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을 이기는 새 힘 (사 40:27-31)
27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28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29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30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이 시간에 “절망을 이기는 새 힘”이라는 제목입니다. 덴마크의 실존주의 철학자요 신학자인 키에르케고르는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질병이다. 자기의 내부에 존재하는 이 질병은 영원한 죽음이며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것이다.”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그는 절망을 영혼의 질병으로 보았습니다. 영혼의 질병은 죄입니다. 혹시 마음에 절망이 있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하여 절망의 병을 깨끗하게 치료 받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습니다. 하나님을 멀리하고 우상을 섬긴 결과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가 앗수르와 바벨론에 각각 멸망해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들은 바벨론에서 포로생활하면서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기도했지만 해방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상황은 더욱 어둡기만 했습니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절망에 빠졌습니다. 그러한 그들에게 선지자 이사야는 소망의 메시지를 선포했습니다.
어떻게 절망의 포로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요?
1. 현실에 집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27절에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이 말은 오랜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신에 찬 불평입니다. ‘기도해도 듣지도 않으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멀리 떠나시고 버리신 것 같다.’ 그들은 현실만 바라보고 탄식했습니다.
현실을 바라보면 안 됩니다. 모세도 호렙산 가시덤불 불꽃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지만 시작하자마자 어려움을 당합니다. 강퍅한 바로왕도 그렇고, 조금 어렵다고 돌아서는 자기 백성들의 불신도 그렇지만, 더 문제는 자신의 무능함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입이 둔한 자이오니 바로가 어찌 나의 말을 들으리이까”(출6:30)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이 아무리 악하다 해도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요일4:4에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했고, 막10:27에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하셨습니다. 시62:5-6에도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라 했습니다.
심리학자 맥스웰 말프는 사람의 95%는 열등감을 느끼고 있다고 합니다. 독일의 란게이이히바움이라는 사람이 천재 78명을 조사해보았더니 그중 83%가 육체적, 정신적, 가족관계에서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소크라테스, 잔다크, 미켈란젤로, 루터, 파스칼, 뉴튼, 루소, 괴테, 하이네, 바그너, 비스마르크, 릴케 등 모두 약점이 있었습니다. 시인 바이런은 기형아였고, 줄리어스 시저는 간질병 환자였고, 베토벤은 청각장애자였고, 나폴레옹(155cm)은 키가 작았습니다. 토스카니니는 눈이 안 좋았고, 모차르트는 폐병환자, 루스벨트는 소아마비였습니다.
만약 이들이 자기를 바라보았다면 절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기 때문에 더 노력했고 더 하나님을 믿고 더 부르짖었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바람을 보고 바다로 빠져 들어갔다고 했습니다. 자기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과 그 말씀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아야 합니다.
28-29절에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하나님을 알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알되 나와 관련하여 아시기 바랍니다. 그냥 하나님이 아니라 나의 하나님, 그냥 아버지가 아니라 나의 아버지, 그냥 능력자가 아니라 나의 능력자, 그냥 인도자가 아니라 나의 인도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육신의 부모보다 더 사랑이 많고 더 원하시는 우리 아버지십니다.
마6:31-33에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복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방인들처럼 손이 발이 되도록 비는 그런 비굴하고 비참한 자녀가 되길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럼에도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무슨 장애물이 있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천국의 영역 안에 살고 있지는 않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군사적 용어로 보급이라고 합니다. 보급이 이루어지려면 보급로를 적에게 빼앗기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적 상태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그의 나라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막힘이 있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사59:1-2에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했습니다. 이 문제 해결이 그의 의를 구하는 입니다.
단 10장을 보면 다니엘이 금식기도하며 응답을 구할 때 결심하던 그 첫날 응답을 하셨지만 “그런데 바사 왕국의 군주가 이십일 일 동안 나를 막았으므로 내가 거기 바사 왕국의 왕들과 함께 머물러 있더니 가장 높은 군주 중 하나인 미가엘이 와서 나를 도와주므로 이제 내가 마지막 날에 네 백성이 당할 일을 네게 깨닫게 하러 왔노라”(12-14절). 했습니다.
천군장 미가엘이 도왔다는 것은 우리 입장에서 보면 강력한 기도를 가리킵니다. 응답은 기도 시작과 동시에 내렸지만 사탄의 세력들이 막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강력한 기도가 필요합니다. 은혜 가운데 있을 때는 생각만 해도 이루어지지만 사탄의 방해가 심할 때는 강력한 기도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아버지시기에 기도할 때 혹은 기도하기 전에 벌써 응답을 주십니다.
그래서 막11:22-24에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그러면서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25절에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막힌 것이 없어야 한단 말씀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구할 때 회개가 가장 중요합니다.
3. 성령의 능력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30-31절에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여기 새 힘은 성령의 능력입니다. 성령은 다이나마이트처럼 엄청난 힘이 있습니다. 이 힘을 앙망하는 자에게 주십니다.
'앙망'이란 히브리어로 '카바'인데 ‘간절히 바라보다, 참을성 있게 기다리다, 함께 묶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상을 얼마나 갈망하면 생각 속에서 그 대상을 나와 묶겠습니까? 그렇지 않고 우리 마음이 다른 것과 묶여 있을 때 능력을 잃어버립니다. 죄는 물론 죄가 아니더라도 지나치게 심취하면 하나님을 잃어버려요.
13세기에 신학대전을 저술한 '토마스 아퀴나스'는 평생 예수를 증거하는 글을 썼습니다. 어느 날 노년의 아퀴나스가 교회 나와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나에 대해서 잘도 글을 썼구나, 너는 무엇을 원하느냐?' 그 말에 아퀴나스는 '나에게는 아무 것도 필요 없습니다, 나에게는 오직 당신뿐입니다'하고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21세기는 하나님의 약속보다, 하나님의 능력보다는 정신분석학, 상담심리학에 더 공감하는 세상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보다 정보의 기술의 통치가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물질의 영향력이 커가고 있습니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우니까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을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곧 무너지고 마는 모래 위의 집과 같습니다.
비행기 사고가 가장 많이 나는 때는 비행기가 뜰 때와 착륙할 때라고 합니다. 조종사들은 마의 11분이라 하여 항공기 이륙 3분, 착륙 8분 전이 가장 위험하다고 합니다. 실제 항공 사고의 74%가 이 때 발생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비행기가 지상에서 이륙할 때 연료를 가장 많이 소비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되 하늘에 속한 사람이 되려면 더 힘써 섬겨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직도 죄악과 절망과 슬픔 가운데 있습니까? 세상은 우리에게 소망을 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현실에 집착하지 말고 전능하시고 위대하시고 좋으신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소망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몸과 마음을 온전히 드려 하나님을 섬기므로 은혜의 충만함을 받아 절망을 털고 독수리처럼 하늘 높이 비상하는 가장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