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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우선순위 (마 6:33).
이 본문은 복음의 본질[본디부터 가지고 있는 사물 자체의 성질이나 모습]을 완벽히 표현 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인 복음이 이전에 있던 다른 모든 메시지와 전혀 다르며, 인간이 본능적으로 생각하고 본성적으로 믿는 모든 것과도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마태복음 6: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그리고 32절에서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그분의 가르침이 이방인들의 시각과는 전혀 다르다는 엄청난 사실을 강조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분의 가르침은, 기독교의 생활방식은 다른 것들과 조금 다른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인간의 본질적 문제, 인간이 속한 세상의 문제, 질병과 고통의 문제,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은 매우 깊고 근본적이며 매우 심각합니다.
주님께서 “너희는 먼저…구하라.” 여러분은 무엇을 강조합니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첫째가 무엇인가?” 주님은 마태복음 6:21에서 “네 보물이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음은 삶과 존재의 중심으로서,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가장 깊은 곳, 가장 중심된 곳에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더욱 분명히 하시려고 눈을 예로 들어 설명하십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 하겠느냐?”(마 6:22-23).
주님은 눈에 관심을 두십니다. 눈은 중심 되는 지체이며, 눈을 통해 빛이 몸의 모든 지체로 들어갑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가장 중요한 원리가 분명합니다.
기독교의 가르침은 인간의 문제가 너무나 깊고 너무나 근원적이며 너무나 심각하다고 말합니다.
인간은 철저히 변해야 합니다. 인간은 심령 깊은 곳에서부터, 근본에서부터, 기초에서부터 새로워져야 합니다. 이것은 “거듭나야”한다는 신약성경의 큰 가르침을 또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 것입니다(요 3:7).
주님이 말씀하시는 요점은,
그분은 우리에게 큰 헌신의 행위를 요구하십니다.
“너희는 먼저…구하라.” 기독교는 생활방식입니다.
기독교는 전적인 헌신을 요구하는 생활방식이며,
따라서 우리의 전부를 요구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인간은 기독교의 진리에 자신을 완전히 헌신하기 전에는 결코 기독교의 진리를 알 수도 없고, 그 진리가 주는 축복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전적인 헌신이 없이는 결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헌신[계명에 순종]이 없이는 하나님의 임재도 없다.
주님은 언제나 헌신을 요구하십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42).
“나를 따르라.”
그 다음에 이 메시지의 일반적 특징은 하늘로부터 왔습니다.
주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모든 예언의 성취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나라가 왔습니다.
우리의 인생관[인생의 가치, 목적]이 우리의 생활방식을 결정합니다.
따라서 우리의 인생관이 잘못되면 다른 모든 것도 틀림없이 잘못됩니다.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마 6:23).
눈의 초점이 맞지 않으면, 사물이 둘로 보이거나 선명하게 보이지 않으면, 눈으로 보는 모든 것이 영향을 받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가르침입니다.
주님은 세상의 모든 비극은 세상의 인생관이 완전히 잘못되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인간이 본질적으로 잘못된 것에 우선순위를 두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다음으로, 주님의 말씀에 따르면 사람들의 문제는 잘못된 것을 앞에 두는 데 있습니다.
이 때문에 오늘날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며,
많은 사람들이 예배의 자리에 나오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자신이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인생이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는지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스스로 섬기는 것이며,
그렇게 하면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며,
그들의 우선순위는 무엇입니까?
주님은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마 6:19). 사람들은 보물을 땅에 쌓아 두고 있습니다.
돈! 돈은 사람들이 거의 예외 없이 최우선순위를 두는 것 가운데 하나입니다.
사람들의 또 다른 우선순위는 무엇입니까?
6장 25절에서 주님은 먹을 것과 마실 것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 다음으로 입는 문제가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사람들은 생각과 주의와 계획을 육체에만 집중시킵니다. 주님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을 위해 살며,
모든 문제의 원인이 여기에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주님은 사람들에게 또 다른 우선순위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자신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마 6:27).
이 말씀은 이런 뜻입니다. “너희 중에 누가 생각만으로 너희 생명을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그러나 사람들은 생명을 연장하는데 관심을 둡니다.
그래서 모든 관심과 생각과 주의를 여기에 집중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에 따르면, 이것은 잘못된 태도입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이런 태도를 취하면 노예가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것을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마 6:24). 동시에 두 주인의 노예가 될 수 없습니다.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
이 부분에서 복음은 언제나 검으로 다가옵니다.
복음은 돈을 정죄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청지기이며,
돈을 바르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잘못은 인간이 돈을 섬기며,
돈을 위해 살며,
돈의 지배를 받으며,
모든 것을 돈과 연결시켜 돈의 노예가 되는 데 있습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이 먹고 마시고 입는 것에 몰두하면 언제나 그것의 노예가 되며, 그것의 지배를 받는다고 가르칩니다.
그 다음으로, 주님은 이런 삶의 태도와 관련해 또 한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목숨을 위하여…염려하지 말라”(마 6:25).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은 ‘걱정하지 말고, 근심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주님은 물으십니다. 너희는 왜 이 모든 것을 염려하느냐? 주님은 다시 물으십니다.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28절).
여기서 주님은 “염려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반복하고 계십니다.
이 시대가 수면제와 신경안정제의 시대가 되어 버린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셰익스피어는 “왕관을 쓴 머리는 불안하다”고 했습니다.
인간의 문제는 잘못된 인생관에서 기인합니다.
우선순위가 잘못된 데서 기인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일은 바르고 참된 인생관을 갖는 것입니다. “너희는 먼저…구하라.” 바로 이것입니다.
인간에게는 영혼이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은 영원에 속한 존재이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재입니다.
여러분은 바로 여기서 출발해야 합니다.
성경은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기록합니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 1:26). 인간은 피조 세계의 통치자입니다.
인간은 이성과 큰 능력과 기질을 부여받은 피조물이며, 전능하신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더 이상 먹는 것과 마시는 것과 돈으로 살 수 있는 것과 입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은 여기에다 한없이 중요한 것을 덧붙이십니다.
그것은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 인간과 하나님 나라의 관계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너희는 먼저 그(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우선순위여야 합니다.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저는 제 자신이 제 육체보다 크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제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세상보다 더 크다는 것을 깨달으며,
티끌보다 본능보다 욕망보다 크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에게는 이런 의식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가장 높으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2천 년 전, 아테네 사람들에게도 또 다른 알지 못하는 신에 대한 의식이 있었습니다(행 17:23).
먼저 우리 주 하나님을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은 만물의 창조자이시며 만물을 유지하시는 분입니다.
주님은 공중의 새도 하나님이 지으셨다고 말씀합니다(마 6:26).
그러나 현대인은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으며, 하나님에 관심이 없습니다. 이들은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입을 것과 자신과 자신의 성취와 소유와 돈을 섬깁니다.
주님은 여러분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존하는 존재임을 말씀하십니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시 100:3).
우리의 시간과 우리의 호흡이 그분의 손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생명을 다스리십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삶에는 하나님이 전혀 없습니다.
주님은 세상이 지금과 같은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다스림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 곧 “그의 나라와 의”에 관해 깨닫기 시작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가 의미하는 바는, 하나님이 공의로우시며 거룩하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요일 1:5). 그분은 세상을 완전하게 창조하셨습니다.
세상은 그릇된 길로 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시며, 결국 이 세상을 바로잡으실 것입니다. 그분의 나라가 임하게 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때가 찼고 그 나라가 임했다. 내가 그 나라가 임하게 했으며 그 나라가 가까이 오게 했다. 그 나라는 의의 나라다.”
우리가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이것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눈 아래 있으며 그분의 통치 아래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해할 수도 묘사할 수도 없는 방법으로 우리에게 복을 주실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가 이러한 복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의로운 자에게만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을 섬기는 자들에게,
그분께 복종하는 자들에게,
그분이 보시기에 의로운 자들에게 복을 주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야말로 우리가 가장 먼저 구해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나라가 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그분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나라로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계시며, 하나님의 아들이 다시 돌아와 마침내 온 세상을 의로 심판할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원수들을 멸하시며,
자신에게 복종하지 않는 자들과 의롭지 않은 자들을 모두 멸하실 것입니다.
그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을 것입니다(살후 1:9).
하나님 나라에는 악이 들어올 여기가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에는 의인만 남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마 13:43).
의인만이, 오직 의인만이 복을 받을 것입니다.
주님은 그 다음으로 우리에게 우선순위가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갈망]
우리가 하나님의 통치 아래 살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먹을 것과 마실 것은 사라질 것이며,
우리의 옷이 중요하지 않음을 깨달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왜 이렇게 말씀합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의와 그 나라의 도래와 온 세상에 대한 그분의 통치를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우선순위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맨 위에 두고 다른 모든 것을 옆으로 치워 버리십시오.
이렇게 하기 전에는 책도 보지 말고 영화도 보지 마십시오.
이렇게 하기 전에는 아무것도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십시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십시오(눅 13:24).
이 낡은 세상은 이제 여러분이 통과해야 할 순례지가 되었습니다.
인생은 눈물의 골짜기지만, 이 골짜기를 통과해야 하며 통과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이 세상을 위해 살지 않습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로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엡 3:20-21).
우리는 이 세상에서 “거류민과 나그네”일 뿐입니다(벧전 2:11).
이 세상은 우리가 통과해야 할 땅이며, 우리는 여행자입니다.
우리 모두는 오늘 이곳에 있지만 내일이면 이곳에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나라의 모든 시민에게 주시며 그의 의를 가진 모든 자들에게 주시는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벧전 1:4)이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음을 잘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