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가방
양효숙
비둘기낭 캠핑장에 텐트를 쳤다. 새알 두 개를 품은 둥지가 콘센트 꽂이함에 숨어있다. 텐트 세 곳이 들썩인다. 임신 6주의 초음파 사진이 찍히듯 새알을 찍어 저장한다.
하룻밤 자려고 벌려놓은 물건들이 많다. 가방에서 나와 가방으로 들어가고 집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간다. 가방이란 글자를 열면 집과 방이 보인다. 집을 부르는 가(家)와 방의 결합이 그럴 듯하다.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는 말처럼 갖다 붙이고 말하기 나름이다. 언어유희에 철학적 사유와 재미를 곁들인다. 제 몸 어딘가에 집을 지고 다니는 동물들도 살피면서.
몸도 하나의 집처럼 지어졌겠지. 몸의 집인 몸집과 살의 집인 살집마저 좋다는 말을 들으며 제 몸 건사하기 바쁘다. 생애 주기에 맞춰 건강검진 받느라 속사정을 알아보고 알아주면서 알알이 맺히는 게 있다. 나이 드니 모든 게 의자로 보인다는 시에 공감하면서 시를 짓듯 나만의 집을 짓는다. 나만의 글 주머니를 차고 다니며 길을 헤매다보면 그럴듯한 수필집 하나 완성되겠지.
몸속에 낭이라는 이름을 가진 장기들이 주머니째 매달렸다. 담낭의 낭이 그렇고 자궁의 궁, 씨망태의 망태가 서로 의미망을 형성한다. 쇠꼴을 베러 망태를 메고 다녔던 할매는 동생들의 거시기를 씨망태라 불렀다. 씨를 담은 망태라니. 엄마를 묶어두려는 듯 지집년이라 불러댔다. 누군가의 집이 돼 버릴 엄마의 가출을 막으려고 주문이라도 걸어두듯. 가출과 출가가 어디 별개던가. 엎어치기 매치기지. 그 흔한 가방마저 없어서 보따리를 쌌던 엄마에게 매달리기보다는 그 보따리에 매달려 바동거렸다. 어린 마음에도 보따리를 뺏으면 어쩔 수없이 따라오기 마련이라고 믿은 모양이다.
여자에게만 자궁이 있겠지. 그럴듯한 상상의 여지를 갖고 자궁 들여다보기를 한다. 여자들의 치마 주위를 성역처럼 돌며 남자들이 관심을 보인다. 빈 자궁이 빈집처럼 늘었다. 아기집에 아기가 없는데 그곳에서 나온 남자들이 가방을 선물하며 유혹한다. 판도라의 상자처럼 결코 열어서는 안 될 가방도 있겠지.
가방끈의 길이도 관심사다. 배움에 대한 애착이 빈 자궁을 채운다. 집 밖을 오가던 여자들이 자기만의 뿔을 갖고 다닌다.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고 채집하기 바쁘다. 생명을 품고 싶은 자궁이 자꾸만 말을 건네고 꿈을 담고 싶은 가방이 잃어버린 꿈에 대해 이야기한다.
공항은 이런저런 가방들로 북적인다. 밀고 당기는 소리 너머에 면세점이 있다. 또다시 가방점 앞이다. 서성이는 내게 가방이 말을 건넨다. 어느 계절이나 장소와도 어우러지고 옷이나 상황과도 무난할 것이라고. 명품 가방은 뭔가 다르고 다른 사람들이 먼저 알아봐 줄 것이라며.
뭔가 다른 세계를 품었을 듯한 가방을 품었다. 비 오는 날 젖지 않게 하려고 몸집이 가방을 싸고돈다. “우리 애기, 비 맞았어요” 코맹맹이 소리로 가방을 닦아주며 안 하던 꼴값도 떨어본다. 가방을 사용하는 건지 키우는 건지 그야말로 헷갈린다. 주객이 전도돼 가방주인이 가방에 이끌려 다니는 경우라니. 짝퉁 가방을 들고 다니면 인생마저도 짝퉁 인생으로 변한다고 하니 새삼 가방의 힘이 무섭다.
가방 안에도 은밀한 곳이 있어 여자의 마법도구를 숨겨준다. 담아서는 안 되는 것과 담아야 할 것에 대한 잔소리마저 담은 채. 초딩 아들과 이따금씩 가방을 바꿔 메볼 때가 있다. 서로 다른 삶의 무게감을 느껴보기 위하여.
남자의 차와 여자의 가방이 어우러져 그럴듯한 속도감을 낸다. 여자의 방이 늘어나고 여자의 숫자만큼이나 가방도 다양하다. 자궁을 본떠서 만들었다는 여(女)를 가만히 들여다볼 일이다. 여자의 마음을 알아야 돈이 보이고 미래마저 열린다. 그녀들의 가방을 디자인하다 보면 그녀만의 이야기 주머니를 달아줄 수 있다. 이런 젠장, 된장녀의 가방만 뒤지지 말길.
─반년간지 『시에티카』 2014년 · 하반기 제11호
양효숙
전남 구례 출생. 2010년 『시에』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