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의 한신부님이 본당에 오셨습니다
서울에서 가난한 동네인 시흥동성당으로
오신것입니다 그분은 성당복도에 뒤주를 두고
신자들이 식사할때마다 조금씩 덜어내고
주일날 올때 가지고와서 뒤주에 넣으라고
했다
그리고 필요한사람은 언제든지 오셔서
필요한만큼 퍼가라고 본당신부님은 말씀
하셨지만 다들 만류하였지요 마음대로
퍼가게하면 필요이상으로가져가기 때문에
뒤주가 금방 바닥을 보일것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성당정문을 없앴습니다 누구나
성당안으로 언제든지 들어올수있게 하였다
때로는 가출한 아이들이 성당에 숨어
들어와지내는 바람에 일찍 기도하러온 신자들을
놀라게했다 사람들이 거의 오지않는. 시각에
누군가가 뒤주의 쌀을 퍼가기 시작하였지만
그런데 염려하는대로 많이 퍼가지않고
필요한만큼 퍼갔다고한다. 이는 뒤주의 쌀이
바닥을 내기는 커녕 자꾸 쌓이게되었다고
한다. 너무 많이 쌓여서 벌레가 생길정도였다
고심끝에. 떡을해서 주일날 마당에서 팔아서
만든 돈으로 농협에서 쌀을 구입해서 독거노인가정
에 배달하였다. 서울에서 가장 가난한성당중의
하나이지만 지방에서 도움을 청하기위해
그곳신부들이 교우들과 함께. 옵니다 신부님은
미사를 집전하면서 2차봉헌금을 가져가기에
본당에는 너무 적은돈이 나올까 염려해서
본당봉헌금에서 일부 할애할려고했다
그때 대부분 주일헌금을 천원을 했다
봉사로 미사가 끝나면 봉헌자루에 담아
계산해서 기록하여 사무실에 가져다주기
때문에 알수가 있었다 매년 부족한예산때문
에. 만원헌금하는날을 정하는등 노력했지만
뜻대로 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2차봉헌금은
생각이상으로 나왔기에 놀라웠다
그들이 팔러온 특산물은 모두 사주었습니다
새로오신 신부님은 여러사람을 배려해서
교부금을 낼때 자신의 코드로 내어서
누가봐도 알수없게하였다. 그리고 미사중에
봉헌시간을 갖는 대신에 성당입구에 봉헌함을
두어서. 그곳에 내게 되었습니다 어려운사람들
이. 늘어서인지 봉헌금등 수입이 아주 많이
줄어서 그 신부님이 계시는동안 성당은
적자를 보았다. 그분이 계시는동안 전신자를
대상으로 많은 교육을 시켰다
본당에서 미사예물로 따로 드리는것은
주례신부의 몫입니다 신부님의 영명축일
축하금도 개인적으로 기도부탁하면서
내는 사례금. 그리고 본당출신 신학생으로
사제가 되어나갈때. 받게되는 신자들의
격려금을. 본당신부는 규제한다
신자들이 사제에게 지나치게 많은 재물을
주게되면 타락한다고 하시면서 일정액이상은
신학교에 기부하셨다
본당을 떠난 보좌신부님에 어려움을 묻자
방에 TV를. 시청하지못하게 하셨다고
합니다
한달에 한번 성당마당에 장터가 열립니다
장사하는 교우들의 어려움을 들으신것이고
장이 열리면 교우들은 많이 구입해갔던 것이다
그신부로 좋아하는 사람도 거북하게 여기는
교우들이 있었다 다만 그때진 빚으로
신부님이 떠난후 몇해동안 갚느라고
고생을. 하였던 것이다
그신부님의 역할을 잘 이해하는이가
적어서 인지 본당사목은 맡겨지지않고
특수사목을 하시다가 원로가 되셨다고
한다.
가난한자들과 함께하고 돕는일은 늘
잡음과 희생이 뒤따름을 체험합니다
그러나 여유있지않은. 가난을 체험한이들이
진정한마음으로 어려움이 있는 이들을
도울수 있음을 체험하게. 됩니다 아멘
카페 게시글
자유게시판
가난이들과 함께 한다는 것은...
권순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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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28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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