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을 입력하세요.지난 번에 농지소유의 현황과 경자유전의 원칙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농민이 농지를 소유하여야 한다는 원칙에 대한 한계를 지적한 바 있다. 오늘은 그렇다면 농지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여야 할 것인가에 대해 좀 더 본질적인 이야기를 해보기로 하겠다.
▲ 전농부경연맹은 지난 3월 8일 경남 진주 한국토지주택공사 본사에서 '농지투기'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농지투기공사' 프랭카드를 걸고있다.[사진 : 진주=뉴시스]
법 제121조 제2항에서 ‘농업생산성의 제고와 농지의 합리적인 이용을 위하’는 경우에는 농지임대차나 위탁경영이 가능하다고 정하고 있다. 이는 경자유전의 원칙을 정하고 있는 제1항에 대한 예외라고 할 수 있는데 농업생산성 제고와 농지의 합리적인 이용이 가지는 의미가 단순히 생산성을 높이고 농지를 합리적으로 이용하여 농민들이 소득을 올리게 하자는 의미가 아니라 이를 통해 식량생산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식량생산의 문제에 관해서는 세계식량농업기구가 말하는 식량권과 비아캄페시나 등 국제농민단체나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등 우리나라의 농민단체가 말하는 식량주권이라는 두 가지 논의 속에서 살펴봐야 한다. 식량권은 모든 인간이 항상 충분하고 안전하며 영양면에서도 충족이 가능한 식량을 확보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식량주권도 이 식량권을 1차적인 의미로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식량주권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식량권을 넘어서서 ‘주권’으로서의 의미, 즉 결정권을 민중들이 가진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이것이 식량권과 식량주권의 결정적인 차이점이다. 특히 농업정책 수단을 선택하는 데서 토지, 물, 종자, 생물다양성 등에 대한 권리가 생산자에게 있다는 것이 식량주권의 핵심이다. 그 가운데 토지 즉, 농업을 위한 토지로서의 농지에 대해 어떤 정책을 선택할 것인가, 헌법에서 말하는 ‘농업생산성 제고와 농지의 합리적인 이용’과 어떻게 연관지을 것인가가 농지법에서 농지문제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를 정하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
식량주권의 기본인 식량의 안정적 생산과 공급을 위해서는 일정한 면적의 농지를 보유해야 한다. ‘2018~2022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발전계획’에 의하면, 정부는 오는 2022년까지 식량자급률 수준을 55.4% 수준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발표하였다. 농촌경제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에 식량자급률이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농지는 쌀 자급률을 위해서는 67만 4000헥타르가 필요하고 전체품목의 식량자급률 달성을 위해서는 162만 6000헥타르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전체경지면적은 2019년 기준 158만헥타르이다. 이미 국가가 정하고 있는 식량자급률, 100%도 아닌 55.4%에 필요한 농지의 한계선이 무너진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지 감소추세는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더 이상 경자유전을 주장하는 것만으로 식량생산을 위한 최소한의 농지보전이 불가능하다. 식량주권을 위해서는 국민에게 필요한 식량생산을 위한 계획이 국가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품목별 필요량 및 이를 생산하는데 필요한 농지 등을 계획해서 이를 통해 필요농지를 보전하기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 즉, 농지를 누가 소유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농지를 농지로 보전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의 문제에 봉착하였다.
농지가 줄어드는 이유는 간단하다. 농지를 농지가 아닌 다른 용도로 쓰기 때문이다. 농식품부의 조사에 따르면 농지전용이 주로 이루어지는 것은 공용시설, 주택, 학교, 광공업시설 및 농어업용시설(농업생산에 직・간접적으로 필요한 시설은 농지전용에 포함하지 않는다)의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전체 전용면적의 1/3 가까이가 공용시설, 공공용시설, 및 공익시설으로 전용되었고 주택을 위해 17% 이상이 전용되었다.
왜 토지의 이용에서 농지전용이 이렇게 많이 이루어지는가. 이는 전 국토의 약 2/3가 임야인 우리나라의 현실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인구가 증가하고 산업이 발전하면서 이를 위한 땅의 면적도 절대적으로 증가하는 것은 당연하다. 한정된 땅에서 절대적인 면적이 필요할 때 이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가 바로 국토의 합리적 이용의 문제이다. 따라서 임야를 개발하는 것보다는 농지를 개발하는 것이 환경이나 도시개발수요를 충족시키는데 더 적절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인식은 그대로 법에 적용되었다. 문제는 농지전용을 위한 절차적인 제도는 농지법에서 정하고 있지만 농지전용이 가능하게 만드는 사업에 관한 것은 농지법이 아니라 국토의 이용, 개발 및 보전을 목적으로 하는 법인 ‘국토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이하 국토계획법)’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국토계획법은 비도시지역에도 도시계획법에 의한 도시계획기법을 도입할 수 있도록 법을 제정함으로써 국토의 계획적·체계적인 이용을 통한 난개발의 방지와 환경친화적인 국토이용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제정한 법으로 국토이용에서의 기준이 바로 도시라는 것을 명확히 했다. 도시를 위해 농지를 희생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법인 셈이다. 국토계획법은 농지 가운데 약 50%만을 농림지역으로 보호하지만 그마저도 도시계획의 필요에 따라서는 해제가 가능하게 정해놓았다. 결국 식량주권을 위해 필요농지가 절대적으로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법제도로는 이를 확보할 수가 없다. 이게 현실이다.
이제 다시 농지문제로 돌아가보자.
농지문제는 농지의 절대량을 보전해야 한다는 것과 그 농지를 누가 소유하도록 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로 압축된다. 현재의 농지법은 일정 정도 해결방안을 시행하고 있지만 이 두 가지 모두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즉, 농지의 타용도로의 전용에 대해서도 개발논리에 밀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고 농지 소유도 재산권이라는 이유로 비농업인의 농지소유를 효과적으로 제한하지도 못하고 있다. 결국 이 두 가지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농지법 개정을 이야기하면서 경자유전의 원칙을 말하면 꼭 걸리는 것이 재산권 침해 문제이다. 내 땅이니 내 마음대로라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정당한 보상을 통해 토지수용을 하면 된다. 농지법 개정을 논의할 때 농지문제를 재산권 침해 여부를 기준으로 할 것이 아니라 헌법 제23조 제2항에 따른 정당한 보상을 통한 재산권 행사제한의 법리를 적용하여 공용수용할 수 있는가의 문제를 논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공용수용이란 법률에 따라 특정한 공익사업을 위해 타인의 재산권을 강제로 취득하는 것인데 지금까지 주로 택지개발, 국민주택건설, 도시환경정비, 개발촉진지구개발, 유통단지개발 등의 사업에 적용되어왔다. 즉 도시계획은 일반적으로 공공복리에 해당하기 때문에 공용수용을 정부의 정당한 통치권으로 인정한다. 이를 농지계획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중대한 공공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농지를 보호하는 것이 가능한가와 종합적으로 세심하게 계획되어 농지소유자가 다른 용도가 아닌 농지로 사용하기 위한 수용을 받아들일 만한가라는 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공익사업을 위해서는 공용토지의 확보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토지수용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래서 이를 위해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이하 토지보상법)’을 2003년 제정하여 이 법에 의해 토지의 공용수용을 실행하고 있다.
이게 가능할까?
토지의 공용수용의 기준은 공공성과 필요성, 비례성이다. 첫째, 농지의 확보는 이 법에 따른 중대한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가? 농지법 제3조는 제1항은 “농지는 국민에게 식량을 공급하고 국토 환경을 보전하는 데에 필요한 기반이며 농업과 국민경제의 조화로운 발전에 영향을 미치는 한정된 귀중한 자원이므로 소중히 보전되어야 하고 공공복리에 적합하게 관리되어야 하며, 농지에 관한 권리의 행사에는 필요한 제한과 의무가 따른다”라고 정하고 있다. 즉, 공공의 이익에 따라 관리되어야 한다고 정함으로써 농지의 공공성을 인정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헌법재판소도 토지의 공익성 가운데 특히 식량생산을 위한 농지에 대한 공익성을 인정한바 있다.
그렇다면 둘째, 농지의 확보는 필요한가? 이미 식량생산을 위한 농지의 절대적인 면적이 부족하다는 것, 농지는 그 특수성으로 인하여 다른 용도로 전용되고 나면 되돌리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UN인권선언을 비롯한 각종 국제조약 등에서 여러 차례 확인된 바와 같이 식량문제는 국가 안보에 준하는 문제로 취급된다. 농지법도 제3조 제1항에서 농지에 관한 권리의 행사에는 필요한 제한과 의무가 따른다고 하여 재산권 행사의 제한에 대한 필요성을 인정하였다. 문제는 지금까지 농지에 재산권의 행사와 제한이 주로 농지를 다른 용도로 이용하기 위한 경우에 주로 적용되어왔다는 것이다. 그 결과가 절대적인 농지의 부족이고, 그로 인한 식량생산의 위기이다. 즉, 식량생산을 위해서는 농지를 농지로 유지해야 한다는 점, 대체할 수 없는 가치라는 점에서 필요성의 충족한다.
마지막으로 비례성이란 공용수용으로 실현되는 이익과 그로 인한 불이익 사이의 비례관계를 의미한다. 공익과 사익간의 문제는 대상농지가 소유자의 생활이나 생업에 직접 이용되는가, 아니면 재산증식을 위해 소유하는 것인가에 따라 공익의 우선하는가를 판단할 수 있다. 농사를 짓지 않고 소유만 하고 있는 경우는 당연히 공익이 우선이다. 공익과 공익간의 비교도 마찬가지이다. 농지를 경작에 이용해서 얻는 공익과 다른 용도로 전용해서 얻는 공익을 비교해 보자.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사실상 다른 용도로 전용하는 것을 공익사업이라 하고 농지를 농지로 유지하는 것은 개인의 재산권으로 판단하여 이를 공익적 관점에서 비교하지 않았다. 그러나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개최된 UN환경개발회의(United Nations Conference on Environment and Development)에서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제안된 농업의 다원적 기능이 EU와 OECD, DDA에서 채택되면서 농업은 단순히 식량생산을 넘어서는 가치를 가지게 되었다. 농업의 다원적 기능은 자연경관, 토지보호, 재생가능한 자원의 지속가능한 관리, 생물다양성 보전, 농촌의 사회경제적 삶 등의 기능을 의미한다. 이러한 농업의 다원적 기능은 다른 어떤 개발사업에 비추어 보아도 형량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토지보상법 제19조 제2항은 ‘공익사업에 수용되거나 사용되고 있는 토지 등은 특별히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다른 공익사업을 위하여 수용하거나 사용할 수 없다’라고 규정함으로써 공익사업간에는 더큰 공익이 있어야 수용이 가능하다. 결국 농지를 다른 용도가 아닌 농지로 계속 사옹하기 위하여 공용수용을 하는 것은 어떤 형량으로도 가능하다 할 것이다.
자, 이제 결론이다.
지금 있는 농지를 포함해서 식량자급률을 위해 필요한 농지를 다른 용도로 바꾸지 못하도록 농지를 아예 국가가 수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농지법에서 농지는 투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농지는 부동산투자의 대상으로 광고되거나 홍보되고 그에 따라 거래된다. 그리고 이런 투자라는 이름의 투기는 새로운 정부 개발사업이 발표될 때마다 강화된다. LH사태를 봐라. 이 악순환이 오늘날 농지문제의 핵심이다.
농지의 본질은 식량주권을 실현할 수 있는가에 있고 이를 실현하는 데는 절대량의 농지가 필요하다. 이를 농민 개개인이 소유하도록 하는 것은 몇 년 내지는 몇 십년 내에 또다시 비농민의 농지소유의 문제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결론은 이미 나와 있다. 다만 입으로 뱉는 것을 주저할 뿐. 땅을 국유화하는 것이 모든 땅문제의 해결방안이지만 그것보다 시급한 것이 농지만큼은 공용수용을 통해 국유화하고 그 땅에 무엇을 얼마나 심을 것인가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그에 맞춰 농민들이 무료에 가까운 비용으로 빌려 그 계획에 맞게 농사짓도록 하고 이를 국가가 수매하면 식량자급률도 높이고 말썽 많은 농민수당문제도 쉽게 해결할 수 있다. 농지는 다 국가가 가지고 있으니 농사도 짓지 않을 거면서 누가 농지를 빌리겠나. 농지를 빌린 사람은 다 농민이니 농민수당이건 농민기본소득이건 주면 간단하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농업의 공공성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