험도 있는 것이다.
둘째로 선진국은 정부 소비억제 정책과 사회보장제도 재편을 통한 재정수지 적자폭을 감축하여야 합니다. 7대 선진국 재정수지 적자폭의 대 GNP 비율이 1970년 초 1% 수준에서 지난해 약 6%에 육박앴다.이 적자폭은 인플레적 방법으로 메꾸게 되고 민간가용 투자자금의 밀어내기 현상으로 고금리가 불가피하게 되는 것이다. 현재 미국의 2천억 달러 재의 재정수지 적자는 고금리를 유발하고 이는 달러화의 강세를 결과하여 일본, EC등 국가로부터 자본유출 현상이 불가피하게 되어 세계적인 연쇄 고금리 현상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또한 달러화 강세에 기인된 미국수입의 증가는 미국의 업청난 무역수지 적자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가 1980년 255억 달러에서 1984년 1230억 달러로 5배가 늘어났고 경상수지 적자도 1100억 달러에 달해 미국이 세계최대 채무국으로 등장하는 아이러니도 예상될 수 있다.
이러한 막대한 적자의 지속은 월남전 후에 일어났던 것 같이 달러화 급락현상으로 치달을지도 모르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은 보호주의적 편법으로 무역적자 해결을 위한 미봉책을 쓸 것이 아니라 재정적자 축소, 이자율 인하 및 적정한 달러화 가치유지를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셋째로 세계 제 2 위의 경제대국인 일본과 세계최대 수출국인 EC 국가의 그 경제력에 상응하는 국제적 책임을 강조한다. 즉 전후 GATT 체제 아래에서 가장 혜택을 받은 일본과 EC가 그 이익을 세계경제발전을 위해 환원할 때가 왔다고 보는 것이다.
일본 경제는 전후 세계 GNP의 불과 1% 정도였으나 지금은 10%를 상회하는 경제대국으로 발전했지만 그 경제력에 상응하는 국제적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선진국과 후진국으로부터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일본 국내 제조업 총소비에 대한 수입량이 차지하는 미중은 불과 5% 내지 6%로 미국, EC의 16% 내지 17%에 비하면 3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고 무역수지 흑자도 1980년 불과 21억 달러에서 1983년 315달러로 1984년에는 433억 달러로 엄청난 증가세를 기록하고 있다. 1984년 미국의 무역적자액이 1233억 달러중에 대일적자가 368억 달러, 대서유럽 적자액 170억 달러, 대동아시아 283억 달러로 그 반이 대일본 및 EC로부터 발생하였다. 이러한 미국의 엄청난 무역수지 적자는 더 이상 견뎌내기 어려운 한계에 달했다. 그러나 미국의 무역적자 축소는 개도국보다는 일본, EC 국가들의 노력과 협력으로만 가능해진다. 왜냐하면 개도국의 외채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외화획득의 기회 즉 수출증대의 기회와 자본, 기술수입의 기회가 제공되어야 하므로 미국의 무역적자 축소노력이 개도국 수출감소를 동반한다면 개도국은 외채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은 각국과의 무역마찰을 피하기 위해서는 자급자족형 산업구조를 지양하고 무역흑자 감축을 위한 과감하고도 명실상부한 시장개방 노력이 요구된다. 이러한 뜻에서 4월 초로 예정된 제 7 차 시장개방 조치는 일본경제의 국제적 역할을 다하는 데 획기적이고도 책임있는 조치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세계최대 수입시장인 EC도 대개도국 수입 노력의 배증이 요청된다. 미국의 대개도국 수입비중은 1970년 28.1%에서 1983년 42.5%로 14.4% 포인트 증가했는데 EC는 동 기간 중에 20.9%에서 21.6%로 0.7% 포인트 증가에 그쳤고, 역내수입비중이 60.9%에서 61.4%로 늘어났다. 따라서 EC는 역내의 번영만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역외의 발전과 성장을 위해 협력할 때가 왔다고 본다.
2> 개도국의 통상 산업 정책
개도국에 요청되고 있는 역할에 대해 설명하면 첫째로 개도국은 보다 시장을 개방하여야 한다.
물론 국내고용문제를 해결하고 실질소득을 향상시키는 한편 만성적 무역수지 적자와 외채상환 압박 아래서 구입자유화를 추진하는 것이 선진국의 사장개방 노력보다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몇갑절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일본의 성숙한 기업인들은 이해할 것이다.
개도국의 수입자유화가 이렇듯 어려운 과제이지만 국내산업의 국제경쟁력 향상을 위하여 외부로부터 경쟁을 도입하여 시장메카니즘을 활성화시킴으로써 경제운용의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뜻에서 이미 한국정부는 1984년∼1988년간 수입자유화 예시제와 관세인하계획을 공표하여 실시해 나가고 있다. 물론 만성적인 무역수지 적자국으로 또 외채가 GNP의 54%나 되는 한국은 수입자유화에 따른 무역적자 확대의 위험과 국내산업의 지향과 정치적인 거부반응이 따르고 있다만 산업의 장기적인 경쟁력 향상과 자유무역 확대에 기여하고자 정부는 개방정책은 꾸준히 추진해 나가고 있다.
둘째로 개도국은 선진외국으로부터 활발한 투자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투자환경의 개선 노력이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
개도국은 산엽구조의 고도화와 실질소득의 향상을 위하여 투자와 기술이 필요하며 또한 외채규모의 증대를 박기 위해서도 타관도입보다는 외국인 투자유치가 바람직하다. 따라서 한국은 이미 1984년 7월 1일부터 외국인투자 가능업종에 대하여 포지티브 시스템에서 네가티브 시스템으로 바꾸었고 기술도입도 인가제에서 신고제로 바꾸었으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투자환경을 개선해 나갈 것이다.
셋째로 개도국에 요청되고 있는 역할은 경제운용의 어려움을 선진제국에만 돌릴 것이 아니라 자구노력을 강화해 나가야 합니다. 금년 12월 UNCTAD에서 개시되는 개도국간의 무역증진을 위한 특혜관세 협상참여 등 개도국 상호간의 협력방안을 모색할 뿐만 아니라 국내적으로도 검약풍토 조성으로 국내저축을 늘리며 시장원리에 의거한 자원의 합리적 배분을 이룩해야 한다
한국정부는 1984년 세출예산 동결 등 정부지출 역제와 더불어 소비절약 및 저축증대시책과 캠페인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또한 공정거래법의 제정, 은행의 민영화들 시장 메카니즘의 활성화 노력을 기울여 왔으며 중화확 투자계획의 조정으로 무리한 투자를 지양하고 비교열위산업을 과감히 조정해 나가고 있다.
3> 새로운 다자간 무역협상
지금 미국 일본 등 몇몇 선진국에 의하여 제창되고 있는 뉴라운드 협상의 필요성이 점증되고 있으나 아직 각국마다 이해가 달라 구체화되고 있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다자간 협상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대부분의 개도국들은 서비스, 투자 및 고도기술 상품의 교역자유화를 중심으로 한 뉴라운드협상에 대하여 경계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세계무역신장이 경제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현상 아래서 GATT기능을 회생시키기 위해서는 모든 회원국의 참여가 필요한 바 개도국을 뉴라운드 협상에 참여토록 유도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진국은 모든 수입규제를 현상태에서 동결시키는 약속과 선언이 전제되어야 한다.
또한 새로운 이슈 즉 서비스, 투자 및 고도기술상품 자유화 협상에 대하여도 상품교역상 GATT에서 개도국에 부여하고 있는 우대권을 인정토록 진지하게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로 뉴라운드에서 미뤄진 세이프가드 즉 GATT19조 문제의 해결이다.
이는 어떤 상품의 수입급증에 의해 생산자가 중대한 피해를 입었거나 입을 우려가 있을 경우 긴급수입제한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그 적용에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으며 각국의 발동기준과 적용 예가 각양각색이고 또 수출자율규제 등을 실시하여 GATT밖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 따라서 이문제를 GATT체제 내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세이프가드 코드 협상이 하루 빨리 타결되어야 한다.
셋째로 GATT의 분쟁해결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즉 GATT체제 내의 분쟁조정 권한을 부여하고 분쟁해결 절차를 명확히 하여야 한다.
세계무역의 활성화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 세계경제의 다극화 현상에서 지속적 성장과 발전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세계경제에서 지위가 향상된 일본과 EC의 역할과 책임이 더욱 중요하며 특히 저소득과 자본의 빈곤, 외채문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개도국의 경제발전을 위해 보다 많은 기여와 협력이 요청되고 있다. 전후 미국이 '마셜플랜' 이나 '일본경제 부흥계획' 을 통하여 EC 및 일본경제 부흥을 위해 노력하는 한편 브레튼우즈 체제를 주도하여 전후 세계경제 발전 및 성장에 크게 기여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웃 우방국의 경제발전이 바로 일본 경제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상호 보완적인 산업협력과 확대무역균형 노력을 기울여 나가기를 제의하면서 같은 문화권에 속하고 이웃의 인접한 한국과 일본 양국이 다가올 태평양시대를 열기 위해 상호 협력을 통한 공동번영을 이룩할 수 있도록 다 함께 노력하는 게 필요하다.
2차대전 이후 세계경제질서의 양대 기축이었던 GATT를 중심으로 한 자유무역과 IMF를 중심으로 한 환율의 안정 아래서 자본주의 경제는 황금시대를 구가했으나 그 양대 기축이 중대한 시련과 위기에 봉착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시련과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행동으로 옮길 때가 왔다. 행동에는 고통이 따를 것이지만 우리는 이 고통을 선진국과 후진국간에 분담하여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야 하며 이에 걸맞는 산업 통상 정책을 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