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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헤셔 (Hesher)
년도 : 2010 연도 : 2010 년
국가 : 미국 제작 : 미국 (독립영화)
감독 : 스펜서 수세르
배우 : 조셉 고든 레빗(헤셔 역), 나탈리 포트만(니콜 역)
레인 윌슨(아버지 역), 데빈 브로쳐 (TJ 역)
다짜고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세상에 Fuck You!를 날리는 천방지축 개망나니 헤셔!
말보다 욕이 많고 밥보다 담배와 술이 주식인 헤셔!
세상의 모든 곳이 그의 집이고 거처인 방랑객이자 절대 자유인인 헤셔!
규율과 법규는 삼싸먹은지 오래고 오직 자신의 욕망에만 충실하는 헤셔!
남의 이목과 시선은 괴념치 않고 자기 멋대로 살아가는 헤셔! 나의 집에서 누렇게 색바랜 삼각팬티만 입은 채 질펀히 누워 포르노를 시청하는 헤셔!
애정이 없어도 욕정이 동하면 아무하고나 관계하는 인간 쓰레기 헤셔!
그러나 그를 온전히 거부하기엔 썩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예의범절과 수치심을 삶아 먹은 개또라이일지언정 인간에 대한 한가닥 예우와 사랑을 갖고 있는 인물이 그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정서 상으로 봤을 때 이러한 인물에 공감을 갖기란 쉽지 않다. 아니 공감을 할 수 없다. 그래서 그가 보여주는 행동은 상식밖의 일탈이고 미친광이 짓 이상으로 볼 수 밖에 없다.
어느 것하나 보고 배울 것 없는 인간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가족을 보살피는 할머니를 통해 진정한 사랑과 믿음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스스로도 그러한 요소가 있음을 만천하에 질러대는 헤셔이기에 미워할 수 없다. 폐차가 됐을지언정 TJ가 엄마의 분신처럼 그리워하는 자동차를 밤새 끌고와 TJ의 집 앞에 두고 홀연히 떠나는 멋진 놈이기도 하기에 그를 내칠 수 없다. 사회악처럼 보이고 루저의 끝판왕처럼 보이지만 우리에게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한번쯤은 생각하게 해주는 괴짜이기에 그를 손톱만큼 사랑할 수 있다.
이런 괴팍하고 혐오스런 헤셔를 미워할 수 없을 정도로, 손톱만큼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느끼게 해줄 수 있는 연기력은 결코 쉽지 않다. 만만찮은 실력의 배우가 아니고서는 이러한 20대의 쓰레기 배역을 소화해내기란 결코 쉽지 않다. 다행히 그에 맞는 걸출한 인물의 배우가 있었기에 이 영화는 완성됐다고 볼 수 있다. 어찌보면 이 영화는 헤셔를 위한 영화고, 헤셔를 연기한 조셉 고든 레빗을 위한 영화이다. 그가 있기에 이 영화는 살아있고 빛난다. 그리고 그의 열연을 보는 것만으로도 혀를 내두르는 놀람과 기쁨을 맛볼 수 있다.
진정 헤셔를 미워할 수만은 없는 또 다른 이유는 거의 빙의가 된 듯한 연기를 보여준 조셉 고든 레빗의 매력 때문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연기는 거의 물을 만난 고기처럼 자유롭고 싱크로율 100%일 정도로 구분이 가지 않는다.
누렇게 쩔은 팬티와 떡진 머리로 남의 집에서 훌러덩 퍼지러대는 헤셔.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레빗의 일상이 그러해 보일 정도로 리얼하다. 역시 상 배우임은 틀림없다 .
노숙자로 쩔고 떡진 헤어스타일에, 팔뚝에 새긴 조악한 해골 문신과 때에 쩔은 흰색 삼각 팬티를 걸쳤을지언정 꽃거지 풍의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는 그를 외면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타고난 기럭지를 갖고 있는 것도 씩스 팩과 조각미남의 외모를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빙의된 그만의 개성과 매력을 발산하기에 관객은 매료된다. 인공조미료 MSG와 감미료가 첨가되지 않고, 민낯의 순수함과 터프함을 고스란히 만끽할 수 있는 귀여운, 마치 토끼 같은, 길들여지지 않은 레빗을 만날 수 있어서 즐겁고, 재미있고, 행복하다.
그는 현재 헐리우드에서 가장 잘 나가고 주목받는 연기파 배우이다. TV 영화 <스트레인저 온 마이 로드(1988)>에서 아역으로 배우의 길에 들어선 그가 우리의 기억에 각인된 것은 인기 미드 <솔로몬 가족은 외계인>에서 엉뚱한 외계인 소년으로 나오면서부터이다. 핏덩이 같은 순수함과 귀여운 매력을 발산하던 그는 <미스테리우스 스킨>, <룩 아웃> 등의 작품성있는 독립영화에 연이어 출연하면서 연기의 내공을 다진 인물이다. 그래서 그의 눈빛에서는 다양한 캐릭터를 읽을 수 있고, 다양한 배역을 출중하게 소화해내는 능력을 관객에게 선사한다. (그의 다양하고 뛰어난 연기력을 확인하시려면 비운의 배우 히스 레저와 열연한, 10대의 풋풋함을 물씬 풍기는 하이틴 로맨스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1999)>, 미국 독립영화의 상징이자 퀴어 시네마의 리더인 그렉 애러키의 대표작 <미스테리어스 스킨(2004)>, 운명적인 사랑을 꿈꾸는 순수청년을 기막히게 열연한 <500일의 썸머(2009)>, 척추암에 걸려 삭발 투혼을 부여주는 <50/50(2011)>, 킬러로 등장해 브루스 울리스와 장쾌한 SF 액션을 보여주는 <루퍼(2012)> 등을 감상하시길...)
또한 그는 각본과 연출이라는 능력까지 발휘하면서 인생절정의 30대를 구가하고 있다. 단편 <스팍스(2009)>에서 제작, 각본, 음악, 연출을 통해 영화예술적 능력을 연마하더니 급기야는 <돈 존스 어딕션(2013)>에서도 각본과 연출을 담당하면서 감독으로서도 인정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영화에 있어서 전방위적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독립영화를 통해 잔뼈가 굵고 단련되었기 때문이며, 영화에 대한 무한 사랑이 뼈 속까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영화 역시 자신이 독립영화를 통해 성장한 것에 대한 감사와 독립영화에 대한 그의 사랑과 가치에 대한 존경의 표현이자 발로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서와 문화상의 엇박자 때문에 상영을 하지는 못했지만 미국내에서는(독립영화 치고는) 흥행과 성공을 거머쥔 작품이기도 하다.
초등학생인 TJ는 뜻밖의 교통사고로 어머니를 잃는다. 아버지는 아내를 잃은 후유증으로 집 안에 박혀 패인으로 전락하고, 기력조차 없는 할머니는 아픈 몸을 이끌며 가족의 끼니를 챙겨준다. 한마디로 하루 아침에 절망의 늪에 빠진 붕괴 일보직전의 불행한 가족이다.
비빌 언덕조차 없는 TJ는 학교에서 조차 괴롭힘까지 당하는 딱한 처지이다. 외롭고 절망에 빠진 TJ에게 있어서 한가닥 의지처는 엄마의 마지막 체취가 남아있는 빨간색 사고 차량이다. 차를 내다 판 아빠를 원망하면서 매일 들르는 곳은 빨간 사고 차가 있는 중고차 가게이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 그 차를 사기 위해 노력을 한다. 엄마를 잃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랄까?
학교와 가정, 그 어디에서도 안식처를 찾지 못하는 TJ의 삶은 날로 외로워지고의 매말라간다. 그 때 한 동네에 살던 떡진 장발의 개망나니 청년 헤셔가 집안에 쳐들어오고 제 집처럼 살아간다. 황당하고, 무례하고, 난폭하며, 종잡을 수 없고, 심지어 엄마의 분신으로 생각하며 애뜻한 감정을 갖고 있던 마트 점원 니콜마저 성(性)적으로 소유해버리는 헤셔를 통해 TJ는 또다른 분노와 상처를 안게 되지만 그 속에서 자기 극복과 성장이라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어 나간다.
분노와 좌절과 우울과 슬픔의 다양한 감정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TJ. 그의 연기에 관객 역시 동화되고 이입된다. 제2의 연기파 배우 레빗이 될 가능성이 충분해 보인다.
심리학의 대상관계 이론에 따르면 유아기에 있어서 중요한 타인은 부모라고 한다. 특히 부모 중에서도 젖을 물리고 접촉을 통한 정서적 교감을 나눈 엄마는 가장 중요한 관계를 나누는 대상이자 분신이다. 이처럼 어린 시기에 있어서 엄마의 의미의 삶의 전체이자 존재의 뿌리와도 같다. 마치 TJ 처럼.
이러한 엄마가 하루 아침에 교통사고로 돌아간다면, 그것도 가족이 함께하는 행복한 순간에 , 자신의 눈 앞에서 끔직하게 돌아간다면 그 트라우마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어린 시절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그 기억이 결국은 나와 가족을 이어주는 끈이고 삶을 살아가게 해주는 탯줄임을 알기까지는 조건과 시간이 필요하다. 또한 그 조건과 시간 속에 존재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서도 우리의 삶은 건강한 모습으로 새롭게 변화할 수도 있다. 마치 헤셔처럼.
인간은 상처를 통해 성장하고 가족은 고통을 통해 성숙한다. 헤셔가 자신의 반쪽 불알을 보고 개망나니일지언정 살아가는 것처럼, 인간 말종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나마 할머니의 말벗이 되고 마지막 유언을 들어주는 것처럼 한가닥 살아갈 의미는 충분하리라!
반쪽이 사라졌다고 삶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남은 한쪽으로, 남은 사람끼리 살면 되는 것이다. 반쪽만 있어도, 아니 우리 곁에 누군가만 있어도 반쪽인 우리는 언제나 살아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과거나 미래가 아니고 헤셔가 현재 보여주고 있는 삶이다. (영화에서는 헤셔가 왜 히피가 되고, 노숙자가 되고, 개망나니가 됐는지 자세하게 보여주지 않고 있다. 희망도 꿈도 미래도 없는 이 청년 헤셔가 왜 이 모양 이 꼴로 살아가는지 관객은 알 수 없다. 감독 또한 그러한 원인을 아는 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시각이다. 단지 알 수 있는 정보는 어떤 사건으로 불알 반쪽을 잃었다는 것과 음악에 심취한 뮤지션 같아 보이는데 어떤 사건을 계기로 좌절과 절망의 늪에 빠져 자신을 파괴하는 정도쯤으로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이다.)
불알 반쪽이 없는 헤셔도 사는데 엄마 없다고, 아내 없다고 지지리 궁상으로 살아선 안된다고 헤셔는 질러댄다. 거지꼴로 살아가도 자존심을 지키며, 너무도 당당히 살아가는 헤셔처럼 TJ와 아버지도 토굴같은 집과 우울의 늪에서 나와야 한다고 씨부린다. 더이상 현실을 부정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상처와, 고통과 마주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치유는 회피가 아니라 직면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마들렌 할머니가 노환으로 돌아가자 그녀의 장례식장에서 친구가 한 말이 이 영화의 주제이지 싶다.
" 인생은 빗 속을 걷는 것과 같다. 비를 피해 숨거나 그대로 비를 맞거나..."
영화의 마지막 장면. 간밤에 폐차가 된 빨간 차를 TJ네 마당에 놓고 떠난 헤셔.
지붕에 '헤셔 왔었음'이라고 쓴 흰색 페인트 글씨가 재미있다.
TJ와 아버지 잭처럼 엄마와 아내가 죽었다고 비를 피해 집 안에 박혀 있을 것이냐, 아니면 비를 맞기 위해 밖으로 나올 것이냐? 결정적 계기는 물론 할머니의 죽음이고, 헤셔의 장군죽비같은 반쪽 불알 철학의 할(喝)이다. 헤셔는 배운 것 없고 무식해도 헤셔는 적어도 치유하는 방법을 아는 인간이다. 자상한 엄마처럼, 친절한 선생님처럼 가르쳐주지 못할지언정 정답은 알고 있는 사람이다. 무법자에 개망나니 처럼 살고, 인간 말종 같은 행동거지로 살아가지만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TJ 할머니의 말에 귀기울이고, 씨리얼을 우유에 말아줄 정도의 마음 한 켠은 내줄줄 아는 인물이 헤셔이다. TJ의 아픈 마음을 무식한 방법으로 달래줄줄도 아는 심성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모든 것을 다 갖출 수는 없지만 중요한 것만은 챙길줄 아는, 진정 중요한 게 무엇인지는 아는 헤셔이기에 우리는 그를 정녕 미워할 수가 없다.
헤셔를 통해 한가닥 희망을 품고 새롭게 일어서는 TJ 가족을 보면서 우리는 삶의 의지를 키울 수 있다. 이 영화는 그런 의미에서 개인과 가족의 상실에 대한 존재의 회복력을 일깨워주는 영화이다. 행복은 고통 속에서 다시 움트고 가족은 그 시작의 씨앗이다!
한편, 이 영화에서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니콜 역을 맡은 나탈리 포트만의 존재감일 것이다. 강열한 인상을 남기는 장면이 없기 때문이다. 그녀의 명성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는 존재감을 보여준다. 카리스마 넘치고 당찬 이미지가 있어서 그런지 나약하고 무기력한 니콜의 역에는 미스 캐스팅이지 싶다. 물론 그녀의 필모그라피에 따르는 경력과 연기력을 감안한다면 어느 배역이든 소화해내지 않을까 십기도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너무 아니다 싶다. 헤셔와TJ와의 관계 속에서 나름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이고 주제를 부각시킬 만한 캐릭터임에도 평면적인 인물로, 스쳐지나가는 조연급으로 비쳐짐은 아쉽다. 씬 스틸러는 고사하고 씬 루저의 오명을 남기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물론 이는 그녀의 의도보다는 감독의 연출력에 좌우되는 부분이라 어쩔 수 없긴 할 것이다. 배우치고 어느 누가 자신의 이미지와 경력에 먹칠을 하고 싶겠는가?
나탈리 포트만의 존재감이 너무나도 없고, 그녀 맞어? 싶을 정도로 연기도 땅을 친 영화가 이영화이리라. 하지만 실패를 통해 성장했으므로 박수받을 자격은 충분하다.
암튼 프랑스 본토에서 13세 소녀로 화려하게 데뷔한 뤽 베송의 <레옹(1994)>부터 스타워즈 에피소드 시리즈의 명장 조지 루카스, 팀 버튼(화성침공:1996), 우디 알렌(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1996), 안소니 밍겔라(콜드 마운틴:2003), 마이크 니콜스(클로저:2004), 밀로스 포만(고야의 유령:2006), 코엔 형제(사랑해, 파리:2006), 왕가위(마이 블루베리 나이츠:2007), 짐 셰리던(브라더스:2009), 대런 아로노프스키(블랙스완:2010), 이반 라이트만(친구와 연인 사이:2011) 등등의 거장들과 작업하면서 세계적인 배우로서의 명성과 입지를 굳힌 그녀가 아닌가? 더구나 <블랙스완>으로 골든 글로브와 아카데미에서 여우주연상을 휩쓸며 연기력까지 인정받은 그녀가 아닌가? (사실 그녀의 연기력의 밑바탕에는 오프 브로드웨이의 무대가 있다. <레옹>을 통해 그녀의 숨은 연기력이 발현되기 이전부터 그녀는 연극 무대에서 잔뼈가 단련되었다. 산부인과 의사인 아버지를 따라 3세 때 미국으로 이주하고, 어머니의 예술적 극성 때문에 모델로 활약하면서 연극 무대에서 기초를 다졌다. 그리고 11세 때, 2천 대 1의 경쟁을 뚫고 <레옹>의 오디션에서 마틸다 역을 따내면서 세계적 스타로의 길이 열린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하버드 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수재이고 한 자녀의 엄마이면서, 이제는 조심스그럽게 영화연출(단편 <이브(2008)>, <뉴욕 아이 러브 유(2009)>까지 시도하면서 장편 데뷔를 꿈꾸고 있는 그녀가 아닌가? 이 작품이 그녀의 필모그라피에서 오점으로 남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작품을 통해 배우와 감독의 역할에 대해서 많은 공부가 되는 텍스트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 힐링 포인트
1. 교통사고로 엄마를 잃은 TJ는 엄마의 체취를 느끼기 위해 폐차장에 있는 사고차량 속에 서 홀로 엄마를 그리워하다
잠드는 장면
2. 엄마의 사망으로 하루 아침에 붕괴된 가족의 끼니를 챙기기 위해 병든 몸의 할머니. 그 리고 가족들의 식사를 준비하고
난장판이 된 식탁을 치우며 "내가 더 할 수 있는 게 없 어!" 라며 회한과 절망으로 주름진 할머니의 팍팍한 장면
3. 헤셔가 할머니 장례식장에서 술 퍼마시며 반쪽 불알의 개똥 철학을 토해낸 뒤 TJ와 아 버지와 함께 할머니 시신이 든
관을 끌면서 할머니가 늘 원하던 가족 산책을 하는 장면
4. 폐차가 되었지만 엄마의 체취를 느끼기 위해 TJ가 항상 되찾고 싶어하던 사고차량을 헤 셔가 밤에 몰래 집 앞 마당에
놓고 사라진 마지막 장면
5. TJ 역 데빈 브로쳐의 절망과 슬픔에 젖은 눈매와 공감을 이끌어내는 연기력
* 덤으로 볼 추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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