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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代書)
주 요 섭
1
조선 제일의 대도시 문화 도시라고 떠드는 서울! 대도시임에는 틀림없을는지 모르나 고리짝을 끌고 하숙 구석으로 쫓겨다니는 독실 샐러리맨 그룹에게는 대노시라기보다는 소지옥이다. 더럽고 불편하고 못마땅하기로 서울 하숙은 아마 세계에서 첫번째일 것이다.
나는 하숙을 또 옮겼다. 금년 봄 벌써 네 번째 옮기는 것이다. 한번 옮길 적마다 짐은 조금씩 줄어진다. 그것은 옮기기 귀찮아서 웬만한 것은 내버리거나 남을 주거나 헐값으로 팔아먹거나 해서 짐을 줄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삼 년만 서울 장안을 헤매고 나면 고리짝 한 개 안 남겠네!"
하고 이삿짐을 도와주러 왔던 L이 허허 웃었다.
"그렇게 되었으면 되려 편하겠네. 잠은 친구들 집으로 다니며 얻어 자고 밥도 얻어먹고 했으면 경제도 더 되고."
하고 대답하고 나서 나도 오늘 처음으로 유쾌하게 한번 웃었다. 이사란 참으로 못할 노릇이라 이사를 하게 되면 며칠을 두고 마음이 우울해지기 때문에 그렇게 유쾌하게 한번 웃어보는 것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이삿짐이라고 싼대야 별것이 아니고 그냥 고리짝에, 있는 세간 다 함께 둘둘 말아 넣는 것이다. 책은 비루 상장에 넣고 이부자리는 둘둘 말아 이불싸개로 싸놓은 오직 그것이다. 그러나 웬일인지 이 단순한 노동이 천하 무엇보다도 하기 싫었고 짜증나는 일이었다.
새로 정한 하숙에 이삿짐을 날라다 놓고 나서 나는 L과 함께 다시 거리로 나왔다. 삼십 분 전에 모두 꾸려놓았던 놈을 이제 다시 또 모두 풀어헤쳐야 한다는 생각은 소름이 끼칠 만치 진절머리가 나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이사하는 날은 짐을 날라다 방안에 되는 대로 던져두고 나서는 동무들과 함께 찻집 순례를 하는 것이 버릇이 되다시피 되었다. 그러나 밤이 늦어져 집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될 시간이 되어야 억지걸음으로 돌아와서 짐들을 한편 구석에다 몰아 놓고 이부자리만 풀어서 펴고 잔다.
이제 그 짐들을 모두 풀어서 정리를 해 놓으려면 적어도 몇 달이 걸린다. 아니 채 정리가 다 되기 전에 또다시 꿍져 싸가지고 다른 하숙으로 옮기게 된다.
2
열 시가 넘어서야 새로 이사 온 하숙으로 돌아왔다.
객도기를 쓰고 앉았느라니 뜰에서 웬 여자 목소리로,
"나리 돌아오셨수유?"
하고 묻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자 내 방문이 저 혼자 방싯이 열리면서 뉘 집 어멈 비슷한 할멈의 얼굴이 나타났다.
나는 의아스러운 눈으로 이 할멈을 바라보았다. 되는 대로 꿍진 머리털이 희끗희끗 여윈 얼굴에 주름살이 조록조록하고 왼편 눈 위에 커다런 검은 멍이 보였다.
"원, 원국이 어머니두, 내일 오라니까. 지금 나린 분주하신데."
하고 객도기를 들고 들어온 하숙 하인 아이놈이 소리를 질렀다.
할멈은 입술을 한번 실룩하고 그리고 하인 아이를 한번 흘겨보고 나서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다시 말했다.
"나리, 분주하십니까?"
나는 잠시 멍하니 이 뜻 아니 한 방문객을 바라보았다. 똑바로 쳐다보는 그의 눈. 그 두 눈에서 나는 마치 개가 고깃조각을 든 주인을 쳐다볼 때와 같은 그 애원하는, 그 기대하는, 그 순종하는 눈빛을 발견했다. 나는 잠시 대답을 잃고 그를 바라다볼 뿐이었다.
"원국이 어머니라고 이 뒷집에서 어멈 노릇하는 할멈 인뎁쇼. 나리더러 편지를 좀 써달란다고 아까 낮에부터 온 것을 내일 오라고 그랬더니 지금 또 왔어요."
하고 하인 아이가 대신 설명해 주었다. 이 설명에 원국이 어머니라는 노파는 그 눈을 굴리어 방바닥을 내려다 보았다. 웃는다고 할는지 찡그린다고 할는지 분간할 수 없는 이상한 표정이 스치고 지나간다.
"편지?"
나는 단박에 호기심에 끌리어 그 노파를 들어오라 하였다. 그는 잠시 머뭇머뭇하더니 결심한 듯이 문안으로 들어섰다. 땟국이 흐르는 흰 양말 뒤축에는 시뻘건 발 뒤축이 비죽이 나와 보였다. 그는 때와 기름으로 밴 치마로 무릎을 가리면서 한구석에 쭈그리고 앉았다.
하인 아이가 객도기를 받아 들고 문 밖으로 나간 뒤 노파는 아주 공손하게 이야기를 껴냈다. 물에 시달려서 거칠어지고 변색된 손을 턱에 대었다 무릎에 놓았다 방바닥을 쓸었다 하면서 이야기를 했다.
"이렇게…… 상게 채 자리도 못 잡으셨는데 나리께 이런 청을 와서 참 안됐습네다. 넴테레 없세다. 그래두 그 망할 놈의 새끼가 벌써 한 달째 편지를 안하무다레…… 이 늙은 것을 혼자 내테두구 글쎄…… (그는 잠시 우는 듯싶었으나 즉시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여게 학생네덜한테 편지 좀 써 달래두 그 놈들은 나더러 미쳤다만 하구 싱글벙글하면서 한 놈두 써 줄라는 놈이 없습다레. 그래 오늘 나리가 새루 이사 온단 말을 듣구 그래두 나리는 이 학생들관 다르가키 편질 한장 써달래라구 아까부텀 와 보아두 영 안들어오세서 여지껏 있다가 아무래도 어디 잠이 와야지요. 그래서 자기 전에 한번 더 와 본다구 왔더니 마츰 나리가 계시기……."
여기까지 말하고 그는 한참이나 가만히 앉아 있었다. 오직 그 거칠고 변색된 손으로 방바닥을 쓰다듬고 있을 따름이었다. 얼른 번개처럼 『혹시 제 말마따나 미치지나 않았나?』 하는 생각이 머리 위로 지나갔으나 나는 그 생각을 곧 꾸짖어 퇴각시켜 버렸다. 한참 후에 다시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는 그 눈에는 애원하는, 기대하는 뜻을 보일지언정 결코 미친 사람의 눈은 아니었다.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목소리를 부드럽게 하여 물었다.
"누가 어데를 가셨습니까?"
"예?"
"할머니의 집안 사람 누가 어데를 가셨어요?"
"원국이 새끼디요. 그놈의 새끼가 늙은 어미를 홈차 내배리두고……."
"아, 원국이란 이가 자제분이로군요. 그런데 어델 갔어요?"
"더 ㅡ게데 북간도 아니 아니지요. 그 어드메라나 더 ―케 뒤루 가서 되따이 웨라데. 만주래든지?"
"네 만주요."
"예, 예 만주요. 벌써 간 데리 오 년이우라. 이달 초엿새 날이문 꼭 오 년이우라. 그놈이 새끼레 낮에두 안 떠나구 밤중에 떠나문성 날 보구 『어머니 내 가서 돈 많이 벌어 가지고 올께니.』 하문성 떠나더니 오 년이 되두룩 돌아올 생각도 안하구…… 그놈은 에미 생각두 안나는지. 돈을 벌었건 말았건…… 당개(장가)두 들어야 하겠구…… 젊은 아이가 그렇게 되따라 오래 돌아단기문 배 린 답데다."
여기까지 말하다가 노파의 눈이 나의 빙그레 웃는 눈과 마주치자 그만 말을 뚝 그치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러고는 그 거칠어지고 변색된 손으로 방바닥을 슬슬 쓸어 만지었다. 나는 얼른 이 늙은 어머니의 마음을 위로해 주고 싶은 생각에,
"네. 편지 써드리지요. 곧 오라고 쓸까요, 돈 많이 벌어 가지고 오라고 쓸까요."
하면서 나는 구석에 놓인 고리짝을 열어 젖히고 종이와 잉크와 펜을 꺼내 등불 밑 방바닥에 늘어놓았다.
노파는 묵묵히 앉아서 방바닥을 그 거칠고 변색된 손으로 슬슬 쓰다듬었다.
"무엇이라구 쓸까요?"
하고 펜에 잉크를 묻혀 들면서 다시 물었다. 노파는 이상스런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 흐리멍덩하던 눈에서는 이상스러운 새로운 광채가 나는 듯하고 그 눈 하나가 모든 것을 내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이렇게 늙은 어미 혼자를 남의 집 부엌에 내버려 두고 만주로 가버린 젊은 아들에게 그 어머니가 보내는 편지. 그 편지에 무슨 말을 써야 할지 나리께서 죄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나더러 물을 필요도 없지 않습니까?"
하고.
나는 잠시 정신을 모아 생각하다가 곧 편지를 쓰기 시작하였다. 처음에 만리 타향에서 얼마나 고생을 하느냐? 네 어미는 남의 집 부엌 구석에 설망정 몸만은 건강하고 자나깨나 네 일만을 생각한다―응 몇 줄을 써내려 가다가는 나는 아주 나 자신이 흥분되어 꽤 기다란 편지 한 장을 써놓았다. 아, 내가 이날 밤처럼 온 정신을 집중하고 온갖 정력을 다 들여 편지를 써본 일이(편지라곤 일 년 가야 몇 장 안 쓰는 나이지만) 없을 것이다. 나는 진심으로 그 불효한 아들을 달래고 꾸짖고 또 달래고 또 꾸짖었다.
이렇게 한참 동안 편지를 쓰는 동안 그 늙은이는 쉬지 않고 그 거칠어지고 변색된 손으로 방바닥을 쓰다듬고 있었다.
편지를 다 쓰고 나니까 그 노파는 나더러 그 편지를 한번 크게 읽어 달라 하였다. 그래서 나는 그 편지를 쓸 때보다 못지않은 정성으로 차근차근히 읽어 들려주었다. 악센트를 가하며 익스프레션을 가한 내 읽음은 나 자신으로도 자신이 있을 만치 잘된 것이라고 스스로 만족을 느꼈다.
편지를 읽는 동안 노파는 까딱 아니 하고 죽은 듯이 앉아서 들었다. 가끔 그가 기다란 한숨을 내쉬는 것으로써 그가 잠들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내가 편지를 다 읽고 나자 노파는 또다시 그 거칠어지고 변색된 손으로 방바닥을 쓰다듬기 시작하였다. 갑자기 그 손이 멈칫하는 듯하더니 거뭇거뭇한 손잔등이 부르르 떨렸다. 그 다음 순간 나는 물방울이 서너 방울 똑똑 그 손잔등 위에 떨어져 흩어지는 것을 보았다. 내 눈으로도 눈물이 스며오르는 것을 인식하고 나는 억지로 참으려고 눈을 감고 벽에 기대면서 숨을 몰아쉬었다.
한참 동안은 침묵이 흘러갔다. 나는 눈을 떠서 노파의 동정을 보고 싶었으나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눈을 감은 채로 만주 벌판으로 헤매고 있을 원국이란 청년의 모양을 상상해 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경과되었는지 나로서도 알 수 없었다. 나는 마침내 조심스러이 부르는 『나리』 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역시 그 노파의 애원하는 듯한 눈동자와 마주쳤다. 그는 그의 거칠어지고 변색된 손으로 아들에게 갈 편지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나리』 부르는 그의 목소리는 약간 떨렸다. 그는 치마 앞자락에 코를 휭하니 풀고 나서 다시 말을 계속한다.
"나리, 『네 에미는 남의 집 부엌 구석에 설망정 맛난 것을 볼 때마다 네 생각이 난다』라든 그 소리가 씌어 있는 데가 어디쯤이웨까?"
하고 물었다. 내가 손가락으로 그 자리를 가리켜 주니까 그는 그 자리를 한참이나 물끄러미 들여다보더니 그 자리 글자 위를 그 거칠어지고 변색한 손가락으로 꼭꼭 찔러 보았다. 마치도 그 글자가 빠져 달아날까 싶어 꼭꼭 꽃아 놓듯이 그러고 나서는 또다시 조심 스런 목소리로,
"그러쿠 또 그 『어서 바삐 돌아와서 장가를 들도록 채비하라』하던 데는 어디쯤이웨까?"
하고 물었다. 그 장소도 역시 아까 모양으로 손가락으로 꼭꼭 누르더니 조심조심 편지를 접어 손에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거 원 첨 뵙는 나리께 폐가 많쉐다. 늙은 것이란 어서 공둥묘지루나 가야디요. 안녕히 주무시우."
하고 퍽 쾌활스럽게 인사를 한 후 나가 버렸다.
나는 눈을 감고 벽에 반쯤 기대어 누워서 그 노파의 고무신 끄는 소리가 사라져 없어질 때까지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일어나 자리를 깔고 불을 끄고 누웠으나 곧 잠을 들지 못하고 어느 집 시계인지 멀리서 세 번을 땅땅 치는 소리를 들은 후에야 잠깐 잠이 들었다.
3
이튿날 친구들을 만나 어젯밤 노파의 이야기를 하고 조선 안에 그런 노파가 몇 만이나 될는지 모른다고 서로 탄식하였다. 이삼일 동안 나는 한가할 때마다 걸핏 그 노파의 환영이 머리에 떠올라서 일종의 우울과 애수로 날을 보냈다. 더구나 그 이튿날 저녁때 주인부인을 만나서 그 노파의 아들은 어디 가서 죽었는지도 모른다는 의견을 듣고 나서 마음이 더 한충 캄캄하여졌다. 만일 그렇다면 여러 해 전에 어떤 소설에서 지은 모양으로 내가 몰래라도 그 아들 대신으로, 편지를 써서 만주 가 있는 친구에게 보내 가지고 다시 그 노파에게 부치도록 하여 그 노파로 하여금 실망하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 이상스런 것은 그 노파가 나에게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봉투를 써 달라는 일이 없는 일이었다.
이삼 일 후에야 이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으나 혹은 봉투란 몇 자 안 되는 것이니까 혹 어떤 학생에게나 써 달랬으려니 하고 생각했다.
『잊어버리는 설』 이란 미운 일인 동시에 고마운 일이다. 그것은 사람의 생활을 몰인정 하게 만드는 동시에 뚜 그것이 있기 때문에 우리들은 오십 년이고 칠십 년이라는 긴 세월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한 주일도 지나지 못하여 나는 그 노파의 일을 잊어버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혹 어떤 때 갑자기 그 거칠어지고 변색된 손이 생각나면 쾌활하던 심리도 갑자기 우울해지고 또 나 자신이 그런 비참한 현실을 너무도 속히 잊어버리는 데 대하여 약간의 나 자신에게 대한 반감을 감각하는 것이었다.
반 달 세윌이 후딱 지나갔다. 그때 어느 날 나는 아침에 나오다가 골목에서 그 노파와 마주쳤다. 그 노파는 길을 비키면서 공손히 인사하였다. 그의 눈이 몹시도 더 흐려진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나는,
"그래 그 동안 만주 가 있는 자제분에게서 편지가 왔습니까?"
하고 할 수 있는 대로 쾌활스럽게 물어 보았다. 노파의 얼굴은 갑자기 변하였다. 조록조록하고 누르검푸스레한 얼굴이 잠시 창백해지는 듯하더니 입술이 비틀어지고 눈이 갑자기 빛났다. 그 눈에는 원망이 가득 차고 노여움의 빛이 떠도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거친 목소리로,
"안 왔수다!"
하고 소리를 지르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뒤축이 찢어진 고무신을 질질 끌면서 달아나다시피 가버렸다.
나는 그날 하루 종일 마음이 불유쾌하였다. 그 노파가 한편으로 노엽기도 하며 또 한편으론 불쌍도 한 것이었다.
4
두 달이 후딱 지나갔다.
나는 원국이 어머니 일을 잊어버리고 말았었다. 그러나 원국이 어머니는 내게로 다시 그 애원하는 기대하는 눈을 가지고 찾아오기를 잊지 않았던 것이다:
좀 늦게 저녁상을 받고 앉아서 벌써 한 달째 한 알도 안 다쳤건만 꾸준히도 계속해 밥상을 차지하는 콩자반 접시를 들어 뜰에 내동댕이치고 싶은 것을 겨우 꿀꺽 참고 맨밥으로라도 배를 채울 양으로 숭늉에 밥을 말면서 속으로 『또 다른 하숙으로 옮기도록 해야겠군.』 하고 결심을 하고 있는 차에 밖에서 "나리
겝쇼." 하는 원국이 어머니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 왔다. 나는 『망할 놈의 노파 같으니 대답을 말까보다.』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으나 곧 그 생각을 후회하고,
"예 지금 법먹는 중이요."
하고 대답했다.
"아이구 저녁이 늦으셨군. 어서 많이 잡수구레. 내 여기서 기다리우레다."
하더니 그는 기다란 한숨을 쉬면서 마루에 걸터앉는 모양이었다. 나는 이 노파가 또다시 찾아온 목적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상상을 해보면서 물 만 밥을 맛도 모르고 훌훌 들이마셨다.
밥상을 물리고서 나는 그 노파를 방안으로 맞이하였다. 그는 눈이 더한층 흐리멍덩해진 것 외에는 별다른 변화는 없는 듯. 땟국이 흐르는 치마로 무릎을 가리고 방안 한구석에 쪼그리고 앉더니 그 거칠어지고 그 변색된 손으로 꼬깃꼬깃 접힌 종잇조각 하나를 펴기 시작했다. 다 펴 가지고는 호기의 눈으로 바라다보는 내 얼굴 앞에 그 종이를 쑥 내밀었다.
나는, 『원국이에게서 온 편지나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 종이를 받아들다가 나는 깜짝 놀랐다. 이게 웬일일까? 내가 귀신에게 홀렸단 말인가? 내 손에 쥐어진 쪼글쪼글한 종이 위에는 내 자신의 손 글씨가 뚜렷이 나타나 있지 않으냐? 그것은 별다른 것이 아니라 내가 이 하숙으로 이사 오던 첫날밤에 노파에게 대서해 준 편지 그것이었다. 이 늙은이가 여태껏 이 편지를 보내지 않고 꼬깃꼬깃 접어서 두었다가 두 달 후인 지금에 다시 그 필자인 내 앞에 돌려보내 주는 것이었다. 대관절 이것이 무슨 영문인지 어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나리 그 편지를 한번 읽어 주시우."
하고 그 노파는 태연스럽게 말하였다.
"아니 원국이 어머니, 이 편지는 내가 써 드린 것인데 왜 원국이 한테 보내지 않고 이때껏 가지고 계십니까?"
하고 물었다. 노파는 내 물음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거기에 대답이 없이 태연히 또다시,
"나리 그 편지를 좀 읽어 주시우."
하고 되풀이하였다. 그리고는 잠시 나를 쳐다보는 그 눈에서 나는 또다시 고깃조각을 든 주인을 쳐다보는 개 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애원하는 기대하는 반기는 빛을 볼 수 있었다.
나는 나로서도 설명할 수 없는 이상스런 감정의 교차를 느끼면서 그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쓰던 그 당서에는 꽤 잘 쓴 것으로 생각되던 편지가 이렇게 두 달 후에 다시 한번 읽어 보니까 싱겁고 유치하기 짝이 없는 것같이 생각되었다.
하여튼 나는 단숨에 끝까지 죽 내리읽고 나서 노파를 바라다보았다. 그는 고개를 뚝 떨어뜨리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의 거칠어지고 변색된 손만이 방바닥을 슬슬 쓰다듬고 있었다. 잠시 후에 그는 고개를 들었다. 줄을 지어 두 뺨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씻을 생각도 아니하고 노파는 떨리고 느끼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나리, 나리…… 원국이 녀석이 그 편지를 보문 이내 회답을 쓰갔디요?"
이 돌연스러운 질문에 나는 무엇이라고 대답하는 것이 좋을지를 몰라서 멍하니 바라다만 보고 있었다. 늙은 두 눈에서는 두 뺨 위로 쉴새없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리, 나리…… 원국이 녀석이 회답을 쓰갔디요. 나리가 원국이 대신으로 그 회답을 좀 써 주시구레!"
이것이 무슨 소리인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아―니……."
하고 내가 영문을 물어 보려 했으나 그 노파는 가로질러 가지고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나리, 나리께선 나를 미쳤다고 안하시디요? 원국이 녀석 원국이 녀석……. 그놈의 새끼는 삼 년 전에 죽었대요. 그놈의 새끼레 얼마 동안 펜지두 안하더니 건너 동네 보똘이가……. 그애두 만주를 돌아당기다 왔디요…… 보똘이가 여게 서울까지 나를 찾아와서 『원국이 어머니, 원국이는 만주에서 죽었다우. 내가 죽은 것을 보구 장사까지 지내구 왔다우.』 하고 일러주갔디요…… 나리 그래두 난 보똘이녀석 말을 믿지 않수와요. 그녀석이 원국이 새끼레 나를 여기다 팽개테 두구 혼자 죽다니요? 그럴 리가 있나요. 나는 언제나 원국이 녀석 이 살아 있거니 하고…… 나리…… 원국이레 살았담 하구 나리가 원국이 대신 나한테 펜지 한 장 써 주시구레. 이제 그 펜지를 원국이레 보구 그 펜지 답장하는 펜지를 한 장 써 주시구레……. 그러카문 나는 그 펜지가 원국이한테서 왔거니 하구 간수하갔수다……. "
나는 무슨 말을 하려 해도 목이 메어서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나는 묵묵히 편지와 잉크와 펜을 불 밑에 벌여 놓았다.
"나리. 복 많이 받으십사 나리!·……. 『이젠 돈을 많이 벌었것다. 이제 몇 달만 더 있으문 어머니한테 가서 당개들구 어머니랑 데불구 룡천후 되루 가서 느트나무 뒤두 그 집 되루 사 가지구 아들딸 나쿠 살갔수다.』 이렇게 써 주시구레……."
나는 묵묵히 펜을 날리고 있었다. 곁으로 보니 그 거칠어지고 변색된 손이 방바닥을 가만히 쓰다듬고 있는 것이 보였다.
〈1935〉
2016년 11월 19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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