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혜에는 그것을 구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인생을 대가로 지불하라는 요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는 죄인의 편에서는 아무런 공로도, 권리도 없는데 값없이 의롭다고 하시는 것이다. 칭의는 죄에 대한 충분하고 완전한 용서이다. 죄인이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그 순간 그는 용서를 받고 그리스도의 의가 그에게 입혀진다. 그는 더 이상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은혜를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 (FLB 107.2)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배워야 한다. 주님의 의 외에 다른 아무것도, 은혜의 축복 가운데 있는 단 한 가지도 우리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없다. 우리들은 오랫동안 이러한 축복들을 얻으려고 바랐으며 노력하여 왔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러한 축복들로 자기 자신의 유익만을 도모하려는 사상을 품고 있으므로 축복들을 받지 못하였다.
우리들은 예수께서 살아계신 구세주이심을 믿음으로 우리들 자신만을 돌보지 말아야 할 것이었다. 따라서 우리들은 우리들 자신의 은혜와 공로가 우리들을 구원하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은혜는 우리들의 유일한 구원의 소망이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선지자를 통하여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사 55:7) 고 약속하셨다. 우리들은 적나라 (赤裸裸) 한 허락들을 믿어야 하며 감정을 믿음으로 잘못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완전히 신뢰하고 죄를 용서해 주시는 구세주로서 예수님의 공로를 의뢰할 때 우리들은 우리가 소망하는 모든 도움을 받게 될 것이다. (1SM 351.1)
은혜의 왕국은 사람이 타락한 이후, 죄를 범한 인류의 구속을 위한 계획을 세운 직후에 건설되었다. 그 후로 그 나라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분의 허락에 의하여 존재하게 되었으므로 사람들 은 믿음으로 그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나라는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신 후에야 비로소 확립되었다. 구주께서는 지상 생애를 시작하신 후일지라도 고집스럽고 무정한 사람들에 염증이 나서 갈보리의 희생을 철회할 수도 있으셨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 저주의 잔을 쥔 그분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그때에라도 그분은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피땀을 씻어 버리고 타락한 인류를 그들의 죄 가운데서 멸망하도록 버려둘 수 있으셨다. 그분께서 만일 그렇게 하셨더라면 타락한 인류를 구속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구주께서는 자신의 생명을 버리시고 “다 이루었다”라고 부르짖으신 후 운명하심으로 구속의 계획을 완전히 성취하셨다.
에덴동산에서 죄를 범한 부부에게 허락된 구속의 약속은 이제 확증되었다. 하나님의 약속에 의하여 예전부터 존재해 온 은혜의 왕국이 그때에 세워졌다. (CIHS 108.2)
증언보감 1 (1)
나는 온 하늘이 우리의 구원에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보았다. 우리가 과연 무관심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가 구원받거나 멸망하는 일이 사소한 일인 양 부주의할 것인가? 우리를 위하여 이루어진 희생을 경시할 것인가? 어떤 이들은 그렇게 했다. 그들은 제공된 은혜를 소홀히 여겼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불쾌히 여기신다. 하나님의 성령을 언제까지나 근심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조금만 더 근심시키게 되면 그분은 떠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구원을 위하여 하실 수 있는 모든 일을 하신 이후에도 만일 그들이 생활로 예수님께서 제공하신 은혜를 경홀히 여김을 보인다면, 멸망이 그들의 몫이 될 것이며 그것은 참으로 값비싼 대가를 치를 사망이 될 것이다. 그것은 무서운 사망이 될 것인데, 왜냐하면 그들이 거절한 구속의 대가를 지불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당하신 그 고뇌를 그들이 겪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때에 그들은 그들이 잃어버린 것이 영생과 불멸의 유업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루어진 놀라운 희생은 우리에게 그 영혼들의 가치를 보여 준다. 고귀한 영혼이 일단 잃어버리게 되면 그것은 영원히 잃어버린 바 된다. (1TT 23.3)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1)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은혜는 돈으로 살 수 없고 학문으로도 붙들 수 없으며 권세로도 얻을 수 없으나, 그것을 받고자 하는 자들에게는 거저 주어진다. 사람들은 은혜의 필요를 느끼고 모든 자기만족을 포기하고 구원을 선물로서 받아들일 수 있다. 하늘을 얻고자 하는 자들은 그들 자신의 의로 그곳의 벽을 쌓거나 금이나 은과 같은 값비싼 제물을 드려 그곳의 열린 문을 얻을 수는 없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를 통하여 거할 곳이 많은 아버지의 집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AG 179.2)
하나님의 아들들과 딸들 (1)
인간들의 그들의 지혜나 그들의 용맹이나 그들의 부를 자랑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자랑해야 한다. 이 지식은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가장 탁월하고 가장 고귀한 것이다. 그것은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은혜는 돈으로 살 수 없고 학문으로도 붙들 수 없으며 권세로도 얻을 수 없으나, 그것을 받고자 하는 자들에게는 거저 주어진다.
사람들은 은혜의 필요를 느끼고 모든 자기만족을 포기하고 구원을 선물로서 받아들일 수 있다. 하늘을 얻고자 하는 자들은 그들 자신의 의로 그곳의 벽을 쌓거나 금이나 은과 같은 값비싼 제물을 드려 그곳의 열린 문을 얻을 수는 없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를 통하여 거할 곳이 많은 아버지의 집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SD 233.2)
하늘을 향하여 (1)
비록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은 하지만 현재 가지고 있는 정신과 성품을 그대로 고수하는 것 때문에 하늘을 망치게 될 사람들이 많이 있다.... 저들의 생애는 세상적인 것들로 가득 차 있고 성품도 성화되어 있지 않다. 저들을 가져서는 안 되는 편견을 품고 있으며 철저히 속된 상태에 있다. 영혼이 그리스도의 품성과는 다른 분위기에 둘러싸여 있는 땅이 하늘로 변하는 변화의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이 땅은 우리가 시험과 시련을 받아야 하는 학교이다. 우리는 이를 통해 장차 그리스도의 은혜의 청지기가 될 수 있을 것인지 판가름을 받는다.
그리스도의 은혜의 권능은 영광의 소망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속에 당신의 형상을 이루실 때까지 계속해서 불순종하는 자녀들의 마음속에서 역사하실 것이다. 우리는 하늘을 보기 전에 우리가 회개하고 거듭났다는 사실을 보여 주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이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배우는 겸손한 학생으로서 일을 시작할 수 있다. 이 얼마나 큰 사랑과 은혜인가!
타락한 인간을 위해 베푸신 그분의 사랑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값비싼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표준을 높이 세우신 것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분께서는 우리와 같은 성향을 취하시고 이를 당신의 성향과 같게 만들어 주실 것이다—원고 93, 1903. 8. 31.. (UL 257.3)
그리스도를 나타내자 (3)
그러나 이러한 계시가 주어진 것은 이 세상의 인간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이 작은 세계는 우주의 교과서이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목적 즉 구속하시는 사랑의 신비는 “천사들도 또한 살피기를 원하는”(벧전 1:12) 주제로서 무궁한 시대를 통하여 그들의 연구 주제가 될 것이다. 구속(救贖)받은 자들이나 타락하지 않은 자들 모두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그들의 과학과 노래를 찾게 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서 비치는 영광은 자아 희생적(自我犧牲的) 사랑의 영광임이 드러날 것이다. 갈바리에서 비쳐 나오는 빛으로 볼 때 자아를 부정하는 사랑의 법칙이 이 세상과 하늘의 생명의 법칙임이 드러날 것이다. 또한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전 3:15)는 사랑은 하나님의 마음에 그 근원이 있으며 아무라도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품성은 온유하고 겸손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RC 15.4)
오순절 날 놀라운 사건이 있었다. 성령의 강림으로 어떤 증거가 그리스도의 은혜의 풍성함에 주어졌는가? 발전된 진리를 믿는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그들의 특권을 왜 멀리하면서 살고 있는가? 왜 그들은 그들이 하는 모든 일을 자신과 혼합시키고 있는가? 만일 그들이 자신을 포기한다면 예수께서는 갈한 영혼에게 생명 강으로부터 생수를 끊임없이 공급하실 것이다.... (RC 304.4)
신자 앞에는 그리스도와 같이 될 가능성 즉 율법의 모든 원칙에 순종할 수 있게 되는 놀라운 가능성이 제시되어 있다....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기 전에 가져야 한다고 하나님의 말씀에 선언된 성결은 그가 진리의 성령의 훈련과 제어하시는 감화에 복종할 때에 일어나는 거룩한 은혜의 역사의 결과이다. 사람의 순종은 모든 순종의 행위를 하나님의 향기를 채우는 그리스도의 의의 향(香) 에 의하여서만 완전하게 될 수 있다. (RC 314.5)
그리스도인 선교봉사 (1)
우리 신자들 중에는 만일 그들이 진지하게 생각해 본다면, 자신들이 아무 일도 하지 않으므로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을 소홀히 하는 죄를 범하고 있음을 깨닫게 될 자들이 있다. 형제 자매들이여, 그대들의 구세주와 모든 거룩한 천사들은 그대들의 마음의 완고함을 보고 슬퍼한다.
영혼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바치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고 있으면서도 그대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자들에게 그분의 은혜의 축복을 나누어주는 일에 거의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은 의무에 대한 태만과 무관심은 천사들에게는 놀라운 일이다.
그대는 그대가 소홀히 한 영혼들에 대해서 마지막 날에 심판 받아야만 한다. 그 큰 날에 그대는 스스로 유죄를 인정하고 자책(自責)하게 될 것이다. 주께서 그대를 지금 회개하도록 인도하시기를 바란다. 주께서 일터로 주신 주의 포도원에서 일을 게을리한 백성들의 잘못을 용서해 주시기를 기원하는 바이다.—6T, 425, 426. (ChS 90.4)
높은 부르심 (1)
많은 사람들은 무엇이 믿음을 구성하는 것에 관하여 복잡한 생각들을 가지고 있으며, 또 저들은 저들의 특권들보다 밑에서 생애한다. 저들은 감정과 믿음을 혼돈한다. 그리고 마음 가운데 저들은 계속하여 고민하고 고통한다. 그 까닭은 사단이 저들의 무지와 미숙한 모든 가능한 이점들을 취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친구나 이웃이 그분을 개인적인 구주로 모시고 믿도록 하기 위해 우리 자신을 그분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게 하는 것이 우리의 대답이 될 수 없고 또한 우리는 그분의 용서하시는 사랑을 경험하지 않을 수도 있다.우리들은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의 역사하심을 통해서, 믿음을 행사하므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기 위하여서는, 우리들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임을 믿어야 산다. 그리고 우리들은 공로 없이 주시는 그의 놀라운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드려야 한다.
영혼을 그리스도에게 이끌어, 받아들인 바 되게 하고 또 하늘 아버지 앞에 제시되도록 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시다. 성령의 역사하심을 통해서 하나님과 죄인과의 거룩한 관계는 다시 소생된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게 백성이 되리라 하셨다. 내가 그들을 향하여 용서하는 사랑을 행사할 것이며 그들에게 나의 기쁨을 줄 것이다. 그들은 내게 대해 특별한 보배가 되겠고 내가 나를 위하여 지은 이 백성이 나의 찬송을 보이리라.” (OHC 77.2)
마라나타 (1)
분열을 일으키고 진리에서 떠나게 하는 일들이 계속 일어날 것이다. 이와 같이 다른 사람들을 의심하고, 비평하고, 비난하는 일시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은 마음 속에 그리스도의 은혜가 없다는 증거이다. 그것은 연합을 이루지 못하게 한다. 죄 가운데 깊이 빠져 있으면서도 놀라운 빛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과거에 그런 일들을 행하였다(가려뽑은 기별 2권, 78, 79). (Mar 158.6)
매일 매 순간 마다 필요한 은혜(고후 3:18)—영혼의 성화는 믿음으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그리스도를 확고부동하게 바라봄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진리의 능력은 마음과 품성을 변화시킨다. 그 결과는 화판 위에다 여기 저기 물감을 조금씩 묻혀 놓는 것과 같지 않다.
다시 말하자면 품성 전체가 변화되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모습이 말과 행동에 나타나는 것이다. 새로운 본성을 나누어 받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좇아 의와 참된 거룩함으로 새롭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은혜는 매일 매 시간 꼭 필요하다. 만약 그리스도의 은혜가 계속 우리와 함께 하지 않으면 타고난 마음의 이중성이 드러날 것이며, 생활에는 이중 봉사의 징후가 나타날 것이다.
품성에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해야 한다.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이 역사하는 곳은 어느 곳에서나 그것은 땅에 있는 기쁨보다 더 많은 기쁨, 땅에 속한 평화보다 더 차원높은 평화로써 생활의 세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밝게 하고 행복하게 해 줄 것이다(편지 2a, 1892). (6BC 111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