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산탈춤****
-중요무형문화재 제17호 봉산탈춤은 황해도 전역에서 연희되어 온
해서(海西)탈춤의 대표격이 되는 탈춤이다
남한에서는 6.25때 월남해 온 분들에 의해 봉산탈춤이 복원되어 전승되다가,
196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되었다
-봉산탈춤의 중흥자로는 약 2벡여 년 전 봉산의 이속이었던
안초목(첫목)이라고 하는 사람이 지방 관속들의 주도 아래
봉산 군민이 가장 애호하는 민중 연희로 발전되어 온 것 같다고 한다
-봉산탈춤은 원래 봉산구읍 경수대에서 연희되었으나 1915년경 군청 기타 행정기관이
사리원으로 옮기고 경의선도 개통하게 되어 이 놀이도 그 후 사리원 경암산아래에서
놀아왔다
해방후 월남한 몇 분의 연희자들에 의해 1958년 이래 전국 민속예술 경연대외에
참가하여 여러차례 수상하였다
-봉산탈춤은 매년 5월 단오날 밤에 시작하여 다음날 새벽까지 연희하였는데 관가의
경사, 특히 중국 사신을 영접할 때는 특별 공연을 하기도 했지만, 주로 농민과 상인들
을 상대로 공연했다고 한다
놀이를 시작하기 전에 길놀이가 있는데 길놀이가 끝나면 이 놀이의 중흥자인 안초목
을 위령(慰靈)하는 고사를 지내는 일도 있었다
-봉산탈춤은 그 극본과 춤 가면, 의상 및 반주음악에 있어 한국가면무극의 해서형의
특징을 잘 지니고 있으며 역시 다른 가면무극과 마찬가지로 춤이 주가되고
이에 몸짓, 동작, 재담과 노래가 따르는 형식이다
-사상좌춤으로 시작하여 굿으로 끝나는 연희의 형태는 다른 가면극들과 비슷하나
다른 가면극에 비하여 신앙적 내지는 종교적 의의는 희박하고 민중의 오락적 요소가
훨씬 우세하다
-가면은 사실적인 중부지방의 양주별산대놀이에 비하면 비사실적인데 특히 팔먹중탈은
비사실적인 귀면형(鬼面型)으로 요철 굴곡이 심하다
가면의 색은 청. 적. 백. 흑. 황색 등 오방색이 주가 된다
그 색이 갖는 의미도 민간신앙적인 면에서 설명되기도 한다
가령 붉은 색은 벽사색으로 쓰이는 예이며, 그 밖에 중국 가면이나 일본 가면에서
흰 것은 고귀하고 착한 것을 나타내고 검은 것은 사악한 것을 나타내는 것 같은 예에서
도 그 의의를 어느 정도 찾아낼수 있다고 볼 수 있다
-춤은 도무(跳舞/발이 땅에서 뛰어 오르다)와 건무(建舞/템포가 빠른 격한춤)
연무(軟舞/느린템포의 연한춤)로서 표출되는 건무(建舞/건강한 무용)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같은 손 같은 발이 함께 올라가는 것이 춤의 특징이다 (???)-
산대놀이는 섬세하면서 자세하며 사실적 춤사위로서 극과 호흡의 조화를 이루고
있으나,
-봉산탈춤은 활발하면서도 경쾌하며 묵직하고도 끈적끈적한 춤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피리. 젓대. 해금 . 북. 장고등의 삼현육각에 염불. 타령. 타령시나위. 굿거리등을
기본장단으로 하는데 특히 이 지방의 삼현육각은 피리와 대금의 연주법이 황해도
민요에서 들을 수 있는 바와 같이 중간음을 격렬하게 떨어서 연주하는 특징이 있다
-과장을 크게 7과장으로 나누어
제1과장-사상좌춤, 제2과장-팔목중춤 제1경 팔목중춤 제2경 법고놀이,
제3과장-사당춤, 제4과장-노장춤 제1경 노장춤 제2경 신장수춤 제3경 취발이춤,
제5과장-사자춤, 제6과장-양반 말뚝이춤, 제7과장 미얄할멈.영감춤
으로 나눌 수 있다
내용 역시 산대도감 계통극으로서 다른 가면극과 거의 동일한 주제을 갖고 있다
1. 벽사진경의식무(사상좌춤과 지노귀굿)
2. 파계승에 대한 풍자
3. 양반에 대한 모욕
4. 일부대처첩의 삼각관계
-등으로 요약할 수 있으며 파계승, 몰락한 양반과 그 하인, 무당, 사당거사와 기타
서민들의 등장을 통하여 무속과 불교 신앙과 권선징악의 테두리 안에서 호색과 현실
폭로의 익살과 웃음을 통하여 이상의 주제를 극으로 표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