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마 톤즈를 보고 감동을 받아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한국에서의 편한 삶을 마다하고
아프리카 수단 남쪽의 작은 마을 톤즈에 가서
좌절에 빠져있는 아이들에게 밝고 아름다운 음악을 가르쳐주고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의술로 새로운 생명을 주는
희생적 이웃 사랑을 몸소 실천하는 이태석 신부,
그의 모습이 너무나 감동적인 아름다운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예배 후에 교회 형제들과도 함께 감상하기도 했습니다.
형제들이 말뿐이고 행동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과 비교하며 많은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 속에는 무언가 부족한 아쉬운 게 있었습니다.
그게 도대체 무엇일까 생각하다 갑자기 대비되어 생각나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성경번역선교회에서 나온 "Come by here -어서와 주세요-" 라는 다큐멘터리였습니다.
십여년 전에 봤던 영화입니다.
내용은 남미의 어느 야만적 원주민들에게 성경번역선교사들이 들어가서 그들에게 성경을 가르쳐주고 주예수님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없이 미신적으로 살면서 짐승처럼 비참한 삶을 영위하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비로소 인간다운 삶을 알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희망을 얻게 되고, 그들의 삶 속에 빛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선교사가 돌아가고 난 뒤에도 그들은 낙심하지 않을 수 있었는데, 그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마음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살 힘이며 희망이었습니다.
그들이 선교사들로부터 복음을 듣고 그 중에 한 원주민이 말했습니다.
"왜 진작 오시지 않았습니까? 우리 어머니, 아버지 우리 조상들도 이러한 복음을 들었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이 영화가 울지마톤즈를 보면서 떠올랐던 것은,
울지마톤즈에는 감동적인 한 사람의 이야기가 있지만, 톤즈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모습은 발견하기 힘들었습니다.
반면에 "Come by here!"에는 그리스도가 계셨습니다.
물고기를 주는 것보다 물고기를 낚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궁극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속담처럼 우리에게 참된 희망과 힘이 되시는 그리스도 그분을 전해주었습니다.
이태석 신부의 아름다운 희생을 폄하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그는 훌륭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울지마톤즈"는 인간에게 가장 귀중한 선물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임을 역설적으로 느끼게 한 영화였습니다.
첫댓글 동감입니다. <울지마 톤즈>에서는 그런 부분이 보이지 않아 애석했습니다. 진정 그가 전한 것이 인본주의 사랑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는지? 아니면 세속 방송사의 프로그램인 관계로 신앙적인 내용이 편집된 것인지?... 에 대해서는 판단 유보입니다.
난.....그런 분들을 보면 괜시리 힘이 빠지고 작아진답니다....
아랫동서와 같이 보면서 많은 감동을 받고 눈물을 닦았습니다..
교회에 부정적인 동서가 또 "도전적인 말"을 하더군요....
"신부들은 저렇게 희생봉사 하는데 교회서는 왜 돈만 끌어 모으고 희생봉사가 없어요?"
"ㅇㅇㅇㅇ"