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의 Four Corners 지역에는 참으로 독특한 풍경을 긴직하고 있는 곳이 많다. 이 지역 남서쪽에 자리한 세도나 타운 일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금강산도 식후경. 그랜드 캐년 여행을 마친 뒤에는 인근의 한 멕시코식당에서 파히타(Fajita)라는 전통 음식을 먹었다. 또르띠아(Tortills)라는 얊게 구운 밀가루 플랫트브레드(flatbread)에 잘게 썬 양파, 피망 따위의 볶은 채소와 익힌 쇠고기를 함께 싸서 먹는 음식이다. 바삭하게 구운 오리 껍질을 밀가루 전병에 싸서 먹는 페킹 덕(Peking Duck)이나, 에티오피아의 곡물인 테프라로 만들어 먹는 인제라(Injera)라는 전통 음식과도 같다고 할까? 시장이 반찬? 나의 입맛에 잘 맞았고 맛있었다.
식당의 이름이 Plaza Bonita. Bonita는 '귀여운' '예쁜' 의미의 스페인어 여성형 단어. 그 이름을 보건대 이곳도 스페인이 세웠던 멕시코의 땅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곳 역시 미국이 멕시코와의 전쟁을 통해서 빼앗은 땅이지만 1848년까지 약 2백 년이 넘는 동안은 멕시코가 차지했던 땅의 일부였다. 그랜드캐년 역시 유럽인으로서는 스폐인 사람들이 먼저 찾아와서 차지했던 땅, 물론 그 이전에는 유럽인들이 아메리칸 인디언(American Indian)이라고 불렀던 네이티브 아메리칸들(Native Americans)이 오랫동안 살던 곳이었다.
점심 후에 달려간 곳은 그랜드 캐년으로부터 남쪽으로 약 150km의 거리에 있는 세도나(Sedona)라는 곳. 인구가 9천 명 남짓한 타운에 불과하지만 여러 가지 특이한 것으로 널리 알려진 아름다운 곳이다. 우선 퇴적암의 일종인 사암(沙巖)으로 만들어진 독특한 모양의 봉우리들의 모습이 특이하다. 온통 붉은 덩어리의 돌출된 바위 봉우리는 교회나 성당의 종 모양을 닮기도, 무수한 첨탑의 성당 또는 거대한 성채를 떠올리게 하는 것도 있다. 그래서 그 이름이 각각 종바위 벨 락(Bell Rock), 그리고 성당바위 캐시드럴 락(Cathedral Rock)이다. 비교적 평평한 지역에 우뚝 솟아있는 바위채를 부트(Butte)라고 하는데 이들 부트는 평소에도 붉은색으로 두드러진 모습이지만 일출이나 일몰의 시간에는 더욱 짙은 붉은색이나 오렌지 빛으로 신비롭게 빛난다고 한다. 해가 지평선으로 기우는 시각 세도나 공항을 향하는 길의 언덕 에어포트 메사(Airport Mesa)에서는 사암의 연봉 타운을 병풍처럼 둘러싼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아름답고도 신비로운 풍경이었다. 언덕 위에 있는 세도나공항은 타운보다도 훨씬 더 높은 메사(Mesa)라고 하는 탁자형 지형에 있다고 한다. 그리고 세도나는 이 땅이 뿜어내는 기(氣)가 가장 강한 곳이라고 한다. 벨 락, 캐시드럴 락, 에어포드 메사 등이 있는 지역에 이른바 영적 소용돌이라고 하는 기가 가장 강하게 집중되어 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기를 많이 받아가라고 했다.
Four Corners 지역에서의 두번째 날인 10월 24일 여행은 온이 하루 미국 서남부 지역 아메리컨 인디언들의 특별 구역에서 이루어진다. 모뉴먼트 밸리, 앤티로프 캐년, 그리고 호오스 슈 벤드 모두. 인디언 보호 구역(Indian Reservation)은 네이티브 아메리칸 부족이 그들의 터를 잡아 살아가는 곳이다. 이들은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만도 20 여 개에 달하며 약 300만 명이 넘는 이들이 미국 본토와 알래스카에서 살고 있다. 오늘의 첫번째 여행지는 나바호족의 보호구역인 나바호 네이션(Navajo Nation) 역내에 있는 모뉴먼트 밸리(Monument Valley)다. 인디언 보호구역 남측의 도시인 플래그스태프(Flagstaff)로부터 그 보호구역 내에 있는 호피 부족의 구역인 호피 랜드(Hopi Land)를 지나간다. 약 9천 명의 호피족 인디언이 살아가는 곳이다. 한때는 나바호족과는 적대적인 관계에 있던 호피족이지만 지금은 같은 인디언이라는 이름으로 이웃해서 살아간다.
모뉴먼트 밸리는 호피 랜드로부터 버스로 1시간쯤의 거리, 보호구역 대부분의 지역이 그렇지만 거칠고 너른 벌판에 있다. 과거 그들이 살았던 곳과 다름없는 황야, 붉은 바위, 흙더미가 불쑥불쑥 우뚝우뚝 솟아있다. 세도나에서처럼 붉은 사암의 부트가 곳곳에 기기묘묘한 모습으로 솟아있다. 벙어리장갑을 닮은 모습의 바위도 있다. 모뉴먼트 밸리는 서부활극의 촬영지로도 이름이 나있다.《역마차(Stagecoach, 1939)》,《아파치 요새(Fort Apache, 1948)》,《황야의 결투(My Darling Clementine, 1948)》,《원스 업온 어 타임 인 더 웨스트(Once Upon a Time in the West, 1968) 》따위의 영화가 이곳에서 주로 촬영되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단체 여행객들은 이 지역의 주인인 나바호족 사람들이 운영하는 짚차로 하는 짚 투어(Jeep Tour)를 한다. 우리 팀 8명은 다니엘이라는 사람이 운전하는 짚에 올라 저 너머에 샘물이 있다는 곳까지 약 10km쯤의 거리를 오가며 약 1시간쯤의 답사를 했다. 모래가 쌓여서 생긴 퇴적 사암이 바람과 빗물에 날리고 씻겨서 붉은 바위산을 만들었을테니 얼마나 많은 풍상의 세월이 흘렀을까? 깍이고 부서져내린 사암 흙먼지가 달리는 자동차의 바퀴를 따라 뽀얗게 일어난다. 그 생김새가 우리를 닮은 다니엘(Daniel), 65세의 나이로 형제들과 함께 짚 투어 사업으로 생계를 꾸려간다고 한다. 내가 다니엘의 아주 먼 형님일 수도 있다는 농담을 했다. 사진도 함께 찍었다. 여러 팀으로 구성된 우리 여행자 모두가 큰 바위 아래에서 그가 찍어주는 기념사진을 박고 그들이 들려주는 나바호족 천통의 환영 노래와 우리의 아리랑을 듣기도 했다.
모뉴먼트 밸리 다음의 행선지는 역시 나바호 네이션 서북쪽에 자리한 앤티로프 캐년 Antrpole Canyon)과 호오스 슈 벤드(Horse Shoe Bend)협곡. 같은 협곡이지만 앤티로프 캐년은 평원 아래로 빗물에 깎여서 만들어진 동굴형 협곡이고, 호옷 슈 벤드는 콜로라도 강물이 깎아서 만든 말발굽 모양의 사행천 계곡이다. 마치 영월의 한반도 지형과 흡사한 굽이의 모양이다. 다만 협곡의 깊이가 매우 깊고 가파르다. 유구한 세월의 길이, 그 흐름의 깊이를 가늠하기가 어렵다. 또한 그 까마득한 연륜이 만들어낸 흔적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도 설명하기 어렵다.
앤티로프 캐년에서 우리를 안내해주고 곳곳에서 사진을 찍어준 벨라(Bella)라는 이름의 여성 가이드 역시 나바호족의 여인이었다. 되칮은 그들의 고향인 그곳 황야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들의 모습에서는 어떤 상실의 아픔과 외로움, 동떨어진 문명세계에서 낯설게 살아가는 것만 같은 게 느껴졌다. 그들이 스스로 꾸려나가는 부족의 나라에서 아메리칸 인디언의 후손으로, 또 미국의 시민권을 가지고 살아가는 그들이지만 어딘가 이방인과도 같은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감정이었을까?
사실 아메리칸 인디언들만큼이나 철저하게 박탈당하고 버려진 것과 다름없는 황야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까? 유럽인들이 오기 전 아메리카에는 4백만 내지 18백만 명의 아메리칸 인디언들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유럽인들과의 전쟁, 유럽인이 가져온 전염병 등에 걸려 그 숫자는 1890년의 경우 불과 25만 명 수준으로 크게 감소했다고 한다. 이후 그들의 숫자는 다소 증가하여 3백만 명 수준으로 늘어났다고는 하지만, 사실 미국 인구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그틀이 차지하고 있는 땅은 아메리칸 인디언 최대라고 하는 나바호족의 경우를 보더라도 그 면적은 제법 되지만(약 7만 평방킬로미터), 황무지나 다름없는 땅에서 겨우 연명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과 멕시코 간의 전쟁 이후 미군에 의해 학살되고 질병으로 수없이 죽은 나바호족 사람들은 미국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약 500km에 달하는 고난의 긴 행진(Long Walk)을 해야만했다. 지극히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살아남은 9천 여 명의나바호족 사람들은 그들이 성지로 여기던 모류먼트 밸리가 있는 현재의 지역으로 다시 이주하여 오늘날의 Navajo Nation을 유지해 나오고 있다.
오늘날 나바호 네이션에 거주하는 나바호족 인구는 약 15만 명. 미국의 여러 다른 아메리칸 인디언의 사정 역시 나바호족이 겪은 고난 및 역경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서, 더 많은 것을 차지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싸워온 투쟁과 침략의 인간 역사. 인디언들 또한 그 부족들 간에 싸움을 벌이기도 했지만 보다 더 참혹한 유럽인들의 침탈로 매우 어렵고 힘든 삶을 살아나왔다. 그들이 겪었던 고통의 아픔, 상실의 슬픔이 그들의 얼굴에 짙게 드리워져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2023.10.24)
첫댓글 우리는 시간과 여건의 제약으로 세계 모든 곳을 다 섭렵할 수 없지요. 오늘 소개해 준 곳은 일찍이 내가 다녀왔던 미서부 패키지 여행에서 빠졌던 곳이어서 흥미있게 읽었습니다. 경이롭게 느껴지는 대자연과 그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오랜 세월 생명을 부지해 온 네이티브 인디안족을 보면서, 시대는 변해도 인디안족의 종족과 문화는 잘 전승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군요.
황야의 무법자 크린트 이스트우드의 모습이 연상됩니다. 황금을 찾아 서부로 서부로...자연이 빚은 오묘한 모양은 언제 봐도 신기합니다. 1982년 여름 이곳을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에 나오는 모습이 똑 같아요.
장엄하고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날 것 그대로의 대자연을 여행하고 싶은데 주변 친구들은 유럽 쪽을 선호하는 바람에 미국 여행은 수박 주마관산으로 지나치고 말았네요. 잘 구경하였습니다.
나도 오래전 세도나에 대해 독서를 한적
이 있는데 수 많은 불치병 환자들이 세도
나에서 치료효과를 보았다고 하던군요
여하튼 미국은 다인종ㆍ다민족 국가지만
축복의 나라라고 봅니다.
그런데 트럼프같은 이가 대통령이 되
었고 또다시 재선에 도전한다니
미국의 도덕성도 많이 타락된것
같습니다
순우의 여행 잘 보고 갑니다.
순우의 멋진 여행, 사진, 잘 보고 갑니다. 멋진 표현 글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