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장을 맡아 막판 3연승으로 한국의 역전 우승을 결정짓고 상하이에서 귀국하는 이창호
9단을 환영하기 위해 많은 팬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공항까지 마중 나왔다. 2010년 3월의
풍경이다.
농심신라면배 대표팀에 대한 소고(小考)
국가대표팀이라면
최선의 선수 구성 필요
"모름지기 국가대항전이라면 베스트
전력을 구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모두에게 대표 기회를 주는 것도 나름대로 합리적이다."
제20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의 베이징 1차전에서 불과 세 판을 치른 가운데 한국
대표 2명이 탈락하자 팬들은 격앙된 목소리를 냈다. 대표 선발 방식을 지적하는 댓글들이 주를 이뤘다.
한중일에서 5명씩의 대표 선수가 팀을 이뤄 패권을 다투는 농심신라면배는 '바둑 삼국지'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반상의
국가대항전. 국가 대결로 시행 중인 바둑의 단체전은 여자대회를 제외하고는 현재 농심신라면배가 유일하다.
농심신라면배의 한국 대표는 랭킹시드로 1명, 선발전으로 3명, 그리고 선발전 탈락자 중에서 1명을 와일드카드로
구성하는 시스템. 예전에는 선발전으로 4명을, 와일드카드로 1명을 뽑았으나 전력 강화 차원에서 17회 때 랭킹시드를 도입해 톱랭커에게
자동출전권을 부여했다.
▲ 태극마크의 무게감은 상당해서 개인전 같으면 진작에 패배를 인정했을 바둑도 좀처럼
던지지 못하게 만든다. 지난 12회 대회에서 선봉을 자청해 2승 후 패배를 당한 이세돌 9단은 후배 선수들에게는 "미안하다"는 말을, 김인
단장에게는 "죄송합니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또 강자 간의 초반 충돌을
막기 위해 랭킹 상위 16명을 조별 분산배치하는 기존의 틀을 유지하면서 19회부터는 전기 대표와 랭킹 상위 2명에게는 16강 시드를 주는 장치를
마련했다.
3개조로 나누어 단판 토너먼트로 각조 1위가 차지하는 태극마크
경쟁은 평균 70대 1을 웃도는 경쟁률을 보인다. 최대 7연승을 필요로 하는 가시밭길의 연속이다. 일반기전에서 7연승이면 우승을 차지할 수 있는
승수. 각조마다 타이틀전을 방불케 할 만큼 치열함의 강도가 높다.
첩첩산중의
레이스를 통과한 대표들은 태극마크를 달기에 당당한 얼굴들이다. 이들에게 화살을 보내는 팬들은 거의 없다. 많은 팬들이 선발전 방식을
꼬집는다.
축구도 야구도 그렇듯이 국가대항전에서 이기는 경기를 보고 싶어하는
바둑팬들은 베스트 멤버를 희망한다. 그래서 누구도 이변의 희생양이 될 수 있는 일회성의 단판 토너먼트, 전체 기사가 참가하는 방식에 불만을
표출한다. 모두를 충족시킬 수 없지만 있어야 할 얼굴들이 보이지 않는 대표팀의 라인업이라는 소리가 매년 나온다.
통합예선이 없는 세계대회(개인전)는 초청전 형식으로 주최측에서 국가별
쿼터를 부여한다. 한국 대표는 대개 랭킹시드와 국가대표 시드, 그리고 선발전으로 구성한다. 선발전 참가 자격은 엄격하다. 선발 인원의 4배수로
국한시켜 최상위 랭커들에게만 기회를 준다.
여자기사들의 국가대항전인 황룡사배와
천태산배도 이 같은 틀을 유지하고 있고, 개인전으로 치르는 여자세계대회인 오청원배와 궁륭산병성배도 다르지 않다.
한국기원 주최의 농심신라면배가 시드를 1명으로 한정시키고, 전체 예선전을 벌이는
데에는 모든 기사가 참가할 수 있는 전통의 기전들이 사라진 현실에서 선발전 자체가 하나의 국내기전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200여명이 벌이는 선발전(예선전)은 볼거리도 풍부하고 재미도 있다. 선발전 승수에
따라 대국료도 차등 지급된다. 다만 국내 최대기전인 KB바둑리그는 선발전을 두지 않고 있어 비교된다. 물론 모든 대회가 획일화될 수는 없고, 또
천편일률적인 방식은 흥미를 떨어뜨린다.
한편 중국은 이번 대회에 현역 세계챔프
2명(커제와 구쯔하오), 전기 팀내 최다승 1명(당이페이), 선발전 2명(판팅위와 스웨)로 구성했다. 중국의 선발전은 랭킹 상위자들이 경쟁하는
시스템. 선수층이 두터워서 누가 선발되든 전력 차이는 크지 않다.
▲ 지난대회 최종국 장면. 김지석 9단(왼쪽)이 중국 1위 커제 9단에게 역전승을
거두고 5년 만의 한국 우승을 결정했다.
농심신라면배는 초창기에는
1~6회 대회를 연속 제패한 한국의 텃발이나 다름없었다. 그 후에도 단체전 강국의 명성은 이어져 14회 때까지 11차례를 우승했다. 이 같은
독주는 15회 때부터 중국에 4연속 우승을 내주면서 그동안의 아성에 금이 갔다.
지난대회에서 신민준의 눈부신 선봉 6연승과 김지석의 빛나는 마무리 2연승으로 5년 만에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다음에
맞이한 이번 대회이다. 예전에는 '수호신' 이창호의 막강한 힘이 있었고 전기 대회에서는 신민준이라는 뉴스타가 탄생했다.
네 판을 둔 베이징 1차전은 중국의 판팅위 9단이 3연승을 거둔 가운데 11월
23일부터 부산에서 속행되는 2차전으로 승부를 이어가게 됐다. 남은 기사는 한국과 일본이 각 3명, 중국이 5명. 전원 세계대회 우승 경력자들로
구성된 중국을 상대로 한국이 역전 우승을 이루기 위해서는 영웅의 탄생을 필요로 한다.
모두에게 기회를 주느냐, 베스트 전력이 먼저이냐는 해묵은 논쟁이다. 변치 않는 진리는 선수는 경기에 최선을 다해야
하고, 국가대표팀은 선수 구성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