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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5회> 박경자 권사/제천교회
1980년 서른여덟 살이 되던 해, 저의 기도는 언제나 “하나님, 제가 사정이 나아지면 그때 다시 교회에 나가겠습니다.”로 시작했습니다. 강원도 태백에 살던 저는 서른 즈음에 주변 사람들의 권유를 받아 장로교회에 다닌 이래로 주일예배는 물론 새벽예배 한 번 빠진 적이 없었습니다. 냇가에서 빨래할 때도 ‘더러운 빨래가 희어지듯 저의 죄도 깨끗이 씻어주시옵소서’ 하며 기도하던 저였는데, 서른여덟에 남편을 잃고 혼자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었습니다. 어린 두 아이를 키우려니 평일은 물론 주말까지 식당에서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주일에 교회를 가지 못하는 것이 몹시 안타까웠지만, 조금만 더 형편이 나아지면 꼭 교회에 다시 나가겠다는 마음으로 열심을 다해 일했습니다.
몇 년 후, 저와 아이들은 기역자(ㄱ)로 된 마당 양 끝에 집이 한 채씩 있고, 가운데 지점에 공동 수도가 있는 독특한 구조의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아침마다 쌀을 씻으러 공동 수도에 가면 이웃집 사람도 똑같이 쌀을 씻으러 오는 바람에 금세 안면을 트고 반갑게 인사하는 사이가 됐습니다. 이웃에 살던 그분은 이순희 권사님(現 김천교회)이었는데, 마주칠 때마다 한마디씩 하시는 이야기가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육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 ‘생명물을 바르면 시신이 아름답게 피어난다.’, ‘마음과 생각으로도 죄를 지으면 하나님 앞에 갈 수 없다.’
나름 열심히 교회를 다녔다고 자부했는데 처음 들어보는 말에 저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특히나 생각으로도 죄를 짓지 않아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참 인상 깊었는데, 전에 다니던 장로교회 목사님이 예배당 문 안에만 오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했던 것과 너무 달랐기 때문입니다. 궁금증이 생긴 저는 권사님께 어디 교회에 다니는지 물었습니다. 권사님은 우리 교회에는 십자가가 아닌 비둘기 상이 세워져 있는 곳이라 하였고, 저는 그 교회에 꼭 한번 가보고 싶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하여 1983년 저는 처음으로 태백 천부교회에 가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간 첫날, 예배실에 앉아 ‘하나님, 저 같은 죄인을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하며 기도를 드리는데 왈칵 눈물이 쏟아지는 것이었습니다. 예전에 장로교회 다닐 때는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걷잡을 수 없이 흐르는 눈물이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안 우는데 저 혼자 우는 것 같아 창피한 마음에 억지로 참아보려 했으나 도무지 참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더니 그 전에 지은 죄가 영화필름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어렸을 때 잘 익어가는 남의 집 옥수수가 샘이 나서 겉껍질을 까놓아 영글지 못하게 만든 것, 친구들과 소꿉놀이하며 이모의 물건을 마음대로 사용하고 시치미 뗀 것 등 별의별 기억이 모두 떠올랐습니다. 그전까지는 기억나지도 않았고, 미처 죄라고 생각지 못한 부분까지 하나님 앞에는 더럽고 추한 죄라는 것을 깨달으니 ‘하나님 용서해주세요.’ 하고 머리 숙여 기도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그날 예배를 마치고 나서도 하루 종일 울었습니다. 교회에 가느라 평소보다 늦게 식당에 출근해서도 계속 눈물을 흘리니 주방 아주머니가 무슨 일이 있냐고 물으셨지만, 저는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서요.”라고 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일 예배를 드린 바로 다음 날부터 저는 태백 천부교회로 새벽예배를 다녔는데, 꾸준히 새벽예배에 나오는 저를 기특하게 여기셨는지 관장님께서는 예배가 끝나면 천부교의 교리도 자세히 설명해주시고, 축복받은 생명물도 한 컵씩 주시며 무척 친절히 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하나님께 축복받으러 기장신앙촌에 가자는 관장님의 연락을 받고, 식당에 하루 휴가를 내고 기장으로 향했습니다.
기장신앙촌에 도착해 축복을 받으러 간 곳은 지금의 소예배실로 이미 많은 사람들이 먼저 와서 예배실 밖까지 줄을 서 있었습니다. 줄이 조금씩 줄어들며 예배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단상 쪽에 계신 분이 ‘쉭쉭’ 하고 사람들을 향해 축복하시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저분이 하나님이시니 자세히 봐두라는 관장님의 말을 듣고 다시 하나님 쪽을 바라보는데 어디선가 진한 향기가 나는 것이었습니다. 그 향기는 백합꽃 냄새 같기도 하고, 산뜻한 과일향 같기도 했는데 여러 가지로 향이 바뀌면서 맡아졌습니다. 분명한 것은 세상에서는 맡아보지 못한 너무도 좋은 향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향취 은혜인가?’하고 생각하는 찰나, 하나님께서 제 쪽을 향해 쉭! 하고 축복을 해주셨습니다.
그러자 가슴에 불덩이 같은 것이 확 닿으면서 몸이 타는 듯 뜨거웠습니다. 몸 전체에서 불이 나는 것 같고, 배 속까지 뜨거워서 옷에 불이 붙었나 싶어 확인해보니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더니 소털 태우는 것처럼 지독한 냄새가 못 견디게 진동해서 관장님께 어찌 된 일인지 묻자 그것은 죄가 타는 냄새라 하셨습니다. 저는 제가 하나님께 은혜를 받았다는 사실이 신기하다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신앙촌 전체가 향기로 뒤덮인 것 같이 강하게 진동했던 향취와
생명물로 환하게 피어난 아버지 모습 보며
변함없는 은혜로 함께해 주시는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 기도 드려
확실한 은혜를 체험하고 나니 앞으로는 신앙촌과 관련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하던 식당을 그만두고 신앙촌 소비조합이 되었습니다. 처음 해보는 일이고, 단골 고객 하나 없었지만 신앙촌 제품을 판매한다는 설렘을 안고 인기 품목이었던 옷, 속옷, 양말, 담요, 간장 등을 한가득 가지고 나왔습니다. 다행히도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신앙촌이라고 말하면 반색하며 나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저보다 신앙촌 제품을 먼저 알고 애용해왔던 고객들이었습니다. 고객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제품을 홍보하고 판매하며 느끼는 보람과 기쁨에 무척 행복했습니다. 또 재미있었던 것은 홍보 겸 신앙촌에서 새로 나온 옷을 입고 가면 고객들이 꼭 그 옷을 사고 싶어 하는 것이었습니다. 다 팔아서 없다고 하면 입고 있는 것이라도 벗어달라고 떼를 쓰는 고객도 있어서 한바탕 웃기도 했습니다.
어떤 날은 아무리 돌아다녀도 판매가 안 되는 날이 있었습니다. 지칠 법도 했지만 포기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끝까지 홍보하느라 무척 애를 썼는데, 어느 순간 진한 향취가 코에 확 맡아지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낙심하지 말라고 용기를 주신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날 마지막에 정말 많은 물건을 판매하게 되어서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렸습니다.
그즈음 하나님께서는 매주 소비조합원들에게 축복을 해주셨습니다. 당시 저는 갑상샘에 문제가 생겨 목에 주먹만 한 혹이 있었습니다. 더운 날에도 목까지 올라오는 티를 입을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던 저는 병원에서 수술 날짜를 받아 기다리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꾸준히 안찰을 받고, 축복해 주신 크림을 매일 목에 발랐더니 어느새 혹이 사라져 있었습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 혹이 없어져 버린 것에 놀라서 병원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도 갑상샘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참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또 하루는 줄을 서서 안수를 받는 데 그날따라 하나님께서 평소보다 연세가 든 모습으로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속으로 ‘오늘따라 할아버지 같아 보이신다.’ 하고 생각했는데 하나님께서 저를 안수해주시며 “할아버지 같아서 보기가 싫어?”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마음을 읽힌 저는 너무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번에 축복을 받으러 갔을 때 더욱 크게 놀라고 말았습니다. 문을 열고 나오시는 하나님 모습이 너무나 젊고 환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어디에 비할 수 없이 아름다운 그 모습에 저는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저희 죄의 정도에 따라 하나님의 모습이 늙거나 젊게 변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렇게 귀하고 아름다우신 하나님께서 저희의 죄를 안아 맡아 그 부담을 고스란히 감당하셨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 희생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철없이 굴었던 제가 부끄러웠고 하나님께 무척이나 죄송하고 또 죄송했습니다.
1985년 8월에는 시온합창단의 17회 정기연주회를 보러 세종문화회관에 간 일이 있었습니다. 17회 정기연주회는 1,500명이라는 대규모 합창단이 공연해 큰 화제가 되었던 연주회였습니다. 그런데 세종문화회관에 도착해 공연장으로 가는 내내 향취가 맡아지는 것이었습니다. 어디를 지나가도 향취가 맡아지니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더욱 신기한 것은 공연장 안에 들어갔을 때였습니다. 그 넓은 공연장이 진한 향취로 가득 차있는 것 같았고, 마음에는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이 넘쳐서 몸이 하늘로 붕붕 뜨는 듯했습니다. 어디서도 맛보지 못했던 기쁨의 은혜를 체험하고 나니 이제는 정말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겠다고 다짐하며 그날 이후로 교회 일이든, 소비조합 일이든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수 소비조합원의 자격이 되어 해운대 글로리 호텔에서 열린 만찬회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창문을 열면 바다가 보이는 그 호텔에서 귀한 식사 대접을 받으며 하나님께 너무 감사해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또 어느 날은 소비조합원들에게 축복을 해주신다고 하셔서 기장신앙촌에 내려간 적이 있었습니다. 축복을 받고 나서 식사를 하는데 우수 소비조합원에게는 독창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순서대로 나와 하나님 앞에서 독창을 하는데, 평소 노래를 잘하지 못하던 저는 여간 걱정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윽고 제 차례가 되어 노래를 부르는데 얼마나 떨리던지 1절만 불러도 되는 곡을 3절까지 불러버렸습니다. 그렇게 만찬회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이었습니다. 교회 대절 버스 안에서 아까의 일을 회상하며 ‘하나님 앞에서 노래를 더 잘 불렀으면 좋았을 텐데…’ 하며 다시 찬송을 불러보는데, 노래가 너무 잘 불러지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나 곱고 높이 올라가는 음성이 제 음성 같지가 않아서, 저는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알아주시나 보다.’ 감격하며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오래도록 감사의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 후 1990년 하나님께서 낙원에 가셨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애통해하며 교인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신앙촌으로 내려갔는데, 도착하자마자 세종문화회관에서 맡았던 진한 향취가 진동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신앙촌 전체가 향기로 뒤덮인 것만 같았습니다. 저는 그때 ‘아! 하나님께서 여전히 우리와 함께하시는구나!’ 하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를 증명하듯이 하나님 낙원 가시고 바로 그다음 해에 저희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생명물로 너무나도 환하게 잘 피셨습니다.
저는 가족들에게 아버지 장례를 천부교 식으로 치르고 싶다는 뜻을 전했고, 가족들도 모두 동의하여 우리 식으로 입관 예배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우선 수저로 생명물을 떠서 입에 넣어 드리고, 수건에 생명물을 적셔서 아버지를 깨끗이 닦아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수의까지 다 입혀드리고 가족들을 부르니 모두들 놀란 표정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보는 것이 무섭다며 자리를 피했던 동생은 “언니, 아버지 얼굴에 분 발랐어?”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모든 과정을 지켜본 막냇 삼촌이 “분은 무슨 분이냐.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 봤다. 경자가 가져온 물로 닦아드렸을 뿐이데 이렇게 환하게 변하셨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막냇삼촌은 계속 신기하다고 연신 감탄하셨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칙칙했던 아버지 얼굴이 뽀얗게 피어나고 혈색이 감돌아 주무시는 듯 편안한 모습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 귀한 은혜를 허락하시어 믿지 않는 가족들에게도 생명물의 권능을 증거할 수 있게 해주셔서 너무나도 감사했습니다.
저는 그 뒤로 충북 제천으로 이사해 지금까지 신앙촌 소비조합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도 생명물의 권능을 체험했습니다. 올해 9월 제천교회의 故안명숙 권사님이 돌아가셔서 입관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권사님은 평소에도 하나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깊으신 분이었습니다. 준비해온 생명물을 떠서 권사님 입에 넣어드리고, 몸도 생명물을 묻힌 수건으로 닦아드리자 곱고 예쁘게 피어나셨습니다. 너무 뽀얗고 환하게 피어 옆에서 지켜본 교인들도 다들 감탄할 정도였습니다.
그동안 받아왔던 은혜를 떠올려보니 이렇게 귀한 하늘의 권능을 직접 체험하며 진정한 진리의 길을 따르게 되어 참으로 감사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한창 하나님께 축복을 자주 받을 때는 걸어가면서도 향취를 맡고, 교회의 풀 한 포기를 뽑아도 향취, 공중전화에서 고객에게 전화를 걸 때도 향취를 맡았습니다. 그러면 마음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고 천하를 다 얻은 듯했습니다. 비록 남들보다 늦게 깨달아 하나님을 봬온 시간은 짧았지만, 그 시간동안 허락해주신 은혜의 기쁨은 하나님을 알기 전에 느꼈던 모든 기쁨을 다 더한다 하더라도 비할 바가 못 되는 것이었습니다.
올해 2월에는 새벽예배를 드리러 교회에 갔다가 박하향과도 같은 시원한 향취은혜를 맡았습니다. 지금도 변함없이 은혜로 함께해 주시는 하나님을 그리며 더욱 맑게 살고자 다짐했던 날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귀하고 성결한 자 되어 매 순간 마음에 성신을 모시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앞으로 저의 남은 모든 시간이 나의 기쁨과 소망되신 하나님 뜻대로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https://theweekly.co.kr/?p=75394
첫댓글 감동적인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감동적입니다
잘보고가요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