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혜의 자연을 자랑하는 뉴질랜드(1부)
남태일(2017. 4. 26)
2017년 3월 26일 오후 4시, 인천공항에서 中國 廣洲에서 머물었다가 뉴질랜드 행 비행기를 탑승하였다. 오클랜드 할인 항공요금은 왕복 ₩75만원이고 두 달 전에 아들이 예매하였다. 한국인은 3개월 체류하면 무비자이고 중국인은 서류가 구비 되면 5년 비자도 가능하다.
이번 뉴질랜드를 가게 된 원인은 둘째 며느리 첫 출산 때문이지만 아들이 뉴질랜드 영주권을 취득하면 비즈니스를 어떤 방향으로 할지 현지 관찰하기 위해서다. 며느리의 출산 날은 4월 10일인데 우리가 출발하기 전인 3월 24일에 병원에서 조산하였다. 기이(奇异)한 것은 아시아에서 온 산부들은 85%가 뉴질랜드에서 조산을 한다고 한다. 뉴질랜드 식물이 한국에 비하여 20배의 속도로 더 빨리 성장 한다고 하는데, 혹시 식물과 인간의 그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 같다. 조산였지만 산모와 아들이 모두 건강하다고 한다.
인천에서 중국의 北方航空 비행기를 탑승했는데 비행기는 모두 만석이고 언론보도와 다르게 90%가 중국의 관광객이라는 사실이다. 중국 광주에 내려서 4시간을 기다려야만 뉴질랜드 오클랜드 가는 비행기를 탑승할 수 있다. 비행기를 탑승하는 입구 옆에 여권으로 WiㅡFi 번호를 따서 폰에 입력하면 휴대폰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
중국 광주에서 비행기 탑승시간은 중국 시간으로 밤 12시이고 뉴질랜드 오클랜드까지 비행 소요시간은 12시간이다. 생각 같아서는 아득하고 막연하지만 정작 탑승한 후 세 번의 기내식에 맥주, 위스키, 양주를 한잔씩 했더니 어슴푸레한 잠도 자고, 영화나 드라마도 마음껏 시청하여 볼 수 있어 지루한지는 몰랐다.
뉴질랜드 공항에 내려 눈에 띄는 것은 공항 업무를 담당하는 마오리족을 많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마오리족은 체격이 크고 활달해 보였고 그들의 말소리는 파란 하늘처럼 경쾌하였다. 그들의 독특한 ‘코인사’로 환영하는데 두 번은 환영의 표시이고 세 번은 당신을 남편이나 부인으로 삼기를 원한다는 의미란다. 뉴질랜드는 조용한 나라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오클랜드 공항의 소박함은 생각 밖이었다. 인천공항과 중국의 광주 공항에 비교하면 너무나 단조롭고 간소하였다. 공항을 빠져나오는데 긴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다만 음식물을 미리 신고를 하고 특별한 것만 아니면 반입할 수도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한국에서 먹다 남은 삶은 옥수수를 깜박하고 신고를 하지 않은 것이 화근이 되었다. 세관의 한국어 통역 도움을 받았지만 뉴질랜드 돈 400블 (₩36만원)의 벌금을 내고 말았다. 출구에 나왔을 때는 뉴질랜드 시간으로 오후 5시였다. 아들이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뉴질랜드의 첫 인상은 너무나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은 큰 파도가 벼랑에 부딪칠 때 사방으로 부서져 나간 은빛 비말과 하얀 물보라처럼 장관이었고 공기는 매우 맑고 시원 하였으며 습하지 않았다. 아들의 집은 오클랜드에서 차로 세 시간 달리는 거리, 뉴질랜드에서 두 번째로 큰 관광도시 로토루아시였다. 차를 타고 시내로 들어가는 길 양편에는 넓은 초록 들판이 보였고 공장 같은 것은 볼 수 없었다. 바닷가 요트 정박장에는 오클랜드가 요트의 도시라는 별칭처럼 흰색의 많은 요트들이 있었다. 내해를 이루는 오클랜드 앞바다는 매우 잔잔하였고 때로 바람이 한번 스칠 때만 작은 파도가 하얗게 바위를 살짝살짝 때리었고, 갈매들이 바다위에 낮게 떠서 한가로이 날개 짓을 하고 있었다.
오클랜드는 뉴질랜드에서 가장 큰 상업도시고 인구는 약 100만 명이다. 시내를 벗어나자 길 양옆에는 넓은 평야와 구릉지로 형성된 초원이 눈앞에 펼쳐진다. 저녁 무렵이 되자 푸른 잔디 풀잎에 이슬이 맺히기 시작하였고 강렬한 주황색 석양빛이 잔디 이슬에 반사되어 금 구슬을 뿌려 놓은 것 같이 영롱하였다. 목화 꽃 같이 굴러다니는 흰 양들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양치기개는 경계를 풀고 그늘 밑에서 누워 있었다. 멀리서 바라보면 얼룩이 젖소들의 풀 뜯는 광경도 볼 수 있었고 몽골 포 같은 하얀 집들이 초원 한가운데 드문드문 한 채씩 보이는데 사람들은 얼씬도 하지 않았다. 석양 아래 평온한 풍경과 아늑한 푸른 초원, 그리고 한가로이 풀을 뜯는 양들이 너무나 평화롭게 보였다.
뉴질랜드 시간으로 밤 9시에 아들 집에 도착했다.(뉴질랜드는 한국보다 4시간 빠르고 중국보다 5시간 더 빠르다.) 아들 집에 도착하니 출산한지 3일 된 며느리는 병원에서 퇴원하지 않았다. 저녁 메뉴는 소고기 등심구이였고 아들의 마오리족, 중국, 한국, 인도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비행기로 12시간 날아오는 만 킬로의 거리인 뉴질랜드에서 친구가 되었다는 것은 대단한 인연이 아닐 수 없었다. 인도 얘들은 고기를 먹지 않고 손으로 안주를 집었지만 누구도 개의치 않고 분위기가 활발해지자 모두 술을 많이 하였다. 술 앞에서는 민족도 구별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들이 유명한 뉴질랜드 와인을 한 잔씩 우리에게 부어 주었는데 향긋한 냄새에 맛도 좋았고 깔끔하여 연속 건배를 했더니 금방 취해 잠들어 버렸다.
이튿날, 눈을 뜨고 시계를 보니 아침 3시였고(뉴질랜드는 아침 7시) 벌써 창밖에 강렬한 햇빛이 커튼을 뚫고 환하게 비추었다. 문을 열고 나왔을 때, 짙은 푸른 하늘과 초록색의 정원과 초원, 그리고 높고 부드러운 흰 구름이 두둥실 떠있는 풍경이 두 눈에 들어왔다. 주택은 대부분 예쁜 단층집이고 멋진 가로 풍경과 전원주택이 십자수를 놓은 듯 펼쳐져 있었다. 집집마다 1000㎡씩 되는 정원은 질서정연하게 가꾼 잔디밭이고 곡식이나 채소를 심은 것은 볼 수 없었다. 단층집들의 지붕은 붉거나 주황색이고 파란하늘과 초록의 호수 색과 잘 어울렸다. 비록 초가을이지만 정원 앞의 고목나무에 무성한 푸른 잎들은 더 없이 싱싱하고 풍만하여 다치기만 하여도 초록색 진액이 흘러나올 것만 같았다. 맑고 시원한 공기를 한 모금씩 들이킬 때면 폐부를 말끔히 씻어 낸 듯한 쾌감을 느꼈다. 정말 몽환 같은 아침이었고 지구 뒤쪽에 있는 목가적인 청정의 나라 뉴질랜드에 왔음을 실감했다.
아침 식사를 마친 후 병원에 며느리와 손녀를 보러갔다. 병원 주위에는 고목나무가 울창하게 숲을 이루고 있었다. 여기는 낙엽이 가을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봄이 되면 연두색 새싹이 나오면서 누른 나뭇잎을 밀어낸다. 병원 바로 앞에는 뉴질랜드에서 두 번째로 큰 로토루아 호수가 눈에 펼쳐진다. 호수는 넓고 광활하여 정말 바다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일망무제로 펼쳐진 호수는 조용하고 잔잔했고 안정감이 있어 일상에 쌓였던 스트레스를 몽땅 쏟아 넣어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넉넉히 받아들일 것만 같았다. 병원은 매우 깨끗했으며 환자들은 거의 보이지 않고 백인, 마오리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한가로이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방문객은 낮 10시부터 12시까지 병원을 방문할 수 있고 그 외의 시간은 절대 금지되어 있었다. 며느리는 몹시 반가워했고 건강회복이 잘 된 것 같았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첫 손녀를 안는 순간 강렬한 본능적 사랑이 가슴속에서 솟구쳐 오르고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신생아의 얼굴을 바라보니 웃음꽃이 절로 피어 나왔다. 생명의 연속이고 희망의 꽃봉오리는 이유도 없이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금방 애를 낳은 산모의 점심메뉴를 보는 순간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손바닥 만하게 크게 썰어 놓은 바싹 마른 빵조각과 냉장고에서 금방 꺼낸 요구르트와 차가운 음료수뿐이었다. 그러나 다른 병실의 마오리족 산부들은 아주 맛있게 먹고 있었다. 마침 아내가 아침에 끌인 미역국과 쌀밥을 가지고 와서 며느리는 땀을 뻘뻘 흘리며 잘 먹었다.
이튿날, 아들은 출근을 하였고 내가 도시락을 며느리에게 가져다주어야 했다. 비록 한국에서 국제면허증은 바꾸어 왔지만 차 보험을 하지 않아 대중교통을 이용해야만 했다. 뉴질랜드에서는 장거리 버스와 기차, 택시와 같은 대중교통은 인구가 적어 운행편수가 적고 요금이 매우 비싸며 콜택시 같은 경우 구경하기도 십지 않았다. 콜택시는 전화로 부르는 순간부터 요금이 올라간다. 원주민들은 느긋하고 여유가 있어 버스는 정확한 시간이 있는지 의심되었다. 버스정류장에서 20분 대기하니 중형버스가 왔다. 때마침 출근 시간이기에 승객이 많아 뒤쪽으로 밀려갔다. 병원까지 두 정거장 남았을 때 차안에 승객들이 발 딛을 공간조차 없었다. 버스 안에 대부분은 여자들이었고 모두 마오리족과 島民(작은 섬나라에서 온 사람들)뿐이다. 사실 머릿수는 몇 명이 되지 않지만 마오리 여자들이 엉덩이와 아랫배가 마치 바람을 가득 넣은 타이어 주부같이 굵고 비만하여 사람들은 몇 명이 되지 않지만 허리부분은 이미 차안을 빈틈없이 꽉 채우고 있었다.
이곳 남녀의 체격을 보면 하나같이 여자들이 남자들의 체격보다 크다. 흡사 비만이라고 하지만 어찌 보면 먼 옛날 미녀의 상징인 베누스(고대 이탈리아의 여신)의 모습을 닮았는지도 모른다. 실제 마오리족 남자들은 여자들이 풍만해야 미녀로 여기는데 이것은 이미 알려진 문화 인류학적으로 多産을 상징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바로 양쪽 의자 복도에 비만한 여자 두 명이 마주 서서 얘기를 하고 있는데 엉덩이는 말할 것 없고 아랫배와 젓 가슴은 마치 물을 가득 채운 고무풍선 같이 출렁이고 있었다. 두 여인의 배와 배의 간격이 7~8㎝ 정도였고 나는 그 사이로 빠져나가야만 했다. 그 여인들도 다른 곳으로 비켜 설 공간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 정류장에서 꼭 내려야 했다. 안간힘을 쓰서 여인들의 아랫배 쪽으로 몸은 간신히 빠져 나왔는데 축 처진 젓 가슴 사이로는 머리가 지나 갈 수가 없어 몸을 쪼그리고 겨우 빠져 나왔을 때는 이마에 땀까지 솟을 정도였다. 다음 차례는 두 젊은 여인이 엉덩이를 맞대고 돌아서있는데 엉덩이는 살찌고 기름진 말 엉덩이를 갔다 붙인 것처럼 유난히 뒤로 삐져나왔다. 비대한 여성들의 엉덩이 사이로 젖 먹던 힘까지 써서 나왔을 때에는 땀이 흥건히 배였고 배가 너무 압박을 받아 아침에 먹은 밥도 소화가 되지 않고 그대로 밑으로 쏟아질 것만 같았다. 뉴질랜드는 인구가 400만 명인데 양은 5천만마리도 넘는다고 한다. 양고기를 많이 섭취해서 비만인 사람들이 많은 것인지 의심스러웠다. 이 일 이후로 뉴질랜드에서는 절대로 버스는 타지 않겠다고 결심을 하였다.
목가적이고 청정의 나라 뉴질랜드는 천혜의 자연 환경과 낮은 인구밀도로 사람이 살기에 매우 쾌적한 나라이다. 2016년까지 인구는 444만 명이고 유럽계 백인이 70%를 차지하고 원주민 마오리족은 8.8%이다. 먼 옛날, 마오리족들은 어디서 뉴질랜드로 왔는가에 대해 여러 가지 추측이 있다. 중국 사람들은 마오리족은 대만 고산족들이 후예라는데 습관, 생김새가 많이 닮았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원주민들의 전설에 의하면 마오리족들은 남태평양의 가장 아름답고 신비한 풍광의 타히티 인근 하와이키 섬에서 이중카누를 타고 해류를 따라 뉴질랜드로 왔다고 한다.
뉴질랜드사람들은 복지가 잘 되어있고 생활이 매우 안정적이었으며 외국으로부터 침략 받은 역사가 없어 특정 국가의 외국인에 대한 선입견이 없었다. 청정 자연 속에서 느긋하게 살아서인지 만사에 여유가 있어 보였고 그 속에 영국의 전통이 남아 있어 질서와 신사다운 멋도 느낄 수 있었다. 뉴질랜드는 자연관광이 주요한 산업임에도 불구하고 개발보다 보존에 힘을 쓰고 있다.
1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